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따라가는 한옥 여행 - 닮은 듯 다른 한옥에서 발견하는 즐거움
이상현 지음 / 시공아트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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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의 아름다운 미를 그대로 느끼게 해주는 책이다 ^^ 건축은 마치 사람과 닮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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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마흔 역사를 알아야 할 시간 - 그들은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을까
백승종 지음 / 21세기북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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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마흔>으로 시작되는 자기계발서격의 처세술을 많이 읽었다. 딱 내 나이기도 하지만, 마흔의 나이가 인생에서 무척 중요한 위치라는 것을 절감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세상을 무작정 믿을 수 있는 순진함이 있는 나이도 아니고 순수와 이상이 사라지면서 생生의 치열함을 느낄 수 있는 나이이기 때문이다. 그런 생의 치열한 맨얼굴을 마주하려면 더욱 자기계발이 필요한 나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자아가 강하고 스스로가 지혜롭다고 생각한다면 자기계발이 도움이 되지 않겠지만, 나는 아직도 사회에서 흔들리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무언가 의지하고 싶지만, 책 외에는 도움되는 것이 없다고 본다. 그렇기에 <마흔>이 들어가 있는 책을 꼭 찾아보게 된다. 한편으로는 어떤 문제에 봉착했을 때 지혜를 얻을 수 있는 책이  많아진다는 것에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어느 소설에서 말하듯이 "우리가 현실을 산다는 것은 붕대로 눈을 가리고 벌판을 지나가는 것과 같다." 는 말처럼 마흔이란 나이에는 붕대로 눈을 가릴지라도 통과해야 하는 벌판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 백승종은 역사가로서  광개토대왕부터 노무현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역사에 한 획을 그었던 열 다섯의 인물들을 통해 인생을 새롭게 정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거시적인 관점에서 역사의 흐름을 짚어주고 있는 동시에 무척 세심하고도 간결하게 그리고 저자의 독특한 시각으로 역사속에서의 인생의 지혜를 깨우쳐주는 색다른 역사서 읽기를 시도하고 있다.

 

유연하고 균형잡힌 지도력을 겸비한 광개토대왕을 통해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두려움과 마흔의 나이에 다가오는 복잡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지혜로서 과감한 결단과 행동의 지혜를 , 또한 마흔에 아주 작은 성취라도 이루었을지라도 그것에 안주하지 않고 더 크고 먼 곳을 내다볼 줄 아는 안목을 연개소문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시대의 난제를 융합의 지도력으로 해결 하였던 왕건을 통해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정신을 배울 수 있고 ,그런 역지사지의 정신으로 적국의 왕 견훤까지도 품안으로 끌어안을 수 있었으며 . 백성들을 위한 조세개혁 조치와 다양한 시대사조의 조화로운 융합 역시 왕건의 헤아림에서 나왔다. 운명은 비극이었지만 정치 사상과, 공평하고 정의로운 시민 사회를 건설하고자 하였던 정도전의 이상과 사고의 주밀함과 강한 의지는 시대의 간격을 뛰어 넘어 두고두고 모범이 될 만하다. 난세가 키운 영웅 이순신은 탁월한 장수이자 최고의 경영자이다. 무인이기도 하지만 아름다운 문체를 구사하는 탁월한 문사이었기에 가능하였던 이순신의 성공은 섬약하다고까지 할 수 있는 문사적 기질을 바탕으로 소통과 공유에 능했으며 이로써 연전연승의 기적을 연출할 수 있었음을 보여주며 그의 인문정신을 바탕으로 삶을 중심을 갖추어야 함을 강조한다.

 

