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유독 그 사람이 힘들다
배르벨 바르데츠키 지음, 김세나 옮김 / 와이즈베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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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생활의 어려움에는 대인관계에 있다. 직장 상사 뿐만아니라 주변인들조차도 상처를 받는 경우가 일상다반사다.  게다가 환경의 영향인지 , 시대탓인지 모르겠지만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사람들이 두드러져 보인다. '나르시시즘'하면 자기중심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 바로 연상되어지곤 하는데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들 대부분이 이런 자기중심적 사고가 강하다. 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나르시시즘'이 자존감이라는 날개로 날수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존감으로 포장되곤 하는 자기중심적 사고는 자신에게 엄하고 남에게는 관대하라는 공자의 말을 가감하게 무시하게 된다. 자신에게 후하고 남에게는 엄격한 자기중심적 사고의 이면에는 바로 이런 나르시시즘이라는 기조가 존재한다.

 

 독일 최고의 심리상담가 배르벨 바르데츠키는 이런 '나르시시즘'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에 주목하여 무려 34년간의 연구와 실험을 하였다. 그는 조직 내 인간관계를 좀먹고, 지속적으로 개인의 내면을 파괴하며 우울, 중독, 번아웃 등의 심리장애 및 조기퇴사의 원인이 바로 나르시시즘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밝힌다.  

  

저자는 나르시시즘을 하나의 질병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며, 다음과 같이 진단하고 있다.

1, 누군가로부터 비판받으면 나르시스적 인격은 분노와 수치심, 굴욕감을 느낀다. 이 인격은 그 어떤 잘못도 인정하지 않으며 자신의 실수를 부인한다.

2,나르시스적 인격은 오직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을 이용하면서 착취 관계를 형성한다. 이 인격은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일은 불필요하다고 여긴다. 즉 타인가의 공감 능력이 제로다.

3,나르시스적 인격은 자만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의 과도한 자존감을 가지고 있다. 실제 모습보다 자신을 더 크게 바라보며, 이 세상에 오직 자기 자신과 자기의 문제만 있다고 생각한다.

4,나르시스적 인격은 자신이 무한히 강하고, 크게 성공했고,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늘 특별히 대접받기를 원한다.

5,나르시스적 인격은 부단한 관심과 감탄을 요구하며, 시기심도 강하다.

6,나르시스적인 인격은 주목받지 못할 경우 심각한 자기애의 위기에 이르며, 자살 충동도 느낀다. 

 

나르시시즘의 전형적인 인물은 애플의 경영자 시티브 잡스로 꼽고 있는데,  스티브잡스는 완벽하지 않으면 모든 이들에게 폭언과 인격을 모독하는 말을 서슴지 않게 헀던 그는 위험한 정신병적 나르시시즘으로 분류된다고 한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갑질로 인해 문제를 일으키는 요인에는 이러한 정신병적 나르시시즘이 발동한 것으로 볼 수 있다하지만 나르시시즘을 정신병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우리의 내면에는  나르시시즘이 도사리고 있다. 본능처럼.  그렇기에  이 나르시시즘을 보다 긍정적이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흐르게 하도록 독려할 필요가 있다. 뿐만 아니라 책에는 나르시스적인 사람들과의 관계를 원만하게 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행동패턴과 행동양상에 대한 분석도 다루고 있다. 지독히 자기 자신밖에 모르는 사람들은 실제로는 자기 자신을 모르는 사람들이며, 이들은 항상 불안감과 자존감사이를 왔다갔다하며 나약함과 갈등으로 괴로워하는 나르시스트들이다.  

 

