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인문학 - 현장의 인문학, 생활 속의 인문학 캠페인
구효서 외 지음 / 경향미디어 / 2011년 4월
품절


'길 위의 인문학'을 통해 대중들이 생각한 인문학은 인문학자들의 생각과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대중들은 좀 더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피부에 와 닿는 인문학을 요구한다. 문화유산과 역사 인물의 현장을 직접 보고 느끼고 체험하는 과정을 통해 인간과 인간, 자연과 인간, 과거와 현재가 서로 교감하고, 일상의 삶에서 '재미와 유익', '감동과 느낌', '여유와 관조'를 얻으려 한다. 인문학은 그러한 콘텐츠를 갖고 나아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 인문학자는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그들과 소통하는 자세과 필요하다. -8쪽

퇴계를 비롯한 유교의 지적 거장들이 추구한 함양(涵養)과 체찰(體察)의 삶, 혹은 성(誠)과 경(敬)의 공부 자세는 인간의 건전한 삶에 대한 희구와 염원의 표출이다. 그것을 유기적으로 고려하는 인간 사회와 우주의 색깔은 다양하다. 그것은 유교 사회가 지향한, 오랜 역사적 경험 속에서 만들어낸 세상에 대한 인간의 의식과 정신의 지시에 의해 드러난다. 이 중에서도 함양과 체찰의 공부, 그것이 걸어가려는 길은 '죽임'보다는 '살림'이요, '답답함'보다는 '시원함'이며, 이 땅 위의 '푸름'을 향해 삶의 약동을 구가할 수 있는 미학과 철학이 담겨 있는 것이다. -17쪽

그런데 요즘은 안타깝게도 인간이 걸어가야 할 길이 없다. 그저 자동차가 다니는 차도만 있을 뿐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차도만 있고, 인도가 없는 세상이다. 그래서 기능과 기술만 중시하고, 인간을 존중하지 않는다. 인간의 걸어가야 할 길을 버린 것이다.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바로 이 인간의 길을 회복하는 것이다. -58쪽

"추사와 그의 시대를 읽어 보면, 아주 슬프고 절망적인 현실과 광기 어린 삶을 만나게 됩니다. 청나라로부터 근대문명을 받아들여 개혁하려는 북학파인 추사를, 지긋지긋하게 탄핵하고 공격해 죽이려하는 세력이 있습니다. 그들은 오늘날 이 땅의 어떤 거대한 보수집단하고 같습니다. 역사는 반복됩니다. 저는 '추사와 그의 시대 이야기'를 통해 그 반복되는 슬픈 일을 나 스스로 각성하고 경계하고 싶었습니다."-104쪽

사의재에서 쓴 다산의 글은 그의 성정을 뚜렷이 드러낸다. 다산이 말하는 4가지 의로움이란 담백한 생각, 장중한 외모, 과묵한 말, 무거운 몸가짐을 가리킨다.

사의재는 내가 강진에서 귀양가 살던 집이다. 생각은 담백해야 한다. 담백하지 않음이 있거든 서둘러 이를 맑게 해야 한다. 외모는 장중해야 한다. 장중하지 않음이 있거든 빨리 단속해야 한다. 말은 과묵해야 한다. 과묵하지 않음이 있으면 서둘러 멈춰야 한다. 동작은 무거워야 한다. 무겁지 않음이 있음이 있으면 재빨리 더디게 해야 한다. 이에 그 방에 이름을 붙여 사의재라 했다. 마땅하다(宜)는 것은 의롭다(義)는 뜻이다. 의로움으로 통제한다는 의미다. 나이가 들어감을 생각하면 뜻과 학업이 무너진 것을 슬퍼하게 마련이러서 스스로 반성하기를 바란 것이다. -108쪽

서울이라는 말은 높이 올라간다는 뜻의 접두어 '솟'과 너른 들이라는 뜻의 '벌', 또는 울타리라는 뜻의 '울'이 합쳐진 말이다. -177쪽

강이나 하천이 지니는 근본적인 문제점은 재화와 문물, 문화의 Input과 Output이 활발하게 이뤄지지 못할 때이다. 즉, 두 요인의 균형이 상실되어 Output의 단순한 통로로서 존재할 때, 이 지역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 역할은 상실된다. 고려.조선의 두 왕조 기간 동안 이 지역에 금강 일대의 세미(稅米)를 집적하는 조창(漕倉)이 설치된다. 이를 통해 이곳에서 생산된 농수산물이 중앙으로 보내졌다. 금강으로 상징되는, 하천과 강이 지니는 문명과 물질, 문화와 역사의 중심지 역할은 고려왕조가 성립된 10세기 이후부터 근대 20세기까지 상실된다. 특히, 일제는 군산항을 개항해 한반도에서 생산된 미곡을 일본에 대량으로 유출시켰다. 강과 하천이 지니는 이점을 상실한 채 Output의 단순한 통로로서 기능한 구체적인 예다. -244-245쪽

