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킾하면서 책을 읽다. 번역이 문제일까. 내용이 어려운 걸까. 아님 내가 무식한 걸까. 암튼 꼼꼼히 읽어도 도무지 잘 잡히지 않는 글이다. 각각의 문장을 따로 떼어 읽어도 이해가 안되는 게 많다. 간간히 매끄러운 부분만 올려 본다. 아카시아 향내가 코끝에 머문다...배꼽시계가 울린다.
소년은 소망하는 대상을 얻기 위해서 라이벌을 제거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소녀는 대상보다는 다른 소녀의 욕망을 목표로 한다.-28쪽
남근은 다산성의 기관이나 상징이 아니라 성행위의 실재적 측면 너머에 있는 영역의 상징이다. 우리는 이를 고대 문화의 남근 사용 방식에서 볼 수 있다. 다산을 촉진하기 위해 세워진 남근상은 침실이나 들판보다는 교차로나 마을 영역의 경계선에서 발견된다. 그것은 성장이나 풍요보다는 상징적 경계와 연결된다. -65쪽
남자 파트너에게 거절당하는 것이 여성에게는 자신의 존재, 그녀가 가진 가치에 대해 새롭게 질문하는 계기가 되는 반면, 남성의 경우는 다르다.-92쪽
남자가 파트너의 부정에 직면할 때, 그는 경쟁자와 파트너가 성관계를 갖는 이미지로 인해 고통받을 것이다. 그러나 여자들은 그런 이미지를 떠올릴 때 두 사람의 애정 어린 장면, 예컨대 친밀한 대화나 침대에서 속삭이는 말 등에 훨씬 더 주목하는 경향이 있다.-95쪽
사도바울이 주장했듯이, 인간은 갖지 않은 듯이 가져야 하며, 소유하지 않은 듯이 소유해야 한다. -137쪽
여자는 파트너가 자기를 사랑하는지 하지 않는지에 대해 오랜 시간 마음을 쓰지만, 남자는 자신이 선택한 여자를 정말 사랑하는지 의심하는 데 시간을 쓰는 편이다. 이것이 남자가 사랑과 증오 사이를 오가는 이유의 하나이다. 그래서 남자의 사랑은 어떤 의미에서 순간순간 변하는 반면, 여자의 사랑은 연속성을 가진 듯하다. -181쪽
부부생활에서 상대방의 인지/인정을 얻기 위한 가장 주된 투쟁의 장은 아마도 말다툼일 것이다. 문명사회에는 이런저런 토론 모임이 많지만, 내가 아는 한 말다툼 모임이란 건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말다툼은 집에서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196쪽
남자아이들은 다른 아이가 가지고 있는 것이 탐나면 그것을 힘으로 빼앗으려고 한다. 하지만 여자아이들은 다른 누군가에게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남자아이에게 중요한 것이 대상 자체의 소유라면, 여자아이에게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욕망이다.-222-223쪽
사랑의 연속성은 사랑의 대상이 응답하지 않는 한 유지된다. -240쪽
여성에게 형식은 안과 밖 양쪽 모두와 관련된 것이다. 그러나 남자에게 형식은 한쪽면하고만 관련된 때가 많다. 그와 더불어 그가 하는 일은 헛된 노력일 뿐이다. 여성이 자기 주변의 욕망을 짚어내기 위해 촉각을 곤두세운다면 남자는 자기 촉각을 다른 사람의 촉각에 몰두하는 데 쓴다. -260쪽
무거운 날이다. 다문화가정 학부모교육하면서, 가벼운 말조차 전달되면서 무겁게 된다. 분명 하하하하고 웃음이 터져야 하는 마당에 멀뚱거린 시선만 오간다. 어떤 상황인지는 나만 알고 있다. 바디랭귀지도 일대 다수일 때는 무색하다.
