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세계 사건부 - 조선총독부 토막살인
정명섭 지음 / 시공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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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의 얼굴이 호랑이 그림이에요. 포효하는 호랑이. 우리나라의 호랑이예요. 단군 신화에도 등장하는 우리 호랑이. 이제는 우리 곁에서 떠난 호랑이. 이 책의 얼굴인 호랑이를 지그시 바라보네요. 다큐멘터리 하나가 겹쳐져요. KBS1 TV에서 한 'KBS 스페셜-조선 호랑이 왕국, 왜 사라졌는가'를 본 적이 있어요. 찾아 보니, 2016년 4월 7일 오후 10시에 방영됐었네요. 그 방송에서 말하기를 일제 강점기 때, 호랑이 사냥을 많이 했다고 해요. 그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이 이야기. 어떤 이야기일지 궁금하여, 호랑이 얼굴에 손을 가져가네요.

  

 광화문을 옮기고 만든 '조선총독부' (사진 출처: 시공사 네이버 포스트)

 

 완공을 앞둔 조선총독부에서 토막살인이 일어났어요. 살해된 사람은 조선인 건축기수인 이인도. 그 시신은 대(大)자로 흩뿌려졌지요. 대한제국을 상징하는 거였어요. 10여 년을 공사하여, 낙성식이 열흘 앞으로 다가온 조선총독부. 일본은 조용히 넘어가려고 하고, 또 한편으로는 그 죄를 의열단에게 떠넘기려고 해요. 조선인들은 죄 없이 탄압을 당하게 되지요. 그래서 육당 최남선은 류경호에게 조사를 부탁해요. 류경호는 일본 명문대 게이오 대학을 졸업한 수재지만, 통속잡지 '별세계'의 기자예요. 그 부탁을 수락한 류경호. 살해된 이인도의 하숙집에서 지내게 되지요. 그곳에서 이상한 시선을 느끼게 되고요. 이인도의 직장 동료인 박길룡에게서 이야기를 듣게 돼요. 조선총독부를 설계할 때, 조선인 건축사들이 배제된 공간이 있다고요.  

 

 '"이 땅에 독립운동가와 친일파만 있는 줄 아십니까? 99퍼센트는 아무것도 모르는 평범한 사람들이란 말입니다. 대체 무슨 명목으로 그들의 삶을 파괴하려는 겁니까?" -277쪽. 


'"이 땅에 친일파와 독립운동가만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348쪽.

 

'"어차피 이번 일에서 가장 하찮은 취급을 받은 건 죽음과 진실입니다." -359쪽.

 

 누군가의 욕망으로 살인이 있고, 그 죽음은 누군가의 이익으로 이용하려고 하지요. 류경호는 코난 도일의 '빨강 머리 연맹'에서 암시를 받아 사건을 해결하고요. 1926년 9월 22일부터 10월 1일까지. 하루하루 진실을 향해 달려가는 류경호와 배경이 되는 그 당시의 경성! 그곳에서 육당 최남선, 박길룡 건축사, 도쿠토미 소호 등 실제 인물들이 각자 역할에 충실해요. 그렇게 그때의 사람들! 잘 어우러져 있어요.

 

'"언젠가 새벽이 오겠지. 동이 트는 새벽이......"' -366쪽.

 

 조선총독부의 낙성식이 있는 1926년 10월 1일에 단성사에서는 영화 '아리랑'이 상영돼요. 류경호는 희망의 말을 중얼거리지요. 어뭄 안에서 빛을 보았어요.

 

 잡지 '별건곤' (사진 출처: 시공사 네이버 포스트)

 

 단원 김홍도의 '송하맹호도' 호랑이 머리 부분 세부 (사진 출처: 네이버 이미지)

 

 '새로 영화가 걸리면 으레 장안의 모던 걸과 모던 보이들이 몰려오곤 했지만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많았다. 거기다 치마저고리 차림의 여인들부터 갓과 도포 차림의 노인들까지 섞여 있었다. 단성사 앞에는 극장에서 고용한 광대가 북을 치면서 열심히 떠드는 중이었다.' -364쪽. 


