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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나날
제임스 설터 지음, 박상미 옮김 / 마음산책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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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삶의 한계를 받아들였다. 이 고뇌와 이 만족이 그녀를 우아하게 했다."

 

 

제임스 설터의 「가벼운 나날」에서 마음에 드는 문장을 만났다.

오늘도 그 문장을 음미하며 "그녀" 대신 내 이름을 넣어 읽고는 흐뭇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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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연인을 절망으로부터 지켜 내는 일이다. 그것은 연인이 무심코 "죽겠다." 라고 말할 때 "정말로 죽을 생각이 아니라면 아무렇게나 죽겠다고 말하지는 마요." 라고 말하는 일이고, 정전이 되었을 때 제일 먼저 연인에게 전화를 걸어 이쪽도 역시 캄캄하다고, 나는 당신과 같은 어둠 속에 계속 있을 것이라고 말해 주는 일이며, 잠을 못 자는 연인에게 밤 아홉 시에 달려가 함께 배드민턴을 치자고 말하는 일이다.
_ 황정은, 『百의 그림자』, 신형철 해설 中
  
*
  
며칠을 꼬박 신경숙의「외딴방」을 읽고, 뒤이어 읽어내려간 소설이「百의 그림자」다. 황정은의, 특유의 느리고도 차분한 목소리 덕분에 소설 속 은교의 목소리를 따라가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그녀의 목소리를 입혀도 어색하지 않은, 왠지 그녀를 닮은 주인공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무재와 은교의 대화가 마음에 들었다. 은교씨... 무재씨... 하면 어김없이, 네... 하고 대답하는 그들의 대화, 그리 특별할 것도 없는 그들의 대화가 그렇게 마음에 들 수가 없었다.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열정적인 감정 하나 섞여 있지 않지만 사랑은 이렇게 시작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사랑은 이렇게 담담하고도 애틋하게 녹아들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해설을 읽고나면 그만 할 말이 없어진다. 신형철의 해설은 더욱 그렇다. 내 생각은 간데없고 신뢰하는 평론가의 생각을 그대로 내 안에 담고 마는 것이다. 나의 두서없던 생각들, 그리고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들을 조목조목 펼쳐가는 그의 해설. 그래서 이 소설이 더 좋았는지도 모르겠다.


2014.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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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편견과 소통에 대해 말한다. 부정적인 견해만 편견인 것은 아니다. 내가 몸으로 체험하지 못한 앎, 한 번도 반성해보지 않은 앎은 모두 편견일 수 있다. 이를테면 맹인이 아닌 자가 맹인에 대해 갖고 있는 견해란 것은 제아무리 발버둥쳐도 편견의 테두리 밖에 있기 어렵다. 그 편견은 어떻게 깨어지는가. 이와 같은 질문을 던지는 소설은 많다. 그러나 편견이 녹아 내리는 과정을 이렇게 자연스럽고 힘 있게 그려내는 소설은 많지 않다. 


소설을 쓰고 싶어하는 후배들에게 가끔 주제넘은 충고를 한다. 나 자신은 소설을 단 한 줄도 써본 바 없으면서 말이다. "인물의 내면을 말로 설명하겠다는 생각을 접어라. 굳이 말해야 한다면, 아름답게 말하려 하지 말고 정확하게 말해라. 아름답게 쓰려는 욕망은 중언부언을 낳는다. 중언부언의 진실은 하나다. 자신이 쓰고자 하는 것을 장악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 장악한 것을 향해 최단거리로 가라. 특히 내면에 대해서라면, 문장을 만들지 말고 상황을 만들어라." 그러고는 덧붙인다. "카버를 읽어라."


- 신형철 산문, 『느낌의 공동체』중에서.

 

"자네 인생에 이런 일을 하리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겠지. 그렇지 않나, 이 사람아? 그러기에 삶이란 희한한 걸세. 잘 알다시피. 계속해 멈추지 말고." (p.309)

  

나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나는 우리집 안에 있었다. 그건 분명했다. 하지만 내가 어디 안에 있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이거 진짜 대단하군요." 나는 말했다. (p.311)

  

레이먼드 카버, 『대성당』 중에서. 
















그는 맹인 로버트에게 대성당에 대해 말로 설명해보려 하지만 실패한다. 처음으로 시도하는 맹인과의 소통이 힘겹다. 그런 그에게 로버트는 대성당을 함께 그림으로 그려보자고 제의하고 그의 손에 로버트 자신의 손을 얹어 함께 그림을 그리기(그가 그리는대로 로버트는 따라가는) 시작한다. 그러는 과정 중에, 로버트는 그에게 눈을 감은 채 계속 그림을 그려보라고 한다. 맹인이 세상을 바라보는 감각으로 로버트가 그를 이끌고 들어가는 장면이다. 내가 살아보지 못한 삶에 대한, 신형철 평론가의 말을 빌어 "내가 몸으로 체험하지 못한 앎"에 대한 그의 "편견이 녹아내리는 장면"인 것이다. 

 

신형철 평론가의 산문,『느낌의 공동체』중에 레이먼드 카버 편을 읽다가 다시『대성당』을 펼쳐 읽었다. "부정적인 견해만 편견인 것은 아니다. 내가 몸으로 체험하지 못한 앎, 한 번도 반성해보지 않은 앎은 모두 편견일 수 있다." 라는 문장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을 듯 하다. 오늘 밤, 정성스레 마음에 새겨본다. 



2014.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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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
산도르 마라이 지음, 김인순 옮김 / 솔출판사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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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문제들은 결국 언제나 전 생애로 대답한다네. 
그동안에 무슨 말을 하고 어떤 원칙이나 말을 내세워 변명하고, 이런 것들이 과연 중요할까?
결국 모든 것의 끝에 가면, 
세상이 끈질기게 던지는 질문에 전 생애로 대답하는 법이네. 
너는 누구냐? 너는 진정 무엇을 원했느냐? 
너는 진정 무엇을 할 수 있었느냐? 


- 산도르 마라이, <열정> 중에서


오늘을 사는 나는... 무엇을 잃었고, 무엇을 얻었나. 
물음에 대한 답을 정리하고 걸을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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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 - 시드니 걸어본다 7
박연준.장석주 지음 / 난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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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 온다는 사실보다 때로 밤이 온다는 사실에 더 위안을 받는다. 
밤은 뒤척일 수 있다. 
아무 것도 안 할 수도, 울 수도, 잘 수도, 꼬박 샐 수도 있다. 
밤은 잉여다. 선물이고, 자유다.


박연준, 장석주 에세이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 중에서 
 

"밤은 잉여다. 선물이고, 자유다." 

밤이 되면 또다른 삶이 시작된다. 
낮의 피로는 밤의 새로운 에너지에 녹아 사라진다. 
책을 읽고, 사랑의 대화를 나누고, 공부를 하고, 일기를 쓴다. 

낮은 나를 요구하고 밤은, 자신을 온전히 내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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