저자는 조선 최고의 르네상스 시대로 보고 있던 정조의 시대를 색다른 시각으로 보고 있는데 정조를 의외로 '문체반정의 군주'로서 변화를 두려워하는 지배층으로서 보고 있다. 18세기 후반 한국 사회가 당면 한 과제를 능동적으로 해결하지 못하여 오히려 정조 시대 사후의 조선시대가 소극적인 문화를 고수한 이유이다. 정조를 통해 저자는 진정한 삶의 길은 자기 자신이 스스로 개척하는 것이며  자신만의 안목으로 제 갈 길을 닦는 것이야말로  때로 그것이 지나치게 초라하고 소박해 보일지라도 자유와 창의는 이미 그곳에 있을 것임을 말한다. 저자의 독특한 역사의식은 정조만이 아니라 흥선대원군 에서도 볼 수 있다. 역사에서 쇄국을 고수하는 바람에 우리나라 근대화를 늦추고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일 기회를 놓쳐버린 인물로 낙인 찍힌 흥선대원군에 대하여 저자의 주관적인 시각을 들을 수 있는데 저자는 흥선대원군을 보는 시각에 있어 무조건 개화는 옳고 쇄국은 나쁘다는 식의 이분법적 판단으로 역사를 보는 것이 아닌 그 방향과 의미를 우선 심사숙고하는 편이 옳다며 흥선대원군의 쇄국은 시대적 상황에서는 무척 시기적절한 대응이라 여기고 있다. 흥선대원군의 그런한 행동 - 아직 확고한 답이 나오지 않았다면 변화의 무조건적 흐름에 저항하는 가운데 우리가 살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이라도 확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에서는 흥선대원군에게도 본 받을 점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대원군의 쇄국 정책은 급박했던 당시 상황을 고려할 때 부정적으로만 판단할 일이 아니며 지금의 우리로서도 과연 어떻게 얼마나 개방해야 할지 속도를 조절하기가 어려운 형편이었다. 마흔에 늘 이런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박정희는 지금도 '경제 성장의 공적'이라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박정희의 의지와 능력으로 미루어 볼 때 그 자신에게도 풍요롭고, 우리 역사공동체에도 훨씬 유익한 역할을 하였을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시대의 풍운아이자 변신의 귀재였던 박정희의 삶은 인생의 길을 잃으면서 스스로 '유신체제'라는 무덤을 팠다. 마흔에 자신의 행로를 돌아보아야 하는 이유는 어느 한 순간에 삶을 통제하는 통제력을 잃기 쉽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직설화법과 국민과 격의 없는 소통을 하였던  진보의 대통령 노무현까지 마흔에 필요한 삶의 지혜를 열 다섯의 인물들을 통해 역사만이 아닌 우리의 인생이라는 것을 거시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는 역사책이다. 40이라는 나이가 예전 같으면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가족의 존경을 받는 나이겠지만 지금은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무척 팍팍한 나이다. 지금의 불혹의 나이에 접어든 나를 비롯한 친구들은 꿈을 꿀 여유도 없이 살아간다. 밥벌이의 지겨움에 지쳐 가지만 가족이 주는 의무감으로 마음이 무거워지며 자신을 돌아볼 여과가 없이 살고 있다. 그렇게 정신없이 '나'를 돌아보지 않다가 어느 날 맞딱들이는 현실의 참담함에 좌절하는 친구도 있다. 역사책이 현실을 돌아보기 위해서 읽는 것이라면 역사와 자신을 돌아보기 위해서 <마흔, 역사를 알아야 하는 시간>을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지혜라는 것은 끊임없이 충족해야 하는 충전재와 같은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마흔에는 인생 후반부로서의 새로운 인생의 정립이 필요한 나이임은 분명하다.

 

공자는 마흔을 "불혹"이라 하였다. 이것은 자신에게 몰입함으로써 가능한 것이 아니다. 자신의 이기심을 내려놓고 남의 처지를 헤아릴 줄 아는 것이 사물에 혹하지 않는 길이요, 큰 뜻을 이루는 지름길이 아닐까.-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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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톤엔젤
마가렛 로렌스 지음, 강수은 옮김 / 도서출판 삼화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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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마흔 , 어쩌다 나이를 헤아리면 깜짝 놀라곤 한다. 젊은 날, 나이와 성숙도는 같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나이가 들면 삶의 혜안도 자연적으로 쌓이는 줄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젊은 날과 비교하여 삶을 더 깊이 있게 느끼고 있다고는 자신있게 말하지 못하겠다. 단지, 삶이라는 것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많은 것이 요구된다는 것을 나이가 들수록 깨달아가고 있는 중이다.

