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신동준 지음 / 인간사랑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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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모험>을 읽으면서 <장자>의 원전을 읽어보고 싶었는데 <중국현대사>와 <조조 사람혁명>을 통해 접해보았던 고전연구가 신동준의 고전에 관한 해석과 판단이 마음에 들었던지라 ,<장자>를 읽으면서도 흡족한 마음이 든다. 사실 공자나 맹자, 노자등은 많이 접해본 사상가이지만, 장자는 조금 모호한 느낌의 사상가이다. 그저 도가의 뿌리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장자에 대해서 모처럼 제대로 알게 되어 기쁜 마음이 든다.

 

 

21세기에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사상가는 장자이다. 최근에 더욱 장자에 주목하고 있는 이유는 기존에 장자에 대한 해석에 오류가 많았던 이유이지 싶다. 저자는 기존에 노장老壯 사상의 통칭으로 노자와 장자를 같이 보게 된 것에는 사마천의 책임이 크다고 보았다. 사마천이 사기에서 두 사람을 ‘무위’를 사용한 점만을 지나치게 높이 평가한 탓이라고 한다. ‘무위 자체만을 놓고 볼 경우 한비자가 오히려 노자사상의 정곡을 꿰뚫었다고 평할 수 있다. 여기서 노자가 ’무위‘(無爲)를 주장했던 것은, 통치자가 ’무위‘에 도달하면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복종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지만, 장자의 무위는 국가에 의해 강제적으로 진행되는 권력의 집중에 반대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장자는 여타 제자백가와 달리 ’무위자연‘을 역설하며 ’나‘를 중심으로 천지자연과의 합일을 주장했다. 반면 노자는 국가의 권위와 지배를 정당화한 반면 장자는 국가의 권위를 부정하고 민중들의 연대를 추구하는 것에 차이가 있다. 따라서 ‘노장’도 ‘공맹’과 마찬가지로 무위를 전면에 내세운 장자의 주장에 현혹된 결과로 볼 수 있다. 맹자가 묵자사상의 계승자인 것처럼 장자 역시 노자가 아닌 양주학파의 일원으로 보는 것이 옳다고 보았다.

 

 

장자사상의 가장 큰 특징을 ‘무위’가 아닌 ‘자연’에서 찾는 이유다.

노자

인→지→천→무위의 도 =무위자연

장자

인→지→천→무위의 도→무위자연

이는 노자사상과 구별되는 가장 큰 특징이기도 하다. 예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같은 도가 계열일지라도 노자사상을 유柔, 열자사상을 허虛, 장자사상을 무無,로 요약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장자는 삶과 죽음을 ‘무’에서 ‘무’로 돌아가는 자연의 순환과정을 파악하였다. 이에 관한 장자의 생각을 가장 잘 나타내 주는 것이 『제물론』에 나오는 호접몽胡蝶夢일화이다. 장자가 말하는 만물의 변화 즉 물화는 ‘나’와 외물의 경계를 허물고 하나가 된 일종의 무아지경無我之境에 해당된다. 불가에서 말하는 물아일체物我一體와 꼭 같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허문 장자사상의 상징어가 바로 ‘호접몽’이라 볼 수 있다. 강신주의『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모험』에서도 호접몽을 삶과 죽음의 경계로 보았는데 꿈에서 깨어나 ‘삶’의 세계를 회복해야 한다는 것은 장자 사상의 정점이다. 이렇게 장자는 ‘나’를 중심으로 생生의 문제를 해석했다. ‘나’와 외물의 경계를 허무는 것이 바로 물아일체의 경지이다.

 

 

“원래 사람의 생명은 임시로 빌린 것에 지나지 않는다. 빌려서 살고 있으니 생명이란 먼지나 때와 같은 것이고, 삶과 죽음 역시 낮과 밤의 교대와 같은 것이다.”

 

 

인간이 죽음에 대처하는 유형은 크게 3가지로 분류하였는데

첫째, 향락에 빠져 죽음을 잊는 유형.

둘째, 위대한 업적을 자신의 이름을 후대에 영원히 남기는 경우.

셋째, 종교에 귀의하는 유형.

장자는 이들 3가지 유형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바로 죽음에 초연하는 것,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마음자세를 가지게 되면 세속적인 것에 초연하게 되고 , 유한한 삶 위에 권력과 재물 및 명예를 쌓기 위해 부질없이 남과 원한을 맺으며 정신없이 살아가느니 차라라 천지자연 속에 몸과 마음을 맡겨 유유자적하게 살아가는 것이 바로 장자가 택한 죽음에 대처하는 방법이다. 저자는 우주를 품안에 껴안고 살아가게 되면 삶 자체를 관조할 줄 아는 안목이 생기며 이런 생각을 글과 언행으로 남기면 문예창작과 자연이치의 발견을 남긴다고 한다.

