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의 판타스틱 CSI 여행 - 드라마 속 의문의 죽음을 파헤치는 과학수사 이야기
이윤진 지음 / 생각의힘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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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SI: 과학수사대(CSI : Crime Scene Investigation)를 아시지요? 저도 알아요. TV에서 본 미국 드라마 가운데 하나예요. 그때 아는 사람이 미국 플로리다에 있었기에, 그 스핀오프(spin-off)의 하나인 CSI 마이애미(CSI: MI)를 즐겨 봤었지요. 모든 이야기를 다 본 건 아니었지만요. 마치 제가 주인공이 된 듯한 착각이 들며, 봤었지요. 그 드라마에 삶과 죽음, 그리고 과학이 들어 있었어요.


 그리고 지수라는 여성이 캘리라는 주인공이 되어 CSI처럼 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를 만났어요. 책으로 된 이야기지요. 지은이인 이윤진은요. '조카가 태어나던 날, 그에게 과학과 과학자의 삶에 대해 들려주고 싶어서 이 책을 쓰기로 결심했다(11쪽)'고 해요. 저도 조카가 있기에 그 말에 많은 공감이 됐어요. 조카에게 뭔가를 해주고 싶은 마음. 저도 있거든요. 그렇게 태어난 책. '이 책은 캘리가 혈흔 형태 분석, 곤충학, 인류학, 환경과학, 화학, 의학, 마약 등과 관련된 총 11개 시즌에서 종횡무진 활약하는 과학 드라마다. 각 시즌은 예고, 본편, 에필로그로 구성되어 있다(10쪽)'고도 하네요. 만화적인 삽화가 깃든 드마적인 구성으로 정말 아이들에게도 쉽게 다가갈 것 같아요.


 '상실과 좌절 같은 인생의 고비를 넘어갈 때 성장을 선택하는 것은 삶의 주인공으로서 이에 깃든 모든 것을 주체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비롯된다. 타인에 의해 내 삶이 억압받거나 함부로 좌지우지되지 않기 위해서는 진실을 알아보는 안목뿐 아니라 거짓 신호를 슬며시 눈감아 버리지 않을 용기가 필요하다.' -255쪽.


 억울한 죽음과 그 해결의 열쇠인 과학뿐만 아니라, 이렇게 희망의 삶도 들어 있더라고요. 책 속에서 캘리라는 주인공이 됐던 지수도 이런 말을 하지요. '길 위에서 삶과 죽음을, 그리고 과학을 만났지(396쪽)'라고요.

 

  (사진 출처: 네이버 이미지)


 조선판 CSI 과학 수사대인 '별순검'은 '증수무원록(增修無寃錄)'1을 바탕으로 했다고 해요. 무원(無寃)! 원통함이 없게 하다! 죽음에 원통함이 없게 하려면, 먼저 죽은 사람의 마지막 삶을 알아야겠지요. 과학으로 죽음에 담긴 삶의 마지막에 남긴 흔적을 찾는 거예요. 그 과학이 '별순검'에서는 '증수무원록'에 있는 거고요. 물론, 오래된 책이기에 그 과학에 한계가 있다고는 해요. 그렇지만, 나름 훌륭한 과학이었어요. 그 과학으로 삶과 죽음을 바르게 담았고요.    


 'CSI'에도, '별순검'에도, '증수무원록'에도, '캘리의 판타스틱 CSI 여행'에도 모두 '무원(無寃)', 즉 '원통함이 없게 하다'가 과학의 다리로 이어져 있었어요. 그래서 삶과 죽음도 세밀하게 그릴 수 있었고요. 그렇게 저는 과학, 죽음, 삶의 삼위일체를 경험할 수 있었어요. 좋은 경험이었어요.



