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번에 반값 할인을 하길래 구매한 베아트릭스 포터의 피터 래빗 시리즈입니다. 솔직히 보고 약간 실망했습니다. 저학년용의 동화책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내용보다는 그림을 보고 구매한 작품입니다. 인터넷으로 원화 그림을 본 적이 있는데 참 느낌이 좋더라구요.

그래서 샀는데...그런데....그림이 별로입니다. 못 그렸다는 얘기가 아니라 인쇄 상태가 별로예요. 제가 봤던 사진의 그림은 선명하고 예뻤는데 이건 희미하고 색감이 나빠요. 종이 자체도 이상한게 질은 아주 좋은데 색깔이 빛바랜듯한 색입니다. 누렇고 약간 회생의 갱생지같은 느낌을 주는 색인데 만져보면 종이 질 자체는 그렇게 나쁘지 않거든요. 그냥 하얀 종이에 인쇄하는게 색을 위해서는 더 좋았을텐데 왜 굳이 이런 이상한 색깔의 종이에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상하다 싶어서 인터넷으로 좀 더 면밀하게 찾아봤습니다. 그림 상태가 이렇게 엉망인데 고전소리 들을리는 없거든요. 찾아보니 이유가 있더군요. 원래 피터 래빗은 아주 작은 판형의 책입니다. 손바닥만한 책인거죠. 근데 이 책들은 그 두배가 약간 넘는 크기입니다. 그림이 커지면서 뭉개진거죠. 지금와서 원화를 다시 그릴 사람이 있는게 아니다 보니 무작정 책 크기에 맞춰서 그림을 늘여서 화질이 엉망이 된거죠. 쉽게 말해서 픽셀이 뭉개지는 사태인겁니다.

베아트리스 포터의 책은 동화 내용도 좋지만 그림에 더 큰 가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걸 이렇게 엉망으로 만들어서 팔다니. 어쩐지 반값행사니 뭐니 하는게 가격이 지나치게 싸다는 생각은 저도 했습니다. 동화라고 해도 이렇게까지 싸게 받아도 되나 싶었지만 그 반값에 혹해서 산것도 사실이니 뭐라 할 말이 없네요.

싼 맛에 사들인 저도 잘못이지만 출판사측도 이렇게 장사하시면 안됩니다. 책이 좋다면 결국에는 비싸도 팔리는 법입니다. 저도 이 시리즈는 언젠가 살거라고 벼르고 있던 책이라서 결국은 샀을거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반값이라는 말에 혹해서 지금, 이 출판사의 이 책을 사게 된거죠. 그리고 너무 실망도 크고 후회스럽습니다.

한번이라도 실물을 봤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텐데. 싸다고 무턱대고 산게 너무 후회스럽군요. 모든 물건에는 적당한 가격이 있는 법인데 말이죠. 책의 가격을 영화랑 비교하는 경구가 많습니다. 영화 한 편이나 책 한권이나 비슷하다고 말이죠. 그렇게 생각하면 비싸지는 않죠. 책 한 권, 한 권을 따지자면 사실은 그렇게 비싸지 않습니다. 못살 정도도 아니구요. 하지만 저처럼 대량으로 많이 사는 사람의 경우는 버겁죠. 없는 돈에 이런저런 사고 싶은 책은 많고 하니 조금이라도 싸고 할인율이 큰 쪽을 선택할수 밖에 없는게 제 입장입니다. 한 권에 만원짜리 동화책을 척척 살만큼 돈이 많지는 않아서요.