실존은, 살아 움직이는 인간 존재는, 항상 자기 동일성을 지니고 있는가? 저기 어제 내가 지나간 길이 있다. 그 길을 오늘 내가 지나왔다. 이길은 같은 길인가? 내가 늘 바라보는, 저기 있는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는 정말 항상 그 모습 그대로인가? 저기 푸른 소나무는 항상 그 소나무일런가? 어쩌면 이런 물음은 대답을 바라지 않는다. 그 대답은 이미 응답이 아닌 또 다른 물음이다. 내 존재의 길조차도 항상 흐늘거리며 바뀌었다 돌아오곤 하는데, 무슨 '항상' . '늘' . '그러함'이 있으랴! 인생무상(人生無常)! 그것은 부정정 시각의 허무함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요, 진실이요, 자연이다.-2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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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가다가 한번쯤 차 한잔하고 싶다는 제의를 받아 본 경험이 있으리라. 그리고 대문 앞에서 기다리며 주저하는 발소리도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가끔씩 날아온 비행기 편지, 설레며 살며시 책갈피에 꽂아 둔 편지, 대여한 타자기로 써 내려갔던 긴 장문의 편지들, 상사병이 사라진 지금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읽었다. 스펙으로 대차대조표를 맞춰서 서로의 짝을 찾는 청춘들, 섹스리스의 부부들, 노인의 성은 드러낼 수 없는 욕망으로 치부하는, 우리는 그 어려웠던 시절보다 훨씬 더 불행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영화 '써니'를 보면서, 그 누구에게도 찬란했던 한때가 있어야 되지 않을까, 적어도 그러한 추억을 만들 수 있는 장을 마련해 줘야 하지 않을까. 자신의 시간을 능동적인 태도로 좌우했던 순간들, 어찌보면 시국을 걱정하는 시위대 속에서 어처구니 없는 싸움을 하고 있었을지라도, 그 순간에서는 최선이었고, 최고의 선택이었던 그녀들처럼. 어른이 되었을 때 되돌아 볼 즐거움과 행복했던 순간이 없다면 남은 생을 무슨 재미로 살아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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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성의 사랑학
목수정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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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자본 아래 바짝 엎드려 그 존재를 점점 축소시키다 못해 때론 거의 보이지도 않는다. 우린 이제 사람은 보지 않고 그가 소유한 것만을 볼 줄 안다.-17쪽

여자를 사는 것이 너무 쉬운 시대, 신체적 욕구는 직업적으로 몸을 파는 여성을 통해 채우고, 결혼은 스펙을 적당히 쌓아서 조건 맞춰 하겠다고 마음먹는 남자가 뭐가 아쉬워서 자신의 매력을 연마하는 데 시간을 낭비하겠는가.-52쪽

하나의 인간은 그대로 하나의 거대한 우주이다. 그 우주를 속속들이 탐험하여 그의 영혼과 육체, 그의 과거와 무의식, 그의 가족이 지닌 역사, 그의 손등에 스쳐 있는 상처의 사연까지 알고, 그 새로운 우주가 나와 조응하여 펼쳐 낼 세계를 향해 발을 내딛는 일. 그렇게 자신의 신화를 스스로 만들어 가는 일이 바로 연애다. -95쪽

각가의 관계가 취해야 할 당위는 사회가 아니라 그들 사이에서 주고받은 감정과 세월, 스킨십과 대화들이 결정해 주는 것일 뿐. 부모와 자식 관계는 모든 인간들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정답이 존재하지 않고 다양한 그들만의 관계가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143쪽

고학력 여성들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기회는 점점 줄어들고 여성들에게 돌아오는 일자리는 저임금, 비정규직들이 주종을 이루며, 오로지 성산업계에서만 여성들에게 넉넉한 임금을 제공한다면, 기꺼이 자기 영혼을 팔아 빵을 사고, 명품백을 사고, 성형수술을 하는 여성들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159쪽