 

 

소설속의 주인공 헤이거는 이기적이고 고집스러운 여느 노인네와 다르지 않다. 늙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고 여성으로서의 위치를 확고하고 싶으나, 몸뚱이는 말을 듣지 않는, 그래서 늘 과거 속에 사는 노인이다. 현실을 부정하는 늙은 여인 헤이거,

이제 나는 걷잡을 수 없이 추억에 빠진다. 자주 이러지는 않는다. 아니, 어쨌든 그렇게 자주 하지는 않는다. 어떤 이들은 노인이 과거에서 산다고 말하지만, 허튼소리지. - p.10

 

 

그러나, 헤이거의 모습에서 내 어머니의 모습을 종종 발견하게 된다. 아니 비단 그것은 어머니의 모습만이 아니라 내 늙음의 모습인지도 모르겠다. 어머니는 총명하고 생활력이 강하여 남편과 일찍 사별 한 후 홀로 오남매를 키우셨다. 가난해도 삶의 지혜로 넘치고도 아름다우셨던 어머니는 자식들이 장성하여 사회에 나가 성공한 모습도 성에 차지 않아 하셨다. 오히려 자식들이 더 이상 당신께 기대지 않고 알아서 사회에서 인정받는 모습을 더 쓸쓸하게 느끼시는 듯 했다. 더 어머니를 슬프게 하였던 것은 아들의 결혼이였다. 내가 처음 어머니를 만났을 때, 어머니는 소유욕 강한 여자처럼 행동하셨다. 아들이 마치 자신의 것이라는 영역표시를 하려는 것처럼 밤이고 낮이고 불러 이야기를 하셨고, 당신 앞에서 다정한 모습을 몹시 불쾌하게 여기시는 듯하였다. 결혼 후 몇 년 동안의 시집살이는 내가 여성으로서 사회적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아가는 과정으로 충분하였다. 여성에게 주어진 사회적 존재로서의 위치는 엄마이자 아내이자, 며느리이자 자식이었다.

 

 

물론 나는 그런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하였다.그러나,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을 때마다 어머니를 향한 이해도 깊어간다. 어쩌면 그런 이해는  한 해가 다르게 늙어가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몇 년 뒤의 내 모습이란 사실을 인정해간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나 역시 그럴 것이다. 늙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나를 부정할 것이며, 자식에게 강한 집착을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는 차마 장담하지 못한다.

 

 

소설 속의 헤이거도 언제나 자신의 현재를 부정하며 환갑이 넘은 아들 마빈만을 탓하며, 며느리의 행동을 비웃으며, 자신을 떠난 아들 존을 원망하며, 사별한 남편을 기억하고, 가부장적인 아버지에게 억압되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는 것이 삶의 전부로 채웠다. 마치 모든 것이 죽어가는데 기억만이 살아 있는, 정신만이 살아 움직이는 그 무엇처럼 헤이거는 기억에 집착한다. 보바리 부인이 현실을 부정하기 위해 ‘마치 ~ 처럼’ 살아갔던 것처럼, 헤이거 역시 현실을 부정하기 위해 과거에 집착하는 모습이다.

 

 

우리가 거기서 살아간 삶은 기다리는 기간이요, 시간을 보낼 뿐인 정지된 삶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모르고 기다린 미래는 내가 상상한 미래와는 사뭇 달랐다.

그리고 그때와 꼭 같은 헤이거는, 이제 다른 집에서 다시금 기다리고 있다.

내게는 내 인생에서 일어난 일을 , 바꿀 힘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그걸 좋아하거나 받아들이거나, 그게 최선이었다고 믿을 수도 없다. 나는 그러지 못하겠고, 그 때문에 지옥에 가게 된다 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그냥 침대에 앉아서 어둠이 내려앉아 나무가 사라지고 바다가 밤에 켜질 때까지 창밖을 바라보기만 한다. -p199

 

 

내가 조금만 젊었더라면, 헤이거 같은 노인네를 싫어했을 것이다. 이미 내 주위에는 너무 말이 많고 고집이 세고 과거의 영광에 집착해 늘 젊은이들만 보면 일장연설을 늘어놓는 노인네들이 너무 많다. 그러나, 그 이면에 깔려있는 진심이란, 얼마나 슬픈가. 헤이거는 자신의 늙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자식들에게 여전히 자신의 총명함을 보여주려 하지만 번번이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담배를 피다 잠들어서 며느리에게 혼나고 진통제 없이는 견딜 수 없는 병을 앓고 있으며 인생에서 아름다운 색을 뒤로 한 채 머리색이 회색으로 바랜 것처럼 자신에게도 남은 옷 또한 온통 회색뿐이다. (헤이거는 자신의 모든 것에서 살아있는 것이라고는 ‘눈’밖에 없다는 표현을 한다.) 이런 감정들이 시종일관 고집스러워 보였던 노인네들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늘 나이가 들면 다른 무엇인가로 인생이 가득해 질 것이라고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내가 그 늙음으로 향하고 있을지라도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갈 수록 인생이 성숙하거나 삶에 능숙해지지는 않았다. 나이듦이란 어쩌면 정신은 또렸해지고 몸은 쉬이 퇴화의 과정을 밟아가는 진실을 마주하는 기분이다. 삶은 생각보다 길수도 짧을 수도 있다. 인간의 평균수명이 백세로 연장되었다는 것은 희소식인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내게 닥친 늙음의 현실이 끔찍하지 않기만을 바란다. 그리고 나는 어머니를 다시 한 번 이해하게 되었다.