 저자는 이들의 내면이 불안정하게 형성되는 과정을 밝히며 심리적 방어기제로서 유년기 경험에서 비롯하여 사회 구조가 어떻게 나르시시즘을 충동질하는지를 보여준다 권력과 카리스마로 지배하고 군림하려드는 스타일의 독재자형’,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보살펴주는 대신 헌신과 조수노릇을 요구하는 위대한 후원자형, 능력을 과시하며 지키지 못할 약속으로 사람들을 매혹하려 드는 현혹자형을 비롯해, 자기 능력에 대해 은밀하게 회의하고 갈등하는 경향이 심하며 성과로 보상받으려는 여성적 나르시시즘, 권력 지향적이고 경쟁적인 남성적 나르시시즘 유형 등 다양한 나르시시즘이 발현하는 양상들을 짚어준다이런 분석을 통해 나르시스적인 사람들과 어느 부분에서 마찰을 빚는지, 어떤 시각에서 이들에게 접근해야 하는지 그 단서를 발견해나갈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나르시시즘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기중심적 사고는 현대를 살아가는데 가장 필요한 사고이기도 하다. 성공지향적인 사회에서 자기중심적이지 않다면 성공은 절대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런 나르시스트와 함께 생활하는 것은 때론 곤혹스럽다. 자기확신이 너무 강해 주변인들을 힘들게 하고, 타인에 대한 배려가 결여되어 있어 동업자로서는 최악의 파트너이다.  그래서인지 저자가 나르시스트를 분석한 내용들이 남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또한 내 안에도 나르시시즘이 얼마나 많이 잠재되어 있는지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재미있는 심리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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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감으면 보이는 것들 - 월가 시각장애인 애널리스트가 전하는 일상의 기적
신순규 지음 / 판미동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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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일찍 노환이 찾아온 것 같다. 아직 읽어야 할 책도 많은데 노환으로 근시가 찾아오자 안경을 쓰면 눈이 아프고 안경을 쓰지 않으면 멀리 있는 것은 전혀 보이질 않으니 보인다는 문제가 이처럼 신경 쓰인 적이 없다. 안경을 새로 맞출까 해서 안경집에 찾아갔더니 노환은 딱히 방법이 없다는 말만 듣고 왔다. 이제까지 과도하게 사용할때는 몰랐는데 막상 불편함이 느껴지자 그동안에 보며 살아왔던 일들이 한편으로는 감사해지기도 했다.  

 

며칠 전 월차를 내고 포항 호미곶을 다녀왔다. 차안에서 잠깐 몇 자 읽어보려 눈감으면 보이는 것들을 펼쳐놓고는 아뿔사 읽는내내 눈물이 났다. 시각장애인인 그가, 장애라는 장애물을 가뿐히 넘어 증권의 가치를 분석하며 인정받는 애널리스트로 성공한 그가 ,  보지 못한다는 슬픔을 격하게 느꼈을 때는 다름아닌 아이의 얼굴이 보고 싶을 때였다고 할때,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단번에 알아버렸기 때문이었다. 보는 것의 소중함과 보지 못한다는 슬픔은 그것으로 충분히 가슴에 밀려들어왔다. 이후 난 바닷가에서 보는 모든 것들에 감사했다. 포항으로 떠나기 전 권태로 쭈글쭈글 늘어졌던 마음주름이 바다바람이 들어가자 다시 팽팽해졌다. 짧은 찰나였지만 그날 그 시간, 차 안에서 읽는 한 문장으로  마음주름을 펴기에는 충분했다. 나는 적어도 아이를 매일 볼 수 있었고, 적어도 현재라는 시간위에 서 있었다. 그것이 위로이자 희망이었다. 보기 때문에 잊고 있었던 기적, 그것을 보지 못하는 이가 가르쳐 준 것이다.

 

헬런 켈러는 이런 말을 했다. 자신이 대학총장이 된다면 눈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한 필수과목을 만들거라고, 저자 신순규는 눈이 보이지 않지만 자신의 눈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이었다. 그것은 그가 시각장애라는 장애물 앞에서도 성공한 삶으로 이끌어 주었던 마음의 토대였다. 그는 수많은 정보 가운데 가치 있는 품목을 고르기 위해서는 이 '보이지 않는 것'의 가치를 알아야 한다고 한다. 그에게 삶은 증권시장에서 가치를 찾아내는 것과 다르지 않다.  녹내장과 망막박리로 시력을 온전히 잃은 후에도 도전과 응전의 정신을 잃지 않았고  피아니스트의 꿈이 좌절되었을 때도, 결혼후  아이가 생기지 않았을 때도, 직장을 구할 때에도, 보여지지 않는 삶의 가치에 충실하며 일궈온 마음밭의 궤적들이 이 책안에 절절히 담겨있다.

 

목적에서 눈을 떼면 보이는 것은 장애물뿐이다.”

