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페이지를 읽고는 바로 느낌이 왔습니다. 내 스타일이 아닌 책인데 하고. 한 페이지 읽고 뭘 아냐 싶겠지만 내용과는 달라서 이건 그 작가분의 글이 주는 느낌이기 때문에 첫 문장만 읽어봐도 대충 알수있죠. 조금 더 읽어가다 그 이유를 알았습니다. 시를 쓰시던 분이더군요.
저는 거의 활자중독증이 있는 사람이라 글이라면 뭐든지 닥치는 대로 읽습니다. 심지어 지나가다 벽에 붙어있는 포스터나 현수막의 글자도 꼭 다 읽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죠. 그런 제게도 읽기 싫어하는 장르가 있으니 그게 바로 시입니다. 시 자체가 다 싫다는건 아닙니다. 책의 중간에 한 페이지 정도 나오는 거라든지 인용구로 나오는 한 구절정도는 저도 아주 좋아합니다. 근데 이게 시집, 즉 한권의 책으로 묶여서 나온건 도저히 다 못읽겠더군요. 시라는건 함축된 표현들이죠. 많은 느낌과 내용을 몇 줄의 글에 꽉 채우려다 보니 한 페이지만 읽어도 버거운 느낌이예요. 뭐랄까 너무 단 케익같은거? 아니면 지나치게 커다란 캔디바같은거?
이건 아마도 평소에 촉촉한 느낌보다 약간 까츨하고 포슬한 느낌을 좋아하는 제 성향과도 관련이 있을지 모릅니다. 저는 피부도 이불도 부드럽고 촉촉한걸 안좋아합니다. 약간 차가운듯하면서 까슬하니 포슬포슬한듯한 느낌, 이게 제가 좋아한는 느낌이거든요. 근데 시란 마음을 촉촉하니 적셔주는 그런 느낌이잖습니까. 그러니 제가 좋아하는 느낌은 아닌게죠. 여튼 그런 느낌이 들어서 시집을 한번도 제대로 독파한 적이 없습니다.
제가 그 다음으로 약한 장르가 바로 시 쓰는 분들이 쓴 산문집입니다. 이건 읽어보면 말만 산문집이지 사실은 시거든요. 게다가 이런 쪽의 제 느낌은 틀린적이 별로 없어서 이건 내 취향이 아니야 싶어서 보면 대개가 시 쓰시는 분이거나 써본적이 있는 분이거나 하는 분들이 쓴 글이예요. 그런 분들의 문체랄지 문장이 주는 느낌은 똑같거든요. 촉촉하죠. 느른하고, 부드럽고, 달달해요. 이 나이쯤되면 취향을 고치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서 이런 책들은 잘 안사려고 노력하는데 스노우캣의 그림이라는 말에 홀라당 낚여서 사고 말았습니다.
제 취향이 아닐뿐 부드러운 글과 달달한 위로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좋아할 글입니다. 표지를 정말 잘 만들었다 싶은게 전반적인 책의 느낌과 딱 맞습니다. 덜 익은 계란노른자같은 분위기죠. 단순하지만 식품이고 언제나 손쉽게 구할수 있어서 뭐 먹을거 없을때 냉장고에 계란만 있어도 든든하잖습니까. 밥은 먹어야겠고 뭐만들기는 귀찮을때 계란 하나 구워서 그냥 먹어도 좋고 간장에 비벼먹어도 좋은 그런 느낌의 책입니다. 대단한 사건이나 엄청난 통찰력이 아니라 그저 나도 그래, 아니 우리는 다들 그래, 그래도 괜찮잖아? 하고 말해주는 듯한 책이예요. 제 스타일이 아닌데다 뒤로 갈수록 점점 그 경향이 심해져서 마지막 부분인 BEYOND THE RECIPE를 읽을때는 솔직히 쪼금 버겁다 싶기는 했지만서도요. 이런 종류의 제 스타일이 아닌 책은 평가하기도 뭐합니다. 좋아하지 않는것을 냉정하게 평하기는 어렵잖아요. 그러니 총평은 내 취향은 아니야 한 마디로 끝내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