책을 사고 이렇게 기분이 우울하기는 처음입니다. 반값할인이라는 말에 넘어간 제 자신이 실망스럽고, 그런 책을 팍팍 살수 없는 제 형편도 웬지 서글프고, 이것 저것 잴수밖에 없는게 내 사정인데 어쩌겠어 싶어도 기분이 좋지는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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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에 코지 미스터리라고 나와있지는 않지만 코지 미스터리입니다. 주인공이 11살짜리 여자애니까요. 화학에 푹 빠져있는 나이보다 조숙한 소녀. 엄마는 없고 자신을 괴롭히는 언니 둘과 우표외에는 세상사에 무관심한 아빠, 전쟁의 상처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전직 군의관이자 잡일꾼 도거, 가정부 아줌마, 이상이 이 가족의 구성원입니다.

스틸라이프와 비슷한 시기에 읽었는데 보니 칭찬 문구나 탔다는 상의 목록이 거의 일치하는 책인데 제 감상은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스틸라이프는 책 소개에 코지 미스터리라고 나와있지 않았다면 눈치채지 못할만큼 잘 만든 미스터리이고 파이바닥은 책 소개에 코지 미스터리라고 나와있지 않아도 아~그 장르구나 싶더군요.

아무리 코지 미스터리라고 해도 마지노 선이 있거든요. 이 책은 그 점에서 그 선을 넘은게 아닌가 싶습니다. 어느점이냐면 주인공이 너무 어립니다. 이 어린 주인공을 무슨 수로 자꾸 살인사건에 엮을건지도 문제지만 자연스럽게 역어간다 하더라도 권장하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초등학생도 아닌데 어른들 다 두고 11살짜리가 살인사건을 혼자서 해결하는 장면을 읽으면서 감정이입하기는 어렵더군요. 아무리 조숙하고 머리가 좋아도(좋은 정도가 아니라 천재 수준이라고 해도) 11살인데요. 요즘 애들은 성장이 빨라서 우리때보다 더욱 조숙하다고 하지만 저희 11살때를 생각하면 글쎄요. 조숙함 정도라 아니라 조로증 수준이거든요. 거기다 이 시대는 1950년대가 배경인데 말이죠. 전화기조차 일상생활에서 쓰이지 않는 시대인데...

사실 구조나 스토리 자체도 약간은 청소년용같은 분위기를 풍깁니다. 깊이가 좀...이 장르에서 깊이를 논한다것 자체가 말이 안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너무 얄팍해서 좀 싱겁더군요.

둘째로 쓸데없는 화학이 너무 많이 나와요. 주인공이 화학광인데다 살인사건이 독이라서 그 점을 강조하고 싶었을지 몰라도 별반 필요한 얘기가 아니었는데 지나치게 많이 나오더군요.

셋째로 중간에 아버지가 과거 설명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너무 길고 장황해요. 유명한 우표라는것만 알면 되는거지 그 우표의 기원까지 알 필요는 없거든요. 그 우표의 과거를 알아서 뭐합니까. 중요한건 그 우표가 무지 귀해서 살인을 불사할 정도라는 것 정도만 독자에게 전달하면 될것을 왜 굳이 쓸데없는 우표의 내력을 만들어서 장황하게 설명해 주는지 이해가 안되요. 더구나, 살인죄로 잡혀서 유치장에 가기 직전에, 면회가 안되는걸 억지로 밀고 들어가서 간신히 만나는 그 중요한 순간에.

이 장면도 이해가 안되는게 엄마도 없고 자신은 파산했다고 하고 큰 딸이 이제 겨우 16살인데, 이 딸 셋만 두고는 부하인 도거가 자신때문에 살인을 저질렀을까봐 살인죄를 가짜로 자백한다고요? 무슨 이런 무책임한 인간이 다있다니? 싶더군요.

과거에 우표때문에 자신이 한 사람을 죽였다는 죄책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주제에 우표수집에 열을 올리는것도 이해가 안가긴 마찬가지고요. 저라면 그런 과거가 있다면 우표따윈 거들떠 보기도 싫을텐데. 무슨 자학인가 싶더군요.

쓸데없이 장황한 설명, 주인공의 지나치게 어린 연령, 공감하기 힘든 배경인물들, 어정쩡한 시대 등등 어느것 하나 마음에 들지가 않더군요. 같은 상을 탔다는 스틸라이프와 비교하니 더 그랬구요.

