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에 가기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6년 8월
구판절판


호퍼의 작품은 잠시 지나치는 곳과 집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을 보여주는 것 같지만,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마치 우리 자신 내부의 어떤 중요한 곳, 고요하고 슬픈 곳, 진지하고 진정한 곳으로 돌아온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이것이 호퍼 그림의 묘한 특징이다. 그의 작품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기억하는 것을 돕는다. '우리 자신'을 잊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문제는 실제적인 자료를 말 그대로 잊는 것이 아니다. 우리 자신의 완결성이나 행복의 느낌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 우리 내부의 어떤 특정한 부분을 잊는 것이다. 우리는 여러가지 많은 자아를 가지고 있지만, 그 모두가 똑같이 '나'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우리는 외모에서 이런 분열과 가장 분명하게 마주치게 된다.

참고)에드워드 호퍼 [주유소Gas] : 외딴 길 한 쪽에 서 있는 주유소의 풍경을 통해 저녁 무렵의 스산함과 우울함, 절망감과 고독을 화면 가득 담아냈다.[출처] 네이버 백과사전-15-16쪽

눈은 자신이 보는 것을 머릿속에 있는 지식과 일치시키려 한다. 익숙한 책을 새로운 언어로 판독하려는 것과 같다. -35쪽

이런 식으로 열등감을 느끼게 되면, 바로 나 자신이라고 말하기 힘든 어떤 다른 인물로 위장할 필요가 생긴다. 나보다 우월한 존재의 요구를 탐색하여 거기에 부응하려고 노력하는 유혹자의 자아를 전면에 내세우게 되는 것이다. 사랑 때문에 나는 나 자신이 아닌 존재가 되어버릴 운명인가?-44-45쪽

피하기 위한 거짓말과 사랑받기 위한 거짓말. 유혹과정의 거짓말은 다른 영역의 거짓말과 매우 다른 면이 있었다. 내가 경찰에게 자동차 속도를 거짓으로 말한다면 그것은 분명한 이유 때문이다. 벌금이나 체로를 피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랑받기 위한 거짓말에는 괴상한 가정이 수반된다.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사랑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자신의 모든 개인적[따라서 다른 사람과 다른]특징을 비워버려야만 상대의 사랑을 얻을 수 있으며, 자신의 진짜 자아는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발견되는 완벽성과 화해 불가능한 갈등 관계에 있다고[따라서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판단하는 태도다. -60-61쪽

고용자와 피고용자 사이에 어떤 동지애가 이룩된다 해도, 노동자가 아무리 선의를 보여주고 아무리 오랜 세월 일에 헌신한다 해도, 노동자들은 자신의 지위가 평생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 그 지위가 자신의 성과와 자신이 속한 조직의 경제적 성공에 의존한다는 것. 자신은 이윤을 얻기 위한 수단일 뿐이지 감정적인 수준에서 늘 갈망하는 바와는 달리 결코 그 자체로 목적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결국 노동자는 늘 불안하게 살아갈 수 밖에 없다. -82쪽

보통이라는 것이 존엄과 안락에 대한 중간적인 요구도 충족시키지 못하는 삶을 영위한다는 의미일 때는 높은 지위를 향한 욕망이 강렬해질 수밖에 없다. -111쪽