 

 

21세기에 들어와 장자사상을 과학주의와 연결시켜 해석하는 견해가 점증하고 있는 것이 저간의 흐름이다. 특히 장자는 상대성원리에서 말하는 것처럼 우주의 모든 물체는 상호 연결돼 생장소멸의 부단한 순환활동을 한다고 보았다. 자유민주주의 이념이 내재해 있는 기계론적이면서도 원자론적인 세계관은 ‘인간소외’와 ‘비인간화’를 부추기는데 일조했다. 21세기의 기본과제는 인간이 주체가 되는 인간 삶의 회복일 수 밖에 없다. 여기서 장자가 말하는 세속의 명리에 초월하는 삶을 사는 것에 대한 깨달음이 있다. 과거에 장자를 현세를 떠나 무위자연속에서 안빈낙도의 삶을 추구한 사상가로서 보았지만, 장자의 사상은 오히려 현실세계에서의 깨어남을 강조하였다.-[소요유]와 [덕층부]. [제물론]에서 나오는 꿈이야기로 보아도 삶을 부정하게 만드는 모든 것은 꿈으로 비유하며, 꿈에서 깨어나서 ‘삶’의 세계를 회복해야함을 역설한다. 저자는 기존의 장자를 문예와 철학의 보고로만 보아오던 것을 장자의 사상안에는 리더십으로서도 훌륭한 보고가 있음을 명시한다. 실제로도 장자의 이야기는 동화같기도 하고, 이야기가 명확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예전에도 장자를 몇 번 읽어보려 시도만 하고 다 읽지 못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하지만 조금의 상상력과 해설자의 친절한 설명이 장자를 완독할 수 있게 해주지 않았나 싶다.

 

 

“스스로를 옳다 여기면서 다른 사람을 그르다 하고, 자신을 아름답게 여기면서 다른 사람을 미워하는 것은 모든 사람이 그러하다. 그러나 시비는 비록 다를지라도 ‘나’와 ‘너’는 원래 균등한 것이다. -16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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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탄생 -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10인과의 인터뷰
카렌 호른 지음, 안기순.김미란.최다인 옮김, 안기정 감수 / 와이즈베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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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노벨문학상 16인의 작품집 16인의 반란자들를 읽은 적이 있다. 이후 그들의 삶과 문학이 두서없이 머릿속을 떠다니고는 한다. 그것은 노벨문학상을 수상했기 때문이 아니라 사회에서 소외된 것들과 지배하는 것들에 반향하며 일반적으로 미처 깨닫지 못한 이데아를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책을 기억하면 그들의 삶과 문학에 전율하는 그 느낌그대로 느껴지곤 한다. 막연하게 그들이 유명한 상을 받아서 동경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방식을 보면 상을 받을 수 있는 배경을 이해하게 되기 때문에 유명한 이들의 삶을 동경하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열 명의 학자들과의 인터뷰이다. 이들을 인터뷰한 저자 역시 경제학자이면서 기자이다. 그래서인지 인터뷰방식이나 경제학에 대한 이해가 남다르며 조예가 깊고 식견이 넓다는 느낌이 든다책을 다 읽고 나서 경제학이라는 보이지 않는 실체에 한발 다가간 기분도 든다. 사실 노벨경제학상은 경제학자들의 오랜 염원임에도 불구하고 신설 당시부터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경제학이라는 것이 증거에 입각한 예측이 불가능한 것이기에 경제학은 과학이라 인정받기 힘든 분야이다. 그러나 점점 경제학을 사회과학으로서 인정하게 되면서 슘페터가 언급한 개선하려는 의식적 노력의 대상이 되는 모든 지식이라는 과학의 정의를 받아들이게 되면서, 경제학은 자연 과학은 아니지만 분명히 과학의 범주로 인정받게 되었다. 자연과학은 옳고 그름을 쉽게 가릴 수 있는데 반해 경제학은 복잡한 현상을 다루는 학문으로 사회 과학으로 분류된다.