이걸 왜 양장본으로 만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수준으로 봤을때 청소년용으로 분류해도 무난할 정도인데. 그에 비해 스틸라이프는 오히려 소장할만한듯해서 양장본으로 만들어도 그럭저럭 괜찮다고 봤는데요. 아니, 애초에 셜록 홈즈 정도의 고전도 아닌데 추리소설에 무슨 양장본이람, 책값 올라가게스리 말이야-가 저의 솔직한 심정입니다.

내용과는 별개로 책의 모양과 디자인 자체는 아주 좋습니다. 양장도 좋고요, 표지도 색감 예쁘구요, 심지어 종이질도 너무 좋습니다. 책 디자인과 편집은 잘하셨더라구요. 종이 색깔과 글자 크기도 좋더군요. 약간 큰 폰트가 청소년용의 느낌을 주기는 했지만 전반적으로 책 모양이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점이 더 속이 쓰리더군요. 이 책은 처분할거고 스틸라이프는 보관할건데 이 책은 예쁘고 스틸라이프는 그렇게 예쁘지 않다는 점 약간 실망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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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 잘못 산 책입니다. 한때 여행에세이에 몹시 심취해서 그쪽 분야라면 닥치는대로 사들이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 시기에 산 책인데 제목만 보고 내용은 보지도 않고는 여행기라고 생각하고 샀는데 그게 아니네요.

이 책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학술적인 연구에 있습니다. 그 연구의 대상이 무엇이냐하면 바로 뱀장어입니다. 표지의 비행기 바퀴밑에 저 길다란거 보이시죠? 뱀이 아니라 뱀장어인겝니다.

이 탐험대가 아프리카에 간 이유는 전 세계의 뱀장어 18종중에 유일하게 표본이 없는 1종류, 라비아타라는 뱀장어의 표본을 구하기 위해서입니다. 뜨거운 열기와 위험을 무릅쓰고 한 마리 뱀장어를 위해서 4천킬로가 넘는 거리를 넘나들며 아프리카를 질주하죠.

딱히 재미가 없다거나 내용이 말도 안되는건 아닌데 말이죠, 문제는 주제가 뱀장어라는 거죠. 목적이 어디까지나 뱀장어의 표본을 구하기 위해서다보니 모든 이야기의 촛점이 뱀장어인거죠.

현지인들과의 만남도 나오고, 풍경에 대한 설명도 나오고, 무슨 차를 타고 어디까지 갔는데 정말 위험했어 등등 일단 보통의 여행기와 비슷한 이야기가 나오지만 이 모든 이야기의 끝은 뱀장어입니다. 죽을 고생을 해서 갔지만 뱀장어가 없으면 다른 곳으로 가는거죠.

뱀장어를 폄하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리고 그걸 연구하는 학자분들을 비웃으려는 의도도 아니지만 그게 우리가 술안주로 구워먹는 뱀장어란 말이죠. 그걸 위해서 목숨을 건다는건 좀...머리로는 이해하지만 심정적으로 납득이 안된달지, 약간은 우습달지.

솔직히 말해서, 그래요 좀 우스웠습니다. 아무리 목적이 학문적인 것이라고는 해도 뱀장어에 목숨을 걸다니. 저 뱀장어 표본이 얼마나 중요한건지 저는 모릅니다. 학계에서 봤을때는 어머어마한 대발견일수도 있고 위대한 사건일수도 있겠죠. 그냥 뱀장어가 아니라구 라고 외치는 학자분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문외한인 제가 봤을때는 뱀장어란 말이죠.

