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앞의 생 (특별판)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5월
평점 :
품절


나의 원함과 상관없이 이 세상에 태어나고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나에게 주어진 삶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다. 내가 밤일을 하는 여자의 원하지 않던 아이라 할지라도 나는 그것을 받아들여야 하고 그 삶에 순응해 나가야 하는 것이 삶의 법칙이다. 하지만 언제나 인생에는 만나야 할 사람이 있기 마련이고 나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로자 아줌마가 그렇다. 주인공 모모에게 로자 아줌마는 인생의 동반자였고 모모의 엄마였으며 모모의 전부였다.

 

거리의 여자들의 아이들을 돌보며 삶을 꾸려가는 로자 아줌마에게도 모모는 특별한 아이였다. 특이한 행동을 하면 한번도 오지 않은 엄마가 혹시라도 오지 않을까 해서 매일같이 아무데나 똥을 싸는 모모였지만 로자 아줌마는 그 아이를 어느 누구에게도 보내고 싶어 하지 않았고 그녀 곁에 두려 했다. 열 살이라고 알고 있을 때까지는 로자 아줌마에게 그저 어린아이였던 모모도 자신이 실제로는 열 다섯 살이라는 것을 알고 난 후에는 로자 아줌마를 더욱 어른답게 헌신적으로 간호하고 옹호하고 보호하려 한다.

 

모모는 부모로부터 버림받고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아 자신이 의지할 사람은 로자 아줌마밖에 없었고 30년을 엉덩이로 생계를 유지하고 지금은 아이들을 돌보다 시시때때로 가사상태에 빠지는 로자 아줌마에게도 모모밖에 없었다. 그들은 서로에게 버려질 것이 두려웠고 그들은 서로를 잃을 것이 두려웠다. 머리가 다 빠져가고 장시간을 정신을 놓은 상태에서 옛날의 좋은 시절을 떠올리며 그때의 로자인냥 어린아이들에게까지 교태의 눈빛과 웃음을 흘리는 로자 아줌마지만 모모는 열 다섯 살 때의 이쁜 로자 아줌마 사진으로 그 끔찍한 상황들을 이겨내는 법을 터득하며 끝까지 그녀와 함께한다.  

 

세상의 보호에서 비켜간 자들의 운명적인 만남이라 하고 싶다. 모모는 자신의 처지를 일찌감치 깨닫고 그러한 자신의 삶을 스스로 부등켜 안으려 했고, 로자 아줌마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을 통해 자신의 삶을 단단하게 만들어 갈 줄 아는 현명한 소년이기도 했다. 로자 아줌마의 삶이 꺼져가는 촛불처럼 희미해져 갈 때에도 그 촛불을 기꺼이 끝까지 지켜봐주고 그녀를 끝까지 세상으로부터 보호해 주었던 사람도 열다섯 살난 모모였던 것이다.

 

그들의 만남은 가슴 아픈 현실에서의 만남이지만 함께였기에 그들의 삶이 더욱 소중했으며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한 여인의 꺼져가는 생 또한 누군가에게는 아주 소중한 생이었던 것이다. 마지막을 함께하는 그 장면은 어느누구도 모모를 탓할 수 없다. 그건 모모의 최선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를 사랑한 남은 자의 최선 앞에 누가 무어라 말할 수 있으랴..   

 

이 책을 덮은 후에는 나의 마지막 생을 끝까지 지켜봐주고 끝까지 보호해주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을 나는 두었는가.  그러한 사람을 나는 만났는가. 그러한 사람을 나는 만날 것인가를 고민하는 순간이 온다.  내가 세상에 가진 것이 많고 나의 재능이 뛰어나고 내가 세상에 군림한 자라 할지라도 그런 사람 하나 없다면 나의 삶은 허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사람에 대한 사랑이라는 감정은 쉬 생기지도 않지만 시간을 두고 삶에 녹아내린 사랑은 그 무엇과도, 그 누구와도 끊을 수 없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절감하게 한 책이다. 책을 덮은 후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가슴뭉클함으로 가득차는 경험을 만날 것이다.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에게 아무것도 약속할 수 없다.

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나는 로자 아줌마를 사랑했고 아직도 그녀가 보고 싶다.

.......

 

감정을 쏟을 가치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아르튀르를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고,

그래서 내가 몹시 걱정했기 때문이다.  사랑해야 한다.

 

<p. 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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