 

  1. 법의학 · 수사 지침서 '신주무원록'과 '증수무원록', 이종호(과학저술가),(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7&oid=078&aid=00000199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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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의 반격 - 2017년 제5회 제주 4.3 평화문학상 수상작
손원평 지음 / 은행나무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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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의 물음으로 반격에 대한 제 이야기를 적었었어요. 소소한 제 반격! 그것은 '저주 인형'이에요. 어느 모임이 있고, 그 모임이 조직을 이루지요. 그곳의 강철과 꺽다리, 그리고 그 패거리들. 지금은 꺽다리가 먼 곳에 있지만, 나머지는 여전히 저를 괴롭혀요. 은근히 견제해요. 그들은 힘이 있는 사람들에 뇌물을 주면서 곁에 있어요. 그리고 마음에 안 드는 사람들을 견제해요. 꼭 해코지를 하고요. 사람들에게 거짓 선동을 해요. 이간질에도 일가견이 있지요. 간신 같아요. 어떤 때는 저에게 잘하는 척을 하는데요. 그럴 때는 정말 소름이 돋아요. 그들의 겉과 속이 다름에 경악할 뿐이지요. 그래도 저는 묵묵히 진실된 얼굴로 지내는데요. 너무 속이 상할 때는요. '저주 인형'을 사용해요. 그들의 이름과 같은 인형! 그 인형에 저주를 하면서, 제가 당한 억울함을 풀지요. 작지만, 나름 괜찮은 제 반격이에요.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어떤 반격을 할까요? 


 '"그래서 이젠 편안해지고 싶은 것뿐이에요. 꿈 같은 거, 하고 싶은 거 따위 생각할 필요 없이 남한테 치이지나 말고 하루하루 편안하게 살아보고 싶어요. 내가 제일 지긋지긋하다고 생각하는 말이 뭔 줄 알아요? 치열하다는 말. 치열하게 살라는 말. 치열한 거 지겨워요. 치열하게 살았어요, 나름. 그런데도 이렇다구요. 치열했는데도 이 나이가 되도록 이래요. 그러면 이제 좀 그만 치열해도 되잖아요."' -가제본 170쪽.


 달걀 한 판. 달걀이 서른 개. 나이가 달걀 한 판의 개수와 같아지면, 뭔가 다른 느낌이 들기도 하지요. 김광석은 '서른 즈음에'라는 노래에서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비어가는 내 가슴 속엔, 더 아무 것도 찾을 수 없네'라고 했어요. 그렇게 서른은 청춘의 끝자락 같아요. 2017년에 나이 서른. 1988년생이네요. 소설 '서른의 반격'에도 있어요. 이름은 김지혜. 여성이에요. 소설은 이 사람의 눈으로 보고, 이야기를 해요. 김지혜는 DM이라는 대기업의 계열사인 아카데미에서 인턴을 구 개월이 넘게 하고 있지요. 그리고 새로운 인턴 이규옥이 들어와요. 남성이지요. 김지혜와 동갑. 그도 나이가 서른이에요. 이규옥은 박교수의 책 만드는 일을 돕고 돈을 못 받았어요. 그가 만든 책을 빼았겼지요. 역시 청춘의 끝자락에서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거예요.


 '"꼭 이 강의실의 의자를 말하는 게 아니라 '의자의 마법'에 대해서 얘기하는 겁니다. 앞에 있는 의자에 앉으면 권위와 힘을 가진 줄 착각하는 마법에 걸리게 되죠. 그리고 수없이 깔린 의자에 앉으면 힘없는 대중이 되어 앞에 있는 사람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마법에 걸립니다. 의자는 의자일 뿐이라는 걸 다들 까먹어버린단 소리예요."' -가제본 49쪽.


 '"놀아보고 싶어요. 세상은 경직되어 있고 모두가 무기력증에 빠져 있죠. 난 반기를 들어보고 싶어요. 치기 어리다고 욕 들어도 좋으니 적어도 반항을 해보고 싶다고요. 역사가 말해줬듯 급진적인 혁명은 실패할 겁니다. 세상은 점점 팍팍하고 딱딱해지고 있어서 겉으로 보이는 움직임은 통제되거나 검열되니까요. 난 통제나 검열이 불가능한 일들을 해보고 싶은 겁니다. 재미있게, 놀이처럼 말이죠."' -가제본 86~87쪽.   


 김지혜와 이규옥은 아카데미에서 우쿨렐레 강좌를 같이 듣게 돼요. 규옥의 성토(聲討)로 그 강좌에서 만난 고무인, 남은주와 함께 지혜는 반격을 시작하지요. 반은 백수로 시나리오 작가인 삼십 대 남자 무인은 그의 시나리오가 영화화되면서 이야기가 완전히 바뀌어 충격을 받았다고 해요. 이벤트 업체에서 일하는 오십 대 아저씨 남은(이름이 너무 여자 같아서 보통 '남은'이라고는 말함)은 떡볶이 고추장의 좋은 장맛을 만들었지만, 누군가의 사기로 빼았겨서 억울하다고 해요. 그래서 먹방을 시작했어요. 이렇게 아픔이 있는 그들, 결국에 반격의 거인이 되지요. 


