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정통 추리소설로 복귀했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이 작품도 정통이라고 하기는 뭐하죠. 탐정이라기보다 요즘 유행하는 프로파일러가 등장하니까요. 제가 보기엔 프로파일러란 소위 말하는 자문탐정의 현대적 위치겠죠. 셜록 홈즈같은 자문탐정이 짜잔하고 나타나 모든것을 해결하기보다 경찰의 분석이 더 중요해진 요즘 시대에 등장한 새로운 유형의 탐정이랄까요.
요즘 드라마나 영화등을 보면 프로파일러가 제법 중요한 위치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현대에 나타난 새로운 살인의 형태, 즉 연쇄살인범이라는 새로운 장르에 맞춰서 등장한게 바로 이 프로파일러입니다.
이 책의 배경은 그 프로파일이란 분야가 처음으로 떠오르는 시대에 맞춰져 있습니다. 주인공인 토니 힐은 정신병원에 갇힌 범죄자들을 상대로 임상실험을 한 경험 많은 프로파일러고 영국 내무부에서는 그런 프로파일러를 초빙해서 새로운 조직을 한번 짜볼까하는 계획중입니다. 그런 그에게 연쇄살인범과 관련된 사건을 맡아달라는 제의가 들어오고 자신의 능력을 보여줄 기회가 필요했던 토니 힐은 당연히 그 계획에 뛰어들죠.
그 시대의 영국을 자세히(1995년에 발표된 작품이라고 합니다) 모르지만 왜인지 영국의 경찰 당국은 연쇄살인범이 없다고 극구 부인을 합니다. 현직 경찰들은 다들 연쇄살인범이라고 보는데 간부들이 절대 그렇게 말하지 말고 따로 수사하라고 지시를 내리고 있는 형편인거죠. 그 와중에 네번째 살인까지 일어나자 부서장이 드디어 나섭니다. 연쇄살인이 맞으니 거기에 촛점을 맞추자고, 그리고 토니 힐 박사를 초청해서 같이 사건 수사를 해나가기로 합니다. 토니 힐의 파트너는 (당연하게도) 여자 경찰인데 미인에 머리까지 좋아 조직내에서 제법 승진을 거듭하는 중이고 이로 인해 주변의 남자 형사들한테 질투와 시샘의 눈길을 받는 중입니다. 사담이지만, 이 시대의 영국에서도 이 지경이라니, 대한민국의 앞날이 암담하군요. 더구나 왜 굳이 남여를 맞춰넣어서 성적긴장감을 높여야 된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살인사건에 좀 집중해주면 좋으련만은 항상,꼭, 반드시 곁다리로 섹스에 대한 묘사를 넣거든요.
하여튼 로파일링을 불신의 눈으로 쳐다보는 경찰들과 그 경찰들한테 질시의 대상인 캐롤과 함께 연쇄살인범을 잡기위해 분투하는 토니 힐 박사. 결국에는 그 연쇄살인범을 (당연히도) 잡아내는게 이 책의 줄거립니다.
이 책은 Wire in the Blood라는 드라마의 원작입니다. 영국 드라마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두 주연남녀가 아주 독특한 매력을 보여주는 드라마라서 저도 3시즌인가까지는 봤었습니다. 그러다 주인공 여자가 갑자기 교체되면서(전근이라더군요) 흥미가 떨어져서 보지 않게 되긴 했지만요.
저는 먼저 본 이미지에 조금 구속되는 편이라서 책을 먼저 보면 책이 좋아 보이고, 드라마나 영화를 먼저 보고 책을 보면 그쪽이 또 더 좋아보이는 편입니다. 단 한가지 예외는 해리포터입니다. 책이랑 놀랄만큼 같더군요.
그래서 그런지 이 책도 드라마가 훨씬 좋아보이더라구요. 드라마에는 고문과정에 대한 상세한 묘사가 없습니다. 책에는 무지 상세하게 나오는데 그 점도 싫었던것 같습니다. 연쇄살인범 못지않게 그의 잔혹한 범행수범 또한 이런 종류의 책에서 빠질수 없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전 그런 부분들이 별로 내키지 않더라구요. 차라리 범행에 쓰인 트릭을 자세히 설명하면 모를까 고문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하는건 좀 읽기 불편해요.
요즘 나오는 추리소설에는 과거와 달리 연쇄살인범이 자주 등장합니다. 마이클 코널리라고 요 앞에 읽은 시인 시리즈가 그랬죠. 그러다보니 과거에는 주로 면식범인 살인자가 자신의 범행을 숨기기위해 만들어낸 다양한 트릭이 추리소설의 주요요소였다면 이런류의 소설들은 그런 트릭이 없습니다. 누군지 모르는데 트릭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다양한 법의학적 지식과 살인범의 범행수법, 혹은 살인범의 심리묘사가 요즘 소설의 대세인데 전 통 좋아하기가 힘드네요. 법의학적 관점에서 풀어나간 대표적인 소설 중 하나가 스카페타 시리즈인데요. 전 좀 지루하더군요. 법의학이란게 온갖 실험들인데 그건 화면으로 보면 모를까 읽기에는 그다지 재미있는 분야가 아니거든요. 질량분석기가 삐빅거리며 결과를 내놓는 세상이니까요.
근래에 나온 서구쪽의 추리소설은 이제 좀 지나치달정도로 잔인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 연쇄살인범이라는 새로운 종류의 범인이 나타나면서 더욱 그런 경향이 짙습니다. 연쇄살인범은 현대 작가들의 금광이 아닐까 싶습니다만 저는 싫어합니다.
일단 연쇄살인범이 주인공이면 살인에 이유가 필요 없습니다. 죽이고 싶어서인걸요 뭐. 복잡한 트릭도 없습니다. 남의 눈에 띄지 않는 법과 경찰의 추적을 피할 법의학적 지식이 중요하죠. 그리고 등장하는 다양한 고문들. 제일 읽기 싫어하는 분야죠. 거기에 더해 반드시 있는 연쇄살인범의 불행한 과거. 우리보고 연쇄살인범을 동정하라는건지 아니면 자식을 이렇게 키우지 말라는건지 반드시 불행한 과거를 밑밥으로 깔고 나오죠. 이런 잔인하고 이유없는 살인을 보면 웬지 기운이 빠집니다.
전 차라리 옛날 추리소설이 더 좋아요. 살인에 이유가 있는거죠. 정당한 이라고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돈이나 사랑등과 같은 보편적으로 이해할수 있는 이유가 있는게 더 나아요. 그냥 재미삼아 죽이다니, 그런건 언제 읽어도 불쾌하거든요. 솔직히 200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추리소설의 대부분이 이런 장르인지라 점점 더 코지 미스터리 쪽으로 방향을 틀게된게 아닌가 싶습니다. 아가사 크리스티 여사를 알게된 후 언제나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장르였지만 이젠 서구쪽의 소설들은 좀 더 신중히 보고 사야할것 같습니다. 읽고나면 뒷맛이 씁쓸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