 

시각장애인은 눈을 통해서 볼 수 있는 권리를 잃은 사람이다. 하지만 현대인 대부분은 보지 않아도 되는 것을 거부할 자유를 자발적으로 포기하고 사는 듯하다. 그래서 정적 보아야 할 것들, 부모의 사랑을 갈망하는 아이들의 눈빛, 화가 났을 때도 감출 수 없는 엄마의 애틋한 표정, 외로움으로 어두워진 배우자의 얼굴빛 등을 보지 못한다. 대중매체나 소셜 네트워크에 사로잡히기 쉬운 오늘, 거기에서 눈을 떼고 사랑하는 이들의 얼굴을 자세히, 더 자주 바라본다면, 세상의 소음에서 빠져나와 우리에게 소중한 신호를 더 의식하는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카프카는 물 위를 걷는 것이 기적이 아니라, 땅 위를 걷는 것이 기적이라 했다.시력이 급속도로 저하되면서 나는 비로소 카프타의 기적을 배운다.  이제까지 이렇게  본다라는 당연한 사실에 감사한 적이 없었고, 노환이라는 육체의 무너짐을 깨닫지 못했더라면, 저자의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깊은 슬픔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저자의 글을 읽으면서 매일 아침 눈을 뜨고, 아이를 보는 이 단조로운 일상의 순간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되뇌이곤 했다.  저자는 아름다운 삶의 귀감 그 자체였고,  무엇보다 그 이력들 속에 녹아있는 도전과 응전의 과정을 내 아이들에게도 물려줄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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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일하는 이유 - 얼떨결에 서른 두리번거리다 마흔 내 인생을 찾는 뜨거운 질문
도다 도모히로 지음, 서라미 옮김 / 와이즈베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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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 상실 증후군이라는 말이 있다. 무의식중에 서서히 익숙해지면 빠져나올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프랑스에는 삶은 개구리요리가 있다. 손님이 앉아있는 식탁위에서 바로 조리를 할 수 있도록 버너와 냄비를 가져다 놓고 요리하는 음식이다. 이때 물이 너무 뜨거우면 개구리가 펄쩍 튀어나오기 때문에 따뜻할 정도의 온도에 개구리를 담가 놓는다. 따뜻한 물온도에 기분이 좋아진 개구리는 엎드려 있다 이내 잠이 든다.  점점 데워지는 온도에 자기가 삶아지는 것도 모른 체 기분 좋게 죽어가는 것이다. 이처럼 사람도 사람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방향조차 모르고 있다면 현실의 안일함에 빠져 위기가 닥친지도 모른채 서서히 죽어가는 개구리의 모습을 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할 때이다. 

 

사회생활을 한지 20년 정도 되는 것 같다. 20년동안 세 번의 직업이 바뀌었는데, 직업군이 세 개가 전혀 연관성이 없다. 지금의 직장도 적성에 맞지 않아 여러 번 그만두려고 했는데 어찌어찌 지내다보니 벌써 5년이 되어간다. 딱히 불만은 없지만, 요즘의 나를 보면 마치 냄비 속의 개구리처럼 안일함과 나태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젊었을 때의 패기나 열정은 찾아볼 수 없고 그냥 등떠밀려 마지못해 일하는 모습이 요즘의 내모습이다. '얼떨결에 서른 두리번거리다 마흔' , 그렇다. 난 두리번 거리고 있다.

 

제목 《내가 일하는 이유》는 직장생활 3년만에 그만두고 이후 새로운 일을 시작하며 마흔 다섯 살에 커리어 컨설턴트 자격증을 따면서 자신이 느꼈던 일의 가치를 재정립해주는 책이다. 이과전공자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 다시 출발점에 섰을 때 마음에 들어왔던 문구는

 

일이란 나의 능력과 흥미,

가치관을 표현하는 수단이다.

그렇지 않은 일은 지루하고 무의미할 뿐이다.

도널드E. 슈퍼

미국의 직업 심리학자

 

 저자는 주어진 인생이라는 응용문제를 풀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이므로, 삶에 주어진 법칙을 이해하면 저절로 이 인생의 응용문제를 풀 수 있는 해답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자신의 경험을 통해 방법을 고민하고 유명한 경구들이 알려주는 지혜가 그 열쇠라는 듯, 책에는 명화와 가슴에 새길만한 경구들이 가득하다. 무엇보다 장황하지 않고 진부하지 않으며, 간결한 명문장들로 이루어져 있어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좋았다.

생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직업이다.

그런데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우연이다.

