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린 책, 산 책, 버린 책 2 - 장정일의 독서일기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 2
장정일 지음 / 마티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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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을 가장 잘 읽는 방법은 '그 책이나 지은이가 이상적으로 생각한 세계'라 어떤 것이었나를 파악하고, 다른 책이나 지은이들의 이상 세계와 비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고전을 비롯한 진짜 좋은 책에는 '인간이 살았으면 싶은 이상 세계'에 대한 설계도가 내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25쪽

너와 나는 연대가 필요하지. 서로에게 친절 '노동'을 요구할 게 아니다. 내가 당신에게 친절을 강요하면, 그 사람은 또 다른 사람에게 자기가 짜낸 친절을 보상받으려 할 게 뻔하다. 그런 사회에서 친절은 상대방을 베는 칼이다. 하므로 우리는 감정노동자들의 친절에 대해 '쿨'해질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건 감정노동자들을 위한 배려 차원에서나 역설적인 사회 안정 차원에서도 그렇지만, 오로지 나를 위한 이유도 있다. -33쪽

앞서 프랑스혁명이 쟁취한 시민권 얘기를 했지만, 프랑스혁명은 사회적 강자인 부르주아들이 혁명을 주도하면서 그들 계급의 재산권이나 정치적 권리만 챙겼고, 노동자나 여성, 사회적 약자를 위한 사회권은 배제되었다. 인권이라면 자동적으로 사상과 표현의 자유나 집회. 결사의 자유만 떠올리게 된 것은, 정작 중요한 시민권 가운데 하나인 사회권이 망각되었기 때문이다. 사회권은 분배의 정의를 핵심으로 하면서 그것의 이행을 요구할 권리, 일할 수 있는 권리, 실업을 보호받을 권리, 일정 기간의 유급휴가 등 휴식과 여유를 가질 권리, 건강 및 행복에 필요한 생활수준을 누릴 권리, 학비 걱정 없이 교육을 받을 권리, 노령 보호 등을 포함 한다. -40쪽

아버지에게 억압당했던 도스토예프스키에겐 있었지만 히들러나 스탈린에겐 없었던 그것. 간접적 보호자란 학대받는 어린아이를 편드는 사람으로, 어린이 주변에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될 수 있다. 간접적 보호자는 폭력에 노출된 아이에게 '너는 나쁜 아이가 아니며, 보살핌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믿음을 주고 자긍심을 갖게 한다. 길가에 쪼그리고 앉아 우는 아이를 그냥 지나치지 말아야 할 이유다. -82-83쪽

스포츠에서 쇼핑에 이르는 온갖 편의가 제공되어 그 자체로 자족적이고 폐쇄적이 되어버린 특권 계층의 프리바토피아(privatopia, 사적유토피아)는 여러 가지 문제를 낳게 된다. 특히 열린 공동체에서 자라날 권리가 있는 아이들이 공간뿐 아니라 도덕적으로 분리되어 같은 계급끼리 동질성을 키우는 한편, 다른 계급을 불관용으로 대하는 것이 우려된다. 부유층 전용 주거구역은 "다양한 문제가 산재한 세계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지 못한 세대를 생산"하게 되므로, 사회의 불안전성을 높이고 도시를 상시적인 내전 상태로 몰아넣는다. 특권 계층은 자신의 재산 형성은 물론이고 온갖 문화적 향유와 재생산이 "이름 없는 하인들의 미등록 이주 및 노동과 분리 될 수 있다는 환상을 버려야 한다."-127쪽

정부나 기업의 요청으로 이루어지는 용역 연구나 연구비 지원을 염두에 두고 행해지는 전문가들의 연구는 거의 다 긍정을 위한 연구다. 전문가들은 '4대강의 경제 부양 효과'나 '막걸리가 성인병 예방에 미치는 좋은 영향'을 연구하지, 아무도 부정적인 효과나 영향을 입증하기 위한 연구를 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보다 더 흥미로운 점은, 뉴스를 만들는 언론이나 전문가의 조언을 바라는 대중들 역시 부정보다 긍정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즉 언론은 논문의 질보다 선정성과 흥미를 더 높이 사면서, 과학상의 획기적인 발견이나 경제 효과를 과장한다. 마찬가지로 대중들은 듣기 싫거나 고려 사항이 많은 조언보다, 간결하면서 듣기 좋은 말을 해주는 전문가를 좋아한다. -154-155쪽