 

 

《스톤엔젤》이 캐나다문학으로서 명실공히 여성 최고의 문학으로 찬사를 받는 이유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90대 노년여성의 일생을 누가 이렇듯 실제감 있게 그려낼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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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명작 스캔들 - 도도한 명작의 아주 발칙하고 은밀한 이야기
한지원 지음, 김정운.조영남, 민승식 기획 / 페이퍼스토리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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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KBS 문화예술버라이어티 프로그램으로 오랫동안 사랑받은 《명작 스캔들》에 방영된 작품중에서도 고르고 고른 명작들만 모아놓았다. 조영남의 입담이야 말할 것도 없고 문학평론가인 김정운 교수 역시 입담에서는 지지 않는 달변가이기에 사실, 명작보다는 둘이 날리는 촌철살인의 멘트가 더 재미있었던 프로그램이었다. 명작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놓기 보다는 솔직하고 담백하게 꾸밈없이 명작을 보고 느낀 대로 설명해주는 즐거움의 재미가 이 책에서도 느낄 수 있다. 화가이자 만능엔터테이너 조영남씨는 박학다식함에도 소탈함이 매력이고 김정운씨는 작품에 대해서 맛깔나게 삶과 예술을 버무려 명작을 통해 맛있는 인생을 선사해주는 명작스캔들은 거두절미하고 재미있는 그림책이다.

 

 

 

 <명작스캔들>의 1장 시작은 고야의 <옷을 벗은 마하>부터 시작한다. 이 작품을 본 후 고야의 <사투르누스>가 워낙 뇌리에 박혀 있어서인지 같은 화가의 작품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찾아보니 같은 작가이다. 그 이유를 명작스캔들에서 처음 알게 되었는데 고야의 인생에 급격한 변화가 생기면서  화풍의 변하였기 때문이다.  전기 작품은 왕족의 초상화 많으며  정교하고 특징을 잘 살린 로코코풍의 작품이 많은 반면, 후기 작품들은 기괴한 작품들이 많아지는 이유다. 고야는 궁정화가로 출세가도를 걷던 중 심한 열병을 앓고 청력을 잃게 된 뒤의 시련으로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었다. 그는 그림을 통해 시대비판의 칼날을 세웠으며 자신을 들여다보며 새로운 세상으로의 도래를 꿈꾸었다. 바로 이러한 그림의 색채와 표현력이 고야의 작품이 명작의 반열에 남게 된 이유이다.

 

 

정말 이쁜 이 건축은 프랑스 동부의 작은 시골마을 롱샹 성당이다. 이 성당을 건축한 르 코르뷔제는 가톨릭 신자가 아닌 사회주의자이자 개신교도였다. 20세기 최고의 건축물로 평가받는 롱샹성당은 각이 진 곳이 없이 다양한 상상의 구조물이다. 옆에서 보면 오리같기도 하고 배의 모양을 하고 있고 기도하는 손의 모양을 떠올리게 하는 상상의 구조물이다. 실제 르 코르뷔제가 구상한 롱샹 성당 지붕의 설계 초안은 게딱지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음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르 코르뷔제는 건축물의 예술성만이 아니라 성당이 주는 경건함과 침묵의 기도와 같은 내적 기쁨의 장소로서 내적인 공간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예술작품으로서의 조형성과 건축물로서의 기능성, 거기에 종교적 상징성까지 더하여 20세기 최고 걸작 롱샹 성당이 명작으로서 길이 남게 된 이유이다.