-파스칼 [팡세]-

 

 

인생의 굵직한 목차를

생각하자

 

저자가 '나에 맞는 일'을 고민할 때 ,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 들만한 일을 찾지 못했을 때 , 자신이 깨달았던 달란트는 '자신처럼 고민하는 사람'을 위한 책을 쓰는 것이었다고 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잘 모르거나 목적이 없다고 고민하기 보다는 인생의 굵직한 '목차'만 정해도 아직 늦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나는 이 대목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열정도 없이 비전 상실 증후군에 잠식되어  심각한 매너리즘에 빠져있던 직장생활에서 삶의 문제는 역시 방향성에 있다는 것을 다시 환기하게 되었다.잊고 있었던 일의 가치를 일깨워주는 동시에 삶의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되새겨 보게 해주는 감사한 책이다. 마지막으로 부록에 실려있는 우종민 교수의 '감곡중의'를 스스로에게 던져보는 것으로 리뷰를 마친다.

 

1단계 감사 이 일에서 감사한 점은 무엇일까?

2단계 목적 이 일의 목적은 무엇일까?

3단계 중요성 이 일은 왜 나에게 중요할까?

4단계 의미 이 일은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큰 목차만 정하자. 대략적인 방향성만 정하는 것이다. 방향성도 정하지 않으면 첫 발을 뗄 수가 없다. 걷다 보면 처음 만들었던 목차가 여러 번 바뀔 것이다. 다양한 것들과 만나게 될 것이다. 나만의 이야기가 떠오를 것이다. 새로운 인생이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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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너비 우먼 - 여성 리더 15인의 운명을 바꾼 용기있는 결단의 순간
김선걸.강계만 지음 / 와이즈베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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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통념상 우리나라에서 성공한 여성은 가정에 충실하면서 사회생활도 잘하는 여성을 의미한다. 이것은 여성의 경제활동 자체를 인정하는 것이라기 보다 가정에 부차적인 활동이 직장이라는 이미지를 갖게 한다. 여성은 임신과 출산, 육아라는 짐을 떠안고 직장을 다녀야 하기 때문에 사회에서도 여성의 일을 주업이 아닌 부업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집안일도 똑부러지게 하고 회사에서도 일 잘하길 원하는 것이 사회통념상 강요되고 있는 현실이다. 그래서인지 전문직에서 성공한 여성들을 보면 금수저를 타고 난 것이 아닐까 하는 선입견이 먼저 들기도 한다.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인 셰릴 린드버그는 그녀의 책 <린인>에서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가장 힘들었던 것은 무엇보다 여성이라는 입장이었다고 한다. 그녀가 여성으로서 리더자리에 오르기까지 싸워야 했던 수많은 고충속에서 그녀는 자신이 여성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남성과 다른 위치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여성이라는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다고 한다.

 

셰릴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여성들도 같은 고충이 있다.  여성의 대학 진학률이나 사회에서 활동 영역은 넓어졌음에도 임신과 출산, 육아등의 이유로 여성의 사회경력은 단절되기 십상이다.  직장에 남는다해도 출산과 육아로 인해 경쟁자인 남성에게  뒤처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일례로 국내 100대 기업 가운데 여성 임원은 단 2퍼센트에 불과하다.

 

이 책<워너비 우먼>은  우리 시대의 여성리더 15인을 밀착 취재한 기록이다. 여성의 사회적 참여와 여성으로서 느껴왔던 인생의 어려운 고비들을 겪으며 통찰했던 삶의 이야기들이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국내 최초 여성 은행장, 최초 여성 중무수석, 최초 고졸 치안경감, 최초 여성 부산경찰청장, 최초 여성 금융 CEO, 최초 삼성증권 여성임원, 포스코 최초 여성임원, 최초 여성 벤쳐 사업가등 이들의 수식어에는 국내 최초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그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 그녀들이 포기해야 했던 것들,  유리천장을 깨고 자기 분야의 1인자가 되기 위해서 수도 없이 내렸을 '인생에서의 가장 중요한 결단’에 대한 체험담을 생생하게 말해주고 있다온갖 리스크와 상황 변수 속에서도 더 넓게, 더 멀리 보고 값진 선택을 할 수 있었던 지혜, 어려움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결단을 추진할 수 있었던 노하우는 무엇인지 , 또한 이들의 인생을 바꾸게 했던 드라마틱한 순간의 이야기는 감동을 넘어서 같은 여성으로서 무한 공감대를 형성한다. 그것은 여성이라면 누구나 고민하게 되는 역할, 엄마이면서 아내로 , 직장인으로서 견뎌야 하는 현실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새로운 것이 있겠어요. 무엇이든 내 것으로 만드는 기술은 바로 열정입니다. 그것은 나이 같은 조건과는 상관없습니다.“

