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에 빵을 만들었다. 맛있는 냄새와 즐거운 음악이 진동을 한다. 행복하다... 사물과 현상을 예민한 촉수로 바라보고 느끼면 무지 달리 보인다고요. 얕게 보지 말고 깊게, 오래동안 볼 필요가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얼어붙은 마음을 깨뜨리는 도끼들, 즉 책들에서 마음을 울렸던 글귀들을 또 다른 말로 들려주고 있다... 어젠 서울대공원 산림욕장길을 걸었다. 불과 몇일 전까지도 빨갛게 물들었던 그 길이 이젠 낙엽만 있다. 갈색뿐이다. 봄.여름.가을이 지나갔을 그 곳을 어찌 상상이나 하겠는가. 출구로 가서 입구로 내려왔다. 가파르게 시작해서 완만하게 내려오는 길, 그제서야 주변이 제대로 보이는 여유가 생긴다... 대책없는 긍정과 낙관이 밀려왔다가 지나간다, 좋은 게 좋다, 이건 아닌데, 에잇, 어쩌라고, 오늘만은 이 행복감을 그냥 느끼고 싶다... '책은 도끼다'의 저자는 도끼가 된 책이 자신의 얼어붙은 감성을 깨뜨려 잠을 깨우고 선명한 흔적을 남겼다는데... 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책은 도끼다
박웅현 지음 / 북하우스 / 2011년 10월
구판절판


보고 만질 수 없는 [사랑]을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게 하고 싶은 외로움이, 사람의 몸을 만들어낸 것인지도 모른다.

이 구절을 보는 순간 저는 이게 글의 힘이라는 걸 느꼈습니다. 사랑이 먼저라는 이야기인데요. 사랑이 먼저 존재했는데 이 사랑은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 겁니다. 그런데 이걸 보고 싶고 만지고 싶어서 사람의 몸이 만들어졌다는 거죠. 정말 아름다운 시선 아닙니까? 지금 말씀 드린 것들은 [광장]속의 단 몇 구절일 뿐입니다. -31-32쪽

만약 우리나라에 수박이라는 게 없어서 어느 날 수박이라는 걸 처음 수입해 나눴줬다고 칩시다. 생전 처음 수박이라는 걸 본 거죠. 그럼 김훈이 보듯이 볼 겁니다. 동그란 녹색에 검은 줄은 뭐지? 그 속의 빨간색은? 그 씨앗은? 달콤한 맛은? 이렇게 되는 거죠. 결핍의 결핍. 너무 낯이 익어서 볼 수 없는 겁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도 그의 소설 속 주인공인 조르바를 통해 "그에게 두려웠던 것은 낯선 것이 아니라 익숙한 것이었다"라고 얘기합니다. 우리는 익숙한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있습니다. 익숙한 것 속에 정말 좋은 것들이 주변에 있고, 끊임없이 말을 거는데 듣지 못한다는 건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90쪽

보통 권력이라는 건 '뭔가 할 수 있는 힘'입니다. 그런데 사랑이란 게임에서만큼은 '아무것도 안 할 수 있는 것', 그게 권력입니다. 만약에 사랑하는 연인이 있는데, 둘 중 영화를 보고 싶거나 여행을 가고 싶거나 뭘 더 하고 싶은 쪽이 상대를 더 사랑한다는 겁니다. 사실 덜 사랑하는 쪽은 상관이 없는 거죠. "하고 싶은 거 해. 뭘 하든 상관 없어"라고 적당히 무관심한 듯 물러서서 아무 의견을 내지 않아요. 그래서 사랑에서의 권력은 무엇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것이 능력이라는 뜻입니다. -116쪽

뭐니 뭐니 해도
호수는
누구와 헤어진 뒤
거기 있더라

연인과 같이 가면 "와, 좋다. 예쁘다'할 거예요. 그리고 금방 상대를 보느라 호수가 눈에 들어오지 않겠죠. 하지만 헤어지고 혼자 가서 보면 호수가 보일 거고 또 얼마나 휑하겠어요. 평소엔 잘 안 보이다가 헤어지고 가면 감정이입이 되면서 텅 빈 호수가 훨씬 더 잘 보이는 거죠. 그러니까 그 어느 때보다 호수가 강력하게 인상에 남는 순간은 누군가와 헤어졌을 때라는 얘기입니다. -151쪽

사람은 다 다르고, 각자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해요. 상대의 부족한 부분을 우리의 욕망으로 채워넣고, 제멋대로 실망하곤 다툴 필요가 없어요. 무화과나무 아래서 버찌가 열리지 않는다고 화를 내는 건 어리석은 짓이니까요.