뱀장어 한마리를 위해, 아니 표본 연구를 위해서 30마리가 필요하다니 30마리를 위해서 4천킬로를 죽을 고생을 하며 아프리카 탐험이라니. 저로서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학문의 세계였습니다. 어떤 의미로는 완전 새로운 세계를 보여준 책인것만은 틀림없습니다만, 웬지 이해하기가 우스운 세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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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사실 벌써 이주일쯤 전에 읽은 책인데 리뷰를 어찌 쓸까 망설이다 지금에서야 작성합니다. 마음이 이리저리 좋았다 나빴다 해서. 크게 뭘 기대하고 산것도 아닌책인데 웬 고민이래 하면서 오늘에서야 쓸 말이 생각나네요. 본명 조한웅, 직업 카피라이터, 본문에서는 자신을 키키봉이라고 표현합니다.

키키봉님의 작품중 최고는 낭만적 밥벌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느날 문득 카페나 해보자는 친구의 말에 홀랑 넘어가 카페를 열고 실제 운영한 경험담인데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도 마냥 행복할수만은 없는 현실적인 문제들을 위트와 재치넘치는 문장으로 얘기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인연으로 키키봉님의 작품은 다 봤습니다. 그래봐야 세 권밖에 안되는지라. 그 직후에 깍두기 삼십대라는 책을 봤는데 전작에서 봤던 쾌활함이 사라지고 웬지 모를 우울함과 찌질함이 약간 보이더라구요. 그 시기는 저 자신도 약간 우울했던 시기인지라 재미있게 읽지를 못했습니다.

이건 좀 아닌데 싶었지만 마저 샀던 독신남 이야기. 시간상으로 낭만적 밥벌이의 앞이야기인데 여기서는 다시 원래의 쾌활함이 보이더라구요.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제가 실업자일때 삶의 방황을 얘기하는 책을 읽었고, 지금은 다시 회사에서 안정된 생활을 하는 중 읽은 책이 마침 또 독신생활에 대한 이야기인지라 그런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책을 읽을때는 그 때의 기분에도 강한 영향을 받는데 문제는 한번 그 책의 느낌이 정해지면 다시 읽어도 고치기가 힘들더라구요. 그 순간의 감정이 그대로 떠오른다고나 할까요. 아직도 냉철하게 제 자신의 감정과 상관없이 책을 감상하지는 못하겠어요. 인문계열이나 과학계열의 책은 상관없는데 에세이는 감정의 진폭에 따라 책의 분위기 자체도 강하게 영향을 받는것 같습니다. 장르가 그래서 그런가..

여튼 독신이지만 여자이고 엄마랑 같이 생활하는 저는, 남자이고 완전 혼자인 키키봉님과는 다릅니다. 하지만 공감가는 부분이 없다고는 할수 없었어요. 전혀 달라서 재미있게 느낀 부분도 많았구요.

제일 재미있게 읽은 에피소드는 가정부 이야깁니다. 읽으면서 정말 크게 웃었습니다. 카피라이터다운 톡톡튀는 글이 참 읽기 좋아요. 독신남으로 살아가는 일상의 에피소드일뿐이니 크게 무언가를 가르쳐주거나 남기는 책은 아닙니다. 그런 목적으로 쓰인 책도 아닐테죠. 그저 재미있는 책입니다. 약간의 씁쓸함과 일상의 무게와 그 와중에 건저올린 웃음 하나. 그런 책입니다. 재미있고 우습고 약간은 공감하고 여러번 읽을것 같지는 않지만 재미있게 읽었다 싶은 그런 책요. 어찌보면 요즘 많이 나오는 흔하디 흔한 책인거죠. 그래도 읽는 동안 즐거웠으니 그걸로 만족.

