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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느끼는 낙타
싼마오 지음, 조은 옮김 / 막내집게 / 2009년 2월
평점 :
품절
여행을 하면서 만난 선배 격의 많은 여행자들에게서 수도 없이 들은 소리는
'이제 당신도 사막을 여행해야 할 때'라는 소리였다.
사막에 앉아서 밤을 응시하라는 소리들이었다.
세계 각국의 고수들이 늘어놓는 사막 여행담은 가히 눈시울을 붉힐 만큼,
가슴에 무늬를 만들어놓는 그 무엇이 있었다.
너무 강렬해서 약간은 서글프기도 한 그 무엇.
살아 있는 생명들을 모조리 삼켜버릴 듯한 밤의 푸르름,
별의 느린 동선까지도 잡아챌 수 있는 기적에 가까운 시력,
그리고 절대의 고요, 절대의 침묵, 강박에 의한 외로움-.
그것들이 후배 여행자들에게 들려주었던 수다스런 '사막'이었다.
사막에 가자.
우리가 발 디디고 사는 이곳 또한 사막이지 않겠나며 살고는 있지만
그래도 사막에 가서 제대로 울다 오자.
이병률 산문집 『끌림』 중 #037. 사막에 가자
나에게는 '사막'에 대한 동경이 있다. 끝없이 펼쳐진 그 고독한 모래 사막 한 가운데 앉아 밤을 응시하는 것.. 그 처절한 고독 안에서 나를 대면하는 것.. 그렇게 나를 들여다보면 나를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고 내 자신을 깊이 용서할 수 있을 것만 같고 내 속의 쓴뿌리들을 녹여 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인지 나는 사막이 좋아 무작정 사막으로 떠난 자유로운 영혼 싼마오를 무척이나 동경하고 좋아한다.
싼마오의 '사하라 이야기'를 정말 재미있게 읽고서 바로 '흐느끼는 낙타'를 구입해 놓고는 한참을 기다렸다. 곧바로 읽지 않았던 이유는 싼마오와의 만남을 한번의 찐한 만남으로 끝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랄까.. 그렇게 오랜 틈을 두고 설레이는 마음으로 '흐느끼는 낙타'를 펼쳐 들게 되었다.
'사하라 이야기'는 싼마오와 호세가 사하라 사막에 정착해 펼쳐가는 알콩달콩한 신혼 이야기와 감당못할 이웃들, 사하라위족과 정들어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여서 무척이나 깔깔거리며 재미있게 읽었었는데 '흐느끼는 낙타'는 마음이 물컹거릴 정도로 슬픔이 밀려오는 순간을 많이 만나게 되어 오히려 가슴을 쓸어내리며 읽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런 감동과 슬픔의 순간을 만나면서 한편으로는, 퍼주기를 좋아하고 도와주기를 좋아하고 사람을 대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아는 싼마오가 사하라 사막에 정착하는 시간이 깊어지면서 또한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와 그 사랑도 깊이를 더해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서 마음이 따뜻하기도 했다.
말을 못하는 벙어리 노예에게 진심으로 손을 내밀 줄 아는 그 마음. 사람들에게 창녀라고 손가락질 받는 한 여인을 편견없는 시선으로 끝까지 믿어주고 사랑으로 품어주었던 그 마음. 홀로 버려져 발이 문드러져도 병원에 갈 수 없어 피고름이 나는 할아버지를 다른 이웃들처럼 모른 체 하지 않고 자신의 가족처럼 가시는 그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던 그 마음. 그녀에게는 모두가 그 어떤 것도 벽이 될 수 없는 '샤헤이피'[친구]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녀가 무작정 정착하게 된 그 사하라 사막은 결국, 그녀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밝음과 어둠, 숨겨 두었던 그 깊은 곳까지 다 보여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무엇보다도 그녀가 묘사해주는 사막이 참 좋다. 그녀가 사막에 대해 이야기해줄 때면 나는 마치 그 사막 한 가운데 놓여져 그녀가 말하는 사막의 배경이 된 듯 그렇게 빠져들었다.
이른 아침의 사막은 물로 씻어 낸 것처럼 깨끗했다. 푸르른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고, 부드러운 모래언덕이 시선이 닿지 않는 곳까지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이런 때의 사막은 잠든 여인의 거대한 몸뚱이 같았다. 가냘프게 숨 쉬는 듯 물결치는, 침착하고 고요하고 깊은 아름다움은 가슴이 아프도록 감동적이었다. <p.19>
맑고 상쾌한 밤이었다. 달빛이 망망대해 같은 모래언덕을 하나하나 비추었다. 초현실파의 꿈처럼 신비로운 그림이 떠오르는 광경이었다. 이런 사막의 밤 풍경 속에 있노라면 나는 진정으로 살아 있음을 느낀다! <p.26>
이 세상에 제2의 사하라는 없다. 사하라 사막은 단지 그를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자신의 아름다움과 부드러움을 드러내고, 영원히 변치 않을 하늘과 대지로 그의 사랑에 묵묵히 대답한다. <p.125>
내가 사막에 대한 환상이 있다는 것을 안 싼마오는 주저없이, 사막의 황폐함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주었고 사막은 그저 환상의 세계가 아니라는 것도 친절하게 일러주었다. '사하라 이야기' 때와는 달리 '흐느끼는 낙타'에서는 싼마오마저도 그러한 사막을 힘겨워했고 결국은 사랑하는 사막을 떠나 카나리아 제도로 건너 가 살게 된다.