육신이 만족하자 영혼은 기쁨으로 전율했다.

육신이 만족하지 않으면 영혼은 기쁨으로 넘치지 않아요.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들떠 걷다가 전화가 와서 통화를 시작하면, 갑자기 풍경이 싹 없어져요. 풍경을 향하고 있던 시선에, 정신에 셔터가 탁 내려가죠. 육신과 영혼이 다 연결되어 있는 겁니다. 배가 고프거나 화장실이 급하면 아무 풍경도 볼 수 없을 겁니다. 뭐가 눈에 들어오겠어요. 빨리 뛰어가서 육신의 고통을 해결해야겠죠. 그래서 육신이 만족을 해야 영혼은 기쁨으로 넘치게 되는 거라고 조르바는 말했던 것이고요. 그는 그래서 머리로 이해하지 말고 가슴으로 이해하라고 말합니다. -200-201쪽

보이는 거짓과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은 이 책읠 키워드라고 할 수 있는 '키치'라는 단어와 맞물려 있어요. 모든 이데올로기는 '주장'을 위해 '편집'을 필요로 합니다. 키치적이에요. 그래야 사람들을 모을 수 있으니까요. 모든 투쟁, 슬로건 또한 키치적이죠. 그럴 수밖에 없어요. 정치 선동자들의 특징은 '그래야만 한다'를 흔들림 없이 믿고 있다는 거예요. 흔들리는 사람은 선동가가 될 수 없어요. 내가 지금 이 일을 해야만 우리 민족의 장래가 밝아진다는 믿음이 흔들리면 안 되죠. 그래서 저는 키치는 편집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자기가 해석하고 싶은 대로, 보고 싶은 대로 잘라서 편집하는 게 바로 키치가 아닐까 싶어요. 그런 의미에서 광고는 아주 키치적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리고 우리의 삶 또한 편집이에요. 편집이 없을 수 없죠. -260쪽

호학심사 심기지의好學深思 心知其意. 즐겨 배우고 깊이 생각해서 마음으로 그 뜻을 안다는 뜻입니다. 비단 책뿐 아니라 안테나를 높이 세우고 촉수를 모두 열어놓으면 풍요롭고 행복한 인생을 즐기실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행복은 바로 여기 있습니다. 비가 오는 날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주룩주룩 내리는 비를 보면서 짜증을 낼 것이냐, 또 다른 하나는 비를 맞고 싱그럽게 올라오는 은행나무 잎을 보면서 삶의 환희를 느낄 것이냐입니다. 행복은 선택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잔디이론으로 봅니다. 저쪽 잔디가 더 푸르네, 저 사람들은 얼마나 좋을까, 이십 대라 좋겠다, 영어도 잘하고 부럽다, 잘 생겨서 좋겠다, 돈 많아서 좋겠다. 다 좋겠다예요. 그런데 어쩌겠다는 겁니까. 나를 바꿀 수는 없어요. 행복을 선택하지 않은 거죠. -346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제와 오늘 연수에서도 '감정코칭'을 들었다. 사람들이 고민을 말할 때 제안과 해결책을 제시해 줄 때와 감정에 초점을 맞추어 경청하고 공감하고 기분이 어떤지를 물어주는 연습을 했다. 다가가는 대화를 했다. 그러면 기분이 좋아진다. 포커싱심리치료 또한 감정읽기를 통해 자신이 소중한 존재임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느낄 때 몸의 반응은 어떤지를 살피면서 희. 노. 애. 락을 정확하게 명료하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할까. 치료의 과정은 힘들고 고단하다. 지난한 과정을 통해야만 행복해 질 수 있다. 아닌 척이 아니라 진짜 나의 모습을 유지하면서 살아야 한다. 매순간 수용과 공감해주는 누군가가 옆에 있다면, 가당찮은 욕심을 부리고 있다. 돌아오는 길은 많이 추웠다. 손발이 시렸다. '잘가'가 아니라 '잘갔니?' 따뜻한 말이 필요했다. 지금 나의 기분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포커싱 체험심리치료 - 내 마음의 지혜와 선물
주은선 지음 / 학지사 / 2011년 5월
장바구니담기


