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을 팔기에 좋은 날 - 곽세라 힐링노블
곽세라 지음 / 쌤앤파커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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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그랬던 것 같다. 여자들이 머리를 기르는 이유는 기다림의 상징이라고.... 유독 인내심이 없어서 머리를 기르지 못하는데 이번에는 머리를 계속 기르고 있다. 쑥쑥 자라는 머리카락의 길이를 보며, 나는 아직도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가하며 거울 속의 나를 닮은 이에게 물어보지만, 한 번도 대답을 들은 적이 없다.

 

 한 소녀가 있다. 머리카락이 형광색이라 눈에 확 띄지만, 더 눈에 띄는 이유는 보라색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이름은 류, 그녀의 머리카락이 긴 이유는 영혼을 팔 때마다 스스로의 영혼을 하루에 0.35밀리미터씩 밖으로 밀어내게 되면서 자랐기 때문이다.

 

"영혼에 새겨진 모든 걸 끌어안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어. 슬픔이든, 악몽이든, 기쁨이나 추억 같은 것들도 너무 무거워지면 인간을 짓눌러버리거든. 어쩔 수 없이 하루에 그만큼씩은 자신을 머리카락에 적셔서 밀어내야 해. 머리카락은 모든 것을 말해. 자신이 알고 있는 것과 모르고 있는 것, 외면하고 있는 것, 앞으로 일어날 것 모두를.”

연극을 해 보았다면 이해가 쉬울 것 같다. 자신의 영혼을 파는 기분을, ‘나’를 사라지게 하고 ‘또 다른 나’로 사는 경험을, 그 느낌을. 마치 달빛처럼 ...

 

달은,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아니야. ‘달빛’이라는 건 없어. 무언가의 빛을 받아 반사할 뿐이야. 하지만 사람들은 햇빛보다 달빛에 감사할 때가 많지. 밤은 언제나 갑자기 찾아오고, 살다 보면 달빛에 의지하지 않고선 찾을 수 없는 길이 있거든.”

‘츠키(일본어로 달)’라는 극단에서 뮤토(변하는 자라는 뜻의 라틴어)가 되고 싶었던 류, 이름처럼 달빛이 되고 싶었던 류의 꿈은  극단에서 뮤토가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뮤토는 오로지 남을 위한  ‘또 다른 나’로 탄생되야만 가능하다. 류는 꿈에 그리던 뮤토가 되지만,아픔과 상실이라는 결핍의 사람들을 위해 다시 태어나 그들의 상실을 채워주려고 하지만, 오히려 그들의 상처가 부메랑되어 자신의 살속으로 파고들자, 진정한 ‘나’가 사라지는 상실의 아픔을 겪게 된다.  

우리가 만들어내는 완벽한 순간들은 거울 속에서만 존재해. 그것도 정확히 11초 정도만 고객에게 천국의 문을 보여줄 뿐이야. 11초란, 영혼이 치유되고 평생 매달려왔던 그 모든 것을 되돌리기에도 충분한 시간이지.”

  살아가면서 겪는 많은 아픔가운데 죽음이라는 깊은 웅덩이에 빠지게 되면 누구라도 그 웅덩이에서 빠져나오기란 힘이 든 법이다. 어느 한 의뢰인이 죽음의 상실에서 벗어나지 못한채 죽음을 재현하는 플레이를 제안하면 , 뮤토들은 의뢰인이 원하는 뮤토가 되어 죽음을 재현해낸다. 그러나 죽음이 아무리 예견되어 있었던 것이든, 우발적인 죽음이었든 죽음을 기억하게 하는 순간들은 모두에게 고통으로 다가온다. 뮤토에게도 의뢰인에게도,

 

뮤토였던 자, 뮤토인 자, 뮤토가 무엇인지 모르는 자. 그들은 뫼비우스의 점들처럼 서로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뮤토이기 때문에 매번 슬펐던 자, 뮤토이기 때문에 매번 두려워하는 자, 뮤토가 무엇인지 몰라 ‘그것’을 시작한 자 ….

결국 상처를 가득 안고 류는 무작정 기차여행을 떠난다. 우연히 내리게 된 간이역에서 사랑하는 이를 잃은 상실감에 넋이 나가 벤치에 앉아 있는 '리에'의 뒷모습에서, '카레(남자이름)'의 들척지근한 카레국물 위에서 어룽어룽한 그림자를 보고 느껴지는 상실의 아픔과 삶의 동질감은 류에게 진정한 ‘나’를 찾아주는데 , 영혼을 팔아서 조금씩 밀어낸 머리카락이 아닌 오롯이 자신의 머리카락만을 남기게 하는 용기를 준다. 누구든지 올곧이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주기를.....

 

“ 너인 채로, 그대로 너를 사랑한다.”

 

진정한 ‘나’를 찾는 과정을 그린 《영혼을 팔기에 좋은 날》은 이제껏 읽어왔던 소설과는 느낌이 다르다. 다소 몽환적인 느낌이기도 하면서 판타지스러운 느낌이기도 한데 실체가 뚜렷하게 다가오지 않아 주인공을 엉뚱하게 고양이로 상상하며 나혼자 키득거리곤 했다. 소설 속에 고양이이야기가 많이 등장하긴 하는데 조금 동화같이 읽어도 무관하지 싶다. 영혼을 팔기에 좋은 날, 영혼을 팔다보니 진정한 ‘나’는 사라져가는 상실감을 체득하며 성장해가는 과정을 무척 독특하고 매력적으로 묘사하였다.

 

이 책에는 두 개의 이야기가 실려있는데 개인적으로《천사의 가루》가 더 마음에 든다. 조금은 슬픈 이야기같다.  남자의 입장에서의 사랑과 , 여자의 입장에서 사랑을 무척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게 하는데 , 왠지 애틋한 소설이다.  마흔 다섯 살에 찾아 온 사랑, 그것이 진실이고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이라는 것을 죽어가며 깨닫는 남자가 자신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여자 라라를 떠올리며 첫 만나는 순간부터 죽기 전까지의 이야기와 남자가 오기를 기다리며 캐시미어 코트를 입고 매일 공항에서 기다리는 여자 라라의 이야기.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 누군가는 죽는다고 해서 없어져지지가 않는 것이다. 마음으로 의지하던 사람일수록 더욱 그렇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가끔은 통증을 동반한다. 그런 사랑의 통증과 죽음으로 인한 상실의 아픔을 라라와 요요를 통해 보여주는데 이들의 사랑도 약간 몽환적인 느낌이다. 마치 잠에서 덜 깨서 새벽안개를 맞는 느낌이랄까?  우리의 삶은 때론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가혹할 때가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가는 것이라든지, 갑작스런 죽음이 찾아올 때라든지, 예측불허의 삶속에서 상실이 주는 의미를 되새겨보게 해주는 것 같다. 삶에서 상실은 언제나 찾아오지만, 그 상실을 이겨내는 것이 살아남은 자의 몫이다. 누군가의 죽음과 사라져간 것에 대해, 흐르는 강물은 구덩이를 채워야만 흐를 수 있듯이 그렇게 가슴 한 켠의 빈 곳을 가득 채워준다. 아주 간만에 만난 매혹적이고도 마법같은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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