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10일 동안 아이슬란드 - 네 여자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배은지 지음 / 미래의창 / 201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이슬란드 여행은 좀 특별하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물가, 예측불가능한 자연재해를 고려해야 하는 곳. 그곳으로 떠나기 위해서는 왠지 목를 두려움을 극복할 멘탈, 다양한 액티비티를 즐길 강인한 체력, 무엇보다도 아이슬란드를 충분히 즐길 시간이 필요했다. 그중에서도 ‘시간‘을 가진 사람은 많지 않았다. 당시 나도 직장인이었고 선배도 직장인이었기에, 우리는 직장인이 즐길 수 있는 - 짧고 굵게. 효율적으로 시간을 운영하는 - 최적화된 일정을 계획햇다. 공대 출신 화진 선배의 계산에 따르면 4명이 시간과 비용 절감에 최적의 정예멤버라고 했다. (6쪽)

골든서클은 아이슬란드의 대표 관광지 3곳을 뭉쳐서 일컫는 대명사다. 대표 관광지 3곳은 싱벨리르 국립공원, 굴포스, 게이시르 간헐천으로 지도상에서 동그란 원처럼 뭉쳐 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중략) 꿈에 그리던 아이슬란드 1번 국도에 올랐다 가는 길부터 클래스가 다르다. 그냥 길인데 이상했다. 그냥 고속도로인데 뭔가 이상했다. 산은 있되 나무가 없었다. 나무 대신 이끼가 산을 덮고 있어 마치 피부병에 걸린 고양이의 등처럼 보였다. 그런데 나무가 없으니 시야가 트여 어쩐지 시력이 좋아지은 기분이었다. (중략) 나무가 없으니 산의 색도 달랐다 해가 든 부분은 희끗한 곰팡이가 서려 있는 이끼 색이었다면 해가 들지 않은 지역은 물을 잔뜩 먹은 해초 색이었다. (65-66쪽)

스코가포스는 앞선 굴포스, 셀랴란드스포스와는 사뭇 달랐다. 온통 이끼로 뒤덮인 산에서 거대한 폭포가 수직으로 떨어지는데 시원한 모습이 무척 장관이다 거기다 내리꽂히는 물줄기와 평야로 흐르는 냇물은 청순함을 더한다. (중략) 스코가포스는 제주도의 오름처럼 폭포 옆으로 올라가면 폭포의 시작과 전경을 볼 수 있는 시설이 마련돼 있다. (90-91쪽)

폭포의 시작은 빙하. 데티포스는 비트나요쿨 빙하 지대에서 흘러 들어오는 강에 위치해 빙하 녹은 물과 강물이 어화둥둥 얽히고설켜 하나의 물 덩어리기 되어 떨어지는 곳이다 폭포 상부에서 거침없이 물이 뒤엉키는 장면을 보고 있으면 잊고 있었던 온갖 번뇌와 잡념, 거친 생각들이 휘몰아치는 기분이 든다. 그러다 폭표 끝자락에서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긋 보란 듯이 물보라가 되어 부서진다 보는 것 만으로도 고해성사를 한 기분이다. (144-145쪽)

블루라군. 이름만 들어도 ‘블루블루‘ 하지 않은가. 하와이, 보라카이 보다 더 달콤한 휴양지로 다가오는 블루라군의 사진을 보면 누구라도 이해할 것이다.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휴양지로 꼽히는 블루라군. 불루라군은 천연 온천으로 옥빛를 띠는 물리 특징이다 유황과 천연 미네랄이 가득 들어 있어 인체에 유해하지 않게 정화를 거쳐 안에서 마음껏 헤엄칠 수 있다. (201-202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절일기 - 우리가 함께 지나온 밤
김연수 지음 / 레제 / 201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심지어는 자신조차 읽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써야 일기가 된다. 일기를 쓰는 가장 중요한 목적은 쓰는 행위 그 자체에 있기 때문이다. 백 년 뒤에 누군가 읽는다고 생각했다면 카프카도 이처럼 두꺼운 일기를 쓰지 않았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카프카 역시 자신의 일기를 지우곤 했는데 그건 일기의 목적이 쓰는 행위에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17쪽)

