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 입은 남자] 장영실이 드디어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만나서 ` 신을 위한 세상이 아닌 사람을 위한 세상을 위해 `
과학기술을 쓰라고 조언해주는 장면에서 멘탈 충돌이 잠시 일어났다.
신 중심의 세계에 불었던 인간 중심의 세상이 동양인의 방문에 의한 것이라면, 이 가설이 만약 역사적으로 조금이라도 가능성 있는 이야기라면 한 사람이 미치는 인류역사의 반향은 실로 어마어마 한 것이다.
장영실은 정말 다빈치를 만났을까? ~~~~팩트가 아니라해도 괜시리 믿고 싶어지네.ㅎㅎ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나는 지금 뉴욕에 있어요. 더 이상 나를 찾지 마요. 만나봐야 그다지 좋은 일이 있을 성 싶지는 않으니까.”

 

한 때 사랑했던 여인에게 통보하듯 받아버린 이별편지, 주인공 나는 이 황당무계한 편지에 알 수 없는 자극을 느끼며 아내가 있을 법한 곳을 찾아다닌다. 그때까지 주인공은 아내의 말을 믿지 않았던 것이 분명하다. 그러던 그가 욕실에서 위대한 개츠비를 읽다가 충동적으로 따라한 행동은 아내를 찾으러 가는 것이었다. 위대한 개츠비처럼 '사랑하는 여자가 다른 남자와 지내는 집에 매일 밤 불이 켜지는 것을 바라보는 것'처럼 , 그는 아내가 묵었을 법한 호텔에 머물고 아내가 지나쳤을 듯한 거리를 걷는다.

 

내게는 책에서 읽었던 것을 그대로 따라 해보고 싶은 욕망이 일 때가 있는데 이번에는 위대한 개츠비가 그 대상이었다. 그는 지금 이 순간 내게 변화를 독려했다. 지금까지의 나와는 다른 내가 되고 싶은 충동적 욕구가 불현듯 솟구쳐 올랐다... 적어도 당분간은 옛날의 상황으로 돌아갈 수 없다. 낯선 이곳에서 나는 아주 다른 누군가의 모습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

 

나흘이란 시간을 위대한 개츠비처럼 보내고 나니, 때때로 찾아오는 시간의 무력감과 감정의 멜랑꼴리, 타인에 대한 공포가 밀려온다. 게다가 아내 유디트와의 결혼생활에 대한 회상은 하나같이 고통스러운 기억들이다. 죽이지 못해 안달난 부부싸움, 서로 저주를 퍼부었던 기억들, 시간 관념이 전혀 없었던 그녀와 달리 너무 정확했던 자신. 결혼 생활 전부를 환기시키는 이 회상의 그림자에 짓눌리던 그는  [녹색의 하인리히] 를 읽으며 소설의 주인공 하인리히와 자신을 연결하기 시작한다. 자연에서 자라는 하인리히의 성장기로 보이는 소설을 통해 주인공은 위대한 개츠비를 흉내 내었듯이 하인리히에게 매료되며 감정이입을 하며 현실로부터 도망하는 쪽을 선택한다. 그러다 문득 외로워져서는 몇 년전부터 알고 지낸, 그러나 깊은 관계라 할 수 없는 클레어와 그녀의 딸과 함께 세인트 루이스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  

 

주인공은 이별을 했지만, 그 이별이 무엇을 뜻하는지도 이별의 실체조차도 이해하지 못한다. 클레어와 함께 하면서도 그는 자신에게 벌어진 이별보다는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찾지 못해 방황하는 어린아이처럼 칭얼거린다. 하인리히와 클레어 그리고 그녀의 딸과의 여행을 통해 타인을 향해 닫혀 있던 마음의 빗장을 조금씩 열어보이며 서툴고 나약했던 내면의 자아와 조우한다.

   

 

 

 

비겁하거나 소심해서 경험을 회피한 것이 아니라, 그 일이 자신에게 별 가치가 없거나, 그가 관여 했을 때 행여 거절당할까봐 두려웠을 뿐이지. 어릴 적에 어떤 일을 하려고 할 때 늘 소외당했기 때문이다.”

 

  "이미 오래 전에 극복했다고 생각했던 온갖 불안과 동경이 다시 도지고 있어. 어릴 적에 경험했던 것처럼 갑자기 주변 세계가 두 조각이 나면서 전혀 다른 형태의 무엇인가로 정체를 드러낼 것만 같아."

