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김재혁 옮김 / 이레 / 2004년 11월
평점 :
절판


사랑이라는 것은... 그 누구도 만나고 싶다 해서 쉽게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그 누구도 결코 피해갈 수 없는 하나의 거대한 운명입니다. 그런 때가 있었습니다. 사랑으로 더없이 행복했지만 또 그 사랑으로 눈물 글썽였던...

 

- 박성철, 『누구나 한번쯤 잊지못할 사랑을 한다』 중에서 -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 를 읽으면서 계속 생각났던 구절로 시작을 열어 본다. "누구나 한번쯤 잊지못할 사랑을 한다."는 것을 진리처럼 생각하고 있는 나로서는 이 책의 주인공인 한나와 미하엘의 사랑이 어느 한 시절의 사랑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평생을 두고 마음으로 함께하는 사랑으로 이어지는 것에 무척 공감을 했다.

 

어느 날, 대학생 아이가 나를 찾아와 반짝이는 눈망울을 하며 내게 말하기를, "<더 리더>를 읽었는데 너무 가슴이 먹먹해서 잠을 잘 수가 없었어요. 선생님과 함께 책 이야기를 나눠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로 만들어진 책은 잘 안읽는 나로서는 잠시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고 영화로는 봤지만 책으로는 읽지 못했으니 다음 주에 만나서 깊이 얘기를 해보자고 했고 그런 이유로 이 책을 급하게 찾아  읽게 되었다. 영화로 무척 감명깊게 보았던 터라 책을 읽을 때는 그 영상들의 도움을 받아 더욱 집중하며 읽을 수 있었다.

 

15살의 남자 아이와 36살의 여인과의 사랑. 우리의 상식적인 생각으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터부시할 만한 이야기일 수 있겠지만 사연많은 36살의 한나에게도.. 언제나 그녀를 찾아가는 어린 미하엘에게도 그건 분명, 사랑이었다.

 

다음 날 그녀와 만났을 때 그녀에게 키스를 하려고 하자, 그녀는 몸을 뺐다. "그전에 먼저 내게 책을 읽어줘야 해." 그녀는 진지했다. 나는 그녀가 나를 샤워실과 침대로 이끌기 전 반 시간 가량 그녀에게 <에밀리아 갈로티>를 읽어주어야 했다. 이제는 나도 샤워를 좋아하게 되었다. 내가 그녀의 집에 올 때 함께 가져온 욕망은 책을 읽어주다 보면 사라지고 말았다. 여러 등장인물들의 성격이 어느 정도 뚜렷이 드러나고 또 그들에게서 생동감이 느껴지도록 작품을 읽으려면 집중력이 꽤 필요했기 때문이다. 샤워를 하면서 욕망은 다시 살아났다.

 

책 읽어주기, 샤워, 사랑 행위 그러고 나서 잠시 같이 누워있기 - 이것이 우리 만남의 의식이 되었다. 

 

<p.49>

그들의 의식행위에 있어 책읽기는 미하엘에게는 그저 그녀를 행복하게 하기 위한, 그리고 사랑행위를 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었지만 글을 읽지 못하는 한나에게는 미하엘이 읽어주는 책 이야기가 인생의 또다른 세상이었던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글을 읽지 못한다는 이유로 친위대의 수용소 감시원이 될 수 밖에 없었고 자신의 약점이 드러날까 두려워 미하엘 곁을 떠나 도망칠 수 밖에 없었던 그녀의 아픔이 그 당시에는 미하엘에게는 숨겨진 사실이었다. 세월이 흘러 대학생이 된 미하엘이 재판장에서 그녀를 만났을 때에야 그는 그녀의 과거와 함께 그녀가 글을 읽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는 한나가 끝까지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모든 죄를 뒤집어 쓰는 과정을 지켜봐야만 했다.

