살아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군더더기가 없고 허투른 것 하나 없는, 단어 하나, 문장까지 정수에 가깝다. 그렇게 살아오신 분 같다. 감사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할 수 있고, 이 세상을 떠날 때 감사의 마음으로 떠날 수 있는 그러한 삶. 그 분의 모습(24쪽, 44쪽 사진)을 보면서 이렇게 늙고 싶다. getting older like h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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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일반판)
올리버 색스 지음, 김명남 옮김 / 알마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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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원소와 생일은 늘 하나로 얽혀 있는 것이었다. 어릴 때부터, 내가 원자번호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부터 그랬다. 열한 살 때 나는 "난 나트륨이야"라고 말했고(나트륨은 11번 원소이다), 일흔아홉 살인 지금 나는 금이다. (15쪽)

이어진 기나긴 시간 동안 내 머릿속에는 온갖 기억이 엄습해왔다. 좋은 기억도 있고, 나쁜 기억도 있었지만, 대부분 감사하고픈 기억들이었다. 내가 남들로부터 받은 것에 대한 감사, 그리고 내가 조금이라도 돌려줄 수 있었다는 데 대한 감사. (16쪽)

오든이 죽은 지 사십 년이 흘렀지만, 나는 아직도 꿈에서 종종 그를 본다. 그리고 부모님을 만나고, 예전 환자들도 마주한다. 다들 죽은 지 오래되었지만 내 삶에서 내가 사랑했고 내게 중요했던 사람들이다. (18쪽)

남은 몇 달을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문제는 내 선택에 달렸다. 나는 가급적 가장 풍요롭고, 깊이 있고, 생산적인 방식으로 살아야 한다. (26쪽)

두렵지 않은 척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내가 무엇보다 강하게 느끼는 감정은 고마움이다. 나는 사랑했고, 사랑받았다. 남들에게 많은 것을 받았고, 나도 조금쯤은 돌려주었다. 나는 읽고, 여행하고, 생각하고, 썼다. 세상과의 교제를 즐겼다. 특히 작가들과 독자들과의 특별한 교제를 즐겼다. 무엇보다 나는 이 아름다운 행성에서 지각 있는 존재이자 생각하는 동물로 살았다. 그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특권이자 모험이었다. (29쪽)

그날 안식일의 평화, 세상이 멈춘 평화, 시간 밖의 시간이 주는 평화는 꼭 손에 잡힐 듯했다. 주변 모든 것에 평화가 스며 있었다. 나는 어쩐지 노스탤지어에 가까운 애석한 감정에 젖어서 자꾸 ‘만약에‘를 떠올렸다. 만약에 A와 B와 C가 달랐더라면 어땠을까? 만약에 그랬다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 어떤 삶을 살았을까? (55쪽)

그리고 이제 쇠약해지고, 호흡이 가빠지고, 한때 단단했던 근육이 암에 녹아 버린 지금, 나는 갈수록 초자연적인 것이나 영적인 것이 아니라 훌륭하고 가치있는 삶이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로 생각이 쏠린다. 자신의 내면에서 평화를 느낀다는 게 무엇인가 하는 문제로. 안식일, 휴식의 날, 한 주의 일곱 번째 날, 나아가 한 사람의 인생에서 일곱번째 날로 자꾸만 생각이 쏠린다. 우리가 자신이 할 일을 다 마쳤다고 느끼면서 떳떳한 마음으로 쉴 수 있는 그날로. (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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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흐른다, 지나간다, 로만 여겼는데, 시간은 멈춰서 고여있기도 한다, 아니에르노처럼 형체로도 만질 수 있다... 그녀의 개인적인 삶을 통해, 우리가 살아온 세계를 본다. 그녀는 자신의 삶의 수단인 책을 자신만의 언어로 기록하며 살아가고 있다. 1941-2006 사이의 기록이다. 자신의 삶을 제3자, 그녀라는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어느 순간 정지해 있고, 어느 순간 알아채기도 전에 사라져 버리는, 사라질 것들을 기록이라는 수단으로, 돌아갈 수 없는 시간, 즉 세월을 기억하면서 사라지지 않게 하고 있다.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을 옮기면서 우리 모두가 꿈꿨을 그러한 인생을 나와 그녀, 그, 우리는 어떻게 단어를 고르고, 무슨 말로 쓰고 있는지... 