내 마음 속으로 들어온 타자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나는 비로소 어른이 된다는 사실 (생략). (38쪽)

그러니까 이 현실은 우리가 예전의 삶을 반복한 결과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이는 지금까지 한국 사회를 지탱한 기본 원리에서 우리가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다는 뜻이니, 이 반복은 스스로 적폐가 되는 반복이다. 적폐는 적폐를 청산할 수 있을까? 국가는 국가를 개조할 수 있을까? 책임이라는 단어를 말하지 않고 타인의 고통 속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63쪽)

말하자면 없어진 뒤에야 그 소중함을 알게 되는 물이나 공기 같은 것. 없어지면 우리에게 치명적인 것. 그러나 있을 때는 그 존재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것. 그게 바로 사랑이기 때문에. (112쪽)

거울 속에 늙은 얼굴이 있다고 해서 그 거울이 그를 늙게 만들었다고는 볼 수 없다. 이 세계는 그 거울과 같다. 세계는 늘 그대로 거기 있다. 나빠지는 게 있다면 그 세계에 비친 나의 모습일 것이다. (143쪽)

자서전이든 전기든 인생담의 경제학은 다음과 같다. 경제 주체가 이윤을 추구하듯 인생 이야기를 들려주는 주체는 의미를 추구한다. 이 말은 곧 이야기를 들려줄 때 우리는 개별적인 사건들을 인과의 사슬로 연결한다는 뜻이다. (208쪽)

불안이 너무 많이 사랑하는 자의 것이어서 환멸을 낳는다면, 우울은 아무런 이유 없이 타자를 사랑하라는 명령을 접한 사람의 것이어서 체념을 발생시킨다. (266쪽)

우리의 삶은 우리를 매혹시킨 근대적 기계들의 규칙적인 움직임을 닮아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은 구불구불 흘러내려가는 강을 닮아 있습니다. 인간의 시간은 곧잘 지체되며, 때로는 거꾸로 흘러가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깊은 어둠 속으로 잠겨들지만, 그때가 바로 흐름에 몸을 맡길 때라고 생각합니다. 어둠 속에서도 쉼없이 흘러가는 역사에 온전하게 몸을 내맡길 때, 우리는 근대 이후의 인간, 동시대인이 됩니다. (301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안톤 슈낙 지음, 차경아 옮김 / 문예출판사 / 2017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거만한 인간. 들판에 피어오르는 연기. 숲 길에 흩어져 잇는 비둘기의 깃털. 벼락부자가 되어 자동차에 앉아 있는 여인의 가녀린 좁은 어개. 줄타기 묘기에서 세 차례 떨어진 어릿광대. 지붕 위로 떨어져 내리는 빗소리. 휴가의 마지막 날. 사무실에서 먼지 낀 서류에 뭔가 기록하고 있는 처녀의 가느다란 손가락. 만월 밤. 개 짖는 소리. 크누트 함순의 몇 구절 시구. 굶주린 어린아이의 모습. 철창 뒤로 보이는 죄수의 창백한 얼굴. 꽃피는 나뭇가지로 떨어지는 눈발......
이 모든 것은 우리들 가슴에 스며들며 우리를 슬프게 한다. (15쪽)

아, 세월 안에는 얼마나 유사한 반복이 자리 잡고 있는가. 이렇게 뇌우가 몰아치는 날, 땅거미 지는 어스름 속에 나 역시 똑같이 여기 서 있다. (62쪽)

이 어린 시절의 모험 위로 끝없는 세월이 흘러, 모래가 해변의 조개를 뒤덮듯이 다른 체험이 그것을 뒤덮었다. (79쪽)

그들과 맺은 우정이 이후의 내 인생에까지 살아 이어진 친구는 내게 한 사람도 없었다. 학창 시절이 흘러간 뒤의 인생 행로에서 나는 아무와도 재회를 한 적이 없다. 대부분의 친구가 피의 구름 속으로 사라져간 것이다. (111-112쪽)