 

그녀는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한다..라고 판사에게 이야기만 했어도 한나가 무기징역으로 오랜 세월을  감옥에서 지내는 일이 없었겠지만 미하엘은 차마 그렇게 말할 수가 없었다. 그녀가 모든 죄를 뒤집어 쓰고서라도 지키고픈  그녀의 마지막 자존심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미하엘의 발언 한 마디로 한나의 인생이 바뀔 수 있었음에도 미하엘이 그냥 잠자코 있었던 것이 영화를 볼 때는 이해가 안 되었지만 책을 읽으면서 미하엘의 선택에 나또한 공감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게르트루트와 함께 지내는 것과 예전에 한나와 함께 지냈던 것을 비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는 게르트루트와 포옹할 때마다 이게 아닌데 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녀의 손길이나 감촉, 그녀의 냄새와 맛, 그것은 내가 찾던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러한 것도 시간이 지나면 극복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러한 것이 사라지기를 바랐다.

나는 한나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이게 아닌데 하는 느낌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p. 184> 

미하엘은 결혼을 했지만 어린 시절 그에게 욕망을 일깨워주고 자신의 몸과 마음에 깊이 박힌 한나로 인해 결혼에 실패하고 만다. 그렇게 성장해서도 다른 사람을 마음에 두지 못하는 미하엘과 한나와의 인연은  미하엘이 감옥에 있는 한나에게 책을 읽은 것을 녹음하여 보내는 것으로 다시 이어지고 한나는 결국 미하엘의 도움으로 글을 읽고 쓰게 되어 미하엘에게 짤막한 문장의 편지도 보내게 된다.

 

이렇게 사연많고 슬픔많은 한나에게 미하엘은 어떤 의미일까... 그녀의 인생을 두고서 아마도 마음에 품은 단 하나의 사랑이지 않았을까... 책을 읽어준다는 의미는 그녀의 삶과 약점을 다 이해하고 품어주겠다는 의미로 한나에게 남지 않았을까... 한나가 석방하는 날 아침에 그렇게 떠난 것도 미하엘에 대한 사랑과 자신의 사랑을 보호하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하고 싶다.

 

한나가 미하엘을 만난 것은 기적같은 일이고 아름다운 일이지만 미하엘에게 있어서 한나를 만난 것은 슬픈 일이며 잘못된 만남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혹여나 가슴 아프고 마음아픈 사랑일지라도 인생을 살면서 그렇게 마음에 꽉차게 품은 사람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사랑했던 기억이 있다는 것 자체가 아름다운 일이니까.

 

우리는 오늘도 사랑하며 산다. 마음을 어루만지고 서로의 삶을 어루만지는 사랑을 오늘도 진행하며 산다. 그 사랑들 가운데 한나와 미하엘처럼 함께 하지 못하고 평생을 마음에 품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할지라도, 감사하자. 그렇게 잊지 못할 사랑 하나, 보석같은 사랑 하나 마음에 품고 있음에 감사하자.

 

내가 좋아하는 피천득님의 글귀로 한나와 미하엘의 가슴아픈 사랑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고 하고,

일생을 못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 피천득님의 <인연> 중에서 -  

 

 

 

 

 

 

 

 

 

 

*

피천득님의 인연으로 결론을 맺은 것을 보시고 어느 분이 선물로 주신 시다. 감사한 마음으로 옮겨본다.

 

 

버릴 수 없는 인연  /  이민숙          

 

소리내어 말하지 못한 사랑이 있다면

가슴에 담아두고 무너지듯 아파 오는 사랑이 있다면

한 방울 눈물로도 씻어낼 수 없는 사랑이 있다면

눈물이 다 마르도록 울어도 버려낼 수 없는 사랑이 있다면

차라리 잊으려 벗어 버리려 하기 보다는 가슴에 더 깊이 심어 두렵니다

 

어찌합니까 어쩌란 말입니까

그저 사랑해서 아픈 가슴을

내가 떠 올리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베어 비울 길 없는 사랑을

그저 운명으로 당신을 받아 들입니다

 

 뼛속 깊이 알알이 묻혀서 떨어지지 않는 감정이란 선에서

서로 묶여 있을 인연이라면

그 인연 어떤 시련이 몰아쳐도 받아 들입니다

 

피를 토해내며 내 목숨을 앗아 간다해도 버릴 수 없는 것

그것 하나는 당신과의 인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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