모든 장면들은 사라질 것이다. (9쪽)

옛날 학창 시절, 자신의 방에서 글쓰기를 꿈꿨을 때, 그녀가 점술가들처럼 신비로운 것들을 밝히는 낯선 언어를 찾아내기를 희망했었다. 책을 완성하는 것을 깊은 곳에 있는 자신의 존재를 타인들에게 알리는 것으로, 높은 업적으로, 영광으로 상상하기도 했다. -어릴 적 그녀가 자고 일어나면 스칼렛 오하라가 되어 있기를 바랐던 것처럼 [작가]가 되기 위해서 무엇을 내놓지 않을 수 있었을까. 그 후로, 40여명의 학생들이 있는 시끄러운 학급에서, 슈퍼마켓의 카트 뒤에서, 공원의 벤치 유모차 옆에서 이 꿈들은 그녀를 떠났다. 영감을 받은 단어들이 마법을 부려 등장하는, 형언할 수 없는 세상은 없으며 그녀는 자신을 분노하게 만드는 것들에 대항할 수 있다고 믿고 있던 유일한 도구, 오직 자신의 언어 안에서만, 모두의 언어 안에서만 쓸 것이다. 그러므로 써야 할 그 책이 투쟁의 수단인 것이다. (302쪽)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의 무언가를 구하는 것. (30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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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 아니 에르노 컬렉션
아니 에르노 지음, 신유진 옮김 / 1984Books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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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성적욕망처럼 결코 멈추는 법이 없다. 그것은 망자와 산자를, 실존하는 존재와 상상의 존재를, 꿈과 역사를 결합한다. (14쪽)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말해 주는 문장들을 노트에 적으면서-진정한 행복은 우리가 그것을 느낄 때 깨닫는 것이다. (78쪽)

우리는 정해진 이 미래 앞에서 막연히 오랫동안 젊음에 머무르기를 바랐다. 연설과 제도는 우리들의 욕망보다 뒤처졌고, 사회가 말로 표현하는 것과 우리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 사이릐 격차는 당연했으며, 그것은 메울 수 없는 것으로 보였다. (95쪽)

그녀에게 학업이란 가난에서 벗어나는 수단만이 아닌,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여성성의 담보와 한 남자에게 빠지는 유혹에 맞서 싸울 수 있는 특별한 무기다. 결혼할 마음도, 아이를 갖고 싶은 마음도 전혀 없고 모성애적인 행동과 지성의 삶은 양립할 수 없다고 여긴다. (107쪽)

그녀가 진짜 생각이라고 여기는 것은 그녀가 혼자 있을 때나 아이와 산책할 때 찾아온다. (중략) 그녀 자신에 대한 질문들, 존재와 소유, 실존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다. (121쪽)

우리들의 인생을 다시 돌아봤고, 남편과 아이들을 떠날 수 있음을,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음을 그리고 잔인한 것들을 쓸 수 있음을 느꼈다. (137쪽)

지방에서 파리 지역으로 오면서 시간은 가속화됐다. 감정이 유지되는 시간이 달랐다. 저녁이 오면 신경이 곧두선 학생들과 모호한 수업을 했을 뿐, 아무것도 한 게 없는 것 같았다. 파리 지역에 산다는 것은, 차로만 다닐 수 있는 도로망으로 혼잡해진, 지리학을 벗어난 영토에 던져지는 것이다. (158쪽)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책 한 권이 저절로 써지는 것 같지만, 사실은 마무것도 없다. (178쪽)

그녀의 가장 큰 고민은 [나]와 [그녀] 사이의 선택이다. [나] 안에는 너무도 확고부동한 것들, 편협하고 숨 막히는 무언가가 있고, [그녀] 안에는 너무 많은 외재성과 거리감이 있다. (225쪽)