 

'이별'에 대한 자각은 클레어와 함께 한 긴 여행을 통해 깨닫게 되고, 정작 주인공과 아내 유디트를 화해 시키는 장본인은 영화 감독이었던 존 포드이다.  희미했던 자아, 경험하지 못한 자아가 아닌 실존의 자아가 진정한 자아임을 강조하는 존 포드와의 대화로 주인공은 자신의 이별을 받아들인다.

 

 

우리는 정처없이 걸었다. 한 사람이 움직이면 다른 사람은 멈춰 서곤 하면서 말이다. 어느새 밤이 되었다.

 

내 안에 들어온 타자는 내 안에서 타자를 위해 짐을 짊어질 수 있도록 나를 키워낸다. ”(강영안, 타인의 얼굴) 이별의 주체는 타인이 아닌, 내 안에 들어온 타자이다. 사랑은 내 안에 들어 온 타자의 짐을 짊어지는 나, 즉 성숙한 나를 필요로 한다. 태어나면서 타인의 시선에 '나'를 맞추며 타자화된 자아는 미완의 인격체이다. 사랑과 이별은 미완의 나를 키워주는 마음의 씨앗이나 다름없다. 피터 한트케의 이별여행이 특별한 것은 이별을 통해서 자아를 성장시키고 있는 내면을 향한 여정이란 점이다. 뜨겁고 푸르르던 계절이 거짓말처럼 떠나가고 남은 자리에 덩그러니 남겨진 이 책은 그렇게 이별의 방점을 찍는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타자를 짊어지는 것. 이별한다는 것은 내안의  타자를 내려놓는 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한복입은 남자 읽던 중 북플의 형광펜 사용 중
장영실의 역사를 복원하는 흥미진진한 역사팩션소설
이렇게 몰입도 높은 소설은 간만인 듯.
세종 ,정의공주,장영실,레오나르도 다빈치,루벤스와
한 시대를 꿰어가는 솜씨가 탁월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다른 사이트에는 동영상이 잘 올라가는데.
유난히 알라딘에만 동영상 첨부가 안된다.
서너번 시도하다 포기..
알라딘에 동영상 올리는 법
아시는 분 좀 가르쳐주세요~~~으헝헝~~
플리즈~♡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가연 2014-12-01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죠, 동영상 첨부가 안되죠? 저도 그래서ㅠㅠ 링크로 대체했거든요. 저만 그런 줄 알았는데 최근에 어느 서재 분 글을 보니깐 알라딘에서 막아둔 것 같다고 하던데..

2014-12-01 21: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2-02 10: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드림모노로그 2014-12-02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서울에서 모임을 하면 시간내기 힘들 것 같은데요? 경남 거창에서 서울은 세시간 30분 걸려요~~본사에서 4일 회의 있어 가는 것도 왕부담 ~~~ㅎㅎ
서울 말고 중간지점은 참석가능 할 것 같구요. 6개월 전체 참석은 불가능해도 ..... 두어번은 가능하지 않을까합니다~~^^
개근하기 힘든 사람은 깍두기 시켜주세용~~♡♡

2014-12-02 10: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드림모노로그 2014-12-01 2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알라딘에서 막아 놓았구만요~~~ㅠㅠ

드림모노로그 2014-12-02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 어머 쏴리~~제가 북플 초짜라 뭐가 뭔지 .ㅠㅠ
답글을 댓글의 답글을 어찌 눌러야 할지 몰라서요 ~~^^;;;,
그냥 공개로 해 놓을 게요 ㅠㅠㅠㅠㅠ
북플에 빨리 익숙해 져야 실수를 안하는데 ㅠㅠ죄송합니다. ㅠㅠ

가연 2014-12-02 10:32   좋아요 0 | URL
저도 댓글의 답글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더군요.. 북플에 그런 기능이 있는지...ㅠㅠㅠ 아녜요, 에이 죄송하실것까지야ㅋ

드림모노로그 2014-12-02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 가연님~밴드로 독서모임을 만드는 건 어떠신지요? 밴드로 소통하면 독서모임도 활기차고 온라인까지 연계되어 모임하면 더 화기애애 하지 않을까요?