 

 

  여기서 저자는 세계 대공황과 제 2차 세계 대전 이후 경제학의 패러다임이 크게 자유 시장주의와 케인스주의로 나뉘어져 있는 상태에서 2008년 미국의 서부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세계 금융위기로 인하여 신자유주의의 패러다임의 비판을 촉발시키자, 시장의 결함을 인정하며, 적절하게 규제되고 통제된 자본주의가 필요하다는 케인스주의가  부활하였다. 케인스주의는  끊임없이 변하는 경제 현상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예측에 대한 논리적 근거를 마련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의 경제 이론은 작금의 현상을 분석하고 대비해보는 것은 무척이나 시기적절한 책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저자는 들어가는 말에 이 책을 저술한 동기를 밝히는데 역사는 역사’, ‘이론’, ‘개성이 세 가지가 서로 동시에 발전하면서 서로 영향을 미치며, 특히 특정한 시기를 말할 때 배경은 경제학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한다  따라서 시간이 흐르면서 경제학의 변천과정과 개인사, 이론은 서로 발전하며 동적고리로 연결되어 있기에 노벨경제학 수상자들의 이야기는 바로 경제학이라는 역사를 살펴보는 것과도 같다

 

저자는 노벨 경제학 수상자들의 인터뷰 초점을 세가지에 두었음을 밝히는데

첫째, 노벨경제학은 상이 가진 목적을 떠나 탁월함을 평가하기 좋은 기준이라는 점과

둘째, 유명하기 때문에 경제학을 부담스러워하는 일반 독자에게 어필하기 좋다는 점,

셋째, 대부분 고령이라는 점을 꼽는다. 이들의 평균 연령은 정확히 67세인데 나이가 많다는 것은 지혜나 경험으로나 우리에게 직접 경험하지 못한 일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의 개인의 이야기, 즉 각각의 학자가 현재 관점에서 자신의 여정을 돌아보는 방식에 초점을 맞추었다.

 

 

경제학자들은 대체로 경제학의 발전을 경제라는 세계 또는 도구나 기술이론의 발전을 통해 제기되는 문제의 연속으로 파악한다. 다시 말해 경제학자들은 경제학이 문제를 해결하는 활동이며, 경제사는 문제가 제기되고 해결되고 재해석되는 과정의 반복이라 생각한다. 그들에게 경제학자란 경제 문제를 인식하고 정의하고 해결하는 것이 경제학자의 본분인 세계에서 활동하도록 훈련받고 사회화된 존재다.”

 

1920년대 말 미증유의 세계 대공황은 고전학파의 시장주의 경제학 이론에서 하나의 큰 파문을 일으킨다. 대공황 앞에서 고전학파의 논의는 거의 무용지물 이였으며, 정부의 개입과 간섭이 없는 자유 시장 경제에 찬물을 끼얹으며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을 주창하게 되며 자연스레 거시 경제학이 태동하게 된다. 시장에 대한 자율성을 주장한 고전학파의 논의와 시장의 불완전성을 기반으로 시장에 대한 정부 개입의 정당성을 피력한 케인스학파의 절충을 모색하며 , 고전학파의 균형이론과 케인스의 통찰을 통합한 저서 경제학으로 노벨경제학을 수상한 폴 새뮤얼슨은 경제학이 진정한 과학적 학문으로 인정받으며 노벨 경제학상이 제정되기에 많은 학문적 족적을 남긴 학자이다. 그는 최선의 경제 체제란 자유지상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양극단을 피하고 자유 시장과 적극적 집단 선택을 적절히 섞은 3의 길일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대부분의 노벨경제학 수상자들은 대공황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며 상황을 이해하려는 호기심을 품었고, 그들의 학문적 자세는 여기서 시작되었다. 이들은 대공황을 겪으면서 기존의 경제학이 만족할 만한 답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경제학자들 대부분이 실험경제학과 행동 경제학에 대해 긍정적이다. 하지만 이 두 학문에는 이론이 결여되어 있다고 지적한다. 경제학에서 문제 해결 측면을 축소하면서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이론에서 벗어나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조금 더 일반성을 가져야 한다고 한다. 분명 사람들은 경제적 의사 결정을 할 때 탐욕과 합리성이라는 가정을 위반하기 때문에 관찰만 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이러한 관찰을 설명해주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일상 생활과 투자 행태를 성찰하게 하는 행동경제학(behavioral economics)은 거시적인 욕구를 충족시킨다고 보았다. 그러나 인간의 합리성에 대한 믿음을 흔들고 있다. 가장 냉철한 이성이 지배할 것 같은 금융시장에서조차 사람들은 감정에 휘둘려 변덕스럽고, 충동적이고, 근시안적이고, 셈에 서투르고, 자기 과신에 빠져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지른다. 그런 인간을 심리학적인 측면으로 다가가 있는 그대로 볼 때 벌어지는 온갖 이상한 일들을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행동경제학이다.