 

 

오페라 <마술피리>에 숨겨져 있는 프리메이슨의 상징들,세기의 명곡이라 불리우는 ‘예스터데이’에 얽혀있는 비틀즈 멤버들의 이야기, 결정적인 순간을 사진으로 담아내어 근대 사진 미학의 최고봉의 자리에 오는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의 <결정적 순간>은 우연이 만든 순간의 미학을 담아낸 사진이었으며 ,  브레송의 사진은 현재를 기록하는 새로운 작업으로서 명작의 가치를 지닌다.

 

 

 

월침침야삼경(月沈沈夜三更) 달도 침침한 야심경(23시에서 새벽 1시 사이)

양인심사양인지(兩人心事兩人知) 두 사람의 마음은 두 사람만이 알리라.

 

 

드라마 <바람의 화원>에서 신윤복을 여성으로 픽션화할 정도로 여성을 주로 그린 화가로 유명하다. 그런데 신윤복의 그림의 특징은 여성 만큼 달사랑이 작품 전체에 흐르고 있다는 것이다. 신윤복의 그림에 유난히 달이 많이 등장하여 <명작스캔들>에서는 신윤복을 ‘달빛 에로티시즘’이라는 근사한 수식어를 붙여주고 있다. 그러나, 특히 <월하정인>에 등장하는 달은 수능 모의고사 시험문제로 출제 될 정도로 깊은 관심을 받고 있다. 월하정인의 달은 우리나라에서 볼 수 없는 달의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 특징인데 충남 대학교 천문우주학과 이태형 겸임교수가 달의 모양에 의문을 품고 조선시대 왕명을 기록한 <승정원일기> 사료를 뒤져 정확히 1793년 8월21일 월식이 있었다는 기록을 찾아내게 되면서 신윤복 그림의 달모양이 설명 되어진다. 이런 과학적인 발견으로 정확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았던 월하정인의  제작 시기를 가늠할 수 있게 되기도 한 달모양은 신윤복 그림에 가장 중요한 특징이기도 하다. 달의 등장으로 인해 연인들의 만남에 더 알듯 모를 듯한 묘한 에로티시즘의 연출을 보여주는 신윤복의 그림은 진정한 ‘달빛 에로티시즘’의 선구자임이 분명해보인다.

 

 

“20세기 미술이 자아의 발산이었다면, 21세기 미술은 ‘치유’가 되어야 한다."

 

그림을 읽는다는 것은 책을 읽는 것처럼, 견문을 넓혀주고 인생을 바라보는 혜안을 길러준다. 조영남과 김정운의 환상적인 콤비가 나누는 촌철살인의 멘트에 정신없이 빠져 들어 읽은 것 같다. 유머 속에  한지원 작가의 명작에 얽힌 이야기들은 명작스캔들의 가벼운 분위기를 전환시키며 예술성의 가치를 올려주고 있고 마지막 김정운의 어록으로 작품이 주는 의미를 되새김질함으로 명작이 주는 여운에 방점을 찍어주고 있다. 시종일관 유쾌하고 즐거우나 가볍지 않은 그림책이다. 그림을 읽는다는 것은 한편으로 인생을 읽는다는 말과 같다. 명작의 주인공들의 삶 역시 우리네 인생처럼 녹록치 않다. 그림이야기를 통해 삶을 성찰하게 하며  <명작스캔들>은 명작만이 아닌 시대와 인생을 읽는다는 점에서 다른 그림책들과 차별성을 가진다. 그림은 이제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 깊이 스며들어 이야기를 해주는 예술이다. 인생을 즐겁게 바라보는 시선 <명작스캔들>안에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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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사랑학 수업 -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 어떻게 떠나보낼 것인가
마리 루티 지음, 권상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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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란 단어의 모양은 사랑이라는 말을 닮아 있고

살아간다는 단어의 모양은 사랑한다는 말을 닮아 있다.

사람은 사랑으로 이루어진 존재고, 살아간다는 건 사랑하는 일이며,

사랑한다는 건 결국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일이 아닐까.