젠들린 교수는 문제나 이슈를 항상 총체적이고 전체적으로 보는 재능을 가지고 있다. 그는 가족적, 문화적, 맥락적, 발달적 측면에서 내담자를 총체적으로 이해하고자 하였다. 나는 젠들린 교수를 통해 문제를 문제로 보지 않는 것을 처음으로 체험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내가 어떤 문제로 괴로워했던 것은 문제를 문제 그 자체로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는 자연스럽고 당연하다고 느끼는 것은 더 이상 문제가 아니라는 인식을 갖게 해 주었고 문제로부터 벗어나게 도와주었다. "네가 그랬구나...... 그건 자연스러운 것이다. 네가 갈등을 느끼는 것은 성장과정에서 느껴지는 자연스러움이다."-16쪽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 한 사람이 과연 자신의 감정과 본연의 모습을 얼마나 유지하면서 살아가고 있을까? 왜 우리는 '나됨'은 없이 '역할 속의 나'에 더 충실해야 하는가?-29-30쪽

로저스는 "인간은 결국 각각의 섬이다."라고 하였다.(주은선 역, 2009). 다시 말해, 인간은 각각의 섬에 지나치지 않는다는 뜻이다. 나는 여기 있고 저 사람은 저기 있을 뿐이다. 그래서 섬과 섬이 만나려면 결국 다리를 놓을 수밖에 없다. 섬이라는 자각을 못하면 내가 거기에 침범해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여기는데 이는 소유와 관련된 것으로서 경계선을 무너뜨린다. 그러나 섬이라고 자각하면 차근차근 다리를 놓고 서로를 만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고 좋은 방법이 된다. 일방적으로 다리를 놓는 것도 아니다. 다리를 놓을 만큼 섬이 건강해야 하는 것은 물론 다른 섬을 인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불행해진다. 이는 곧 관계로 정립될 수 있다. 부부, 부모 자식 모두는 다 각각의 섬일 뿐이다. 다 함께 하나의 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각각의 섬에 있는 것이다. -42쪽

포커싱(focusing)은 자기 인식(self-awareness)과 정서적 치유(emotional healing)를 위해 몸에 집중하여 자신이 느끼고 있는 것을 과장하거나 축소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느끼는 과정이다. 즉,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특정한 문제와 연결된 느낌, 또는 '감각느낌(felt sense)'에 초점을 맞추어 특별한 느낌의 신체 자각과 접촉하는 과정을 말한다. 주목할 만한 점은 신체적인 반응에 집중하면 이 느낌을 체험할 수 있고, 그곳에 답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주은선, 1998).-49쪽

한 가지 문제에는 다양한 감정이 숨겨져 있다. 그리고 이런 다양한 감정은 포커싱 과정을 통해 다양하게 변화한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문제와 관련된 본래의 감정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수많은 다양한 감정 중에서 변화하고 있는 감정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점이다. -152쪽

경청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재진술을 해 주거나 포커서가 말하는 것을 반영해 말하는 것이다. 포커서가 "난 슬퍼"라고 이야기한다면 "그래, 너 슬프구나."라는 식으로 이야기해 준다. 포커서가 "목 안에 단단함이 느껴져."라고 말하면 "아, 네 목에 단단한 것이 느껴지는구나."라고 이야기해 주는 것이다. 요컨대, 포커서가 들을 필요가 있는 말들과 감정을 거울처럼 반영해 주는 것이다. -160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권의 책'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저자는 세상을 떠났다. 작가의 아내가 쓴 머리말은 심금을 울린다. 오로지 책에만 욕심을 낸 사람같다. 소박하고 진솔하고 담담하게 써 내려간 글은 물과 같다. 시냇물이 되었다가 강이 되어 큰 바다가 된 책속엔 많은 걸 담고 있다. 이 한권의 책속엔 다양한 길이 있다. 저자의 경험이 녹아있어 이해가 안되는 몇몇 부분이 있지만, 그래도 많은 부분이 동의로 다가왔다. 각각의 책에 대한 순전히 개인의 생각인데도, 읽으면서 착각도 했지만 또하나의 소설같았다. 101권이 어울어져 한권의 책을 이루고 있다. 깔끔하다. 그건 칭찬일색인 서평이 아니라 자신의 관점을 솔직하게 드러냈기 때문이리라. 눈치를 보지않고 한결같이 애정어린 태도를 취하고 있다. 특히 누구에게나 좋은 소리를 들으려하는, 어정쩡하거나 애매하지 않아 좋았다. 결례같지만, 잠깐 세속의 사람들과는 어떠했을까하는 의문이 스쳤다.  '푸딩의 맛을 알려면 푸딩을 먹어봐야 한다(p366)'는 저자의 말을 빌어, '한권의 책'을 잡아 보는 것은 어떨까요. 덕분에 감기도 떨치고 기운이 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