 

가장 인상적인 학자는 베커였다.( 처음 들어본 경제학자이다) 베커를 '경제학 제국주의'라고 혹평을 하기도 하지만, 그 혹평으로 인해 노벨경제학을 받았다. 범죄, 가정, 결혼, 전쟁과 같이 전통적으로 비경제학분야로 취급해 온 분야에 경제학적 분석 수법을 확장·적용하는 것을 표현하는 용어다. , 모든 사회적 현상을 윤리,사회, 심리요인을 배제한 채 수리 경제학 방법론에 의해 획일적인 잣대로 취급한다는 불만이 섞여 있는 용어가 바로 경제학 제국주의다. 베커는 비경제학 분야로 취급돼 온 분야를 경제학적으로 분석하려 시도했다. 인간을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즉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경제적 행위자라는 믿음이 깔려 있다.( 행동경제학과는 반대개념이다) 따라서 합리적인 경제적 행위자로서의 속성 때문에 경제학적 메스는 단지 경제적 현상뿐 아니라 인간 행동의 모든 측면을 설명해 줄 수 있다고 베커는 믿었다. 그의 관심 주제는 종교 , 인종, , 차별,가족, 이혼, 결혼, 인적 투자, 시간 배분 등 당시 경제학에서는 다루지 않던, 그래서 다른 사회, 문화적 접근법이 주류를 이루던 주제를 다루었다

 

       2002년 노벨 경제학상의 두 수상자 대니얼 카너먼은 인간이 가진 편향이라는 심리적인 요인이 경제 현상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여 행동 경제학의 지평을 열었다. 최근에 《생각에 관한 생각》을 읽어서인지 책에서 이 이름을 발견한 순간 반가웠는데 인터뷰는  버넌 스미스만 하였다. 버넌 스미스는  실제 경제 분석에 실험적 방법을 도입하여 실험 경제학의 불을 피웠다. 행동 경제학자들은 리스크에 대한 선택을 다루는 기존의 이론들이 잘못됐거나 불완전함을 보여주는 증거들을 제시했다. 경제적 인간은 자신의 편익과 손해에 기초를 두고 행동하는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인간이며, 탄탄한 수학적 기반을 둔 경제학 이론의 대부분은 이러한 합리적 인간의 가정에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인간 행동의 근원이 되는 심리적 요인을 탐구하고, 인간의 합리성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갖는 이론이다. 인간의 합리성에 대한 가정은 현실과 완전히 맞아떨어지지는 않아도 여전히 유용하다.

 

사람은 재앙이 닥칠 때 그에 대비하기 마련이다. 역사적으로 대공황이 준 여파는 고전행동학파의 이론에 반기를 들게 하였다. 책에 나온 경제학자들은 모두 대공황을 온몸으로 느끼며 자랐다. 대공황이 던진 문제의식은 기존의 주류 경제학 이론이 제시한 패러다임으로는 그 해답을 찾기 어려웠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들 경제학자들 대부분이 경제학을 선택한 이유가 호기심과 현 상황에 대한 질문에 비롯되었다는 것은 신선하다. 이들은 또한 젊었을 때 대부분이 사회주의자나 좌파의 길을 걷다가 자유 시장주의자의 길을 걸었다학자들의 개인사를 살펴보면, 우연이 모여 필연이 된다는 말이 있듯이 경제학을 꼭 선택하고자 한 학자들은 처음부터 없었다. 이들은 대부분이 선택의 기로에서 더 나은 선택이 이유였을 뿐이었다. 상을 받은 소감 또한 그저 운과 기회가 닿았을 뿐이라고 한다.

   경제학의 흐름을 개인과 역사와 경제흐름으로 풀어가는 저자의 구성능력도 뛰어나지만, 현재 자본주의 대안담론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는 않지만, 작금의 세계 경제 위기 속에서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미래의 경제를 유추해 볼 수 있는 유용한 자료가 될 것 같다.  하이에크가 인간은 호기심과 욕구 덕택에 학문에 질문을 던질 힘을 얻는다.” 고 했듯이 세계 경제가 요동치고 있는 작금의 상황에 이 책이 조금이나마  경제 위기 의식을 공적 담론으로 이끌어내어 주길 바라는 마음이 든다. 경제에 관심이 없는 독자라도 경제학자의 개인사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어 친숙할 뿐만아니라 쉬운 경제학이다. 평소 경제학을 어렵게 생각하고 있었다면 이 책 한 권으로 경제와 친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경제를 모르고 산다는 것은 청맹과니와 다름없기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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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팔기에 좋은 날 - 곽세라 힐링노블
곽세라 지음 / 쌤앤파커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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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그랬던 것 같다. 여자들이 머리를 기르는 이유는 기다림의 상징이라고.... 유독 인내심이 없어서 머리를 기르지 못하는데 이번에는 머리를 계속 기르고 있다. 쑥쑥 자라는 머리카락의 길이를 보며, 나는 아직도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가하며 거울 속의 나를 닮은 이에게 물어보지만, 한 번도 대답을 들은 적이 없다.

