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물건들 보고 있으면 참 좋은 기분이 듭니다. 예쁜 물것들이 정말 많기도 하구요. 옷, 신발, 보석, 그릇 등등. 남자들이라면 차나 오토바이같은 좀더 큰 물건들이겠지만 여자들은 아기자기한것들을 더 좋아하죠. 작다고 더 싼것은 결코 아니지만요.
저는 비교적 물욕이 덜한 편이라서 책을 제외하면 그다지 사모으는 물건은 없습니다. 뭐, 인격적으로 훌륭해서 그런건 아니고요. 단지 그런 물건에 혹하던 어린 시절에는 그럴만한 형편이 안되었고 지금이야 원하면 살수는 있지만 사봤지 실생활에서 그다지 쓰이지 않는다는걸 알기 때문에 별로 안사게 되더군요.
예쁜 옷 좋지만 차려입고 갈 파티가 없는 이상은 지나치게 화려한 의상은 입을 때가 없고, 예쁜 반지나 귀걸이가 직장에서 서류정리하고 전화받을때는 방해되고, 신발이나 가방도 옷이나 장소에 맞춰야지 그것 하나 튀어서야 오히려 이상하다는걸 알았고요.
게중에서 그래도 실생활에서 제일 쓸만한건 그릇이나 예쁜 잔같은 것들이죠. 근데 그것도 막상 사면 쓰기 어려워요. 보관하려니 그릇장이 필요하고 설겆이할때 신경쓰이고 깨지기라도 하면 아까우니, 아끼다보면 일년에 몇번 못쓰고 먼지 쌓이기 일쑤입니다. 아무래도 매일 밥먹고 커피마시고 녹차 마시고 할때는 그냥 무난한 것들을 쓰게되요. 한때 와인잔 많이 모았었는데 말이죠. 지금은 다 깨지고 몇개 남아있지 않습니다. 설겆이를 주로 엄마가 하시는데 와인잔 받침의 가느다란 부분을 잘 깨시더라구요. 뭐랄수도 없고 제가 하면 되겠지만 저라고 안깨지겠습니까.
그러니 예쁜 잔이니 화려한 반지니 하는 것도 주로 책을 통해서 대리만족을 합니다. 따지자면 제가 게으른거겠죠. 책 속의 물건은 귀찮게 신경써서 보관할 필요도 없고, 깨지거나 망가지지도 않고 씻어줄 필요도 없죠. 책표지의 먼지는 좀 털어줘야겠지만요.
그래서 산 책입니다. 표지의 저 예쁜 잔그림에 혹해서요. 내용도 좋아보였구요. 에세이지만 내용은 참 짧습니다. 전문 일러스트레이터가 쓰신 책이라서 그런지 이미지는 많고 글은 적습니다. 예쁜 잔들의 그림과 사진. 그리고 짧은 글들. 개인적으로 사진보다 그림이 더 마음에 들더군요. 그림이 더 많기도 하지만 그다지 예쁘지 않은 잔들조차도 예쁜 수채화 그림같은 화풍으로 보니 진짜 예뻐보이더라구요. 사실 요즘 많은 프렌차이즈 커피숍의 제일 큰 단점은 까다로운 주문과정도 셀프서비스도 아닙니다. 모든 음료를 멋없는 종이컵에 담아준다는 점이죠. 종이컵에도 나름의 장점이 있지만 커피숍에서 비싼 돈주고 마실때는 컵도 근사하면 좋겠거든요. 얼마전 모 커피숍에서 오렌지 주스를 시켰는데 맙소사, 머그잔에 주더군요. 얼음 들어간 찬음료, 이런건 유리컵에 담아줘야 하는거 아닐까요?
세상에 참 많은 예쁜 잔들이 있구나 하면서 눈호강은 실컷 한 책입니다만 내용은 뭐 그다지. 책 전체에 카페 제리코라는 장소를 베이스로 깔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의 풍경과 작가의 생각을 적어놓기는 했는데요 내용이 너무 짧아서리...무슨 일인지는 알겠더군요. 동네 단골들이 모이는 카페와 그곳의 여주인 백마담. 단골의 이런 저런 삶과 작가의 삶. 작품을 하고 마감을 몇번인가 보내고 기타를 배우고 여행을 가고 새친구와 사귀고 그와 헤어지고. 장사에 큰 도움이 되지않은 단골들만 죽치고있다보니 백마담은 가게를 닫을수밖에 없었고.
사실 이런저런 이야기가 중요한 책은 아니죠. 한 잔의 차와 찻잔속에 담긴 느낌이 중요한 책이죠. 말하자면 이미지가 주인공인 책입니다. 근데 전 스토리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거든요. 기승전결 확실한 내용. 에세이라면 시시콜콜 모든 얘기 다 해주는 책. 수다스럽달정도로 많은 글과 두꺼운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서요. 정말 예쁜 책이지만 제 취향으로 봐서는 선뜻 아주 좋다고 말하기 뭐한, 그럭저럭 합격점은 넘었달수 있는 책입니다. 근데 그림은 정말 예쁩니다. 하얀 도화지풍의 종이에 산뜻한 색감의 잔들이 호사스러울 정도로 눈호강을 시켜주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