 작가 후기에서 가상 인물 류경호가 기자로 있는 잡지 '별세계'는요. 잡지 '별건곤'을 바탕으로 했다고 해요. '별건곤'에는 청년, 노숙자, 인력거꾼, 인부 등의 그 시대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고 하고요. '별세계 사건부'에도 그들의 이야기가 쌍둥이처럼 그려져 있어요. 그래서 이 책의 얼굴이 그 '별건곤'의 어느 얼굴과 닮았어요. 그리고 단원 김홍도의 송하맹호도가 떠오르네요. 우리의 호랑이! 그 터럭 한 올, 한 올 섬세하게 그렸지요. 가느다란 얇은 붓의 선! 수천 번 반복해서 그린 그림! 저 한 올, 한 올이 단원이 본 우리 백성이에요. 우리 백성의 얼굴 하나하나가 생동감 있는 호랑이 그림을 낳았지요. '별세계 사건부'도 일제 강점기의 우리 백성을 섬세하게 담았어요. 그렇게 생동감 있는 이야기가 됐지요. 우리는 이 이야기를 듣고요. 작가 후기에서 말한 '고민과 성찰을 거쳐 일제 강점기라는 암흑 속에서 사람이라는 빛'을 볼 수 있을 거예요.

 

 이 책에 '역사 추리의 신풍조 정명섭의 경성 정탐소설'이라고 적혀 있네요. 예! 이 책은 역사에 추리를 얹은 소설이에요. 일제 강점기의 경성! 그때의 백성 이야기예요. 추리는 그들의 이야기를 살짝 거들고 있고요. 영화 '밀정'이나 '암살' 등은 독립운동가와 친일파의 이야기인데요. 이 이야기는 백성의 이야기예요. 채만식의 '치숙', '레디메이드 인생', 염상섭의 '삼대' 등의 이야기처럼요. 이상화의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시 구절이 있지요! 예! 빼앗긴 들도 되찾고, 봄이 왔어요. 비록 남과 북으로 나뉘기는 했지만요. 이 이야기에서 영화 '아리랑'이 일제 강점기에 우리의 희망이 된 것처럼 어둠 안에 빛이 있어요. 그렇게 희망은 언제나, 어디서나 있어요.

 

 일제 강점기 우리 백성들의 얼굴을 자세히 보여 주고 있는 이 책! 그 당시, 그 곳의 이모저모를 볼 수 있는 이 이야기. 여러 정성이 깃든 이야기예요.

 

 

 

 

 

흑림귀인단 2기로서 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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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의 여인들
최문희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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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 실학 사상을 집대성한 그! 그가 그린 매조도는 매화쌍조도(또는 매화병제도) 하나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또 다른 매조도가 있네요. 바로, 매화독조도1예요. 아내인 홍혜완이 보내 준 노을빛 비단치마의 일부로 하피첩을 만들었고요. 남은 것으로 매조도를 그렸어요. 딸을 위해 그린 매조도. 그런데 두 개였네요. 소실(小室)에게서 얻은 딸을 위해서도 매조도를 그린 거예요. 그 딸은 홍임이라고 하네요. 그 홍임 모녀의 이야기는 '남당사(南塘詞) 16수2'에 새겨져 있어요. 그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소설을 만났어요. 그 소설에 들어갔어요.

 

 매화독조도 (사진 출처: 네이버 이미지)


 '나는 피와 살을 가진 보통의 사내에 불과했소' -10쪽.


 이 이야기는 유배에서 풀린 약용이 마재의 집 대문을 넘으며 기뻐하는 것으로 시작해요. 약용이 유배 생활을 하다가 만난 진솔이라는 여인. 약용의 딸인 홍임의 모(母)라고 알려진 이 여인에게 소설에서는 진솔이라는 이름이 새겨졌어요. 그 여인은 유배지에서 추운 약용에게 따뜻함을 주었지요. 그도 피와 살을 가진 사내였어요.

 묵은 가지 다 썩은 그루터기 되려더니 / 푸른 가지 뻗어 나와 꽃을 피웠구려
 어디선가 날아온 채색 깃의 작은 새는 / 한 마리만 혼자 남아 하늘가를 떠도네

계유년 팔월 열아흐레


 1813년. 약용이 딸인 홍임을 위해 그린 그림. 매화독조도에 쓴 시예요. 묵은 가지(나이 든 정약용)가 꽃(사랑)을 피웠고, 작은 새(홍임)가 날아왔어요. 어린 딸의 앞날을 생각하는 마음이 애처롭네요.