 

 한 소녀가 있다. 머리카락이 형광색이라 눈에 확 띄지만, 더 눈에 띄는 이유는 보라색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이름은 류, 그녀의 머리카락이 긴 이유는 영혼을 팔 때마다 스스로의 영혼을 하루에 0.35밀리미터씩 밖으로 밀어내게 되면서 자랐기 때문이다.

 

"영혼에 새겨진 모든 걸 끌어안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어. 슬픔이든, 악몽이든, 기쁨이나 추억 같은 것들도 너무 무거워지면 인간을 짓눌러버리거든. 어쩔 수 없이 하루에 그만큼씩은 자신을 머리카락에 적셔서 밀어내야 해. 머리카락은 모든 것을 말해. 자신이 알고 있는 것과 모르고 있는 것, 외면하고 있는 것, 앞으로 일어날 것 모두를.”

연극을 해 보았다면 이해가 쉬울 것 같다. 자신의 영혼을 파는 기분을, ‘나’를 사라지게 하고 ‘또 다른 나’로 사는 경험을, 그 느낌을. 마치 달빛처럼 ...

 

달은,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아니야. ‘달빛’이라는 건 없어. 무언가의 빛을 받아 반사할 뿐이야. 하지만 사람들은 햇빛보다 달빛에 감사할 때가 많지. 밤은 언제나 갑자기 찾아오고, 살다 보면 달빛에 의지하지 않고선 찾을 수 없는 길이 있거든.”

‘츠키(일본어로 달)’라는 극단에서 뮤토(변하는 자라는 뜻의 라틴어)가 되고 싶었던 류, 이름처럼 달빛이 되고 싶었던 류의 꿈은  극단에서 뮤토가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뮤토는 오로지 남을 위한  ‘또 다른 나’로 탄생되야만 가능하다. 류는 꿈에 그리던 뮤토가 되지만,아픔과 상실이라는 결핍의 사람들을 위해 다시 태어나 그들의 상실을 채워주려고 하지만, 오히려 그들의 상처가 부메랑되어 자신의 살속으로 파고들자, 진정한 ‘나’가 사라지는 상실의 아픔을 겪게 된다.  

우리가 만들어내는 완벽한 순간들은 거울 속에서만 존재해. 그것도 정확히 11초 정도만 고객에게 천국의 문을 보여줄 뿐이야. 11초란, 영혼이 치유되고 평생 매달려왔던 그 모든 것을 되돌리기에도 충분한 시간이지.”

  살아가면서 겪는 많은 아픔가운데 죽음이라는 깊은 웅덩이에 빠지게 되면 누구라도 그 웅덩이에서 빠져나오기란 힘이 든 법이다. 어느 한 의뢰인이 죽음의 상실에서 벗어나지 못한채 죽음을 재현하는 플레이를 제안하면 , 뮤토들은 의뢰인이 원하는 뮤토가 되어 죽음을 재현해낸다. 그러나 죽음이 아무리 예견되어 있었던 것이든, 우발적인 죽음이었든 죽음을 기억하게 하는 순간들은 모두에게 고통으로 다가온다. 뮤토에게도 의뢰인에게도,

 

뮤토였던 자, 뮤토인 자, 뮤토가 무엇인지 모르는 자. 그들은 뫼비우스의 점들처럼 서로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뮤토이기 때문에 매번 슬펐던 자, 뮤토이기 때문에 매번 두려워하는 자, 뮤토가 무엇인지 몰라 ‘그것’을 시작한 자 ….

결국 상처를 가득 안고 류는 무작정 기차여행을 떠난다. 우연히 내리게 된 간이역에서 사랑하는 이를 잃은 상실감에 넋이 나가 벤치에 앉아 있는 '리에'의 뒷모습에서, '카레(남자이름)'의 들척지근한 카레국물 위에서 어룽어룽한 그림자를 보고 느껴지는 상실의 아픔과 삶의 동질감은 류에게 진정한 ‘나’를 찾아주는데 , 영혼을 팔아서 조금씩 밀어낸 머리카락이 아닌 오롯이 자신의 머리카락만을 남기게 하는 용기를 준다. 누구든지 올곧이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주기를.....

 

“ 너인 채로, 그대로 너를 사랑한다.”