건초의 향내 속에서, 이미 죽음에 의해 베어지고 망각의 세계에 묻혀버린 그 옛날의 풀을 베던 무리들의 아물아물 떠오른다. (중략) 콧마루를 벌름거리며 씁쓸하면서도 달콤한 마른 풀의 아물거리는 향내를 함북 들이마실 때면, 그들 모두의 모습이 내 가슴속에서 되살아 움직인다. (125쪽)

왜 내가 그런 행동을 했을까? 우리는 이따금, 자신의 내면의 긴장상태를 위해 무엇이든 행동을 하지 앟으면 안 되는 걸까? 어떤 무의미한 행동, 이해할 수 없는 행동, 미치광이 같은 행동을? 이 억제할 수 없는 힘에 맞설 수 있는 것이 무엇일가? 언제나 하찮은 것, 엉터리 같은 것, 어린애 장난 같은 것뿐이었어...... (154-152쪽)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매혹적인 울림. 태초로부터 설레어온 숲의 음성. 땅 위에 한 점의 바람결조차 느겨지지 않는 경우에도. 수관을 흘러가며 말을 건네오는 그런 숲의 살랑거림이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234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철학자의 사물들
장석주 지음 / 동녘 / 201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물은 보이지 않는 깊이가 아니라 그 표면으로 말하니, 사물의 표면이 말하는 것들에 귀를 기울여라. 깊이라는 잣대로 사물을 평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 깊이란 실로 추상과 모호함, 혹은 거짓 형이상학의 변성에 지나지 않는다. 깊이의 의미심장한 검증되지 않은 추측이고 섣부른 예단이다. (4-5쪽)

표면은 깊이의 부재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사유나 인격이 깊이를 머금지 못할 때 말과 행동은 들뜸, 허장성세, 수박 겉핥기, 경박함으로 흘러간다. 우리 사회는 때때로 참을 수 없을 만큼 가볍고 들뜬 분위기에 감싸여 있는 듯하다. 감정이 들떠 있는 사람은 사물이건 무엇이건 고요히 응시하지 않는다. 깊이 생각하지 않고 피상적으로 느끼고 판단함으로써 자주 실수하고 낭패를 본다. (35쪽)

산다는 것은 덜도 아니고 더도 아니고 더러워지는 것이다. 그게 본질이다. 모든 빨래는 사람이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 불가역적 시간의 포획물이라는 사실을 말한다. 그 불가역적 시간의 흐름 속에서 새것은 낡아지고, 깨끗한 것은 더러워진다. (41쪽)

선글라스는 일종의 가면이다. 선글라스를 착용하는 자는 그 뒤로 숨는다. 선글라스는 눈빛과 눈동자를, 그리고 내면 심리를 가린다. 선글라스를 끼고 난 뒤 깊은 안도감을 느끼는 것은 타자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기 때문이다. (73쪽)

사람들의 죽음에 대한 공포감을 자극해서 제 잇속을 챙기려는 사람들이 종말론을 유포한다. 나쁜 종말론은 ‘나‘의 개별화된 죽음을 세계와 함께 자살하는 것으로 바꾼다. 세계의 종말이란 없다. 단지 ‘나‘의 죽음이 있을 뿐이다. 어처구니없지만, 종말의 순간에 ‘모든‘ 사람이 ‘하나‘가 되기를 욕망하는 사람들이 여기저기에 우글우글하다. 종말론자들의 꾐에 넘어가지 않는 방법은 뜨거운 물이 넘치는 욕조에서 목욕을 하는 것이다. 욕조 목욕이 주는 안락과 평화 속에서 관대해지는 것. 그것이 엉뚱한 종말론에의 유혹에서 우리를 구제한다. (91쪽)

가죽소파가 그 자체로 하나의 신체이긴 하지만 만짐과 만져짐 사이에는 어떤 정념도 생기지 않는다. 신체 이상의 그 무엇도 아니기에 순수한 자기감응을 갖지 않는다. 따라서 이것과 우리 사이에 어떤 형태의 가학증과 피학증 따위는 있을 수 없다. 가죽소파의 현전은 수동적 타성태로 굳어지는 ‘있음‘에서 멀리 벗어나지 않는다. 가죽소파 위에 몸뚱이를 가로 눕히고 주말 휴일을 빈둥러길 때 우리는 가죽소파와 몸뚱이가 하나로 연결된 신체로 변하는 사태를 겪는다. (111쪽)