 

 하피첩3 (사진 출처: 네이버 이미지)


 약용에게는 조강지처(糟糠之妻)가 있어요. 홍혜완이지요. 슬하에 6남 3녀의 자녀가 있었는데요. 2남 1녀만 남았어요. 마음과 몸이 어려운 가족을 이끈 아내. 약용은 그녀에게 고마움과 미안함과 애틋함이 깊이 서려 있어요. 혜완은 유배 생활을 하는 약용에게 노을빛 치마를 보내요. 


 '빛바랜 다홍치마를 내려보낸 것은 안방마님의 건재를 각인시키려는 날 벼린 일침일 것이다' -218쪽.


 1810년, 다산은 그 노을빛 비단치마의 일부로 하피첩을 만들어요. 두 아들인 학연, 학유에게 교훈을 남긴 서첩이에요.

 

매화쌍조도 (사진 출처: 네이버 이미지)


 1813년, 다산은 혼인하는 딸인 홍연에게 그림을 그려 줘요. 아내가 보내 준 노을빛 비단치마의 한 부분으로요.


 펄펄 나는 저 새가 내 뜰 매화에 쉬네 / 꽃다운 향기 강렬해 기꺼이 찾아왔지

 머물러 지내면서 집안을 즐겁게 하네 / 꽃이 활짝 피었으니 열매도 많겠구나

가경 십팔 년 칠월 열나흘 동암에서


 아버지로서, 혼인하는 딸을 위한 그림과 시! 많은 열매를 바라는 그의 부정(父情)이 전해지네요.


 이렇게 이 이야기는요. 약용의 사랑이 나뉘는 것을 원하지 않았지만, 그 나뉜 사랑의 존재에 깊이 베이는 혜완. 약용의 나누어진 사랑을 받아 아이까지 낳은 진솔.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는 두 아들, 학연과 학유. 그리고 혜완에게서 난 딸 홍연. 진솔에게서 난 딸 홍임. 또, 약용을 사모하지만, 이루지 못한 초순. 그리고 약용을 후원해준 정조. 유배지에서 만난 혜장 선사와 초의 선사. 또, 제자 황상 등. 그 조각 조각이 이어져, 약용의 삶을 자세히 그리고 있어요.


 '유배지 강진에서 홀연 나타난 진솔이라는 여인이 안겨준 평온, 나른한 휴지(休止)를 그는 탐욕스럽게 껴안았다. 깊고 따스하고 청결했다.' -311쪽.


 '진솔의 치맛자락에서 풍기는 녹향은 너무 순하고 맑아 그 청정함이 시든 것을 일으키고, 더께진 녹을 닦아내는 치유의 향이지요.' -326쪽.


 '깨알처럼 예민했고 흑단처럼 단단했던 그의 심장에 돌을 던진 남당의 여인, 진솔. 부서져 가루가 되어도, 그 외마디가 눈가에 물기를 자아올린다.' -작가의 말 중에서(444쪽).


 이 소설은 특히, 사랑을 도드라지게 그리고 있어요. 약용은 '서리처럼 희고 차가운' 혜완(50쪽)도 사랑했지만, '활활 타오르는 불꽃의 화석'인 진솔(309쪽)도 사랑했어요. 진솔은 유배지에서 그에게 평온이자 치유였어요. 그의 뜨거운 심장에 돌을 던진 여인이었고요. 


 '망설이면서 겨울 냇물을 건너는 것같이, 주저하면서 사방의 이웃을 두려워한다'는 노자의 말을 빌린 생가의 편액이자 호인 여유당. 또, '생각은 마땅히 맑게 하되 맑지 못함이 있으면 곧바로 맑게 해야 하며, 용모는 단정히 하되 단정치 못하면 더욱 단정히 하고, 말은 요점만 말하되 말이 많으면 더욱 줄이고, 행동은 조심스럽게 하되 조심스럽지 못하면 더욱 조심하라는 의미(198쪽)'의 사의재. 사의재는 강진 유배 생활 처음에 머문 곳이지요.

 

'어린 딸 총명함이 제 아비와 똑같아서 / 아비 찾아 울면서 왜 안 오나 묻는구나
한나라는 소통국도 속량하여 왔다는데 / 무슨 죄로 아이 지금 유배를 산단 말인가' -남당사 4수(430쪽).


 '결박, 그랬다. 평생 그를 옴짝달싹 못하게 여미고 있던 사슬이었다. 체면이라는 사슬, 살 속으로 파고든 그것은 뼈를 녹이고 살을 파먹고 갈기갈기 찢어 그를 부스러뜨렸다.' -440쪽.