 

진정한 ‘나’를 찾는 과정을 그린 《영혼을 팔기에 좋은 날》은 이제껏 읽어왔던 소설과는 느낌이 다르다. 다소 몽환적인 느낌이기도 하면서 판타지스러운 느낌이기도 한데 실체가 뚜렷하게 다가오지 않아 주인공을 엉뚱하게 고양이로 상상하며 나혼자 키득거리곤 했다. 소설 속에 고양이이야기가 많이 등장하긴 하는데 조금 동화같이 읽어도 무관하지 싶다. 영혼을 팔기에 좋은 날, 영혼을 팔다보니 진정한 ‘나’는 사라져가는 상실감을 체득하며 성장해가는 과정을 무척 독특하고 매력적으로 묘사하였다.

 

이 책에는 두 개의 이야기가 실려있는데 개인적으로《천사의 가루》가 더 마음에 든다. 조금은 슬픈 이야기같다.  남자의 입장에서의 사랑과 , 여자의 입장에서 사랑을 무척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게 하는데 , 왠지 애틋한 소설이다.  마흔 다섯 살에 찾아 온 사랑, 그것이 진실이고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이라는 것을 죽어가며 깨닫는 남자가 자신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여자 라라를 떠올리며 첫 만나는 순간부터 죽기 전까지의 이야기와 남자가 오기를 기다리며 캐시미어 코트를 입고 매일 공항에서 기다리는 여자 라라의 이야기.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 누군가는 죽는다고 해서 없어져지지가 않는 것이다. 마음으로 의지하던 사람일수록 더욱 그렇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가끔은 통증을 동반한다. 그런 사랑의 통증과 죽음으로 인한 상실의 아픔을 라라와 요요를 통해 보여주는데 이들의 사랑도 약간 몽환적인 느낌이다. 마치 잠에서 덜 깨서 새벽안개를 맞는 느낌이랄까?  우리의 삶은 때론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가혹할 때가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가는 것이라든지, 갑작스런 죽음이 찾아올 때라든지, 예측불허의 삶속에서 상실이 주는 의미를 되새겨보게 해주는 것 같다. 삶에서 상실은 언제나 찾아오지만, 그 상실을 이겨내는 것이 살아남은 자의 몫이다. 누군가의 죽음과 사라져간 것에 대해, 흐르는 강물은 구덩이를 채워야만 흐를 수 있듯이 그렇게 가슴 한 켠의 빈 곳을 가득 채워준다. 아주 간만에 만난 매혹적이고도 마법같은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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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없는 사회 - 합리적인 개인주의자들이 만드는 현실 속 유토피아
필 주커먼 지음, 김승욱 옮김 / 마음산책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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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 주위에는 공교롭게도 모두 크리스찬들이다. 내가 공교롭다고 하는 것은 깊은 신앙심을 가진 그들에 비해서 나는 바람앞의 등불처럼 흔들리며 연약하기 짝이 없기 때문이다. 언제나 종교는 숙제와 같다. 믿음을 갈구하고 있으나, 열심히 다니는 사람들 틈에서 한없이 세속적인 모습의 나, 열심히 다니면 다닐수록 마음속에서 고개를 드는 삶을 향한 수많은 질문들, 대답을 듣지 못한 그 질문들은 아직도 현재진형형이다.  종교인이라는 사실을 떠나 교회에 가장 불만은 이분법적 사고이다. 교회에 복종하면 착하고 복종하지 않으면 나쁜, 뿌리 깊은 근본주의적 사고는 믿음이 깊은 사람일 수록 강하다. 그러나, 인류사에서 종교는 끊임없는 논쟁을 일으켜왔고, 모든 갈등의 원인이기도 하였다. 물론 종교의 순기능도 있지만, 사실 종교가 개입된 나라치고 잘사는 나라가 없다.

 

미국에서 기독교를 믿고 기독교속에서  자란 저자 필 주커먼은  어느 날 덴마크에서 버스를 타고 가던 중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수많은 미국인이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이 없는 사회'는 혼란스럽고 끔찍한 사회가 될 것이라고 말하지만, 덴마크와 스웨덴을 본 순간, 그들이 하나님이 없이도 더 도덕적이고 민주적이고도 평화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덴마크와 스웨덴

가장 종교적인 나라

가장 비종교적인 나라

총이 범람하고

총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형벌이 가혹하고

사형제도는 이미 폐지

약물 중독자는 범죄자 취급을 받고

약물 중독자는 의학적 치료나 심리적 치료

어린이와 임신부가 건강보험혜택이 낮다

평등한 보건의료서비스를 받는다.

