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의 언덕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18
에밀리 브론테 지음, 김종길 옮김 / 민음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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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윤님의 <세계가 두 번 진행되길 원한다면>을 읽고, 폭풍의 언덕의 히스클리프가 가는 곳마다 부유하여, 다시 읽게 된 책이다. 21세기가 되어도 여전히 히스클리프가 매력적인 이유를 정혜윤은 “나는 너야!’라는 선언이 인간의 삶에 얼마나 큰 의미를 부여하는지 알기 때문이다. 불행 없는 소망은 없다는 걸, 부도덕하지 않은 절대성은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라고 하였듯이 히스클리프의 사랑은 절대적이고도 영원한 사랑이기 때문이다. 젊은 날에 히스클리프의 사랑에 대한 집념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 같다.(하지만, 사랑을 한다면 히스클리프처럼 하고 싶다는 생각이 ^^;; )

 

드러시크로스 저택에 세를 들기 위해 록우드라는 청년이 워더링 하이츠(폭풍이 불면 정면으로 바람을 받아야만 하는 집)의 집주인인 히스클리프를 찾아가는 첫날 밤이 이야기의 시작이다. 워더링 하이츠에서 만난 히스클리프의 식구들은 캐서린, 헤어튼, 조셉, 그리고 가정부 질라. 록우드는 이 식구들의 첫 만남이 다른 가족과는 다른 분위기인데다가 종잡을 수 없는 가족관계에 의아함을 느낀다. 이상한 암울함이 드리워진 가족들. 록우드는 서둘러 워더링 하이츠를 벗어나고 싶었으나, 폭설로 인해 그만 발이 묶이게 된다. 가정부 질라의 심술로 인해 히스클리프가 아무도 재워서는 안된다는 방에 묶게 된 록우드는 그곳에서 낡다못해 곰팡이가 피어있는 책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 책에는 ‘캐서린 언쇼’였다가 ‘캐서린 히스클리프’였다가 ‘캐서린 린튼’ 으로 이름이 쓰여 있었다. 그리고 잠 속에 빠진 록우드는 계속된 악몽과 전나무 가지가 유리창을 두드리는 소리 때문에 깨어나는데 그곳에서 여자아이 유령을 본다. 공포에 찬 록우드의 소리에 놀라 쫓아온 히스클리프는 록우드의 말을 듣고 창을 바라보며

“들어와 ! 들어와 ! 캐시 제발 들어와 . 아 제발 한 번만 더! 아 ! 그리운 그대, 이번만은 내 말을 들어주오. 캐서린 이번만은 !”

 

  캐서린 린튼이 죽은지 수십 년이 흐른 뒤에 히스클리프를 찾아 떠돌아다니는 아기유령이라... 나는 여기서 의아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리고  캐서린은 왜 자신의 이름을 캐서린 린튼이라고 했을까? 록우드 조차 캐서린 언쇼가 아닐까 하는 의아함을 떠올리는데 ,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아기 유령의 모습으로 나타난 이유와 캐서린 린튼이라고 한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것은 캐서린의 사랑의 형체이다. 캐서린이 캐서린 히스클리프로 살았던 생애, 가장 아름다웠을 때가 어린아이의 사랑이었다면, 자신을 캐서린 린튼이라고 하는 것은 자신이 어른이 되어서도 포기하지 못하는 현실이다. 실제로 캐서린은 자신이 에드거 린튼을 사랑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히스클리프를 사랑한다. 히스클리프 자체가 자신이라고 하듯이, 자신이 사랑하는 히스클리프와 에드거와의 사랑은 분리되지 않는 사랑이었다. 그러므로 어떤 것도 포기하지 않으며 소유하는 것이 가능한 그런 사랑이었기에 캐서린은 온전히 히스클리프를 온전히 사랑할 수 있는 시기는 어린 아이였을 때나 가능한 사랑이었다. 어쩌면 히스클리프가 캐서린을  사랑한 최초의 모습이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서로에게 완전한 사랑이었을 때이기에 캐서린은 죽어서도 어린 아이 유령의 모습으로 그려진 듯 하다.  그렇지만 어쩐지  캐서린의 사랑, 어떤 면에서는 너무도 이기적인 사랑의 모습이다.

 

린튼에 대한 내 사랑은 숲의 잎사귀와 같아. 겨울이 돼서 나무의 모습이 달라지듯이 세월이 흐르면 그것도 달라지리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어. 그러나 히스클리프에 대한 내 애정은 땅 밑에 있는 영원한 바위와 같아. 눈에 보이는 기쁨의 근원은 아니더라도 없어서는 안 되는 거야. 넬리, 내가 바로 히스클리프야. 그는 언제까지나 , 언제나 내 마음속에 있어. 나 자신이 반드시 나의 기쁨이 아닌 것처럼, 그도 그저 기쁨으로서가 아니라 나 자신으로서 내 마음속에 있는 거야. 그러니 다시는 우리가 헤어진다는 말은 하지마.

 

반면에 히스클리프에게는 캐서린이 전부인 사랑이었다.