나는 아득한 사막 위에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떨림이 그치지 않았다. 사방이 삽시간에 어두워지며 그들의 모습을 덮어 버렸다. 바람마저 갑자기 소리를 멈추었다. 눈앞이 점점 흐려졌다. 도살장에서 들려오는 낙타들의 슬픈 흐느낌만이 점점 크고 높아져 갔다. 온 하늘에 낙타들의 거대한 울음소리가 가득 퍼지며 천둥소리처럼 나를 뒤덮었다. <p.151>
사막에서 당한 그 슬픔은 책을 읽는 나로서는 그저 먹먹한 아픔으로 대하면 그만이지만 그 슬픔 가운데 있었던 싼마오에겐 떠나지 않고서는 견디지 못할 힘듦이었던 것이다.
자유로운 영혼, 싼마오.. 그녀에게 사막은 아마도 사랑하는 <호세>와 같은 존재가 아닐까.. 그리고 사랑하는 <호세>를 떠올리면 그와 함께 그 아름답고 막막하고도 처절했던 사막이 떠오르지 않을까...
중국인 싼마오, 스페인 사람 호세. 참 어울리지 않는 듯한 조합이지만 제법 잘 어울리는 한 쌍이다. 나는 '사하라 이야기'에서 호세에게 흠뻑 빠졌더랬다. 싼마오가 사막에 가서 살고 싶다고 했더니 미리 가서 보금자리와 일자리를 다 마련해두고 기다렸던 남자...
하지만 사랑이 깊으면 그만큼 이별도 빨리 오나보다. 신은 당신보다 아담이 이브를..혹은 이브가 아담을 더 많이 사랑하는 것을 지켜보지 못하시는 걸까. 호세가 떠난 싼마오는 그저 애처로워서 바라보기 힘들었다. 내가 힘들어서 차마 못보겠더라.
싼마오 그녀는 여행도...사랑도 그렇게 진실되고도 자유롭게 할 줄 알았던 참 멋진 여자다. 내 마음 속에 자리잡은 친근한 친구, 싼마오가 나에게도 자유하라 한다.
지금은 소심하게 자유로운 영혼을 꿈꿔보지만... 나도 기필코 자유로워지리라... 싼마오, 그녀처럼.
황야에 나 있는 단 하나의 아스팔트 길을 나는 날마다 지나간다. 죽은 듯 고요한, 생명도 없고 슬픔이나 즐거움도 없는 듯한 길이지만, 사실 그 길도 세상 어느 길이나 마찬가지로, 좁은 길이나 굽은 길이나 마찬가지로, 자기의 길손과 그들의 이야기를 담고 느릿느릿 흐르는 세월을 오고 간다. 내가 그 길 위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들과 사건들은 세상 어느 길에서도 있을 수 있는 평범한 일들이다. 특별한 의미도 없고 기록해 둘 만한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불교에서는 '백년 인연이 쌓이면 배를 같이 타고, 천년 인연이 쌓이면 부부가 된다.' 고 하지 않았던가. 나와 악수를 나눈 손 하나하나, 찬란한 미소 하나하나, 평범한 말 하나하나를, 이렇게 옷깃을 스치는 바람처럼 무심히 흘러 보내고 잊어버릴 수 있겠는가? 여기서는 모래 한 알, 돌멩이 한 개도 귀하고 사랑스럽다. 날마다 해가 뜨고 지는 광경도 잊을 수가 없다. 그런데 어떻게 그 생생한 얼굴들을 기억 속에서 지워 버릴 수 있겠는가? <p. 31>
이따금 찾아드는 고독은, 나라는 인간에게는 대단히 소중한 것이었다. 나는 누구에게도 내 마음을 다 열지는 않았다. 호세는 내 마음속의 방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앉아 있기도 하고 심지어 한자리 차지하기도 했지만, 나는 나만의 구석자리를 갖고 있었다. 그것은 나의 것, 나 혼자만의 것이었다. 결혼도 그 구석자리를 없앨 수는 없었고, 나의 동반자에게 전부 열어 보일 필요도 없었다. 그가 아무 때나 뛰어들어 소란을 피우는 것은 내가 바라는 게 아니었다.
많은 부인네들이 내게 말했다. "그렇게 남편을 내버려 두면 위험해요. 손아귀에 꼭 움켜쥐고 있어야지." 그들은 그런 말을 하면서 험악하게 손짓을 하고 주먹을 움켜쥐기까지 했다. 마치 자기 남편이 어린아이인 양 손 안에 쥐고 흔들려는 것 같았다. 내가 대답했다. "자유롭지 못한 건 죽느니만 못하죠. 나는 남편이 죽는 건 결코 바라지 않는데요. 다가 문제는 남을 구속하다 보면 구속하는 사람까지 자유롭지 못하다는 거예요. 난 그렇게 되고 싶은 맘은 전혀 없거든요. 하하!"
자유라는 것은 얼마나 귀중한 것인가. 특히나 마음의 자유는 더욱 견고하게 지켜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사랑이 넘친다해도 충분하지 않다. <p. 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