 다산은 여유(與猶)와 사의(四宜)로 생활했지만, 진솔과 홍임에게 회한이 있어요. 혜완이 그 모녀를 품지 않았지요. 그래서 그 모녀에 대한 염려와 안타까움이 묻어나네요. 남당사 16수에 잘 그려져 있고요. 약용에게도, 글을 읽는 이에게도 눈가에 물기를 자아올리는 진솔과 홍임이에요.


 혜완은 목련이에요. 깨끗하고 하얀 목련. 강하고 품위 있는 목련이지요. 그리고 진솔은 청결하고 순함을 간직한 치자꽃이고요. 순연하고 여린 치자꽃. 헌신적인 치자꽃이지요. 초순은 국화예요. 유독 더운 날에 핀 국화. 그렇지만, 더위에 지쳐 시든 국화. 또, 다산은 딸에게 그려 준 그림처럼 매화예요. 뜨거운 가지를 가진 매화. 암향부동(暗香浮動)4해요. 이 이야기에서 여러 꽃의 향이 잘 어울려서 맑아요. 멀리, 깊게 나아가네요. 정약용이 이루어낸 것과 사상뿐만 아니라, 그가 품은 가슴의 깊은 사랑까지! 여러 향이 제 마음 깊숙이 들어오네요. 다산이 즐겼다는 차(茶)! 다산의 매화향에 여러 여인들의 향이 씨줄과 날줄이 되어 함께 차에 녹아드네요.

 

  그리고 '자발나게, 시틋하니, 비긋이, 꺼당겼다. 허룩해지려는, 왁살스럽게, 나달거렸다, 여퉈둔 등'의 우리말이 하나하나 천천히 스며들어요. 글의 맛을 잘 살렸어요. 또, 글이 다산의 그림처럼 꼼꼼해요. 눈 앞에 다산이 살아 있는 것 같이 그려내요. 사무치게 하네요.







출판사로부터 받은 책으로 읽고 씁니다. 



 

  1. 2009년 6월 서울 공화랑 전시를 통해 매화독조도가 처음으로 공개됐네요. (http://www.hani.co.kr/arti/culture/music/358904.html,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765819.html)
  2. 남당사는 1999년 세상에 처음 공개됐다고 해요. 서울 인사동 문우서림 김영복 사장이 건네준 남당사를 임형택 성균관대 교수(現 명예교수)가 처음으로 분석했다고 해요.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765819.html)
  3. 2015년 9월 하피첩이 서울옥션 경매에서 국립민속박물관에 7억5,000만 원에 낙찰되었다고 하네요.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11&aid=0002749295)
  4. 그윽한 향기가 은은히 떠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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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여우가 잠든 숲 세트 - 전2권 스토리콜렉터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박종대 옮김 / 북로드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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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영상 출처: 북로드 페이스북)

 

 저는 벗이 여럿 있어요. 얼굴을 본 지 오래된 벗도 있지요. 초등학교 동창들이 그래요. 예전에, 잠깐 만났던 그 벗들. 공자께서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라고 말씀하셨지요. 정말 그 모임이 '벗이 멀리서 찾아주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라는 말이 어울리는 자리였어요. 이런 제 동창들을 생각하게 한 이야기가 있네요. 이 이야기의 한 인물도 동창들을 만나요. 그런데, 살인 사건 때문에 만나네요.   


 독일 타우누스 루퍼츠하인의 숲 속, 캠핑장에서 폭발로 화재가 발생해요. 그곳은 캠핑카예요. 그리고 그 안에서 한 남자의 시신이 발견되지요. 그리고 말기 암 환자인 할머니께서 마을의 요양 병원에서 교살되고요. 이어서, 신부님께서 자살로 위장된 채 살해돼요. 보덴슈타인은 어릴 적 그곳에서 살았어요. 이 피해자들을 알기에 충격이 컸지요. 보덴슈타인과 피아는 짝을 이루어 수사를 계속해요. 그런데, 사건은 1972년 8월로 이어져요. 42년 전인 그때, 숲 속에서 한 아이와 애완 여우가 실종됐었고요. 그 아이는 보텐슈타인의 어릴 적 가까운 벗인 러시아에서 이주한 소년 아르투어였어요. 애완 여우는 보덴슈타인이 기르던 여우였고요. 막시라고 불렀지요. 그 사건은 보덴슈타인에게 영혼의 상처였어요. 상처 때문에 아프지만, 보덴슈타인은 진실을 찾아 나서요. 그런데, 마을 사람들은 침묵하네요. 보덴슈타인의 초등학교 동창들도 있는 마을 사람들인데요. 그래요.