 제가 '저주 인형'으로 반격한 강철과 꺽다리, 그리고 그 패거리들. 소설 '서른의 반격'에서도 그런 사람들에게 반격을 하지요. 유쾌, 상쾌, 통쾌해요. 규옥이 하려는 '놀이를 통한 균열, 균열을 통한 변화(가제본 225쪽)'의 이야기가 재치 있어요. 그리고 따뜻해요. 그들은 놀이 같은 반격을 통해, 더 따뜻하게 자라게 돼요. 그 따뜻함이 더 나은 나로 나아가게 해요. 저도 그 따뜻함을 오랫동안 품고 싶네요.   





 덧붙이는 말.

 

 제5회 제주4·3평화문학상 수상작이라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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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마술사
데이비드 피셔 지음, 전행선 옮김 / 북폴리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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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출처: America's Got Talent의 facebook)

 몇 주 전, 우연히 한 마술을 보게 됐어요. 신기했어요. 알아보니, 지난 5월 26일 America's Got Talent라는 TV program의 facebook에 올라온 동영상이더라고요. Will Tsai라는 마술사의 동전 마술! 눈 앞의 멋진 속임수! 찬사를 받기에 충분한 마술이었어요. 크게 놀라운 마술! 그런데, 전쟁에서도 크게 놀라운 마술을 한 사람이 있다고 하네요. 그의 이름은 재스퍼 마스켈린. 여기 그를 담은 소설이 있네요.

 '"한마디로 황당한 임무야." 바커스가 말했다.
 재스퍼도 동의했다. 왜 몽고메리 장군이 홍해를 반으로 가르거나 전염병을 일으키는 등의 합리적인 요구를 하지 않는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재스퍼는 속이 울렁거렸지만, 이번에는 실패의 두려움에 기인한 증세가 아니었다. 기회가 왔다는 흥분 때문이었다. 마침내 그것이 온 것이다. 위대한 마술의 기회! 전쟁의 판도를 바꿔버릴 만한 매우 중요한 마술. 전장에서 지금껏 시도되었던 그 어떤 마술보다 더, 엄청나게 큰 규모의 마술. 할아버지 또는 아버지가 수행했던 그 어떤 마술보다 훨씬 더 어려운 마술. 마침내 그는 3년 전에 시작했던 그 일, 정확히 그 일을 수행할 것을 요구받았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마술을.' -535~536쪽.

 제2차 세계대전. 그때 영국 런던의 마술사 재스퍼 마스켈린은 입대해요. 그리고 마술단을 편성하게 되고요. 사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마술사가 활약한 걸 처음 알게 됐네요. 총알과 폭탄이 나는 전쟁터. 그곳에서 재스퍼와 마술단원들은 놀라운 마술을 보여 주네요. 독일군의 폭격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항구 도시 알렉산드리아를 숨기고, 수에즈 운하도 사라지게 하지요. 유쾌한 장난꾼 '마이클 힐', 목수 '시어도어 그레이엄', 만화가 '윌리엄 롭슨', 유화 전문 화가 '필립 타운센드', 보급 창고 관리자 '잭 풀러', 마술 공연 조수 '캐시 루이스' 등의 작품인 거예요. 그리고 북아프리카 사막 전차 전투! 몽고메리 장군과 로멜 장군의 대결! 성동격서(聲東擊西)1의 작전에 재스퍼의 마술단이 위대한 마술을 하게 되고요.

兵者, 詭道也.
전쟁이란 속이는 도(道)이다.
- 손자병법(孫子兵法) '시계편(始計篇)' 중에서

'"속임수야, 그거면 돼." 재스퍼가 소리 내어 말했다. -538쪽. 
  

 일찍이 손자병법에서 '전쟁은 속임수'라고 말했어요. 그 말을 전쟁에서 몸소 실천한 마술사, 재스퍼 마스켈린. 그리고 마술단원들. 전쟁과 마술. 모두 속임수의 영역인 거예요. 마술이 전쟁을 만나, 더 높이 나네요. 전쟁도 마술로 더 깊어지고요. 그렇게 전쟁 영웅이 태어나게 돼요.