사진의 본질은 더도 덜도 아닌 멈춤, 시간의 얼어붙음, 죽음이다. 사진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현실의 시간에서 뒷걸음질 쳐서 과거 속으로 들어가는 행위이다. 이때 과거란 다시 되풀이할 수 없다는 점에서 죽음이다. 과연 죽음뿐일까? 사진은 시간과 존재의 정지라는 맥락에서 죽음이다. 동시에 살아 돌아올 수 없는 존재의 회귀로서의 생생한 삶을 겪게 한다. (146쪽)

정글은 자연이 아니라 일종의 무대장치일 뿐이다. 텔레비전이라는 미디어가 제공하는 스펙터클과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접촉은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는 안전한 곳에서 위험한 정글과 그 정글이 만드는 스펙터클을 소비하는 주체다. 이 스펙터클을 보면서 이것에 한없이 길들여지는 우리들. 이제 가려져 있던 진실을 폭로하자! 우리가 텔레비전의 주인이 아니라 거꾸로 텔레비전이 우리를 포확하고 길들이는 권력의 대리인이자 능수능란한 조련사였다는 것을! (161쪽)

신문에서 리얼리티는 중요하게 취할 만한 요소가 아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조간신문을 읽는 이 시간에 서리는 유유자적, 햇빛의 기쁨, 멜랑콜리의 안온함이다. 조간신문은 멜랑콜리의 안온함으로 우리의 들끎는 욕망을 다독인다. 조간신문을 읽는 이 시간에 꽃잎 내려앉듯 쌓이는 정밀한 고요와 잔잔한 기쁨을 속속들이 맛보려 한다. (211쪽)

폴란드 출신의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근대서잉 만든 견고성들이 어떻게 해체되면서 액체화하고, 세계가 어떻게 ‘고형적‘ 국면에서 ‘유동하는‘ 국면으로 바뀌는가를 조목조목 짚는다. 땅이 물렁물렁해지면 누구도 안전하지 않다. 지유주의적 지구화, 국제금융 시스템의 불안정성, 통제 불가능한 시장의 변덕, 국수주의, 테러리즘의 위험성들로 사회적 토대가 물렁물렁해진다. 따잉 언제 푹 꺼질지, 그 지형이 어떻게 바뀔지 아무도 모른다. 세계의 유동성이 증가하면서 개인들의 삶 역시 불확실성과 불확정성의 영역으로 떠밀린다. (251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김영민 지음 / 어크로스 / 201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설거지의 인간론. 결혼은 연애의 업보이고, 자식은 부모의 업보이며, 설저지는 취식의 업보입니다. 설거짓거리는 취식의 상태를 고스란히 반영합니다. 얼마나 깔끔하게 혹은 게걸스럽게 먹었느냐가 고스란히 설거짓거리에 반영됩니다. 사실 인간 자체가 설거짓거리입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인간의 육쳋는 땀과 침과 피지를 분비하고, 각질과 군살을 만들어냅니다. 정신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달이 멀다 하고, 타성, 나쁜 습관, 부질없는 권력에 대한 집착을 만들어냅니다. 그런 면에서 성장과 노화란 곧 썩어가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설거지 없이 깔끔하게 살아 있을 수 있는 존재는 없습니다. (중략) 끝으로 가장 중요한 한마디, 모든 설거지는 이론보다 실천이 중요합니다. (41-42쪽)

과연 어떤 기준으로 지나온 학창 생활을 평가할 것인가? 학교 졸업 후 얼마나 높은 연봉의 안정된 직장을 가지게 되었는가가 유일한 기준은 아닙니다. 중요한 평가의 기준이 하나 더 있는데, 그것은 바로 여러분이 현실 사회에서 타인과 사는 일의 고통과 영광을 얼마나 잘 겪을 마음의 준비, 즉 정치적 덕성political virtue을 습득했느냐는 것입니다. 즉 얼마나 성숙한 정치 주체가 되었느냐 하는 것이, 졸업생들이 염두에 둘 만한 평가 기준이라고 생각합니다. (114-115쪽)