사실 읽는 동안 부러운 대목도 많았습니다. 부모의 잔소리를 나이 서른이 넘어서도 마냥 좋게 들을수는 없으니까요. 엄마가 해주시는 일들을 폄하할 생각은 없습니다.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위로가 될때도 있죠. 완전히 혼자인것보다 계시는게 낫다고는 생각합니다. 그래도 가끔은 혼자 살아보고 싶습니다. 고독해보고 싶어요. 완전한 침묵속에 한번쯤은 있어보고 싶어요. 누구도 내게 말걸지 않는 순간이 가끔은 있었으면 좋겠어요. 내가 뭔가를 읽을때, 깊은 밤 뭔가를 생각하고 있을때 방해받지 않아보고 싶어요. 하지만 제가 아무리 능력이 출중하다고 해도 혼자 사는 엄마를 두고 독립을 할수는 없죠. 그런 불효를 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러고 나가면 마음이 편할리도 없고요. 읽는 내내 책 내용보다도 이런 잡생각이 더 많아서 생각이 정리가 되지 않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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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정통 추리소설로 복귀했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이 작품도 정통이라고 하기는 뭐하죠. 탐정이라기보다 요즘 유행하는 프로파일러가 등장하니까요. 제가 보기엔 프로파일러란 소위 말하는 자문탐정의 현대적 위치겠죠. 셜록 홈즈같은 자문탐정이 짜잔하고 나타나 모든것을 해결하기보다 경찰의 분석이 더 중요해진 요즘 시대에 등장한 새로운 유형의 탐정이랄까요.

요즘 드라마나 영화등을 보면 프로파일러가 제법 중요한 위치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현대에 나타난 새로운 살인의 형태, 즉 연쇄살인범이라는 새로운 장르에 맞춰서 등장한게 바로 이 프로파일러입니다.

이 책의 배경은 그 프로파일이란 분야가 처음으로 떠오르는 시대에 맞춰져 있습니다. 주인공인 토니 힐은 정신병원에 갇힌 범죄자들을 상대로 임상실험을 한 경험 많은 프로파일러고 영국 내무부에서는 그런 프로파일러를 초빙해서 새로운 조직을 한번 짜볼까하는 계획중입니다. 그런 그에게 연쇄살인범과 관련된 사건을 맡아달라는 제의가 들어오고 자신의 능력을 보여줄 기회가 필요했던 토니 힐은 당연히 그 계획에 뛰어들죠.

그 시대의 영국을 자세히(1995년에 발표된 작품이라고 합니다) 모르지만 왜인지 영국의 경찰 당국은 연쇄살인범이 없다고 극구 부인을 합니다. 현직 경찰들은 다들 연쇄살인범이라고 보는데 간부들이 절대 그렇게 말하지 말고 따로 수사하라고 지시를 내리고 있는 형편인거죠. 그 와중에 네번째 살인까지 일어나자 부서장이 드디어 나섭니다. 연쇄살인이 맞으니 거기에 촛점을 맞추자고, 그리고 토니 힐 박사를 초청해서 같이 사건 수사를 해나가기로 합니다. 토니 힐의 파트너는 (당연하게도) 여자 경찰인데 미인에 머리까지 좋아 조직내에서 제법 승진을 거듭하는 중이고 이로 인해 주변의 남자 형사들한테 질투와 시샘의 눈길을 받는 중입니다. 사담이지만, 이 시대의 영국에서도 이 지경이라니, 대한민국의 앞날이 암담하군요. 더구나 왜 굳이 남여를 맞춰넣어서 성적긴장감을 높여야 된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살인사건에 좀 집중해주면 좋으련만은 항상,꼭, 반드시 곁다리로 섹스에 대한 묘사를 넣거든요.

하여튼 로파일링을 불신의 눈으로 쳐다보는 경찰들과 그 경찰들한테 질시의 대상인 캐롤과 함께 연쇄살인범을 잡기위해 분투하는 토니 힐 박사. 결국에는 그 연쇄살인범을 (당연히도) 잡아내는게 이 책의 줄거립니다.