한정된 의제를 가지고 다투기 때문에 정당들 간의 변별력이 상실되면서, 신념에 찬 카리스마형 지도자보다는 기득권이 다루기 좋은 탤런트형 지도자가 더 많은 표를 얻는 꼴불견은 현대 정치의 그늘이다. '정치적인 것'을 정당과 의회에만 국한하면, 정치는 발전하기보다 답보한다. -178쪽

헬렌 칼디코트는 [원자력은 아니다]의 마지막 문장을 이렇게 맺는다. "결국 도덕적 삶을 사는 것은 개인의 결정이다. 그것은 당신의 방을 나갈 때 불을 끄고 밤에는 컴퓨터를 끄며 집을 단열하고, 겨울에는 더 많은 스웨터를 입고 집안의 열을 내리도록 조정하며, 여름에는 땀을 흘리더라도 지구온난화를 일으키는 에어컨을 끄고 지내는 것을 의미한다. 자기희생과 책임감은 대다수 사람들이 동경하는 고상한 특성이다. 또한 이것들은 세계를 공정함과 지속적인 생존으로 이끄는 자질이기도 한다." 좋은 말이다. 여기에 한 마디 덧붙인다. 헬렌 칼디코트가 권하는 저런 행동은 도덕적 개인이 되는 것에 멈추지 않는다. 저런 행동은 개인의 도덕적 삶으로 수렴될 뿐 아니라, 오래 지속하면 필경엔 무수한 기업과 결탁한 정치엘리트를 향해 '너 그만해!'라고 소리칠 수 있는 덕(힘과 용기)으로 화한다. 내가 먼저 저렇게 해보지 않으면, 끝내 그런 말은, 목구멍에 막혀 나오지 않게 된다. 이게 중요하다. -195-196쪽

지역과 시대를 막론하고 "뛰어난 지도자와 그렇지 못한 지도자를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의 하나가 본질적인 것과 비본질적인 사안을 정확히 구분"하는 능력인데, 연산군은 능상의 척결을 자신의 욕망을 채울 자유로 곡해했다.

*(p214)연산군대의 조선왕조실록인 [연산군일기]를 보면, 연산군이 가장 많이 내뱉은 말 가운데 하나가 능상(凌上)이다. '윗사람을 능멸한다'는 뜻의 이말에는, 그만큼 대간들에 의해 왕권이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는 국왕의 열패감이 녹아 있다. 연산군은 부왕이 만들어 놓은 국왕.대신.삼사의 정치적 분립을 왕권의 퇴보이자 조정의 폐단으로 여겼다. -215쪽

가부장제가 전제된 대부분의 남녀 관계에서 남자는 가해자고 여자는 피해자다. 이때 남자는 자신의 죄책감을 벗기 위해, 일종의 반성문이거나 석명서를 쓰게 되는 데, 그것이 연애소설의 기원이다. "그러므로 남성이 연애 소설을 읽지 않는 것은 당연하고, 남성의 반성문이나 변명으로 상처를 치료하고 사랑을 기억해야 할 사람은 여성이다. 연애 소설은 남성이 낳고 여성이 기른다. 그것을 통해 상처를 입힌 사람은 자신의 수치와 회환과 약점을 위장하고, 가해자로서의 자책감에서 벗어난다."-264쪽

저항적 지식인들은 항상 민중을 앞세우지만 서발턴은 항상 '지식인-저항엘리트'의 계도를 받거나 자신들과 통합되어야만 의미를 갖는 존재다. 그래서 민중이나 계급으로 회수되지 않는 서발턴은 충동적이고 무모한 부화뇌동자로 간주되며, 결정적인 시기에 운동 역량을 왜곡시키는 분열분자로 배척한다.