 

(사진 출처: 구글 이미지)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미국 드라마, '밴드 오브 브라더스(Band of Brothers, 2001)의 실재 윈터스 소령이 interview하면서 이런 말을 해요. 손주의 '할아버지는 전쟁 영웅이에요?'라는 물음에, '아니다. 영웅들과 함께 싸운 것뿐이야'라고 답했다고요. 윈터스 소령이 함께 싸운 영웅들! 그 가운데, 마술사 재스퍼 마스켈린과 마술단원들이 있을 거라 생각해요.  


 이 '전쟁 마술사'는 전쟁 영웅 마술사들을 위한 레퀴엠(진혼곡)이에요. 오랫동안 높게, 깊게 울리는 레퀴엠. 들으며, 뜨거운 묵념을 하게 되네요.




 

  1. 동쪽에서 소리를 내고 서쪽에서 적을 친다는 뜻으로, 적을 유인하여 이쪽을 공격하는 체하다가 그 반대쪽을 치는 전술을 이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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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네이버 이미지)

(사진 출처: 네이버 이미지(한국화가 김현정))


이 곳에 오시는 모든 분들!

2017년 10월 4일!

2017년, 정유년(丁酉年) 음력으로 8월 15일!

보름달처럼 즐겁고 풍성한 추석 보내세요~^^*

행복이 가득한 연휴 보내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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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7-10-05 22: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과나비님도 즐거운 추석연휴 보내세요. 그 사이 많이 지났지만 아직 조금 더 남았어요.^^
좋은밤되세요.^^

사과나비🍎 2017-10-09 18:47   좋아요 1 | URL
아, 서니데이님~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인 오늘에서야 댓글을 다네요...^^; 너무 늦어서 죄송해요~^^;
서니데이님도 즐겁고 풍성한 추석 연휴 보내셨기 바랄게요~^^* 말씀 감사해요~^^*
 
사랑의 온도 - 착한 스프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하명희 지음 / 북로드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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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는점


 사촌 여동생의 결혼식이 지나고 며칠 뒤였어요. 어느 책을 눈에 담았지요. 사랑 이야기였어요. 행복해하던 사촌 여동생의 얼굴과 겹쳐졌네요. 그리고 들렸던 친척분들의 말씀. '너는 언제 결혼하니?' 그 말씀에, 또 사랑하고 싶어졌어요. 눈을 잠시, 살며시 감았어요. 옛사랑이 떠올랐어요. 너무나 짧았지만, 너무나 깊었던 그 옛사랑이요.


'사랑해요.'


 눈으로 만난 글이었어요. 힘찬 고백이었어요. 제 마음은 커서(cursor)처럼 의심과 믿음이 점멸(點滅)했지요. 어느 인터넷 카페 채팅창이었거든요. 먼 거리, 큰 나이 차. 어려운 사랑이었어요. 사랑이 녹았지만, 최적 온도는 아니었지요. 그래도 주는 사랑을 믿기로 했고, 그 사랑이 제 품에 안겼어요. 저도 사랑을 주었고요.


'미안해요.'


 결국 몇 달 후, 사랑이 얼었거나 끓었나 봐요. 사랑의 연결 고리가 너무 약했던 듯해요. 너무도 쉽게 끝이 다가왔어요. 그대가 먼저 주었고, 또 먼저 그대가 떠나간 사랑. 슬펐고, 아팠어요.


 녹는점


 이제 감았던 눈을 살짝 뜨고 이야기 안으로 들어갔어요. '사랑의 온도'는 네 명의 이야기였어요. 현수, 홍아, 정선, 정우의 이야기. 현수와 홍아는 친구 중의 친구예요. 홍아가 PC통신 요리 동호회에 현수를 끌어당겼어요. 그곳에서 정선을 만났지요. 홍아의 대화명은 '우체통', 현수는 '제인', 정선은 '착한 스프'지요. 홍아는 부잣집 딸, 현수는 작가 지망생, 정선은 프랑스 요리를 배운 요리사예요. 정우는 현수의 대학 선배인데요. 문화계 투자에 관심이 많아요. 정우는 현수에게 사랑의 문을 열게 되고요. 정선도 현수에게 사랑의 마음이 스며들어요.    