다른 사람들이 쓴 책을 읽다 보면 역설적으로 나 혼자 파악하려 할 때보다 우리 자신이 삶에 관해서 더 많이 알게 된다. 다른 사람의 책에 있는 말을 읽다 보면 전보다 더 생생한 느낌으로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 세계는 어떠한지 돌아보게 된다. 예를 들어 젊은 시절 짝사랑이 무엇인지 나에게 가르쳐주는 사람은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다. 정치가나 광고업자의 헛배운 어리석음을 보게 해준 사람은 프로베르의 오메[보바리 부인)의 등장인물]다. 내가 질투심에 무너질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프루스트의 고통스러운 구절들 덕분이다. 그러나 위대한 책의 가치는 우리 자신의 삶에서 경험하는 것과 비슷한 감정이나 사람들의 묘사에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보다 이들을 훨씬 더 잘 묘사하는 능력 또한 중요하다. 독자가 읽다가 이것이 바로 내가 느꼈지만 말로 표현을 못하던 것이라고 무릎을 쳐야 하는 것이다. -1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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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간히 싸리눈이 내리는 아침, 비와 안개의 도시, 시애틀에서의 애나와 훈의 이야기를 보러갔다. 애나의 표정을 따라가면 된다. 1)놀이동산에서 애나는 자신의 이야기를 중국어로 한다. 훈은 중국어 '하오(좋아)''화이(좋지않다)'를 번갈아가며 답한다. 내용과 대답은 만났다가 헤어진다. 그러면서 애나는 마음을 연다. 2)장례식장에서의 싸움에서 애나는 사랑했던 옛남자에게서 '미안하다'란 소리를 듣고 절규한다. 그러면서 애나는...... 3)훈의 시계와 애나의 귀걸이, 안개는 애나에게 시간의 단절과 소통의 부재를 말해준다. 애나의 표정을 보면서 마음으로 이야기를 따라가면 어느덧 마음이 닿는 게 있다. 훈이 ''What time is it now?" 보다 "Do you have the time?" 이렇게 물었더라면... 탕웨이의 자연스러움이 멋있다. 현빈의 도움은 더 멋있다. 마음이 상하거나, 그럴 때 영화를 보는 게 어떠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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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귀 맞은 영혼 - 마음의 상처에서 벗어나는 방법
배르벨 바르데츠키 지음, 장현숙 옮김 / 궁리 / 2002년 7월
구판절판


마음상함은 자기 자신을 온전하고 한결같은 존재로 경험하지 못하도록 우리의 감정에 상처를 입힙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깊은 불안에 빠지게 되고, 무력감과 실망. 고통. 분오. 경멸감에 휩싸이게 됩니다. 상처받은 마음은 상대로부터 완강히 돌아서서, 복수와 응보를 끊임없이 궁리합니다. -22쪽

마음상함은 극복한다는 것은 어떤 일을 자신과 관련지어보되, 주변 세계의 긍정적인 기호, 즉 ㅇ리의 자존감을 강화시켜주는 기호와 연결시키는 능력을 얻는 것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습니다.-39쪽

수치심과 죄는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언제나 서로 분리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부분적으로 서로 겹치는 면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수치심이 죄보다도 견디기가 어렵습니다. 죄는 종종 고백이나 후회, 속죄나 보상등의 행위를 통해 해소될 수 있지만, 수치심은 인간의 가장 내밀한 곳, 즉 정체감을 건드리므로 어떤 방법으로도 완전히 없앨 수는 없는, 소멸 불가능한 체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행한 어떤 일이나 중단한 일에 대해서, 우리는 죄책감을 느낍니다. 반면에 수치심의 대상은 바로 우리 자신, 나아가서는 남에게 보여진 우리 자신입니다. 개리 욘테프Gary Yontef는 수치심과 죄를, 그것이 야기하는 결과의 관점에서 이렇게 구별합니다. "죄를 지었을 경우 그 보복은 벌이다. 한편, 수치심에 대한 보복은 버림받는 것이다. 자기에게 소중한 사람이 자기를 외면하는 것에서부터 물리적으로 떠나는 것, 그리고 추방에 이르기까지 이 버림받음은 광범위하다."-65쪽

지금 앓고 있는 상처는 대개 이전의 상처받은 경험, 자존감을 건드린 경험과 결부되어 있다는 사실이지요. 말하자면 이런 기억들은 미해결 과제offene Gestalt가 되어, 해결이 되지 않은 채 무의식 속에 남아 있는 겁니다. 무의식 안에서 '상처난 부위'로 있다가, 비난이나 퇴짜를 맞든지 버림받거나 무시를 당하면 미처 해결되지 않은 옛날의 상처가 되살아나면서 마음상함을 경험하게 되는 겁니다. -83쪽

누구나 자기가 살아온 내력에 따라 나름대로 여러 가지 미해결 과제를 상처 부위의 배경으로 갖고 있지만, 보통은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지냅니다. 왜냐하면 어린 시절에 겪은 상처는 어린아이의 건망증, 즉 망각의 영향력 아래 있어서, 의식적 회상을 통해서는 대개 불러낼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망각은 우리를 계속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그러나 제대로 낫지 않은 이전의 상처로 인한 부상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상담 치료를 통해 우리는 묵은 상처를 찾아내어 과제를 완성시킬 수 있습니다. 그 작업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질수록 마음상함에 대한 저항력도 그만큼 커집니다. -85쪽