 '"인간은 근본적으로 선하지 않다는, 인생에서 가장 씁쓰레한 교훈을 배운 게 그때였죠.” 의사가 말했다. “옛날에는 너무 순진해서 인간의 선함을 굳게 믿었어요. 그러다 가끔 선량한 얼굴 뒤에 비열함과 이기심의 음험한 심원이 입을 벌리고 있는 것을 봤고, 이후 그런 심원을 수없이 들여다보면서 생각했죠. 더 이상 놀랄 일은 없다고. 하지만 모든 일엔 여전히 더한 것들이 있기 마련이더군요. 차라리 만나지 않는 게 좋았을 사람들이 있어요. 서로에게 가장 나쁜 점만 드러나게 하니까.”
 그녀의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홱 스치더니 순간적으로 표정이 바뀌면서 아주 오래된 고통이 나타났다. 상심이나 기억이 불러낸 이 고통은 지금까지도 극복되지 않은 듯했다.' -2권 61쪽.


 '누구나 달처럼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는 어두운 면을 가지고 있다.'

-마크 트웨인.


 누구나 달의 뒷면을 갖고 있어요. 아픔이 어두운 면이 된 거예요. 그런데, 누군가의 어두운 면은 다른 누군가에게 큰 아픔을 주기도 하네요. 우리와 다름에 대한 무시와 적대감, 또래 안의 서열과 폭력, 가족끼리 주고받는 더러운 상처, 어긋난 사랑과 빗나간 우정이 낳은 잘못된 욕망. 이것들이 큰 아픔을 주네요.


 억압은 부인(否認)의 가장 치명적인 형태다.

-시릴 노스코트 파킨슨.


 '여우가 잠든 숲' 1권, 책 앞에 인용된 글이에요. 누군가는 어두운 면으로 다른 누군가를 억압했어요. 그것은 그를 인정하지 않는 가장 치명적인 형태였고요. 큰 아픔을 주었지요.


 '"42년 전의 일이지만, 살인 사건에는 공소시효가 없어."' -2권 138쪽.


 그 큰 아픔은 앙갚음을 낳았어요. 그 앙갚음은 뉘우침으로 나아가야겠지요. 그리고 그 큰 아픔은 두려움을 태어나게도 했고요. 용기로 나아가야 하겠지요.

 

(사진 출처: 네이버 이미지)


 어떤 아이의 글이 다가오네요. 다른 이의 아픔(달의 뒷면)을 보고 행복을 아는 것은 좋지 않다고 하는 아이! 다른 이의 아픔(달의 뒷면)을 함께하려고 하는 아이! 지란지교(芝蘭之交)1를 아는 아이예요. 그러한 사귐으로 큰 아픔에서 소통(疏通)으로 나아갈 수 있어요. 그런데, 이유신이 그린 '행정추상(杏亭秋賞, 은행나무가 있는 정자에서 가을을 감상하다)'이라는 그림에 이런 도장이 찍혀 있다고 해요. 하나는 '부족위외인도야(不足爲外人道也)'인데요. '바깥의 사람들한테는 이쪽 이야기를 전하지 말아달라'라는 뜻이라고 해요. 도연명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 나오는 글이라고 하고요. 다른 하나는 '왕래무백정(往來無白丁)'인데요. 당나라 유우석의 '누실명()'에 나오는 글이라고 해요. 그때의 백정(白丁)은 백성(百姓)과 똑같은 말이라고 하네요. 그래서 '오고 가는 사람들 중에 백성은 하나도 없다'라는 뜻이 된다고 하고요. 은행나무가 있는 정자에서 가을을 감상하며 남긴 그림에 저런 도장을 찍어 놓은 거예요. 견강부회(牽強附會)2한 거예요. 이 그림은 결국, 유유상종(類類相從)​! 끼리끼리 어울린다는 말이지요. 우월감을 가진 배타적인 모임이네요. 이것은 소통이 아니에요. 다른 이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하는 모임은 소통을 할 수가 없어요. 소통하지 않는 모임은 오랫동안 이어지지 않지요.


