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의 여인들
최문희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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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 실학 사상을 집대성한 그! 그가 그린 매조도는 매화쌍조도(또는 매화병제도) 하나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또 다른 매조도가 있네요. 바로, 매화독조도1예요. 아내인 홍혜완이 보내 준 노을빛 비단치마의 일부로 하피첩을 만들었고요. 남은 것으로 매조도를 그렸어요. 딸을 위해 그린 매조도. 그런데 두 개였네요. 소실(小室)에게서 얻은 딸을 위해서도 매조도를 그린 거예요. 그 딸은 홍임이라고 하네요. 그 홍임 모녀의 이야기는 '남당사(南塘詞) 16수2'에 새겨져 있어요. 그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소설을 만났어요. 그 소설에 들어갔어요.

 

 매화독조도 (사진 출처: 네이버 이미지)


 '나는 피와 살을 가진 보통의 사내에 불과했소' -10쪽.


 이 이야기는 유배에서 풀린 약용이 마재의 집 대문을 넘으며 기뻐하는 것으로 시작해요. 약용이 유배 생활을 하다가 만난 진솔이라는 여인. 약용의 딸인 홍임의 모(母)라고 알려진 이 여인에게 소설에서는 진솔이라는 이름이 새겨졌어요. 그 여인은 유배지에서 추운 약용에게 따뜻함을 주었지요. 그도 피와 살을 가진 사내였어요.

 묵은 가지 다 썩은 그루터기 되려더니 / 푸른 가지 뻗어 나와 꽃을 피웠구려
 어디선가 날아온 채색 깃의 작은 새는 / 한 마리만 혼자 남아 하늘가를 떠도네

계유년 팔월 열아흐레


 1813년. 약용이 딸인 홍임을 위해 그린 그림. 매화독조도에 쓴 시예요. 묵은 가지(나이 든 정약용)가 꽃(사랑)을 피웠고, 작은 새(홍임)가 날아왔어요. 어린 딸의 앞날을 생각하는 마음이 애처롭네요.

 

 하피첩3 (사진 출처: 네이버 이미지)


 약용에게는 조강지처(糟糠之妻)가 있어요. 홍혜완이지요. 슬하에 6남 3녀의 자녀가 있었는데요. 2남 1녀만 남았어요. 마음과 몸이 어려운 가족을 이끈 아내. 약용은 그녀에게 고마움과 미안함과 애틋함이 깊이 서려 있어요. 혜완은 유배 생활을 하는 약용에게 노을빛 치마를 보내요. 


 '빛바랜 다홍치마를 내려보낸 것은 안방마님의 건재를 각인시키려는 날 벼린 일침일 것이다' -218쪽.


 1810년, 다산은 그 노을빛 비단치마의 일부로 하피첩을 만들어요. 두 아들인 학연, 학유에게 교훈을 남긴 서첩이에요.

 

매화쌍조도 (사진 출처: 네이버 이미지)


 1813년, 다산은 혼인하는 딸인 홍연에게 그림을 그려 줘요. 아내가 보내 준 노을빛 비단치마의 한 부분으로요.


 펄펄 나는 저 새가 내 뜰 매화에 쉬네 / 꽃다운 향기 강렬해 기꺼이 찾아왔지

 머물러 지내면서 집안을 즐겁게 하네 / 꽃이 활짝 피었으니 열매도 많겠구나

가경 십팔 년 칠월 열나흘 동암에서


 아버지로서, 혼인하는 딸을 위한 그림과 시! 많은 열매를 바라는 그의 부정(父情)이 전해지네요.


 이렇게 이 이야기는요. 약용의 사랑이 나뉘는 것을 원하지 않았지만, 그 나뉜 사랑의 존재에 깊이 베이는 혜완. 약용의 나누어진 사랑을 받아 아이까지 낳은 진솔.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는 두 아들, 학연과 학유. 그리고 혜완에게서 난 딸 홍연. 진솔에게서 난 딸 홍임. 또, 약용을 사모하지만, 이루지 못한 초순. 그리고 약용을 후원해준 정조. 유배지에서 만난 혜장 선사와 초의 선사. 또, 제자 황상 등. 그 조각 조각이 이어져, 약용의 삶을 자세히 그리고 있어요.


 '유배지 강진에서 홀연 나타난 진솔이라는 여인이 안겨준 평온, 나른한 휴지(休止)를 그는 탐욕스럽게 껴안았다. 깊고 따스하고 청결했다.' -311쪽.


 '진솔의 치맛자락에서 풍기는 녹향은 너무 순하고 맑아 그 청정함이 시든 것을 일으키고, 더께진 녹을 닦아내는 치유의 향이지요.' -326쪽.