이제 나의 관심사는 다음의 두 가지 질문으로 모아집니다. 첫째, 마음이 상처를 받은 상황에서 사고와 행동이 유연성을 잃고 막혀버리는 양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둘째, 같은 상황에서 감정이 지나치게 분출하는 것은 또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122쪽

"뚜렷한 의식을 갖고 결정을 내리고 그 결정을 바탕으로 합당한 행동을 하는 것은, 일종의 자제력의 표현입니다. 순수하고 자유로운 삶의 가장 큰 특징인 통합성 또는 전체성의 직접적 표현이지요" 그런데 심적 타격을 받을 때면 우리는 이 전체성이라는 권위를 전혀 사용하지 못합니다. -127쪽

그러나 마음을 다치게 하는 것은 비단 시기와 경쟁심만이 아닙니다. 질투 역시 내면의 평화를 깨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질투심은 고민 거리를 열심히 찾아다니는 정열이다"고 한 철학자 슐라이어마허Friedrich Schleiermacher(1768~1834, 독일의 신학자. 설교가. 문헌학자. 일반적으로 근대 프로테스탄트 신학의 기초를 놓은 인물로 평가된다)의 말은 오늘날에도 변함없이 일리가 있습니다. '찾는다'는 말에는 '자기에게 고통을 가져올 것'을 처음부터 목표로 삼아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적극적 동기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질투심이라는 것은 외부에서 오는 어떤 것, 남이 나에게 끼치는 어떤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의 태도에 대한 개인의 선택적 반응입니다. 인용한 슐라이어마허의 말 속에는, 스스로 고통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이 떠다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결정을 내릴 수도 있다는, 다시 말해 고통말고 다른 것을 찾아볼 수도 있다는 가능성까지 함께 숨쉬고 있습니다. -205-206쪽

각자 자신만의 마음상함 거리를 확실히 짚어낼 때까지는, 우리는 똑같은 유형의 상황가 처지에서 끊임없이 거듭하여 상처를 받게 됩니다. 마치 언젠가는 상처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 예전의 그 상처받던 상황을 반복하여 상연하는 격이지요. 이러한 마음상함에서 벗어나려면 내사를 변화시켜야 합니다. 소화할 수 없는 지침, 자기를 옭죄는 금지 사항 같은 것을 해체하겠다는 목표를 갖고서 말입니다. 유리관이 땅에 떨어져 몸이 흔들리는 바람에 목에 걸렸던 사과 조각이 튀어 나와 백설공주가 다시 살아났던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공주의 목에 걸려서 공기를 차단하고 있었던 이 사과 조각처럼 우리에게 속하지 않으면서 우리의 삶을 어렵게 하거나 아예 살아갈 수 없게 하는 원인을 마음에서 떨구어버릴 때, 우리 마음속에는 새 공간이 열리면서 마음상함에 대처하는 새로운 가능성이 모습을 드러내게 됩니다. -241쪽

그런데 화해에는 나를 다치게 한 사람과의 화해 외에 자기 자신과의 화해도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도착'했다는 뜻으로, 지금 있는 그대로의 자기를 받아들이고 존중함을 의미합니다. 현재 나의 모습이 아닌 것, 안간힘을 써서 도달해야 할 목표가 아닌, 지금 이미 여기 존재하는 나의 모습만이 여기서 말하는 '자기 자신'입니다. "행복은 미래에만 있을 수 있어"하고 믿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들은 지금 이 순간의 충많ㅁ을 지나쳐버리고 있는 셈입니다. "우리가 행복할 수 있는 조건은 이미 넘치도록 마련되어 있습니다. 이제 현재에 떠억 발을 딛고 서겠다는 결심만 하면 되는 것이지요......"
미래에 무언가를 기대하고 있을 때에만 사람은 마음을 상하게 됩니다. 현재를 충만하게 느끼며 사는 동안에는 마음상함이란 있을 수 없지요 "우리가 행복할 이유는 많고 많습니다." 굳이 마음상함을 겪으면서 불행해질 이유가 있을까요? -2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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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내 우울하고 어디론가 가고 싶었다. 길을 나섰지만 막혀서 다시 되돌아왔다. 막막... 갈 곳도, 만날 이도 없다. 영화를 보러 나섰다가 먼곳의 친구에게 갔다...언제나 한결같이 쌍수를 들고 맞아주고,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있는 그대로 들어주는 그는, 정말로 나를 사랑하나보다. 바리스타에서 한잔의 커피 마실 시간만 보내고 왔다... 돌아오는 길이 예사롭지 않았지만, 고마워!!! 어제의 일이다.