이 책은 Wire in the Blood라는 드라마의 원작입니다. 영국 드라마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두 주연남녀가 아주 독특한 매력을 보여주는 드라마라서 저도 3시즌인가까지는 봤었습니다. 그러다 주인공 여자가 갑자기 교체되면서(전근이라더군요) 흥미가 떨어져서 보지 않게 되긴 했지만요.

저는 먼저 본 이미지에 조금 구속되는 편이라서 책을 먼저 보면 책이 좋아 보이고, 드라마나 영화를 먼저 보고 책을 보면 그쪽이 또 더 좋아보이는 편입니다. 단 한가지 예외는 해리포터입니다. 책이랑 놀랄만큼 같더군요.

그래서 그런지 이 책도 드라마가 훨씬 좋아보이더라구요. 드라마에는 고문과정에 대한 상세한 묘사가 없습니다. 책에는 무지 상세하게 나오는데 그 점도 싫었던것 같습니다. 연쇄살인범 못지않게 그의 잔혹한 범행수범 또한 이런 종류의 책에서 빠질수 없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전 그런 부분들이 별로 내키지 않더라구요. 차라리 범행에 쓰인 트릭을 자세히 설명하면 모를까 고문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하는건 좀 읽기 불편해요.

요즘 나오는 추리소설에는 과거와 달리 연쇄살인범이 자주 등장합니다. 마이클 코널리라고 요 앞에 읽은 시인 시리즈가 그랬죠. 그러다보니 과거에는 주로 면식범인 살인자가 자신의 범행을 숨기기위해 만들어낸 다양한 트릭이 추리소설의 주요요소였다면 이런류의 소설들은 그런 트릭이 없습니다. 누군지 모르는데 트릭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다양한 법의학적 지식과 살인범의 범행수법, 혹은 살인범의 심리묘사가 요즘 소설의 대세인데 전 통 좋아하기가 힘드네요. 법의학적 관점에서 풀어나간 대표적인 소설 중 하나가 스카페타 시리즈인데요. 전 좀 지루하더군요. 법의학이란게 온갖 실험들인데 그건 화면으로 보면 모를까 읽기에는 그다지 재미있는 분야가 아니거든요. 질량분석기가 삐빅거리며 결과를 내놓는 세상이니까요.

근래에 나온 서구쪽의 추리소설은 이제 좀 지나치달정도로 잔인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 연쇄살인범이라는 새로운 종류의 범인이 나타나면서 더욱 그런 경향이 짙습니다. 연쇄살인범은 현대 작가들의 금광이 아닐까 싶습니다만 저는 싫어합니다.

일단 연쇄살인범이 주인공이면 살인에 이유가 필요 없습니다. 죽이고 싶어서인걸요 뭐. 복잡한 트릭도 없습니다. 남의 눈에 띄지 않는 법과 경찰의 추적을 피할 법의학적 지식이 중요하죠. 그리고 등장하는 다양한 고문들. 제일 읽기 싫어하는 분야죠. 거기에 더해 반드시 있는 연쇄살인범의 불행한 과거. 우리보고 연쇄살인범을 동정하라는건지 아니면 자식을 이렇게 키우지 말라는건지 반드시 불행한 과거를 밑밥으로 깔고 나오죠. 이런 잔인하고 이유없는 살인을 보면 웬지 기운이 빠집니다.

전 차라리 옛날 추리소설이 더 좋아요. 살인에 이유가 있는거죠. 정당한 이라고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돈이나 사랑등과 같은 보편적으로 이해할수 있는 이유가 있는게 더 나아요. 그냥 재미삼아 죽이다니, 그런건 언제 읽어도 불쾌하거든요. 솔직히 200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추리소설의 대부분이 이런 장르인지라 점점 더 코지 미스터리 쪽으로 방향을 틀게된게 아닌가 싶습니다. 아가사 크리스티 여사를 알게된 후 언제나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장르였지만 이젠 서구쪽의 소설들은 좀 더 신중히 보고 사야할것 같습니다. 읽고나면 뒷맛이 씁쓸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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