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성의 사랑학
목수정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9월
품절


인간은 자본 아래 바짝 엎드려 그 존재를 점점 축소시키다 못해 때론 거의 보이지도 않는다. 우린 이제 사람은 보지 않고 그가 소유한 것만을 볼 줄 안다.-17쪽

여자를 사는 것이 너무 쉬운 시대, 신체적 욕구는 직업적으로 몸을 파는 여성을 통해 채우고, 결혼은 스펙을 적당히 쌓아서 조건 맞춰 하겠다고 마음먹는 남자가 뭐가 아쉬워서 자신의 매력을 연마하는 데 시간을 낭비하겠는가.-52쪽

하나의 인간은 그대로 하나의 거대한 우주이다. 그 우주를 속속들이 탐험하여 그의 영혼과 육체, 그의 과거와 무의식, 그의 가족이 지닌 역사, 그의 손등에 스쳐 있는 상처의 사연까지 알고, 그 새로운 우주가 나와 조응하여 펼쳐 낼 세계를 향해 발을 내딛는 일. 그렇게 자신의 신화를 스스로 만들어 가는 일이 바로 연애다. -95쪽

각가의 관계가 취해야 할 당위는 사회가 아니라 그들 사이에서 주고받은 감정과 세월, 스킨십과 대화들이 결정해 주는 것일 뿐. 부모와 자식 관계는 모든 인간들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정답이 존재하지 않고 다양한 그들만의 관계가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143쪽

고학력 여성들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기회는 점점 줄어들고 여성들에게 돌아오는 일자리는 저임금, 비정규직들이 주종을 이루며, 오로지 성산업계에서만 여성들에게 넉넉한 임금을 제공한다면, 기꺼이 자기 영혼을 팔아 빵을 사고, 명품백을 사고, 성형수술을 하는 여성들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159쪽

모든 인간관계가 물화物化되고, 모든 인간의 활동이 소비로 환치되는 세상. 이미 결혼해 버린 탐나는 여인을 '품절녀'라고 부르는 세태가 반영하듯, 인간의 모든 활동은 소비이며 경제가치의 교환이다. 부모도 자식에게 자신의 자식 농사에서 보람 있는 결과를 가져다줄 하나의 투자 대상으로서 자식을 대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엄마가 자신의 아이를 있는 그대로 보아 주고 그 아이의 욕망과 불만과 감정을 보듬어 주지 않고,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그런 자식으로 키우고 싶어 하는 것이 흔한 요즘 엄마들의 모습이다. -205-206쪽

인터넷의 다양한 커뮤니티들은 배설되지 못한 욕망의 전시장으로서, 우리가 얼마나 자신보다 남의 삶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으며 사는지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자신의 삶에서 주체가 되어 살지 않기 때문에 우린 다른 사람의 삶을 불편하게 감시하는 자가 되어 버린다. 자신의 삶이 무료하니 연예인의 삶에 몰입하여, 그들이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어디로 신혼여행을 가며, 무슨 학교를 나왔고, 무슨 가방을 들고 다니는지를 그토록 열정적으로 감시하는 것이다. 부모님께 효도하기 위해 결혼하고, 불효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 이혼하지 않으며, 자식을 위해 나를 희생하고, 옆 사람들의 눈을 생각해서 내 욕망을 숨긴다. 그리고 사회가 공모한 가시적 욕망의 범주를 넘어서는 자를 단죄하며 달려든다. 그렇게 스스로에 의해 유배되는 자아가 비로소 구원받는 순간은 '사랑이 가슴에' 들어차는 바로 그 순간이다. -248쪽

한국에 가서 서너 달을 지내다 온, 연극하는 한 프랑스 친구가 내게 그런 말을 했다. 한국은 성적 긴장감이 제거된 사회라고. 그래서 아주 편안했다고, 특히 나이 든 여자들에게는 성이 없다고, 제3의 성이라고.-262-263쪽

사랑이 발화하는 건 순간이고 사랑이 시작된 초기의 몇 개월이 걷잡을 수 없는 기적의 연속이라면, 그 사랑을 포근하고 달콤한 삶의 원천으로 오래 유지하는 일은 섬세한 주의력과 부단한 의지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멀어진 마음은 몸을 밀어내기도 하지만, 멀어진 몸은 마음을 모래바람 이는 휑한 벌판으로 이끌어 낸다. -271쪽

신체 접촉을 통해 인간은 너무나 많은 것을 전달할 수 있다. 다른 감각들은 특정 감각 기관에 집중되지만, 촉각은 온몸에 다 퍼져 있기 때문에 촉각은 다른 모든 감각보다 강력하다. 강렬하고 따뜻한 포옹만큼 짧은 시간에 사람을 위로하는 것은 없다. -3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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