 넬레 노이하우스의 여덟 번째 타우누스 이야기예요. 두 권으로 된 이야기지요. 독일 아마존 독자 Martin Kahle은 '처음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한마디로 이 책을 ‘삼켰다.’'고 해요. 저도 그랬어요. 이 책을 삼켰어요. 그것도 한입에 삼켰어요. 그만큼 마지막까지 이끄는 힘이 좋아요. 가는 그물처럼 촘촘한 구성도 좋았고요. 그 그물에 해산물이 가득 찬 듯 팽팽한 긴장감도 좋았어요. 그리고 등장 인물이 많지만, 각자 무대에서 얼굴빛과 목소리를 잘 나타내고 있고요. 역시 독일 미스터리의 여왕님이세요. 그나저나 이 이야기에서 보덴슈타인이 안식년을 신청했는데요. 앞으로가 궁금해져요.

 또, 각 권 앞에 지도와 등장 인물 안내, 1권 마지막에는 배경인 타우누스 소개, 2권 마지막에는 작가 인터뷰, 타우누스 이야기의 정리가 있어서 좋네요.

    





 덧붙이는 말.

 

(사진 출처: 북로드 네이버 포스트)


'여우가 잠든 숲' 띠지 날개 퀴즈 이벤트를 하고 있네요. 참여해보세요.





스토리콜렉터스 2017로서 읽고 씁니다.


 

  1. 지초(芝草)와 난초(蘭草)의 교제라는 뜻으로, 벗 사이의 맑고도 고귀한 사귐을 이르는 말.
  2.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억지로 끌어 붙여 자기에게 유리하게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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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슬비 2017-05-01 22: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 아이의 글에 뜨끔했어요. 남의 불행을 보고 자신의 행복을 이야기하는것이 잘못된것이라는것을 아이를 통해 배우게되었네요.

사과나비🍎 2017-05-05 20:06   좋아요 0 | URL
아, 답글이 늦었네요~^^; 죄송해요~ 보슬비님~ 예~ 저도 저 아이의 글을 보고, 배우게 됐어요~ 작년에 처음 알았는데요. 잊혀지지 않고 생각이 나더라고요~^^* 아무튼~ 보슬비님~ 좋은 밤되시기 바랄게요~^^*
 

《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 1》 서평단을 발표합니다!


해피클라라 님

Azalea 님

키치 님

테일 님

사과나비 님


당첨되신 분들은 본 게시물 비밀댓글로 5월 9일까지 닉네임/성함/연락처/우편번호/주소를 남겨주세요. 휴일이 많은 관계로 도서는 5월 10일에 발송해드릴 예정입니다. 


★ 도서를 받으신 후, 1주일 내에 알라딘 서재+개인 블로그 또는 SNS 1곳에 서평을 작성해주시고, 본 게시물 댓글로 리뷰 url을 남겨주세요.

(※ 도서 수령 후 리뷰를 작성하지 않은 분들은 이후 이벤트에서 당첨 제외됩니다.)


리뷰 잘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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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판미동 출판사 입니다.

신간 도서『지방의 진실 케톤의 발견 』서평단 당첨자를 발표합니다.

 

지방의 진실을 알았다면
이제는 케톤을 발견해야 할 때!


아기는 엄마 배 속부터 이미 당질 제한을 하고 있다.
이는 무네타 의사가 밝혀낸 세계 최초 발견이다!
-역자 양준상(가정의학과 의사)

 

곰곰생각하는발

김한성

럽스

닷슈

사과나비 

 

 

★ 서평단 분들은 꼭 지켜주세요

 

1. 당첨되신 분들은 비밀댓글로

책을 수령하시는 분의 성함/연락처/주소를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도서는 당첨정보를 보내주시는 데로 발송해드리며,

5월 1일까지 댓글이 없을시 서평단 당첨을 취소합니다.)

 

2. 도서 수령 후, 7일 이내에 <알라딘>에 도서 리뷰를 반드시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3. 업로드한 서평 URL을 해당 당첨자 발표 게시글에 댓글로 남겨주셔야 완료됩니다.

(URL이 없으면 서평 미완료로 기록되어

추후 진행되는 서평단 모집에 불이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지방의 진실 케톤의 발견』 서평단 모집에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다음에도 더욱 좋은 신간 서평단 모집으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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