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나", 어떻게,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을까? 현재의 내가 진짜로 나인가? 

조만간 현실에서 나올 법한 인간에 대한 이야기다. 상상을 더 보태자면, 지금도 철이와 같은 이들과 살고 있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무엇으로 인간다움을 알 수 있을까. 

굳이 철이와 구별한다면, 잊는다는 것, 현재와 과거, 미래가 있고, 죽음이 있는 게 아닐까. 

인간이란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두려워하고 유일한 실재인 현재는 흘러 보내면서 결국에는 자신까지 잊고 죽음으로 끝나는 것으로 구분되지 않을까.

첫 페이지에 '작별인사'를 대변하는 말이 나온다. 

"머지않아 너는 모든 것을 잊게 될 것이고, 머지않아 모두가 너를 잊게 될 것이다.(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예전에 본 eagle eye 영화가 기억났다. 주변에 보이는 인공지능 로봇들까지... 그런들, 나는 지금 여기에 있다. 


-연초부터 바빴다. 어디서 한달살기 계획이 5월로 미뤄지면서 다시 수정했다. 

-Virginia Woolf 'Blue & Green'도 읽었다. 어려웠다. 하버드생이 가장 많이 읽었다고 하니..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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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인사
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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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별적인 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행운이니 너무나 짧은 이 찰라의 생을 통해 조금이라도 더 나은 존재가 되도록 분투하고.. (108쪽)

다른 종과는 달리 인간만은 죽음을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기에, 죽음 이후도 필요 이상으로 두려워한다. (106쪽)

어떻게 존재하게 됐는지가 아니라 지금 당신이 어떤 존재인지에 집중하세요. 인간은 과거와 현재, 미래라는 관념을 만들고 거기 집착합니다. (160쪽)

마음은 어떨까요? (164쪽)

생의 유한성이라는 배움이 깔려있지 않다면 감동도 감흥도 없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생이 한 번 뿐이기 때문에 인간들에게느 모든 것이 절실했던 것이다. (276쪽)

막상 몸이 사라지고 나니 그동안 얼마나 많은 것을 몸으로 해왔는가 새삼 깨닫게 되었다. 몸없이는 감정다운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볼에 스치는 부드러운 바람이 없고, 붉게 물든 장엄한 노을도 볼 수가 없고, 손에 와닿는 부드러운 고양이 털의 감촉도 느낄 수가 없는 것이다. (2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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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언 고닉이 길을 나서는 이유, 길 위에서는 "아무도 지켜보지 않지만 모두가 공연을 한다." 그 곳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주인공이 되었다가 배경이 되었다가 한다. 그래서 연결이 필요하다. 말이 필요하다. 그러나, 연결에 필요한 말은 정보 전달에 많이 사용되는 말 뿐이다. 

7개의 소 제목을 가진 수필이다. 이제껏 보아 온 수필에 대한 관점은 건너뛰어야 한다. 이러한 글도 있다니, 주변의 누구의 공연을 보면서 더 관찰하고 접근하고 글을 쓰고, 고민하면서 자기 이해, 통찰까지, 친구, 결혼, 타인, 관계, 외로움, 삶,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나의 공연이 누구에게는 관찰과 통찰의 근간이 될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우리 모두는 연결되어 있는데, 온전히 자신을 표현하지 못하고, 제대로 전달할 수 없는 말들로 관계 맺기에 서툴다. 

저자는 집요하게 자신을 들여다보면서 자기 자신과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세상과 온전히 관계 맺기를 통해서 가능하다고 말한다. 뫼비우스의 띠 같다.         

기차를 타고 몇 군데를 다녔다. 오는 길에 눈이 내린다. 눈 오는 차창 밖은 괜찮은 볼 거리가 된다. 하지만 눈 온 거리를 오가는 차들과 사람들에게는 불편일 뿐이다. 

거리에서 펼쳐지는 모두의 공연이 취사 선택되는 이유가 되겠다. 그 결과는 어마 무시하게 다를 수 있겠지.


*비비언 고닉 글 중, 이 책이 제일 마음에 든다. 

*잘 살았다. 양쪽 어깨를 토닥토닥.