모든 인간관계가 물화物化되고, 모든 인간의 활동이 소비로 환치되는 세상. 이미 결혼해 버린 탐나는 여인을 '품절녀'라고 부르는 세태가 반영하듯, 인간의 모든 활동은 소비이며 경제가치의 교환이다. 부모도 자식에게 자신의 자식 농사에서 보람 있는 결과를 가져다줄 하나의 투자 대상으로서 자식을 대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엄마가 자신의 아이를 있는 그대로 보아 주고 그 아이의 욕망과 불만과 감정을 보듬어 주지 않고,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그런 자식으로 키우고 싶어 하는 것이 흔한 요즘 엄마들의 모습이다. -205-206쪽

인터넷의 다양한 커뮤니티들은 배설되지 못한 욕망의 전시장으로서, 우리가 얼마나 자신보다 남의 삶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으며 사는지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자신의 삶에서 주체가 되어 살지 않기 때문에 우린 다른 사람의 삶을 불편하게 감시하는 자가 되어 버린다. 자신의 삶이 무료하니 연예인의 삶에 몰입하여, 그들이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어디로 신혼여행을 가며, 무슨 학교를 나왔고, 무슨 가방을 들고 다니는지를 그토록 열정적으로 감시하는 것이다. 부모님께 효도하기 위해 결혼하고, 불효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 이혼하지 않으며, 자식을 위해 나를 희생하고, 옆 사람들의 눈을 생각해서 내 욕망을 숨긴다. 그리고 사회가 공모한 가시적 욕망의 범주를 넘어서는 자를 단죄하며 달려든다. 그렇게 스스로에 의해 유배되는 자아가 비로소 구원받는 순간은 '사랑이 가슴에' 들어차는 바로 그 순간이다. -248쪽

한국에 가서 서너 달을 지내다 온, 연극하는 한 프랑스 친구가 내게 그런 말을 했다. 한국은 성적 긴장감이 제거된 사회라고. 그래서 아주 편안했다고, 특히 나이 든 여자들에게는 성이 없다고, 제3의 성이라고.-262-263쪽

사랑이 발화하는 건 순간이고 사랑이 시작된 초기의 몇 개월이 걷잡을 수 없는 기적의 연속이라면, 그 사랑을 포근하고 달콤한 삶의 원천으로 오래 유지하는 일은 섬세한 주의력과 부단한 의지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멀어진 마음은 몸을 밀어내기도 하지만, 멀어진 몸은 마음을 모래바람 이는 휑한 벌판으로 이끌어 낸다. -271쪽

신체 접촉을 통해 인간은 너무나 많은 것을 전달할 수 있다. 다른 감각들은 특정 감각 기관에 집중되지만, 촉각은 온몸에 다 퍼져 있기 때문에 촉각은 다른 모든 감각보다 강력하다. 강렬하고 따뜻한 포옹만큼 짧은 시간에 사람을 위로하는 것은 없다. -3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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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이 쓰신 글을 읽으며 강의 준비를 했다. 몇권의 책갈피마다 색색의 연필과 펜들이 꽂혀있다. 읽다가 만 책도 마저 읽어야 하고, 내가 할 강의와 내가 받을 연수와 집단상담도 있다... 성경의 4복음서를 쓴 4명의 사도들은 성격유형이 각각 달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각자의 선호도에 따라 듣고 기록했다는 점이 재미있다...... "사고형(Thinking)인 마태오는 논리적인 질서와 분쟁, 실제적인 분석, 객관적인 원칙, 진리등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고, 특히 예수와 반대자들 사이의 갈등을 분명하고 정직하고 권위있는 방식으로 다루고 있다. 감각형(Sensing)인 마르코는 감각적 특성인 단순성, 즉각적, 직선적, 요점적이며 극적인 순간을 힘차게 기록했다. 감정형(Feeling)인 루가는 친밀함, 감사함, 동정, 치유, 조화등을 바탕으로 버려진 자, 압박받는 자, 짓밟힌 자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보인다. 특히, F적인 특성은 사람을 고립시키는 것을 싫어하여, 항상 이유와 변명을 찾아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분위기를 융화시키고 있다. 이방인, 외국인, 사회적으로 버림받은 자, 죄인, 가난한 사람, 불구자, 절름발이, 소경에까지 하늘나라 잔치에 초대받았다고 말하고 있다. 직관형(iNtuition)인 요한은 관념적으로 영광, 진리, 지식, 회심, 믿음, 생명등을 상징적인 말을 사용했다.(p139-150)"...... 인간의 4가지 성격기능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는 4복음서는 매력적이다. 각자 유일하고 고유한 성격유형에 따라 하나님과의 관계, 기도하는 태도도 다르고, 사람과의 관계, 삶의 태도도 물론 다르다. 최근에는 LCSI(Lim's Character Style Inventory)강의를 들었다. 히포크라테스의 담즙, 점액, 황즙, 우울이라는 4가지 체액과 이제마의 태양, 태음, 소양, 소음이라는 4가지 체질에 따른 성격과 유사하다. 성격을 환경보다는 기질에 더 손을 들고 있다. 어찌되었든 자신을 잘 알아야 타인을 이해할 수 있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요즘 몸은 점점 작아지고 많이 아프다. 그런데 NT인 나는 혼자 해결하려하고, 사람들 속에 있지만 섬같다. 정신으로 몸을 조절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믿음과 아픈 이유를 찾고 있다. 그러나 내가 어디에 있어도 무엇을 하여도 누구와 있든 불편하지 않는 자유와 편안함만 있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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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유형과 그리스도인의 영성 - 심리영성시리즈 3
조옥진 엮음 / 생활성서사 / 199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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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기초한 인간의 삶은 인간의 참됨을 통하여 인간 성숙의 잠재력을 키워 내적인 힘을 발산케 하고, 하느님의 육화 신비와 함께 하느님의 사랑의 본질을 체험케 함으로써 그리스도인의 삶을 성숙시킨다. 따라서 사랑의 힘이란 인간의 가장 심층적 부분인 마음이 핵(Core)에서 나온다. 이 마음의 핵은 상황에 따라 달리 표현되고 있다. 심리학자들은 이 마음의 핵을 자아의 핵(self-core), 인간의 성격(Personality)이라고 규정짓는가 하면, 영적지도자들은 영적인 핵심(The spiritual core), 즉 하느님 사랑의 출현이라고 한다. -23쪽