 

긍정적인 마음과 자신감을 갖고 일하다 보면 열정이라는 습관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절대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끈질지게 버티고 기다려야 합니다. 동물들도 새끼를 가진 후엔 모성애를 바탕으로 초월적인 힘을 낸다고 하지요. 그런 슈퍼파워를 잠재력으로 지닌 사람들은 여성뿐입니다. 몸속에 내재된 그 끈질긴 잠재력을 다 발휘하지 않고서는 어떤 분야에서든 성공할 것이란 생각은 안 하는 게 좋아요.”

 

지금의 직장은 나에게 세 번째의 직장이다.  엄마의 손이 많이 필요한 아이들을 보면서 직장으로 인해 많은 관심을 주지 못할 때마다 미안하다. 그렇다고 집안일을 핑계로 직장에 소홀 할 수 없기에 매번 눈치를 보게 된다. 죄책감과 눈치 사이를 저울질 하며 마음에 커다란 짐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 직장인 여성의 고충인지도 모르겠다. 퇴근 후 집에 돌아가면 편히 눕지도 못하고 못다한 가사일을 하고 나면 한밤중이다. 이런 쳇바퀴 돌아가는 삶을 살아가면서 성공하기 위해 모든 장애물들을 뛰어넘은 여성 15인의 이야기가 위대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어쩌면 우리는 여성의 사회생활에 대한 인식부터 바꿔야 할지도 모른다. 직장이  부차적인 것이 아니라 주업이며 아내나 엄마이전에 직장인이라는 개념부터 바로 잡는다면 여성에 대한 지위역시도 자연적으로 향상하지 않을까. 여성이 사회활동에 많이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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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 천명관 장편소설 문학동네 한국문학 전집 19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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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으로는 바닷가에서 사투를 벌일 것만 같은 남성중심의 이야기일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여성들이 주인공이다. 제목처럼 의아했던 것은 주인공의 이름이 봄처럼 화사한 어여쁜 이름인 '춘희'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고래처럼 거대한 여자라는 것이었다. 그 거대한 여자는 '붉은 벽돌 여왕'이라 불리웠는데 천명관은 소설에서 직접 들려주는 화자로 등장한다. 환상적 리얼리즘 문학과 비슷한 전개로 구라의 솜씨가 마누엘 푸익과 모옌, 살만 루슈디의 뺨을 여러 번 칠 정도로 쎄다. (평소 구라가 가장 쎄다 생각해왔던 작가들이다.) 환상적 리얼리즘의 가장 한국적인 작품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 않고 고래라고 할 것 같다.

 

금복

길 가던 사내라면 누구나 한번쯤 돌아보게 만드는 어떤 냄새를 풍기는 금복이 산속 깊은 마을을 도망치듯 빠져 나온 이유도 금복의 냄새에 미쳐버린 홀아버지의 어긋난 욕정을 피해서였다. 도망치듯 생선장수를 따라 바닷가 마을에 도착하여, 생전 처음 본 고래의 크고 거대한 모습에 매료되는데 이때가 바로 그녀의 신산한 삶을 예고하는 순간이다.

 

그때부터 그녀를 충동질하고 아무 때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게 만드는 그 수상한 바람은, 크고 넓은 것에 무턱으로 매료되는 습관과 더불어 평생 그녀의 뒤를 따라다니게 되었다.-p60

 

