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세계 사건부 - 조선총독부 토막살인
정명섭 지음 / 시공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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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의 얼굴이 호랑이 그림이에요. 포효하는 호랑이. 우리나라의 호랑이예요. 단군 신화에도 등장하는 우리 호랑이. 이제는 우리 곁에서 떠난 호랑이. 이 책의 얼굴인 호랑이를 지그시 바라보네요. 다큐멘터리 하나가 겹쳐져요. KBS1 TV에서 한 'KBS 스페셜-조선 호랑이 왕국, 왜 사라졌는가'를 본 적이 있어요. 찾아 보니, 2016년 4월 7일 오후 10시에 방영됐었네요. 그 방송에서 말하기를 일제 강점기 때, 호랑이 사냥을 많이 했다고 해요. 그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이 이야기. 어떤 이야기일지 궁금하여, 호랑이 얼굴에 손을 가져가네요.

  

 광화문을 옮기고 만든 '조선총독부' (사진 출처: 시공사 네이버 포스트)

 

 완공을 앞둔 조선총독부에서 토막살인이 일어났어요. 살해된 사람은 조선인 건축기수인 이인도. 그 시신은 대(大)자로 흩뿌려졌지요. 대한제국을 상징하는 거였어요. 10여 년을 공사하여, 낙성식이 열흘 앞으로 다가온 조선총독부. 일본은 조용히 넘어가려고 하고, 또 한편으로는 그 죄를 의열단에게 떠넘기려고 해요. 조선인들은 죄 없이 탄압을 당하게 되지요. 그래서 육당 최남선은 류경호에게 조사를 부탁해요. 류경호는 일본 명문대 게이오 대학을 졸업한 수재지만, 통속잡지 '별세계'의 기자예요. 그 부탁을 수락한 류경호. 살해된 이인도의 하숙집에서 지내게 되지요. 그곳에서 이상한 시선을 느끼게 되고요. 이인도의 직장 동료인 박길룡에게서 이야기를 듣게 돼요. 조선총독부를 설계할 때, 조선인 건축사들이 배제된 공간이 있다고요.  

 

 '"이 땅에 독립운동가와 친일파만 있는 줄 아십니까? 99퍼센트는 아무것도 모르는 평범한 사람들이란 말입니다. 대체 무슨 명목으로 그들의 삶을 파괴하려는 겁니까?" -277쪽. 


'"이 땅에 친일파와 독립운동가만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348쪽.

 

'"어차피 이번 일에서 가장 하찮은 취급을 받은 건 죽음과 진실입니다." -359쪽.

 

 누군가의 욕망으로 살인이 있고, 그 죽음은 누군가의 이익으로 이용하려고 하지요. 류경호는 코난 도일의 '빨강 머리 연맹'에서 암시를 받아 사건을 해결하고요. 1926년 9월 22일부터 10월 1일까지. 하루하루 진실을 향해 달려가는 류경호와 배경이 되는 그 당시의 경성! 그곳에서 육당 최남선, 박길룡 건축사, 도쿠토미 소호 등 실제 인물들이 각자 역할에 충실해요. 그렇게 그때의 사람들! 잘 어우러져 있어요.

 

'"언젠가 새벽이 오겠지. 동이 트는 새벽이......"' -366쪽.

 

 조선총독부의 낙성식이 있는 1926년 10월 1일에 단성사에서는 영화 '아리랑'이 상영돼요. 류경호는 희망의 말을 중얼거리지요. 어뭄 안에서 빛을 보았어요.

 

 잡지 '별건곤' (사진 출처: 시공사 네이버 포스트)

 

 단원 김홍도의 '송하맹호도' 호랑이 머리 부분 세부 (사진 출처: 네이버 이미지)

 

 '새로 영화가 걸리면 으레 장안의 모던 걸과 모던 보이들이 몰려오곤 했지만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많았다. 거기다 치마저고리 차림의 여인들부터 갓과 도포 차림의 노인들까지 섞여 있었다. 단성사 앞에는 극장에서 고용한 광대가 북을 치면서 열심히 떠드는 중이었다.' -364쪽. 


 작가 후기에서 가상 인물 류경호가 기자로 있는 잡지 '별세계'는요. 잡지 '별건곤'을 바탕으로 했다고 해요. '별건곤'에는 청년, 노숙자, 인력거꾼, 인부 등의 그 시대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고 하고요. '별세계 사건부'에도 그들의 이야기가 쌍둥이처럼 그려져 있어요. 그래서 이 책의 얼굴이 그 '별건곤'의 어느 얼굴과 닮았어요. 그리고 단원 김홍도의 송하맹호도가 떠오르네요. 우리의 호랑이! 그 터럭 한 올, 한 올 섬세하게 그렸지요. 가느다란 얇은 붓의 선! 수천 번 반복해서 그린 그림! 저 한 올, 한 올이 단원이 본 우리 백성이에요. 우리 백성의 얼굴 하나하나가 생동감 있는 호랑이 그림을 낳았지요. '별세계 사건부'도 일제 강점기의 우리 백성을 섬세하게 담았어요. 그렇게 생동감 있는 이야기가 됐지요. 우리는 이 이야기를 듣고요. 작가 후기에서 말한 '고민과 성찰을 거쳐 일제 강점기라는 암흑 속에서 사람이라는 빛'을 볼 수 있을 거예요.

 

 이 책에 '역사 추리의 신풍조 정명섭의 경성 정탐소설'이라고 적혀 있네요. 예! 이 책은 역사에 추리를 얹은 소설이에요. 일제 강점기의 경성! 그때의 백성 이야기예요. 추리는 그들의 이야기를 살짝 거들고 있고요. 영화 '밀정'이나 '암살' 등은 독립운동가와 친일파의 이야기인데요. 이 이야기는 백성의 이야기예요. 채만식의 '치숙', '레디메이드 인생', 염상섭의 '삼대' 등의 이야기처럼요. 이상화의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시 구절이 있지요! 예! 빼앗긴 들도 되찾고, 봄이 왔어요. 비록 남과 북으로 나뉘기는 했지만요. 이 이야기에서 영화 '아리랑'이 일제 강점기에 우리의 희망이 된 것처럼 어둠 안에 빛이 있어요. 그렇게 희망은 언제나, 어디서나 있어요.

 

 일제 강점기 우리 백성들의 얼굴을 자세히 보여 주고 있는 이 책! 그 당시, 그 곳의 이모저모를 볼 수 있는 이 이야기. 여러 정성이 깃든 이야기예요.

 

 

 

 

 

흑림귀인단 2기로서 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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