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은 마음에 남아 - 매일 그림 같은 순간이 옵니다
김수정 지음 / 아트북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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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벽난로 같은 무언가가 없다면 하나쯤 만들어야 한다.
찾아가면 언제나 마음이 편안해지는 곳,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는 곳.

- 대프니 로즈 킹마, <인생이 우리를 위해 준비해 놓은 것들> 중

그림에는 문외한이지만 인터넷에서 검색한 그림들이나 책을 들여다보며 몇 시간이고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내 맘 같기도 한 그림들에 나를 투영시키면서 깊이 위로받기도 하고 그림 안에서 쉼을 누리며 그림과 말없는 교제를 이어왔다. 그렇게 세월을 지나면서 공부하지 않아도 절로 외워진 화가의 이름들과 보기만 해도 반가운 그림들이 생겼다. 그림과 책, 그리고 사진은 조급함 없이 늘 그 자리를 지키면서 언젠가는 너와 내가 만날 것을 기대하며 고요하게 자신을 밝히고 있다. 

그런 내게 찾아온 한 권의 책이 있으니, 김수정의 첫 미술 에세이『그림은 마음에 남아』이다. 그림과 에세이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아트북스 뿐만 아니라 여러 출판사에서 나온 미술 에세이를 소장하고 있다. 작가마다의 시각이 다르고, 감성의 온도가 다르기에 같은 작품이어도 늘 새롭게 다가왔다. 하지만 그림을 바라보는 시선과 문장이 꼭 내 맘 같아서 한 문장 한 문장을 다정하게 쓰다듬게 되는 미술 에세이는 처음이었다. 빨리 읽어야지 하던 마음이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넘길수록 속도는 느려졌고 그림 앞에서, 문장 앞에서 멈추어 선 시간이 많았다. 

인간의 기억과 시선은 작은 호출에도 크게 응답합니다. 그림과 내가 마주할 때 주어지는 것은 늘 '그림은 내 편' 같은 따뜻한 위로입니다. 6쪽

그녀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느끼는 감정들 앞에 솔직하다. 자주 외로움과 고독 앞에 무너져 연약한 꽃잎 같기도 한 그녀지만 그러한 그녀를 지탱하는 줄기는 단단하고 뿌리는 땅 속 깊은 곳까지 뻗어있음을 글들의 고백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녀의 고백을 들여다 보자. 

인생의 맷집을 키우는 일은 지난하다. 사는 일 별 것 있나. 잘하는 일 못하는 일 모두 버텨야 하는 일 투성인 것을. 위대한 알베르트 에델펠트조차도 기약 없는 긴긴 시간을 버티기만 하지 않았던가. 버티는 건 미래에 대한 예의고, 인내는 나중에 만날 비밀의 몸값이다. 그러니 한 번쯤은 살아볼 만하지 않은가. 생은 항상 제멋대로라 대개 서운함을 안겨주지만 가끔 충격 넘치는 반전도 선사하므로. 부디 이번 생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해 해피엔딩으로 가자. 47쪽

흔들림의 하루하루를 통과하며 내가 알게 된 것은 '인생은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이며 인간에게 주어진 매일은 '균형의 연습'이라는 사실이다. 그렇게 균형을 맞추는 과정에서 작고 큰 선물을 받는다. 이제 나는 인간이 그저 한 인간 이상이라는 것을 안다. 인간은 물질적이거나 생물학적인 존재가 아니다. 인간은 시간과 의미를 겹겹이 올리는 존재다. 목숨의 길이만큼 격을 쌓는 특별한 존재다. 96쪽 


그녀의 문장들을 읽고 있으면 그녀가 얼마나 생의 깊은 곳까지 들여다보는 눈을 가졌으며 절대고독과 외로움과 생의 처절함 앞에서 넘어지고 일어서고를 반복하여 끝내는 자신의 삶에 대한 예민함이 영민함과 지혜로, 그리고 강인한 삶의 의지로 승화되었음을 알게 된다. 그녀의 손끝으로 써내려간 고백들이 그냥 나온 문장들이 아니라 삶으로 겪어내고 견뎌내어, 온 마음으로 진하게 우러나오는 글들임을 확인할 때에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기가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닌 것이다. 





그림을 바라보는 시선에서도 절절한 마음이 느껴진다. 나도 그만 그 그림 앞에서 눈물 한 방울, 또르르 흘리고플 정도로 그림이 아니라 그 그림 안의 감성을 읽어낸다. 그녀가 들려주는 작가들의 삶 또한 너무도 인간적이어서 아주 친근하게 다가와 그들의 그림이 한층 더 가깝게 느껴진다. 그녀가 그림을 바라보듯이 세상을 바라보고 사람을 바라본다면 그 안의 깊은 마음까지 들여다 보는 눈을 가졌으리라. 그래서 더 많이 아프고, 더 많이 슬프겠지만 세상에 숨은 보석을 찾아내는 눈 또한 지녔으니 더 많이 행복으로 충만한 삶을 살고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림을 통해서, 그림을 읽어주는 사람을 통해서 깊이 위로받고 싶다면 김수정의 『그림은 마음에 남아』를 읽어보시길 권한다. 그림도 마음에 남겠지만, 그녀의 문장들도 마음에 남아 오랫동안 위로받을 것이다. 아주 오랫동안 이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할 것이다. 그런 책을 만났다는 것에 깊이 감사할 것이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마지막으로, 그녀와 늘 함께 하며 그녀가 머무는 곳곳에 메모되어 있는 문장으로 마무리하려고 한다. 

삶이란 그 모든 비극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름다울 수 있다. 나는 지금 예순일곱 살이다. 그러나 나는 마침내 지금, 나 자신으로서 사랑받지 못했기 때문에 청춘이 없었던 나로서는 그 어느 때보다도 지금, 곧 인생이 끝나게 되겠지만, 젊게 느껴진다. 그렇다.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 

_루이 알튀세르,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 권은미 옮김, 돌베개,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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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아 2018-05-02 19: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림에는 문외한‘이 없다고 생각해요. ‘안나‘님은 이미 탁월한 안목이 있으신 거랍니다~~^^

안나 2018-05-02 19:19   좋아요 0 | URL
어머낫, 그렇게 말씀 주시니 부끄럽기만 한데 미소가 감춰지질 않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

라로 2018-05-03 04: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림엔 누구나 문외한이면서 문외한이 아니라는 생각을 늘 했어요. 저는 남편이 그림을 전공했는데도 문외한인데 비해 님의 글을 읽어보면 필리아 님의 말씀대로 안나님의 탁월한 안목이 느껴져요. 글 아주 좋아요!

안나 2018-05-03 13:32   좋아요 0 | URL
라로님 ^^ 필리아님과 라로님의 말씀을 통해 그림을 아는 지식보다 어떻게 바라보고 느끼느냐가 더 중요하단 걸 다시금 느끼네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책이 너무 좋았기도 했구요. 남편분 덕분에 그림을 더 많이 접하실 라로님이 부럽습니다. ^^

cyrus 2018-05-03 21: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림을 보면서 다양한 생각을 한다거나 감정을 느낀다면 그림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생각해요. 그림을 보고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않다면 그림에 대해 모를 수밖에 없어요. ^^

안나 2018-05-04 01:21   좋아요 0 | URL
이로써 저는 그림에 문외한이 아닌 걸루 판명된 건가요? ^^ 그러고보면 그림을 바라보면서 온전히 교감하고 위로받고 나름의 방식으로 이해한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고맙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