 '우린 항상 내가 너보다 빠르거나 네가 나보다 빨라.

 처음 봤을 때부터, 너를 알기 전부터 너를 사랑했다.

 너의 손짓 하나에 가슴이 떨렸고 한마디 말에 마음이 부서졌어.

 부서진 마음을 안고 너에게 달려가고 싶었지만, 운명은 내 편이 아니었어.

 (중략)

 현수야! 그럼, 우리 사랑하자.

 모든 걸 잊으려면,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길밖에 없다.

 사랑한다.' -253쪽.


 '신호음이 들린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착한 스프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혹시나 누군가 전화를 받을까 봐 수화기를 내렸다. 그는 아직 집에 돌아오지 않은 것이다.' -253~254쪽.


 끓는점


 '이 작품에 등장하는 네 사람은 서로의 세계관에 부딪히며 오해하고, 자신의 세계관에 상대를 편입하려 든다. 그 과정에서 균형 감각은 깨지고, 결국 그들은 홀로 남는다. 그리고 혼자가 되었을 때 그들은 비로소 상대를 사랑하고 이해하게 된다. 그러므로 인터넷 시대에 관계의 키워드는 고독이다. 피상성에는 고독이 따르기 때문이다.


 '피상적인 소통'으로 인한 관계의 허약함이 이 시대 우리가 해결해야 할 숙제다.


 "당신은 사랑을 하며 고독을 견딜 수 있습니까?"' -'저자의 말' 중에서(7쪽). 


 사랑을 하며 고독을 견딘다라는 말. 역설(逆說)1이에요. 그 역설 안에 참뜻이 있네요. 인터넷에서 숨겨진 이름으로 관계를 맺는 이 시대. 일회용품이 널리 쓰이는 이 시대. 사람과의 관계도 가볍고, 일회용으로 다가오기도 하잖아요. 사랑도 그렇고요. 피상적이에요. 그런 사랑 안에 고독이 녹아들고요. 그런데 그 고독을 견딜 수 있다면,  참된 사랑을 하게 되고요. 그렇게 사랑의 온도는 최적이 되지요.


 동심초 


 설도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

 만날 날은 아득타, 기약이 없네

 무어라, 맘과 맘은 맺지 못하고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랴는고


 春望詞 薛濤(唐)

 

 風花日將老, 佳期猶渺渺. 不結同心人, 空結同心草.


 '동심초'라는 가곡의 노랫말은 김억이 설도의 춘망사 제3수를 우리말로 옮긴 거예요. 저도 아직 맘과 맘을 맺지 못하고 있네요. 제 옛사랑은 고독을 견디지 못해서, 얼었거나 끓었지요. 사랑의 온도가 어는점이나 끓는점을 지난 거였어요. 이제 녹는점을 지난 사랑을 하고 싶네요. 사랑의 최적 온도로 이르고 싶고요. 마침내 제 온몸에 빛나는 사랑이 흘러서 맘과 맘을 맺고 싶어요.


 '"하나의 문이 닫히면, 다른 하나의 문이 열려. 닫히는 문만 바라보고 서 있으면, 열리는 문을 보지 못해."' -77쪽.


 제 옛사랑이 불현듯 다시 다가오게 한 '사랑의 온도'라는 이야기. 사랑의 온도가 서로 달라서, 어긋난 그 옛사랑. 사랑을 하며 고독을 견디지 못했던 옛 연인. 이제는 그 옛사랑의 닫힌 문에서 눈길을 돌려, 열리는 문을 바라보게 하네요. 이 이야기가 함께 느낄 수 있고, 감각 있는 말로 이루어져 있기에, 자연스레 열리는 문이 그려져요. 여러분들도 이 이야기와 함께 열리는 문을 그려보세요.





 덧붙이는 말.


 '사랑의 온도'는 2017년 9월 18일부터 SBS에서 방송하고 있는 같은 이름을 가진 월화 드라마의 원작 소설이에요.

 이 소설의 작가인 하명희는 드라마 작가라고 하네요.

 소설 '사랑의 온도'는 소설 '착한 스프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의 개정판이에요.

  


 

  1. <논리> 일반적으로는 모순을 야기하지 아니하나 특정한 경우에 논리적 모순을 일으키는 논증. 모순을 일으키기는 하지만 그 속에 중요한 진리가 함축되어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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