 '깨알처럼 예민했고 흑단처럼 단단했던 그의 심장에 돌을 던진 남당의 여인, 진솔. 부서져 가루가 되어도, 그 외마디가 눈가에 물기를 자아올린다.' -작가의 말 중에서(444쪽).


 이 소설은 특히, 사랑을 도드라지게 그리고 있어요. 약용은 '서리처럼 희고 차가운' 혜완(50쪽)도 사랑했지만, '활활 타오르는 불꽃의 화석'인 진솔(309쪽)도 사랑했어요. 진솔은 유배지에서 그에게 평온이자 치유였어요. 그의 뜨거운 심장에 돌을 던진 여인이었고요. 


 '망설이면서 겨울 냇물을 건너는 것같이, 주저하면서 사방의 이웃을 두려워한다'는 노자의 말을 빌린 생가의 편액이자 호인 여유당. 또, '생각은 마땅히 맑게 하되 맑지 못함이 있으면 곧바로 맑게 해야 하며, 용모는 단정히 하되 단정치 못하면 더욱 단정히 하고, 말은 요점만 말하되 말이 많으면 더욱 줄이고, 행동은 조심스럽게 하되 조심스럽지 못하면 더욱 조심하라는 의미(198쪽)'의 사의재. 사의재는 강진 유배 생활 처음에 머문 곳이지요.

 

'어린 딸 총명함이 제 아비와 똑같아서 / 아비 찾아 울면서 왜 안 오나 묻는구나
한나라는 소통국도 속량하여 왔다는데 / 무슨 죄로 아이 지금 유배를 산단 말인가' -남당사 4수(430쪽).


 '결박, 그랬다. 평생 그를 옴짝달싹 못하게 여미고 있던 사슬이었다. 체면이라는 사슬, 살 속으로 파고든 그것은 뼈를 녹이고 살을 파먹고 갈기갈기 찢어 그를 부스러뜨렸다.' -440쪽.


 다산은 여유(與猶)와 사의(四宜)로 생활했지만, 진솔과 홍임에게 회한이 있어요. 혜완이 그 모녀를 품지 않았지요. 그래서 그 모녀에 대한 염려와 안타까움이 묻어나네요. 남당사 16수에 잘 그려져 있고요. 약용에게도, 글을 읽는 이에게도 눈가에 물기를 자아올리는 진솔과 홍임이에요.


 혜완은 목련이에요. 깨끗하고 하얀 목련. 강하고 품위 있는 목련이지요. 그리고 진솔은 청결하고 순함을 간직한 치자꽃이고요. 순연하고 여린 치자꽃. 헌신적인 치자꽃이지요. 초순은 국화예요. 유독 더운 날에 핀 국화. 그렇지만, 더위에 지쳐 시든 국화. 또, 다산은 딸에게 그려 준 그림처럼 매화예요. 뜨거운 가지를 가진 매화. 암향부동(暗香浮動)4해요. 이 이야기에서 여러 꽃의 향이 잘 어울려서 맑아요. 멀리, 깊게 나아가네요. 정약용이 이루어낸 것과 사상뿐만 아니라, 그가 품은 가슴의 깊은 사랑까지! 여러 향이 제 마음 깊숙이 들어오네요. 다산이 즐겼다는 차(茶)! 다산의 매화향에 여러 여인들의 향이 씨줄과 날줄이 되어 함께 차에 녹아드네요.

 

  그리고 '자발나게, 시틋하니, 비긋이, 꺼당겼다. 허룩해지려는, 왁살스럽게, 나달거렸다, 여퉈둔 등'의 우리말이 하나하나 천천히 스며들어요. 글의 맛을 잘 살렸어요. 또, 글이 다산의 그림처럼 꼼꼼해요. 눈 앞에 다산이 살아 있는 것 같이 그려내요. 사무치게 하네요.







출판사로부터 받은 책으로 읽고 씁니다. 



 

  1. 2009년 6월 서울 공화랑 전시를 통해 매화독조도가 처음으로 공개됐네요. (http://www.hani.co.kr/arti/culture/music/358904.html,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765819.html)
  2. 남당사는 1999년 세상에 처음 공개됐다고 해요. 서울 인사동 문우서림 김영복 사장이 건네준 남당사를 임형택 성균관대 교수(現 명예교수)가 처음으로 분석했다고 해요.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765819.html)
  3. 2015년 9월 하피첩이 서울옥션 경매에서 국립민속박물관에 7억5,000만 원에 낙찰되었다고 하네요.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11&aid=0002749295)
  4. 그윽한 향기가 은은히 떠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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