미국 허멘스교수의 '다수의 폭정(The Tyrany of the Majority)'이란 논문을 인용, 이승만 정권의 반민주적 전횡(부정선거)을 정면으로 꾸짖은 칼럼이다. 그 일부를 인용하면 "진정한 다수라는 것이 선거로만 표시되는 것은 아니다. 인민이 성숙되지 못하고 그런 미성숙사태를 악용하여 '가장된 다수'가 출현한다면 그것은 곧 폭정"이라고 규정한 것이다. 이어서 "선거가 진정 다수결정에 무능력할 때는 또 한 가지 폭력에 의한 진정 다수결정이란 것이 있을 수 있다. 그것을 가리켜서 혁명이라고 한다"라는 것이 그 핵심요지였다.-51쪽
손바닥 뒤집듯 변하는 세상 인심을 묘사한 것으로 염이부한이기(炎而附寒而棄)란 6자성어가 있다. 따뜻할 때는 붙었다가 차면 버린다, 다시 말해서 권세가 있을 때는 빌붙었다가 권세가 떨어지면 버린다는 뜻이다. 오죽하면 '정승집 개가 죽으면 문상을 가도 정작 정승이 죽으면 발길을 끊는다'는 말까지 생겨났을까.-129쪽
독일의 언어학자 흄볼트는 "사람은 오직 말에 의해서만이 사람인 것이다"라고 말한다. 사람은 마음속으로 과거를 되돌아보기도 하고 현재를 분석하며 미래를 예측하기도 하는데 그런 내부적 관찰을 가능케 하는 것이 말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말이 얼마나 중요한가는 새삼 운위할 필요가 없다. 옛 그리스철학은 서로 말을 주고받는 것, 곧 대화로써 성립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질문을 하고 그것에 응답하는 가운데 眞理(진리)를 발견해나갔다. -193쪽
참다운 아름다움엔 반드시 내면적 아름다움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플라톤은 아름다움은 '칼로카기티아'로 불렀다. 미와 선, 즉 미모와 윤리적 착함이 합일돼야 한다는 뜻이다.-221쪽
'장자'가 국내 주요 대학 논술문제에 가장 많이 등장한 고전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자유롭고 걸림이 없는 '소요유(逍遙遊)'를 구가했던 장자가 '입시지옥'과도 같은 우리의 현실에서 자신의 책이 가장 많이 인용됐다는 것을 안다면 무엇이라고 말할까.-234쪽
이 방의 문고리를 잡을 때마다 나는 늘 가스이 두근거린다. 방에 들어서는 순간 등을 보이며 가지런히 꽂혀 있는 책들이 모두 한꺼번에 나를 향해 눈길을 돌리는 것만 같다. 눈과 눈이 마주치는, 책 속에 담긴 누군가의 마음과 내 마음이 마주치는 설렘. -13쪽
책을 때할 때마다 이렇게 눈과 귀, 코, 입 등 내 몸의 모든 감각은 깨어나 살아 움직인다.-55쪽
누군가에게 마음을 기울이기 시작하면 그는 비로소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특별한 모습으로 다가오게 된다. 좀 더 마음을 기울이면 그가 살아온 이야기, 그의 가슴속에 담은 생각들을 알게 된다. 더욱더 마음을 기울이면,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벗이 되리라. -75쪽
"도대체 우리에게 옛날이란 무엇인가? 옛사람들은 과연, 자신들이 살아가고 있던 그때를 '옛날'이라고 생각했겠는가? 그 당시에는 그들도 역시 '지금' 사람이었을 게야.-167쪽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느끼고 싶은 대로, 생각하고 싶은 대로 사물을 받아들인다. 마음속에 받아들이고 싶은 것, 인정하고 싶은 것을 미리 정해 두고, 그 밖의 것은 물리치고 거부한다. 그러한 마음에 기초가 되는 것은 역시 지난날에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듣고 싶은 대로 들은 자신만의 감각이나 경험이다. 이것이 바로 선입견(先入見)이다.-176쪽
옛사람들과 우리, 그리고 저 아이들, 또 먼 훗날의 다른 아이들. 끊임없이 이어지는 시간의 흐름 속에, 제몫의 세월만큼은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아무 생각 없이 앞만 바라보고 사는 사람도 있겠지만, 뒤돌아보기도 하고, 함께 가는 사람들과 발걸음을 맞추는 사람도 있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는 시간이지만, 그 시간의 흔적은 사람의 기억과 마음속에 남을 것이다. 사람들은 서로의 삶속에 깊숙이 들어가면서, 시간이 흘러가는 길을 내기도 하고, 각자의 시간을 서로에게 나누어 주기도 한다. -24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