드림모노로그 2014-12-02 1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전히 답글 누르는 곳을 찾지 못하여 ㅋㅋㅋ
 

 

[정의란 무엇인가]를 김영사판으로 작년에 읽었다. 정의라는 이름으로 샌델의 열풍이 한참 지나간 후였지만 뒤늦게라도 센델의 동영상 강의를 찾아보며 열공의 즐거움을 알게 해 준 책이었다. 신념 강한 눈빛, 호소 짙은 목소리 , 개인적으로 나는 이런 스타일의 교수가 좋다. 흐흐흐 ~

 

 그렇게 유명한 인문서적이 김영사에서 와이즈베리로 바뀐 것은 출판시장에서 매우 드문 일이라고 한다. 치솟은 선인세 때문이라고 하는데 와이즈베리가 이번 [정의란 무엇인가]에 굉장한 투자를 한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과거 2009년 5월 2만달러(당시 환율로는 약 2300만원)에 '정의란 무엇인가'의 한국어판 판권을 사들였던 김영사 측에서 연장 계약을 위해 20만달러(약 2억2200만원)를 제시했으나 더 높은 금액을 낸 와이즈베리에 밀렸기 때문이다. (참고로 지난 5년간 124만부를 이 책을 판 김영사는 샌델 교수에게 모두 14억7600만원의 인세를 지급했다고 한다. 헉 !)

 

그래서 조금은 새로워진 와이즈베리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다시 재독하는 차원에서 읽기 시작했는데 해설서가 부록으로 딸려왔다.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은 장하준 교수의 해설서가 딸려왔는데 완독하기 어려운 책에 딸려오는 해설서는 요즘 출판계의 새로운 트렌드인가 보다. 게다가 이번 정의란 무엇인가의 해설은 좋아하는 서평가이신 로쟈님이 해설서를 쓰셨당 . 오예~ 역시 로쟈님의 서평은 핵심쏙쏙입니당 ~..

 

*해설서 요약정리.

정의를 바라보는 세 가지 관점의 키워드는 복지 극대화, 자유 존중, 미덕 추구다. 샌델은 먼저 시장 중심사회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출발점이라는 이유로 '복지 극대화'를 주장하는 공리주의자들의 견해를 소개하고, 이어서 정의를 자유와 연관 짓는 이론을 살핀다. 자유를 통해 정의를 이해하는 방식 내에서도 의견이 나뉘어 자유지상주의와 공평주의는 서로 경쟁하는 입장이기도 하다. 그리고 끝으로 정의가 미덕과 밀저하게 연관된다고 보는 이론을 살펴보는데, 그러한 입장의 원조가 되는 가장 대표적 철학자가 아리스토텔레스다. 요컨대 샌델의 강의 여정은 공리주의에서 시작해 칸트의 도덕 철학과 롤스의 정의론을 거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정의론을 소개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얼핏 중립적인 소개를 지향하는 듯 보이지만, 이러한 여정 자체에 샌델 자신의 입장과 의도가 함축되어 있다. 연대적 서술이라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론이 맨 앞에 와야 하지만 샌델은 의도적으로 마지막에 놓았다. 그것은 노골적이지는 않더라도 은연중에 자신이 지지하는 입장이 어떤 것인가를 드러낸다. 공리주의나 자유주의보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정의론에 좀 더 기울어져 있는 것이다.

 

 

공리주의자에 따르면, 옳은 행위란 공리(이익)을 극대화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곧 공리란 쾌락을 극대화하고 고통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공리주의는 쾌락을 좋아하고 고통을 싫어하는 인간의 기본 성향을 도덕적, 정치적 삶의 기초로 삼고자 한다. 대표적 공리주의자 벤담에게 공동체란 허구에 불과하며, 실제로 존재하는 건 개인들의 총합이다. 그는 이렇게 묻는다

 

"우리가 이 정책에서 얻는 이익을 모두 더하고 모든 비용을 빼면, 다른 정책을 펼 때보다 더 많은 행복을 얻게 되는가?"

(중략)

 

샌델에 따르면, 무엇을 정의의 원칙으로 삼을 것이냐를 두고, 우선 특정한 공동체나 전통에서 지지를 받거나 널리 공유되는 가치가, 그 다음으로는 어떤 도덕적 가치나 본질적인 선이 후보로 제시될 수 있다. 이 경우에 전자만이 통상적인 의미에서 공동체주의에 부합한다. 하지만 샌델이 지지하는 건 후자 쪽이다. 때문에 그의 입장을 규정하자면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 사이에서 두 입장의 문제점과 한계를 지적하는 공화주의에 가깝다.


오래 전 이 책을 읽었을 때 가슴 뛰었던 문장이 있었다. 

 

The concerns the definition might soon want to worry your best life.

정의를 고민하는 것은 곧 최선의 삶을 고민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정의의 원칙은 미덕과 최선의 삶에 대한 주관적 견해에 좌우되지 않는다에 있다. 조금은 달라진 와이즈베리의 [정의란 무엇인가] 로 최선의 삶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해 봐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