-비가 온다. 예배를 보는 둥 마는 둥, 마음은 콩밭에 갔다. 커다란 통유리가 있는 찻집, 빗소리가 바람에 실려 쏴아하니 몰려오는 게 보인다. 바람이 보이다니, 신기하지요... 손때가 묻고 누렇게 변하고 갈피갈피마다 사연이 있는 '안도현의 내가 사랑하는 시'는 마음이 가끔씩 오두방정(?)을 떨 때 들쳐보는 책이다. 겉표지엔 분명 내가 쓴 황지우의 '너를 기다리는 동안''뼈아픈 후회'가 적혀있다. 한때 누군가를 기다리며 후회하며 적었던 걸까?   

-백지영의 '그남자'와 '그여자'를 들으며, 옛날의 여행기로 마음을 달랜다.       

1)그남자   

한 남자가 그대를 사랑합니다. 그 남자는 열심히 사랑합니다. 매일 그림자처럼 그대를 따라다니며 그 남자는 웃으며 울고있어요. 얼마나 얼마나 더 너를 이렇게 바라만 보며 혼자 이 바람같은 사랑 이 거지같은 사랑 계속해야 니가 나를 사랑 하겠니. 조금만 가까이 와 조금만. 한발 다가가면 두 발 도망가는. 널 사랑하는 난 지금도 옆에 있어 그 남잔 웁니다.     

그 남자는 성격이 소심합니다. 그래서 웃는 법을 배웠답니다. 친한 친구에게도 못하는 얘기가 많은 그 남자의 마음은 눈물투성이. 그래서 그 남자는 그댈 널 사랑 했대요 똑같아서. 또 하나같은 바보 또 하나같은 바보. 한번 나를 안아주고 가면 안되요.  
   

난 사랑받고 싶어 그대여. 매일 속으로만 가슴 속으로만 소리를 지르며. 그 남자는 오늘도 그 옆에 있대요. 그 남자가 나라는 걸 아나요. 알면서도 이러는 건 아니죠. 모를꺼야 그댄 바보니까. 얼마나 얼마나 더 너를. 이렇게 바라만 보며 혼자. 이 바보같은 사랑 이 거지같은 사랑. 계속해야 니가 나를 사랑 하겠니. 조금만 가까이 와 조금만. 한발 다가가면 두 발 도망가는. 널 사랑하는 난 지금도 옆에 있어 그 남잔 웁니다. 
 

