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연인을 절망으로부터 지켜 내는 일이다. 그것은 연인이 무심코 "죽겠다." 라고 말할 때 "정말로 죽을 생각이 아니라면 아무렇게나 죽겠다고 말하지는 마요." 라고 말하는 일이고, 정전이 되었을 때 제일 먼저 연인에게 전화를 걸어 이쪽도 역시 캄캄하다고, 나는 당신과 같은 어둠 속에 계속 있을 것이라고 말해 주는 일이며, 잠을 못 자는 연인에게 밤 아홉 시에 달려가 함께 배드민턴을 치자고 말하는 일이다.
_ 황정은, 『百의 그림자』, 신형철 해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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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을 꼬박 신경숙의「외딴방」을 읽고, 뒤이어 읽어내려간 소설이「百의 그림자」다. 황정은의, 특유의 느리고도 차분한 목소리 덕분에 소설 속 은교의 목소리를 따라가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그녀의 목소리를 입혀도 어색하지 않은, 왠지 그녀를 닮은 주인공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무재와 은교의 대화가 마음에 들었다. 은교씨... 무재씨... 하면 어김없이, 네... 하고 대답하는 그들의 대화, 그리 특별할 것도 없는 그들의 대화가 그렇게 마음에 들 수가 없었다.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열정적인 감정 하나 섞여 있지 않지만 사랑은 이렇게 시작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사랑은 이렇게 담담하고도 애틋하게 녹아들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해설을 읽고나면 그만 할 말이 없어진다. 신형철의 해설은 더욱 그렇다. 내 생각은 간데없고 신뢰하는 평론가의 생각을 그대로 내 안에 담고 마는 것이다. 나의 두서없던 생각들, 그리고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들을 조목조목 펼쳐가는 그의 해설. 그래서 이 소설이 더 좋았는지도 모르겠다.


2014.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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