나이 많은 생선장수와 살다가 거대한 몸집을 가진 걱정을 본 순간 사랑에 빠지게 된 것은 고래를 사랑한 금복에게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러나, 그 거대한 육체의 그림자에 가려져 있던 단순함의 비극으로 인해 걱정의 육체는 주저앉았고, 걱정의 병수발로 금복은 지쳐만 갔다. 그런 금복을 눈여겨 보았던 희대의 사기꾼이자 악명 높은 밀수꾼에 그 도시에서 상대가 없는 칼잡이인 동시에 호가 난 난봉꾼이며 모두 부둣가 창녀들의 기둥서방에 염량 빠른 거간꾼인 칼자국’은 하양 양복을 빼입고 영화를 보여준다. 아무리 금복이 바람끼가 다분하다하여도 '크고 넓은' 걱정을 사랑한 것은 진심이었을 것이다. 이후 걱정의 약값과 금복의 존웨인과 칼잡이의 욕망으로 한 집에 동거를 시작하게 된  것 역시도 당연한 수순이라 할 수 있다. 걱정은 금복에게 '고래'라는 욕망 그 자체였기에 칼자국을 위해서 걱정을 포기되는 남자가 아니었다. 이들의 동거는 걱정의 몸무게가 오백 킬로가 넘을 때까지 평화로왔다. 적어도 폭풍우 치는 밤,  금복과 칼잡이가 엉켜있는 모습을 보고 걱정이 바닷가에 투신하고 ,  걱정을 칼잡이가 죽인 걸로 오해한 금복이 작살로 칼잡이의 배를 관통할 때까지 행복했던 나날이었다. 

 

이후 금복은 바닷가 마을을 떠났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전쟁이 일어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지만 걱정과 칼잡이의 망자가 금복을 찾아와 떠돌이 거지로 유랑을 다닌 덕에 목숨을 부지한 금복이 어느 허름한 코끼리가 사는 헛간에서 아이를 낳았다. 쌍둥이 자매의 마구간에 말처럼 키우는 코끼리가 있는 곳이었다. 쌍둥이 자매의 극진한 보살핌 덕에 어느 정도 몸을 추스르게 되자 인적 없는 깊은 산속 마을에 정착한다.금복의 인생 2막이 열리는 공간인  평대이다.

 

노파

여기서 시간은 거슬러 올라가 먼먼 옛날의 노파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금복이 일곱 살에 이미 백키로가 넘은 딸 춘희를 데리고 시작한 국밥집의 오랜 주인이자, 삶의 업보이며, 고래의 꿈을 이루어주는 장본인이 바로 '노파'이기 때문이다. 노파는 고래와는 또다른 리비도의 형태이며, 금복의 운명에 영향을 미치는 원혼이다. 노파의 이야기는 이렇다.

 

 얼굴이 박색인 노파는 부엌데기를 전전하다 평대에 들어와 국밥집을 하기 시작했는데, 노파에게는 딸 하나가 있었다. 딸은 대갓집 종살이를 할 때 돌보던 반편의 여식으로 반편은 걱정처럼 거대했고, 거대한 남근을 가지고 있었다. 나이가 서른이 넘어서도 워낙 박색이라 남자를 알지 못했던 그녀가 어린 반편이와 정을 통한 것이 들통이 나자 모질게 매맞은 채 대문 앞에 버려진다. 이후 세상을 향해 복수를 다짐하며 악착같이 돈을 모은다. 한편 딸에게는 정말 나쁜 엄마였다. 반편이를 빼닮았다는 이유로 눈 하나를 찔러 애꾸로 만들고 자신과 운우의 정을 나누던 곰보가 딸을 간음하자 벌치기에게 벌 두통에 딸을 판다. 돈에 악착같이 집착하며 살지만, 어느 겨울날 집앞 빙판에 미끄러진 후 두 번 다시 일어나질 못한다. 냉방에서 굶어가며 똥오줌에 범벅댄채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던 노파를 찾아 온 손님은 세상에서 유일하게 하나 있는 핏줄이었던 반편의 딸이었다. 그러나, 애꾸딸은 노파가 악착같이 모은 돈을 찾을 뿐 아픈 어머니에게는 관심도 없다. 돈을 찾다찾다 못찾은 애꾸딸은 몸싸움을 하다 노파를 벽에 밀치고, 질기고 질겼던 그녀의 일생은 뇌진탕으로 마감된다. 평생을 돈만 벌었던 그녀의 돈은 어디에 있을까.