2)여행기   

당신. 밤기차를 타 본적 있나요. 포항까지 긴 시간이 밤을 가르고 있습니다. 재잘 되는 소리 속으로 기차를 보냅니다. 한결같은 모습, 목소리, 마음을 함께하여 크레타 섬으로 가봅니다. 비록 지중해의 한가운데는 아닐지라도 바다를 끼고 있는 한적한 찻집의 헤이즐럿향내는 묵은 체증을 풀어내려줍니다. 동해의 천곡동굴은 무슨 생각으로 시내 한가운데서 떡 버티고 있는지……. 아 그렇군요. 지나는 사람의 땀을 식혀주고, 마음의 갈증을 풀어주는 시원한 청량제 역할을 묵묵히 하고 있습니다. 말없이 제 할일을 하는 이의 모습을 본 듯합니다. 구비 구비 길, 서로 포개져 있는 산, 푸른 나무, 하늘, 파란바다를 끼고 도착한 곳. 정동진에서의 굽은 소나무는 아무리 찾아도 없고 몇 그루의 소나무에서 장삿속만 난무할 뿐, 당신도 아마 그곳에 있다면 모레시계를 되돌리고 싶은 기분이 드리라 생각됩니다. 아쉬운 기찻길만 따라갑니다. 당신. 초당두부는 몸에 좋다고 합니다. 요즘의 입맛을 옛것으로 돌리기엔 무에 하지만 한번쯤 먹어보면 옛날 맛을 느껴볼까하는 향수가 지나쳤나봅니다. 할머니의 손맛을 느껴보기엔 너무도 때 묻은 초당두부의 신 김치를 대할 땐 역겨움조차 밀려왔지만, 주변의 풍광 속에서 오랜 세월동안 변치 않은 소나무들을 보았을 땐 인간의 부끄러움을 서로 감춰줘야함을 느낍니다. 경포의 호수는 초승달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붐비는 사람들로 더럽혀져가는 마을을 씻어 내리는 파도를 창가에서 바라봅니다. 또한 당신을 꿈꾸며 파도소리가 아닌 사람의 소리로 밤을 맞이합니다. 행여 당신이 꿈속에라도 오실는지 큰 창문을 열어두지만 초승달만 살짝 엿보고 가고 있습니다. 당신. 에디슨을 알고 있나요. 사람을 정말로 사랑한 에디슨의 발명품들을 입 벌려 바라보면서 애정을 갖고 수집한 손길의 수고에도 머리가 절로 숙여집니다. 클래식음악의 녹녹함이 몸과 맘으로 스며들어 앞으로의 길이 신나는 발걸음으로 기대됩니다. 옛 어른들의 아름다운 집 선교장으로 갑니다. 활래정에 기대 앉아 연꽃을 벗 삼아 당신에게 드릴 차 한 잔을 끓여 봅니다. 전나무가 우거진 오대산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아직도 차향이 코끝을 간질이고 있습니다. 멀리 있을 땐 그리 잘 보이더니 가까이 갈수록 찾을 길 없는 이곳이 나무와 하늘과 굽은 길 조차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입니다. 당신. 전나무는 본적 있나요. 곧게 뻗은 전나무숲길을 물소리에 맞춰 거닐다 보면 어느덧 신선이 되어 상원사의 종을 울리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종은 얌전히 앉아있건만 마음속의 부대끼는 상념들은 종을 여전히 울려대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종소리가 들리는지요. 멀리 메밀꽃이 보입니다. 봉평과 평창은 온통 메밀로 만든 곳입니다. 먹는 것 입는 것 사람까지 메밀로 보이는 땅에서 돈가스를 찾는다는 게 어찌 보면 처음부터 잘못된 생각일지 모릅니다. 삶이란 게 다 그런 게 아닐는지……. 향내로 떠내려 온 허브나라를 찾아가 보지만 빗물에 씻겨 내려가고 짙은 향내로 남아있는 봉평과 평창이 발목을 붙잡고 놓아주질 않습니다. 들어가도 들어가도 끝없는 이곳에서 맘과 몸과 입이 향기에 취한 것입니다. 지나온 삶에서 이리 발목 잡힌 때가 언제였는지도 생각해 봅니다. 혹 붙잡은 이가 당신인지도. 정선아리랑으로 정선에 머무릅니다. 비록 아시나요. 사랑. 알고 싶어요. 가시나무. 영영. 보고 싶은 얼굴. 내가 만일. 아름다운구속의 노래방 기계가 이 정선의 아리랑을 욕보일지라도 이 밤 새워 불러봅니다. 당신. 들리나요. 얼마나 당신을 보고 싶어 하고, 그리워하는지. 또한 '손 뻗으면 닿을 듯, 그러나 닿지 않는, 눈에만 삼삼한' 詩도 생각납니다. 정선의 화암약수로 정신을 차려봅니다. 장릉에 누어있는 슬픈 사람 단종의 마음도 되어봅니다. 물이 불어 건널 수 없는 청령포를 바라보면서 눈물도 가려봅니다. 그리워 그리워 애절한 마음만 동강에 하나씩 풀어 보냈을 젊은 남자 단종의 슬픈 사랑 속에서 당신을 보게 됩니다. 지나간 한시절의 사랑이 이 같지 않으니 누가 있으리를 뒤로하고 부석으로 갑니다. 부석으로 가는 길의 아름다움을 글로 나타낼 수 없음을 아쉬워하며 부석의 배흘림기둥에 기대어 당신을 은근히 그리워도 해 봅니다. 아름다운 산들이 손잡고 겸손하게 자리 잡고 있는 산에서 배워봅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산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넉넉하고 안온하고 편안함을 주는 산과 같은 마음을 닮고 싶습니다. 아직도 그 산 그곳에 있으니……. 언제나 다가갈 수 있는 당신 있으니……. 살아 볼만한 세상입니다. 멋진 저녁입니다. 'feel so good'이란 간판에 끌려 만찬도 합니다. 궁전호텔에서 아름다운 꿈도 꿉니다. 모두 왕비와 왕자가 되어 봅니다. 그러면 당신은 왕과 공주가 되리라 생각됩니다. 즐겁고 행복한 여행이었습니다. 3박 4일 함께 한 아름다운 친구 은수기, 소훈, 규현에게 감사와 칭찬을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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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작고 하찮은 것들에 대한 애착 - 안도현의 내가 사랑하는 시
안도현 지음 / 나무생각 / 199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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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읽어도 세월은 가고, 시를 읽지 않아도 세월은 간다. 그러나 시를 읽으며 세월을 보낸 사람에 비해 시를 읽지 않고 세월을 보낸 사람은 불행하다. 시 읽기가 새롭고 다양한 세계에 대한 하나의 경험이라면, 시를 읽지 않은 사람의 경험은 얕아서 찰방거리고 추억은 남루할 테니까 말이다. 추억이란 세월의 축적이기 때문이다. -4쪽