*(p350)서발턴(subaltern)은 하위(sub)와 타자(altern)가 결함된 조어로, 우리말로는 하층민. 하위 주체. 하위 집단 등으로 번역된다. -352쪽

새마을운동은 노인들이 마을의 어른 역할을 하던 전통적인 공동체질서를 완전히 전복하고, 상대적으로 젊은 청. 장년층이 마을의 주도권을 쥐게 된 계기가 되었다. 또 국가의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던 농촌에까지 국가권력이 파고들게 된 것도 새마을운동의 성과로, 작중에 나오는 이장이 행한 역할이 그런 것이다. -3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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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새책'에서는 절판된 책을 구하기 위하여, 시각을 다투면서 동분서주한 이유와 목적을 애정을 듬뿍담아 드러내고 있다. 책속에서 절판된 책이 튀어나올 거 같다. 읽다보면 꼭 그 책을 구입해야 할 거같다. 삼면이 책으로 둘려 쌓인 방을 둘러본다. 과연 1,500여권 중 한권만 택하라면, 고민으로 남는다.  

Wants : [강철로 된 책들], [구별짓기], [괴테 자서전], [국어의 풍경], [내가 읽은 책과 세상], [밑줄 긋는 여자], [숨어사는 외톨박이], [연필], [익숙한 그 집 앞], [참말로 좋은 날], [채링크로스 84번지], [추억], [통의동에서 책을 짓다], [풀종다리의 노래], [피가 되고 살이 되는 500권, 피도 살도 안 되는 100권], [한국의 살림집], [한국의 자생풍수], [Word Power made easy] et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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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새 책 - 절판된 책에 바치는 헌사
박균호 지음 / 바이북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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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가 필요한 것은 새만은 아닌 것 같다. 책도 날개가 필요하며 항상 읽혀져야 한다......

한 사람의 서재는 그 주인의 운명과 함께한다. -59쪽

이런 성자 같은 삶을 살아온 분이기에 2003년 당시 베스트셀러의 보증수표처럼 여겨졌던 문화방송 <느낌표>에서 그의 산문을 묶은 [우리들의 하느님](녹색평론사)을 선정하려고 했을 때 "아이들이 자라나는 과정에 가장 행복한 시간이 도서관이나 책방에 가서 혼자 책을 고르는 순간이다. 그걸 왜 방송에서 막느냐"며 프로그램 사상 처음으로 거부하신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성자 같은 삶을 살아온 분 = 권정생 선생님.

-111쪽

나는 서점에 들어와서 "요즘 어떤 책이 잘 팔려요?"라고 묻는 독자보다는 서점에서 한 시간 이상을 책 구경을 하다가 마침내 뿌듯한 표정으로 책을 고른 뒤 사가는 독자가 많아야 한다고 믿는다. -167쪽

차창 밖 풍경 속의 '소'는 여유롭고 고향의 향수를 전해주지만 현실 속의 소와 농부는 향기롭지 못하다. '소'를 단지 고향의 향수를 상징하는 '소'로만 노래한다면 그는 더 이상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시를 쓰는 시인이 아니다. -183쪽

어찌 보면 문학작품의 '음란한 내용'은 TV에 나오는 여러 범죄의 모습보다는 훨씬 덜 해롭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오로지 음란한 내용을 구경하기 위해서 장정일이나 마광수 교수의 책을 사서, 그 영향을 받아 '문제아'로 변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장정일 [내게 거짓말을 해봐]/ 마광수 [즐거운 사라]-2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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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비... 뭐하러 그 먼길을 갔지, 그간의 긴 시간을 헤아리면서 나를 탓했다. 쫓기듯이 돌아오는 길, 내내 비가 내린다. 내릴 곳을 지나쳐 우산도 없이 비맞고 되돌아 오는 길도 한없이 쪼글아들었다. 지극히 수동적이고 내성적이고 말보다는 글이 편한, 난 늘 한박자씩 늦게 북치고 장고를 치고 있다. 그러면서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 갔겄만... 저자는 문제를 바라보는 방식을 날씨처럼 받아들이라고 한다. "아침에 커튼을 걷고 하늘을 보는데 날이 흐리면 누구나 실망한다. 하지만 아무도 종일 그에 대해 '대체 오늘 날씨는 왜 이럴까? 누구에게서 비롯된 사태인가?'하며 반추하지는 않는다. 그냥 '날 흐리네......' 하고 넘어가고 만다(p189)". 난 가을비가 내내 뭔가를 말하는 거 같다. 그래서 날씨처럼 넘어가지가 않는다. 너무 막연하게 나열했다. 이게 나의 한계다. 제대로 마음 속을 쌈박하게 끄집어 내지도 못하는 바보같다. Why don't you come to your senses? 맴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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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 - 루나파크 : 훌쩍 런던에서 살기
홍인혜 지음 / 달 / 2011년 9월
구판절판