 

작년에 지인이  미국에서 1년간 공부를 하고 왔는데 같이 공부하던 박사분 한 분이 장파열로 갑작스럽게 돌아가시는 바람에 몹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의료비가 너무 비싸서 병원에 가서 진료한 번 못받고 한국 가서 치료한다고 그냥 끙끙 앓다가 죽었다는 말을 하며  미국이 참 무서운 나라라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난다. 게다가 경찰의 법이 곧 생명의 법이라 경찰이 시키는대로 하지 않으면 바로 총맞아 비명횡사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며, 경찰이 길가다 잡으면 꼭 두손을 번쩍 들라는 충고도 해주었다. 이라크 전쟁당시 전쟁을 해도 좋다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다고 말하는 부시대통령의 유명한 말도 있듯이 미국에서 무신론자가 대통령으로 선출될 확률은 알타에다 조직원이 대통령을 선출될 확률과 비등하다고 한다. 그와 반대로 덴마크와 스웨덴에서는 무슨 종교를 믿든 절대 표현하면 안된다고 한다. 하나님을 언급해도 그 정치가는 정치생명이 끝난거라나......그런 분위기에서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은 종교가 없는 사회는 '선함이 없는 사회'가 될 것이며 사회가 파멸할 것이라는 주장을 한다. 그러나 책의 저자는 오히려 종교의 부재가  대단히 안정적인 사회적 건강과 안녕뿐만아니라 감탄사가 나올 만큼 도덕적 질서가 강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책을 통해 밝힌다. 서문에  저자는 이 책이 가장 비종교적인 지역에서 살면서 발견하고 경험하고 새로이 배운 것들에 관한 사회학적 분석임을 밝혔는데 유독 무신론자가 많고 비종교인이 많음에도 덴마크인들과 스웬덴인들은 자신의 삶의 만족도가 꽤 높은 데다가 대부분의 삶은 무척이나 예의바르고 도덕적이며, 이타주의적이며 합리적이라고 한다.

 

 

 

 

오늘날 가장 문명화되고 정의롭고 안전하고 평등하고 인간적이고 번영하는 사회를 만든 것은, 가장 종교적인 나라가 아니라 가장 세속적인 나라들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저자는 덴마크와 스웨덴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인터뷰하면서 그들이 종교나 신앙이 없어도, 부유하고 , 의미 있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준다. 그들이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것은 전통에 기인한 이유일 뿐이며, 하나님의 축복때문은 아니라고 하며,  내세를 믿지 않기에 오히려 현재 삶에 더 충실하고 삶을 즐길 수 있다는 인터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들은 뿌리깊은 루터교가 모태신앙이다. 이들의 삶의 바탕은 어쨋거나, 그들이 하나님을 인정하던 인정하지 않던 하나님의 뿌리 깊은 역사가 잠재되어 있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종교는 유럽의 종교처럼 뿌리 깊기보다는 오히려 유입경로에서 변질된 부분도 없지 않아 있기 때문에 덴마크와 스웨덴을 보고 종교가 없기 때문에 행복하게 산다는 것은 어불성설인 부분도 없지 않아 있는 듯 하다.

 

니체가 "신은 죽었다" 라고 말하였다고 ,  니체가 사탄이라고 말하는 우를 범하는 것처럼, 저자가 신은 없어도 지구촌 한 편에는 이렇게 행복하게 잘 사는 사회, 이상적인 사회가 있으니, 신을 굳이 믿을 필요는 없다. 라고 받아들이는 것 또한 책의 단면만을 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사람들이 종교를 갖는 이유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삶의 의미에 대한 깊은 관심 때문이라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은 끊임없이 " 의미를 찾으려는 욕구" 즉 행복을 추구하는 욕망이 있다고 하였듯이 삶에서 의미를 찾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나 마찬가지이다.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은 무의미가 된다. 그러나 무의미한 현실에서 어떻게 유의미한 진리를 찾을 것이며 무한한 시간속에서 어떻게 유한한 시간을 사는 인간이 어떻게 시간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겠으며, 사랑을 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 사랑이란 감정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겠는가. 결국 우리는 현실과 삶에서 참된 의미를 찾아내야 한다. 종교를 뛰어넘어, 이론을 뛰어넘어 우리의 삶 속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삶의 의미임을 이미 백년전에 니체는 깨달았던 것이다. 그래서 신이라는 초월적인 존재에서 삶의 의미를 찾지 말고 현실에서 찾으라는 뜻의 '신은 죽었다' 라는 실존주의 철학을 남겼다. 신에 의지하기보다는 주어진 현실에 충실하는 것이 이상적인 사회를 만든다는 것은 모든 철학이 가르쳐주는 불변의 진리가 아닐까 한다. 이 책의 제목 《신 없는 사회》역시 얼핏 보면 종교가 없이도 우리 사회는 행복해 질 수 있다고 하는 것 같지만, 결국 그 이면에는 우리의 행복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삶속에 녹아있음을 말한다. 행복한 삶이란, 내세의 기약이 아니라 현실의 삶에 충실할 때 우리가 꿈꾸는 이상적인 사회, 유토피아는 완성되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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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옷을 입으렴
이도우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을 읽고 이도우 작가를 기억하게 된 것 같다. 로맨스의 풋풋함과 싱그러움으로 다가왔던 전작이었기에 잠옷을 입으렴도 그런 기대감으로 읽게 되었는데, 이 책은 로맨스가 아니라 성장소설이다. (사뭇 로맨스를 기대 ^^;;) 성장소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기에 시큰둥하게 읽기 시작했는데 책을 다 덮는 순간 콧날이 시큰거린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어렸을 때 잠시 외갓집에 맡겨 지낸 적이 있었는데 , 이 책의 주인공 둘녕과 처지가 비슷하다보니, 둘녕의 감정이 퍽 친숙하게 다가왔다. 바느질로 생활을 꾸려가고 있는 서른 여덟살의 둘녕의 시점이다. 둘녕에게는 잠옷을 입은 채로 돌아다니는 몽유병이 있다. 마음속에 치유되지 않은 아픔을 안고 잠옷을 짓는 둘녕은 잠옷을 완성하는 동시에 오랜 기억속의 그 마을에 가려 한다. 그곳에는 그 아이가 아직도 자신을 기다리기에....