파국을 넘어, 사회적 삶은 의외로 오래 지속된다. 사회적 삶이 지속되는 동안은 공적인 의미를 확정할 수 없기에 역사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역사는 사회에 대해 죽음이 삶에 행하는 것과 같은 역할을 한다. (137쪽)

탄액 여부를 숙고하는 일은, 특정 정치인에 대한 개인적인 호오의 사안이 아니라, 우리가 헌법을 가진 존재라는 일을 상기하는 일이다. 우리가 각자도생하며 사적 이해 추구에만 골몰하는 유글레나가 아니라, 공적 삶을 위한 일정한 가치에 합의한 바 있고, 그 가치를 심각하게 배반했다고 판명되는 경우에는 가장 힘센 권력자마저도 권좌에서 끌어내릴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이러한 과정은 아이돌 숭배와는 사뭇 다른 방식으로 우리로 하여금 보다 확장되고 고양된 삶을 살게 한다. (164쪽)

모든 이야기에 끝이 있듯이, 인생에도 끝이 있다. 모든 이야기들이 결말에 의해 그 의미가 좌우되듯이, 인생의 의미도 죽으므이 방식에 의해 의미가 좌우된다. 결말이 어떠하냐에 따라 그동안 진행되어온 사태의 의미가 바뀔 수도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모든 인간은 제대로 죽기 위해서 산다"는 말의 의미다. 어느 자리에서 어떻게 죽을 것인가. 삶은 선택할 수 없지만 죽음은 선택할 수 있다. (중략) 비록 우리의 탄생은 우연에 의해 씨 뿌려져 태어난 존재일지언정, 우리의 죽음은 그 존재를 돌보고자 한 일생 동안의 지난한 노력이 만들어온 이야기의 결말이다. (175쪽)

정치는 구분에서 출발한다. 구분을 지음에 의해 비로소 복수의 단위들이 생겨나고, 복수의 단위들이 존재할 때 비로소 관계가 존재한다. 그 관계가 특유한 정치의 역학을 만든다. 그렇다면 오늘날 정치의 중요한 과제는, 앙상해진 도덕적 진정성에 너무 의지하지 않으면서 그 구분을 재정의하는 일이다. (222-223쪽)

근대가 만든 강력한 판타지 중의 하나는, 우리를 둘러싼 세계가, 그 자체로서는 오리무중인 어떤 것, 가치와 의미가 박탈된 어떤 돌덩어리 같은 것이라는 이미지다. 근대 과학적 사유에 깃들어 있는 가치화 사실 간의 과격한 자연주의적 분리나, 가치는 세계나 우리 본성에 내재하기보다는 우리 자신에 의해 구성되어야 한다는 사회과학의 구성주의적 입장이나 모두 일단 그러한 세계의 이미지에서 암묵적으로 출발하고 있다. 홍상수의 영화는 아마도 한국 영화사상 가장 효과적으로 그러한 근대적 이미지를 환기하고 있다. (중략) 그런데 홍상수 영화는 기존의 가치를 냉소하는 반면 아무런 대안적 가치를 이야기할 의사가 없다는 점에서, 근대가 도달한 참으로 황폐한 그 저지대에 놓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 (272-273쪽)

이처럼 대상에 대한 정확한 지식은 대상을 장악하게끔 해준다. 하지만 한니발에게 지식은 단지 대상에 대한 정보를 축적하는 일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는 지식을 통해 뭇 대상에 대한 새로운 관계를 정립하는 데까지 이른 사람이다. 그렇다. 지식이 지식의 소유자에게 가져다조는 보다 깊은 신비는 바로 지식이 그와 대상의 관계를 변화시킨다는 점에 있다. 그리고 한니발이 지식을 매개로 맺은 대상과의 새로운 관계는 그의 식인행위를 이해하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280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