Happy New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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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지켜보지 않지만 모두가 공연을 한다
비비언 고닉 지음, 서제인 옮김 / 바다출판사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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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거리가 꽤 자주 나를 위한 작품을, 끝없이 이어지는 사건들 속에서 내가 꺼내 보고 또 꺼내 보는 반짝이는 경험의 빛을 탄생시킨다는 걸 깨달았다. 거리는 내가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을 내게 해준다. 거리에서는 아무도 지켜보지 않지만 모두가 공연을 한다. (11쪽)

두 사람이 만나 하나가 된다는 근거 없는 믿음은 더 이상 유용하지 않다. 그 사실을 자각한 채 살아가는 일이 삶의 과업이다. 외로움을 이겨낼 수는 없더라도, 최소한 외로움이 죽음을 초래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배울 수는 있다. 그런 앎은 힘이 되고, 동맹이 되고, 무기가 된다. (73-74쪽)

두 사람이 만나 하나가 된다는 근거 없는 믿음은 더 이상 유용하지 않다. 그 사실을 자각한 채 살아가는 일이 삶의 과업이다. 외로움을 이겨낼 수는 없더라도, 최소한 외로움이 죽음을 초래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배울 수는 있다. 그런 앎은 힘이 되고, 동맹이 되고, 무기가 된다. (73-74쪽)

통찰은 그것만으로는 구원이 되어주지 못했다. 나는 날마다 새롭게 말끔해져야 했다. 걷는 일이 나를 정화시켜주었고 깨끗이 씻겨주었지만 오직 그날뿐이었다. 그 일이 매일같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걸 나는 알게 되었다. 나는 걸어야 할 운명이었다. (79쪽)

자신을 표현하기 위한 언어는 일상적 용도로 쓰이지 않게 되었고, 사람들은 서로 연결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서 이야기를 한다. (176쪽)

결혼은 친밀감을 약속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으면 유대감은 무너져 버린다. 공동체는 우정을 약속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으면 참여는 끝이 난다. 지적인 삶은 대화를 약속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으면 그 삶의 신봉자들은 괴상해진다. 사실은 정말로 혼자 있는 게 더 쉽다. 욕망을 불러일으키면서 그것을 해결해주려 하지 않는 존재와 함께 있는 것보다는. (216쪽)

"우리는 삶을, 사회와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우리 눈에 들어오는 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윌슨은 이렇게 썼다. "우리가 진실로 만들어낼 수 있는 단 한 가지는 우리가 쓴 작품입니다" (중략) 그와는 반대로, 작업을 하지 않는 일, 심사숙고를 회피하는 일 역시 세상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편지를 쓰고자하는 욕구가 내 안에서 유산될 때마다 나는 ㅐㄴ가 비난하는 세상을 만들어낸다. 이야기를 하고픈 충동을 표류시킨다. 소음이 세상에 만연하게 내버려둔다. 편지 쓰기가 고귀한 일인 게 아니다. 자신을 온전하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으로 남아 있는 것이야말로 고귀한 일이다. (2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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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비비언 고닉 글에 빠져 있다. 

짝 없는 여자, 나와 게이, 레너드는 둘 다 뉴욕커다. 그들은 우정이 쌓이는 관계다. 그들이 주고 받는 대화는 깊어 만 갈 것이다. 관계는 어찌 될 지 모르겠지만. 뉴욕 거리를 걸으면서 짝 없는 여자는 삶을 느끼고, 그 느낌 방식대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우리 대부분이 일상적으로 느끼고 살아가는 부분을 이렇게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다는 게 부럽다. 이럴 때 이런 기분을 정확히 알고 싶고 묘사하고 전달하고 싶은데, 도무지 제대로 끄집어 낼 수 없는데, 짝 없는 여자는 그걸 해 내고 있다. 

나에게는 마음을 뒤집어서 보여줘야만 되는 어려운 것들을 그녀의 글에서는 쉽게 발견되고 읽힌다.   

예순을 넘어서야 몽상이 아닌 현재의 삶이 보이는 걸까. 그녀가 살고 있고. 걷고 있는 '뉴욕'서만 가능할까. 그녀에게 영혼의 안식처 같은 뉴욕은 그녀와 뗄 수 없는 장소이다. 뉴욕에서 사는 사람의 삶은 사람들이 자기 표현력의 증거로 내는 목소리가 켜켜이 포개어 올려진 층층이 쌓인 무수한 목소리들을 다루는 고고학과 같은 삶이라 고백한다. 그래서 뉴욕과 일심동체인 그녀의 삶은 환상이 결코 아닌 온갖 갈등이었다고. 더 나아가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뉴욕을 있는 그대로 느낀다고. 그러고 보니, 영혼의 안식처나 대상이 있어야 한다.

1935년에 태어난 비비언 고닉은 구십이 가깝다. 우리 엄마보다 나이가 더 많은 그녀의 글에서 나의 편견은 길을 잃는다. 이 글은 예순 쯤에 쓴 글 같다. 글을 참 잘 썼다. 

왼쪽 정렬로 편집 되어 있어, 그녀의 문장과 잘 어울린다는 엉뚱한 생각까지 든다.

비비언 고닉의 글을 읽을수록, 남은 삶은 우아하게 살아야겠다는, 연결되는 지점이 도무지 어딘지 모르지만, 그런 다짐을 했다. 이제는 왕자가 없다는 정도는 알았으니까. 그리고 처음부터 왕자가 아니라 완두콩을 찾았다는 것 정도는 알 때도 되었다. 나도 예순이 넘었으니. 


Merry Christm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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