 

이야기는 다시 금복의 국밥집으로 돌아온다. 노파의 돈은,  정확하게 말하자면 금복의 머리위로 쏟아졌다. 평생 돈에만 집착하면서 악착같이 모은 그 돈은 장맛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 물을 머금은 채 금복의 머리위로 떨어져 내렸고 금복은 그 돈으로 벽돌공장과 찻집에 이어 다방과 운수업, 이어 고래극장까지 오픈하며 세속에서 누릴 수 있는 성공을 연타석 홈런으로 쏘아 올린다. 게다가 금복은 평생의 숙원이었던 '고래'가 되어 있었다. 노파의 욕망이 돈으로 향해 있던 것처럼 금복의 욕망은 남자였다. 남근에 대한 원초적인 동경이 내재화된 결정체는 바로 그녀 자신이 고래가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가 바라던 궁극,

즉 스스로 남자가 됨으로써 여자를 넘어서고자 했던 것이다.

 

춘희

그럼 그녀가 낳은 딸아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일곱 살에 이미 백 킬로그램이 넘은 딸 춘희는 말을 하지 못했다. 게다가 걱정의 죽음이후 4년이라는 터울이 있음에도 걱정을 빼닮아 금복은 춘희를 더욱 미워했다. 금복은 마치 노파가 환생한 것처럼 노파의 삶을 그대로 답습한다. 다른 것이 있다면 금복에게는 남자를 홀리는 '어떤 냄새'가 있었고, 노파는 '반편'이나 짝이 될 정도로 박색이었다는 것이다. 노파가 오로지 '세상을 향해 복수할 것'이라는 일념으로 악착같이 돈을 모으며 살았듯이 금복은 이재가 밝았다. 노파의 유언처럼 금복이 만났던 남자들은 모두 불행해졌고, 춘희는 엄마의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는 아이로 자라났다. 그나마 금복의 인생에서 가장 바르고 충직한 남자 이 춘희의 남다른 재능과 감각을 눈치챈 후, 벽돌 굽는 법을 알려주었기에 망정이지 文이 아니었으면 춘희는 이 땅에 왔다는 흔적조차 없이 사라지는 존재였을 것이다. 마지막 문장 그녀는 홀로 벽돌을 굽고 있었다.’ 로 반복 되는 지면은 그녀가 세상에서 한 유일한 행위이자 유산이 '벽돌'외에는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었다. 금복의 고래는 춘희를 낳았고, 춘희는 벽돌을 낳았을 뿐, 삶은 이처럼 덧없는 것이다. 

   

무모한 열정과 정념, 어리석은 미혹과 무지, 믿기지 않는 행운과 오해, 끔찍한 살인과 유랑, 비천한 욕망과 증오, 기이한 변신과 모순, 숨 가쁘게 굴곡졌던 영욕과 성쇠는 스크린이 불에 타 없어지는 순간,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함과 아이러니로 가득 찬, 그 혹은 그녀의 거대한 삶과 함께 비눗방울처럼 삽시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설화적 상상력

그렇다면 이 책의 제목 고래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선 고래는 설화적 상상력에 근거한다. 이야기가 구비 전승되어 대대손손 내려오면서 상상력을 더하여 허구화가 극대화 되면서 도저히 있을 법하지 않지만 존재할 거라 믿는 현실세계와 상상세계 경계에 있는 형상이 바로 고래이다. 그럼 이 책 고래는 어떤 존재일까? 차마 내 입으로 말하기는 뭣하지만 금복이 고래에 자신을 투영하여 내재화라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리비도. 즉  '남근'이다. 남성의 생명력(남근)에 대한 원초적 동경은 오랜 설화와 민요에서 등장하는 소재로 인류의 근원적인 욕망을 뜻한다. 마치 오래 전부터 구전되는 산문을 재구성한 느낌처럼 설화와 같은 친화력이 돋보이는 소설이었다. 

   노파, 금복, 춘희 이  세 명이 그리는 신산스러운 삶의 무늬, 그것은 여성이라는 무늬였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춘희처럼 화사하지만 이들의 삶은 거대한 몸을 지닌 춘희처럼 무겁기만 하다.  우리가 아무리 타인의 삶을 이해하려 해도 그것은 우리의 이해를 넘어서는 곳에 있다. ('춘희의 고독은 그녀의 생애 전체가 그랬던 것처럼 누구에게도 제대로 전달되거나 결코 이해될 리 없는 성질의 것이다.') 금복이 삶이 그러하고, 노파의 삶이 그러하다. 닥쳐오는 삶에 운명적으로 반응하고 그저 순응할 뿐이다. 그냥 살아지는 것,  어쩌면 여성의 삶은 그러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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