즐거운 편지

-황동규

1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2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 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姿勢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53쪽

참깨를 털면서

-김준태

산그늘 내린 밭귀퉁이에서 할머니와 참깨를 턴다.
보아하니 할머니는 슬슬 막대기질을 하지만
어두워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젊은 나는
한 번을 내리치는 데도 힘을 더한다.
세상사에는 흔히 맛보기가 어려운 쾌감이
참깨를 털어내는 일엔 희한하게 있는 것 가탇.
한 번을 내리쳐도 셀 수 없이
솨아솨아 쏟아지는 무수한 흰 알맹이들
도시에서 십 년을 가차이 살아온 나로선
기가 막히게 신나는 일인지라
휘파람을 불어가며 몇 다발이고 연이어 털어낸다.
사람도 아무 곳에나 한번맘 기분좋게 내리치면
참깨처럼 솨아솨아 쏟아지는 것들이
얼마든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정신없이 털다가
"아가, 모가지까지 털어져선 안되느니라"
할머니의 가엾어하는 꾸중을 듣기도 했다.-69쪽

기차는 간다

-허수경

기차는 지나가고 밤꽃은 지고
밤꽃은 지고 꽃자리도 지네
오 오 나보다 더 그리운 것도 가지만
나는 남네 기차는 가네
내 몸 속에 들어온 너의 몸을 추억하거니
그리운 것들은 그리운 것들끼리 몸이 먼저 닮아 있었구나-132쪽

그 여자네 집

-김용택

가을이면 은행나무 은행잎이 노랗게 물드는 집
해가 저무는 날 먼데서도 내 눈에 가장 먼저 뜨이는 집
생각하면 그리웁고
바라보면 정다웠던 집
어디 갔다가 늦게 집에 가는 밤이면
불빛이, 따뜻한 불빛이 검은 산속에 깜박깜박 살아 있는 집
그 불빛 아래 앉아 수를 놓으며 앉아 있을
그 여자의 까만 머릿결과 어깨를 생각만 해도
손길이 따뜻해져오는 집

살구꽃이 피는 집
봄이면 살구꽃이 하얗게 피었다가
꽃잎이 하얗게 담 너머까지 날리는 집
살구꽃 떨어지는 살구남 아래로
물을 길어오는 그 여자 물동이 속에
꽃잎이 떨어지면 꽃잎이 일으킨 물결처럼 가닿고
싶은 집

[중략]
-145쪽

유월의 살구나무

-김현식

피아노 소리는 마룻바닥을 뛰어다니고
창 밖엔 비가 내린다 기억나는 일이 뭐,
아무것도 없는가? 유월의 살구나무 아래에서
단발머리의 애인을 기다리며 상상해 보던
피아노 소리 가늘고도 긴 현의 울림이
바람을 찌르는 햇살 같았지 건반처럼 가지런히
파르르 떨던 이파리 뭐 기억나는 일이 없는가?
양산을 거꾸로 걸어놓고 나무를 흔들면
웃음처럼 토드득 살구가 쏟아져 내렸지
아! 살구처럼 익어가던 날들이었다 생각하면
그리움이 가득 입안에 고인다 피아노 소리는
마룻바닥을 뛰어다니고 창 밖엔 비가 내린다
살구처럼, 양산의 가늘고도 긴 현을 두드리던
살구처럼, 하얀 천에 떨어져 뛰어다니던 살구처럼,
추억은 마룻바닥을 뛰어다니고 창 밖엔 비가 내린다-1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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