어떤 성격유형이 다른 성격유형보다 더 낫거나 더 모자라거나 하는 것은 없다. 어떤 성격유형도 나의 영광을 위해 사용될 수 있으며 혹은 나를 반역하여 사용될 수 있다. -60쪽

실제적으로 마음의 상처는 그림자에 직면하는 것보다 그림자를 부정하거나 억누르는 것에 의해 더욱 행해진다. -89쪽

우리가 불건전한 자기연민이 아닌 우리 성격의 전체성을 의식적으로 승인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결점과 허약함을 의식할 때 성령의 현존과 촉진을 최대한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우리의 그림자를 인정하는 방법에 의해 우리의 약함을 아는 것은 쉽고 편안한 과정이 아니다. 이것은 개념, 구조, 아이디어들, 수년 동안 조심스럽게 세워왔던 신념들 그리고 우리 삶의 의미와 내용 그리고 안정성을 주었던 것들을 발가벗겨가는 과정이다.-97쪽

삶이란 사랑에 대한 것이고 사랑으로 이룩된 것이다. 우리가 삶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것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이다. 우리 존재의 모든 순간에 하느님은 현존하시면서 우리를 끌어당기며 우리 안에 살아 숨쉬고 계신다. 기도는 하느님과 우리의 삶을 나누는 관계이다. 우리가 기도를 자각하지 못할 때나 일부러 기도를 피할 때도 많이 있지만 이러한 상태가 계속될 때, 우리는 하느님과의 관계 밖에 있으며 우리의 삶의 순간은 없는 것이다. -121쪽

예수의 발치에 앉아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삶의 본질적인 요소이다. 하느님께 관심을 갖는 것이 언제나 삶의 첫자리여야 한다. 그러나 하느님께 대한 관심이나 기도는 역시 실천적인 사랑이나 봉사의 개념 안에서 결실을 맺는다. -123쪽

Jung은 "진실한 성격(true personality)은 항상 소명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느님께 신뢰를 두는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당신은 자신이 되라고 불리워졌다. 당신은 모든 면에서 사랑스러운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하느님께 대한 다른 소명과 마찬가지로 이것은 우연히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고의적이고 의식적인 응답에 의해 이루어진다. "모든 성격의 본질적인 측면에서의 가장 위대하고 자유로운 행위는 자발적으로 자신의 소명에 자신을 바치는 것입니다."-169쪽

당신의 기도는 항상 하느님이 하신 기도에 대한 응답이다. 하느님께서 응답하는 올바른 하나의 기도 방법은 없다. 당신의 기도는 하느님과 살아 있고 성장하고 발전하는 관계 속에 있다. 당신은 삶의 시기에 따라 다르게 기도할 수 있다. 즉 인생의 다양한 시기에 따라 기도가 달라질 수 있다. -2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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