 

 

차동엽 신부님의 <잊혀진 질문>은 마지막에 사랑에게서 나와서 , 사랑으로 살다가, 끝내 사랑의 품에 안기는 것이 인생인 것입니다. 로 끝맺습니다. 대중들과 소통하며 이 시대의 정신적인 멘토의 역할을 해주고 있는 차동엽 신부님이 잊혀진 질문에서 삼성그룹 창업주 고() 이병철(1910~87) 회장이 타계 한 달 전 남긴 질문에 대한 끝맺음 또한 사랑이었습니다. 저는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이유가 남녀간의 애정만이 아닌,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점점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뿐만이 아니라 나 자신도 사랑하는 방법을 잊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버드 사랑학 수업>은 사랑에 대한 지침서와 같습니다. 사랑에 서툴고 타인을 이해하는 것이 서툴다면 한 번 읽어볼 것을 권합니다. 그저 단순히 연애학개론이 아닌,  인생철학이 녹아있는 특별한 사랑학 개론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누군가에게 끌리는 순간부터 시작됩니다. 저자는 이런 끌림의 이유를 라캉의 말을 인용하여 설명합니다. “누군가에게 이끌릴 때 우리를 사로잡는 것은 그가 이룬 성취가 아니라 그것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런 라캉이 말한 그것은 무엇일까요? 돈이나 권력, 재산이나 명예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누군가에게 이런 것들이 그것이 됩니다. 바로 우리가 욕망하는 것의 실체인 셈이죠. 우리가 알 수 없는 그것은 평상시에 실체를 드러내지 않다가 내면 깊숙한 곳에 숨어 살고 있습니다. ‘그것에 사로잡히는 사람들은 만성적으로 슬픔에 젖어 살거나 자살 충동까지도 느낍니다. 장 폴 사르트르는 이 공허함을 무無라 불렀고 라캉은 결핍이라 하였고, 저자는 가슴 깊은 곳에서 북받치는 조용한 흐느낌이라고 부릅니다.

 

우리 존재 안에는 커다란 구멍이 있고 우리는 그 구멍을 채우려는 희망으로 뭔가를 하나씩 채워넣고 있습니다. -p139

 

세상의 모든 사물은 우리가 잃어버린 그것의 희미한 반영일 뿐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의 희미한 자취만을 얻을 수 있을 뿐이죠.-p140

 

그리하여 결정적으로 우리가 사랑에 빠지는 이유는 우리가 사랑에 빠지면 꿈에 그리던 그것을 얻을 것만 같기 때문이죠. 정신을 차리기 전에는 문제가 많은 남자라하더라도 일단 사랑에 빠지면 무결점으로 보이게 되며 숭배하지 않을 수 없는 존재로 보여집니다. 사랑에 빠진 순간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한 그것이 상대방에게 그것의 권위를 부여하는 것이죠. 그것이라는 판타지가 깨지는 순간이 바로 사랑이 깨지는 순간입니다. ‘그것이 주었던 환상이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판타지였으니까요. 상대방을 그것으로 만드는 것은 나도 모르고 있던 내 안의 욕망의 씨앗입니다. 내 안에 꽁꽁 숨겨져 있던 욕망에 맞춰 상대방을 개조하려고 하니 사랑은 힘들 수 밖에 없겠지요.

 

이렇게 저자의 특별한 사랑학개론은 읽으면서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키지만, 개인적으로 이 책이 좋았던 이유는 를 사랑하게 해주는 데에 있는 것 같습니다. 왠지 사랑에 자신감이 생기는 기분이 듭니다. 무수히 많은 인문책에서도 말하지고 있지만, 모든 사랑의 시작은 바로 로부터 시작되니까요. 그러고보니 남편과 저는 겨울 이맘때 만났습니다. 그때 우린 정말 가난해도 너무 가난했었죠. 니체가 그랬던가요? 돌을 사랑한 조각가가 돌 속의 위대한 형상을 발견하여 망치로 내려쳐서 만들어가는 과정이 사랑이 창조되며 탄생하는 과정이라고요. 우린 그렇게 서로를 깍고 내리치고  길들이는  과정을 거쳐 사랑을 만들어왔습니다. 위대한 형상을 위하여 끊임없이 조각돌을 깍아야 하는 조각가의 사랑처럼 사랑은 여러가지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비록 아플지라도 사랑은 우리의 숙명이니까요. 사랑에서 나서 사랑을 남기는 것이 우리의 숙명인 이유는 사람이라는 말이 사랑과 닮은 이유입니다. 사랑은  다른 사람에게 내 욕망의 씨앗을 심는 것이 아니라 '나'의 욕망을 들여다보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마음껏 사랑하고 마음껏 이별도 해보고 그러면서 성숙하는 것이 인생이라는 하버드 사랑학 개론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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