아노미가 이겼다. 지적인 구별의 표식으로서 언어는 더욱 현실감을 잃었다. 경쟁력, 불안정, 고용적격자, 유연성은 분노를 일으켰다. 우리는 정돈된 담화 속에 살면서 그것을 거의 듣지 않았다. 리모컨은 지루한 시간을 단축시켜 줬다. (228쪽)

우리는 어른이 된 그 아이들을 보고 들으면서, 우리들을 결속하는 것은 피도 유전자도 아닌, 다만 함께 보낸 수천 번의 나날들, 마로가 몸짓, 음식들, 차를 타고 다닌 거리, 의식한 흔적 없는 다수의 공통된 경험들의 현재가 아닐까 생각했다. (240쪽)

우리는 늙지 않았다. 우리 주변에 있는 어떤 것도 노화에 이를 정도로 충분히 오래가지 못하고 교체됐으며, 전속력으로 재개발됐다. 기억은 그것들을 삶의 순간에 결합시키는 시간을 갖지 못한다. (248쪽)

그녀는 하나씩 차례로 떠다니는 인생의 여러 순간 속의 자신을 느끼고 있다. 그것은 그녀의 의식과 그녀의 육체를 사로잡는 낯선 본성의 시간이며, 그녀였던 모든 존재의 형태들이 순식간에 되돌아오는 듯한, 현재와 과거가 뒤섞임 없이 겹쳐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255쪽)

뒤섞인 개념 속에서 자신만을 위한 문장, 침묵 속에서 자기 자신에게 외치면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문장을 찾기가 점점 더 어려워졌다. (278쪽)

해가 다르게, 아니 달이 바뀔 때마다 그녀를 둘러싼 세상은 변함이 없는데 자신은 다른 사람이 된다고 확신했었던 사춘기 때와는 반대로, 이제는 그녀가 달리는 세상 속에서 부동의 자세로 있는 듯한 느낌이다. (293쪽)

어쩌면 언젠가는 사물들과 그것의 명칭이 불일치를 이루고 그녀가 현실을 명명하지 못하게 되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실재만이 남을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바로 지금, 글로써 미래의 자신의 부재를 형태로 만들어 놓아야 하며, 20년째 자신의 분신이자 동시에 앞으로 점점 더 긴 시간을 보내게 될, 아직 미완성인 수천 개의 메모 상태에 불과한 이 책을 시작해야만 한다. (298쪽)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주어진 시대에 이 땅위에 살다간 그녀의 행적을 이루고 있는 기간이 아니라 그녀를 관통한 그 시간, 그녀가 살아 있을 때만 기록할 수 있는 그 세상이다. (2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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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은 발 사이즈가 크다. 백수의 시간이 얼마나 빠른지, 화살같다. 추석연휴에도 온전히 푹 쉬었다. 미드보고 라디오듣고 뜨개질하고 노래부르고 맥주마시고 간간히 책 읽었다. 커피 머신를 샀다. 시나몬 가루도 주문하고, 우유거품스텐도 구입해 카페라떼와 카푸치노 만드는 데 정성을 기울였다. 총알같은 배송으로 우유와 기타 먹거리는 집에서도 충분했다. 

냅의 글은 진솔하다. 여자가 겪을 수 있고, 여자라서 생기는 일, 여자라면 한 번씩 고민하고 걱정하고 불안으로 떨어 봤을 그러한 세세한 항목들이 가감없이 들어있다. 우리가 중독에 빠지는 이유가 있다. 부모와의 관계, 그들과의 이별, 자기 모습, 감정, 마음의 근육까지, 그리하여 관계, 술, 정리정돈, 음식, 운동 등 긴 터널을 빠져 나온 이야기다. 모든 게 연결되어 있다. 

냅을 아주 예전에 만났더라면, 만났더라면, 어땠을까....., 누군가에게, 특히 아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그리고 김명남이 번역한 책을 더 읽고 싶다.

요즘 무엇을 먹어도, 읽어도, 뭔가를 하고 있어도 도무지 흥이 안난다... 하지만 잘 늙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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