언제나 이렇다. 내 책상은 늘 현실안주로 뒤덮여 있고, 내 가방은 집착으로 가득 차 있다. 언제고 떠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는커녕, 짐 더미에 묶여 오도 가도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29쪽

차별하지 않고, 타자화하지 않고, 없는 사람인 양 모르는 척하지 않고, 그저 '보통 사람'의 범주에 모두가 속하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모두가 자기를 드러내며 한길을 자유로이 다니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121쪽

장기여행의 좋은 점은 어딘가로 향할 때 시간에 대한 초조함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월요일에 못 가면 화요일에 가면 되고, 수요일에 문 닫은 곳은 목요일에 찾으면 된다. 죽어도 오늘 가봐야 할 곳이 있는 것도 아니고, 몇시까지 가지 않으면 큰일나는 것도 아니다. 어딘가로 가려고 최단 루트를 찾으려 애쓸 필요도 없고, 돌아 돌아 가도 가는 길 자체가 속 편한 여행길이다. 차가 막혀 수십 분째 껌처럼 길바닥에 붙어 있어도 좀처럼 시계를 보지 않는다. -158쪽

'모든 것을 날씨처럼 생각하기'는 큰 효험이 있어서, 여행 기간 내내 큰 힘이 되어주었다. 심란한 일이 생겨도 그저 어쩌다 맞이한 흐린 날인 거고, 문제가 발생해도 그저 소나기일 뿐이었다. 숱한 문제가 생겨도 예전처럼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그저 적당히 떨어져서 보는 여유를 얻었다. 문젯거리를 늘 보물처럼 끌어나고 소일 삼아 걱정하던 내가 그 모든 트러블을 슬며시 내려놓는 사람이 된 것이다. 언제 다시 도질지 모르는 '안달병'이지만, 이런 회복 가능성을 발견한 것만으로도 이번 여행에 의미가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190쪽

내 취향이 아니면 그저 무관심하면 그만인 것을, 일일이 주의를 기울이고 하나하나 짚어가며 험담까지 했다니 그야말로 유치한 행태였다. 단지 토를 달기 위해 관심을 두고 그에 몰두하다니 모순적인 '싫음'이었다. 뭔가를 싫어하며 마치 자신이 미욱한 대중과는 취향의 수준이 전혀 다른 고상한 사람인 양 착각했다니 얼마나 우스운가. 실제로는 나라는 존재에 자신이 없고,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두려웠기에 남을 '까면서'존재감을 확립했던 거다. 어떤 창작인이라도 나보다 노련하고, 나보다 노력해온 사람이라는 걸 인정했어야 했는데 어설픈 식견으로 그를 무시하고 비판하며 내가 그 사람보다 잘난 것같은 희열을 맛봤던 거다. -267-268쪽

불친절은 그저 불친절, 가해자의 품성을 탓하면 되는 일이지 내 처지를 반추하며 하루를 망칠 이유가 없다. 여행에서의 보석 같은 하루를 그렇게 허비하기엔 너무나 아까우니까. 작은 불친절에도 쉽게 마음이 쪼글쪼글해지는 나 같은 사람들이 모두 씩씩하게 마음을 슥슥 다려서 다시 매끈한 기분으로 여행했으면 하고 바라본다. -2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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