 

엄마가 갑자기 집을 나가고 바쁜 아빠는 둘녕을 외할머니에게 보낸다. 처음 만난 새침한 아이 수안을 보고 , 둘녕은 어딘지 모르게 새침하고 당돌한 수안에게 위축되지만, 그 아이의 낡은 내복을 본 순간 위안을 받는다. 장에 가서 외할머니는 둘녕과 수안에게 처음으로 잠옷을 사주고 둘의 아름다운 소녀시절은 그렇게 시작된다. 책이 귀한 시절에 가끔 들리는 만화방에서 주고 받던 만화책이야기가 좀 더 진일보해서 문학작품을 탐독하게 되고 둘은 복잡한 어른들 세계와는 달리 자신들만의 세계를 구축해나간다. 책은 둘 사이를 이어주는 매개체이자, 위로이자, 추억이 된다. 둘의 문학세계가 문을 열고, 주의 사람들은 만나고 떠나고, 삼촌 역시 떠났다가 돌아오고, 이웃집 할매는 죽고 , 둘은 성장하고 있었다.

 

몸이 약한 수안을 위해 무엇이라도 해주고 싶었던 둘녕은 무엇이라도 해주고 싶어하지만, 서른 여덟이 되어서야 깨닫는 불편한 진실과 마주한다. 자신이 끊임없이 무엇인가 해주려고 하고,

사랑하니까 도움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

 

그 아이는 내게 많은 걸 바라지 않았다는 걸 나중에서야 깨닫습니다.

 

젊음이 아름다운 이유는 삶의 모든 것을 아름답게 보려한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른이 되면서 모든 것이 명징해감에 따라 삶이 그다지 아름답지 않음을 깨달을 때에야 비로서 성장한 사실을 깨닫고는 한다. 어른이 되어도 는 그대로이며, 단지 늙어가고 있다는 진실만 남는다.

 

흘러간 물은 다시 오지 않는다지만, 우리 눈에 비친 냇물은 언제나 똑같아 보이기만 했다.

 

이 책이 아름답게 느껴진 이유도 바로 그런 청춘의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삶을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을 때는 오로지 성장할 때이다. 그래서인지 교복을 입고 지나가는 여고생들의 뒷모습만 바라봐도 웃음이 나고, 첫사랑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 써니건축학개론을 읽으면서 눈물 범벅이 되는 이유도 이제는 삶을 투명하게 바라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장소설을 읽고 나면 마음이 아프다. 둘녕이 오랜 세월, 수안을 떠나보내지 못하고 잠옷을 짓는 그 마음처럼 내 안에 깃들여있던 추억의 한자락을 떠올렸다가 다시 떠나보내기란 또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인지...새벽녘의 짙푸른 어스름 속에 아슴아슴 제 붉은 빛을 드러내는 고운 꽃처럼 추억과 젊음과 아름다운 기억들을 애절함과 간절함과 아련함으로 기억하게끔 하는 소설이다. 들녕의 기억 한자락에 기대어 나의 아름다운 시절을 추억해본다.

 

 한때 내 것이었다가 나를 떠난 것도 있고, 내가 버리고 외면한 것도, 한 번도 내 것이 아니었던 것도 있다. 다만 한때 몹시 아름다웠던 것들을 나는 기억한다. 그것들은 지금 어디로 달아나서 금빛 먼지처럼 카를거리며 웃고 있을까. 무엇이 그 아름다운 시절을 데려갔는지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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