캐서린의 오빠 힌들러에게 늘 구타를 당하고 폭행을 버티게 해 줄수 있었던 캐서린이라는 존재는 히스클리프의 전생을 다 차지하고도 남았으니, 캐서린이 부유한 집의 아들 애드거 린튼과 결혼하자, 히스클리프는 복수하기 위해 애드거의 동생 이사벨라와 결혼한다. 그의 복수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오빠 힌들러를 도박으로 유혹하여 워더링 하이츠를 빼앗고 힌들러의 아들, 헤어튼을 자신처럼 키운다. 히스클리프가 정신적인 타락과 보조를 같이하여 걸음걸이부터 얼굴, 성품이 모두 침울해져갔던 것처럼 과거 자신이 워더링 하이츠의 주인에게 받았던 수모를 워더링 하이츠의 주인에게 그대로 갚아주는 것이다.

 

무엇 하나 그녀 생각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것이 있어야 말이지! 이 바닥을 내려다보기만 해도 그녀의 모습이, 깔린 돌마다 떠오른단 말이야 ! 흘러가는 구름송이마다, 나무마다, 밤이면 온 하늘에, 낮이면 눈에 띄는 온갖 것들 속에, 나는 온통 그녀의 모습에 둘러싸여 있단 말이야 ! 흔해 빠진 남자와 여자 얼굴들, 심지어 나 자신의 모습마저 그녀의 얼굴을 닮아서 나를 비웃거든. 온 세상이 그녀가 전에 살아 있었다는 것과 내가 그녀를 잃었다는 무서운 기억의 진열장이라고 !

 

그러나, 히스클리프는 자신처럼 키운 헤어튼, 즉 자신의 전생을 바쳐 복수하기 위해 워더링하이츠 주인의 아들을 데려와 키우지만, 운명의 얄궂은 장난은 히스클리프를 다시 원점에 서게 하는 것이다. 헤어튼을 보며 히스클리프가 절규하는 이유 또한 자신과 무섭도록 똑같은 , 자신이 키운 헤어튼에게서 ‘불멸의 사랑, 권리를 지키겠다는 무모한 노력, 나의 타락, 나의 자존심, 나의 행복, 고뇌의 망령’ 을 보게 됨으로써 히스클리프는 자신의 무섭도록 집요하였던 워더링 하이츠와의 싸움을 끝낼 때가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폭풍의 언덕은 록우드와 엘렌(넬리) 두사람이 대화를 하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워더링 하이츠에서 히스클리프를 처음 만난 후 넬리에게서 워더링 하이츠의 내력을 듣게 되는 이야기는 현재와 과거 , 다시 현재라는 액자식 구성으로 이야기를 해 나가는데  워더링 하이츠의 오랜 가정부인 넬리는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하여 이들의 죽음을 모두 목격한 산증인이다.  넬리는 이야기만으로도  그들의 내면심리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 그리고 그런 세세한 묘사가 폭풍의 언덕을 멜로드라마가 아닌 인간 실존의 세계를 그려낸 작품으로 존재하게 한다. 

 

   바람을 정면으로 맞서는 곳에 세워진 집, 지금은 누구도 그런 집을 짖지 않지만, 바람을 정면으로 맞서기 위해서는 바람보다 더 강해야 한다. 그래서 폭풍의 언덕위에 세워진 워더링 하이츠는 강하다. 어떤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는 워더링 하이츠는 또한 히스클리프와 닮았다. 폭풍과 싸우려는 강한 집념과 무모함까지 말이다...그런 히스의 절대적이고도 영원한 사랑의 모습에 현재에도 세기의 사랑으로 불리워지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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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두 번 진행되길 원한다면 - 감각의 독서가 정혜윤의 황홀한 고전 읽기
정혜윤 지음 / 민음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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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세계는 두 번 진행된다.

한 번은 우리가 그것을 보이는 그대로 보는 순간,

두 번째는 그것이 존재하는 그대로 전설로 새겨지는 순간,

 

매 순간 우리는 미래의 자신이다. 세계가 한 번만 진행된다면 우리는 매 순간 과거의 자신이다. 확실히 우리는 한 몸 안에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갖고 있다. 한 순간에도 과거와 미래를 산다

 

인생을 서서히 관조할 수 있는 나이 때문인지 모르지만, 나이가 들어 다시 읽는 고전은 확실히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위대한 개츠비>를 읽으며 사랑을 읽었다면, 이제는 개츠비가 그런 사랑을 한 이유를 이해하게 되는 것 같고, <마담 보바리>를 그저 사랑에 맹목적인 여성으로만 바라보았던 젊은 날과는 달리 보바리부인을 보면서 상상이 주는 현실의 참혹함을 이해하게 되고 <폭풍의 언덕>의 히스클리프의 광기 어린 사랑의 모습으로 진정한 사랑의 모습을 다시 떠올려보곤 하는데 고전은 내가 나이가 든 만큼의 몫만 이해할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의 저자 정혜윤 또한 고전을 나와 함께 나이가 드는 책이라고 하는데 이 표현은 내가 즐겨 했던 말이기도 하여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묘한 공감대가 이런 느낌이 아닐까 한다.

 

처음 제목을 본 순간 , 언뜻 이해되지 않았던 제목이었다. 세계가 두 번 진행되길 원한다면,.... 이 책을 책꽂이에 꽂아두고 수십 번을 읊조리고는 하였는데, 어느 순간 아 ~지금의 나는 미래를 준비하는 현재의 나이고 그래서 조금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는 고전을 읽어야 한다는 뜻임을  책을 읽으면서 이해가 되었다.  고전 안에는 현재를 읽을 수 있는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숨겨져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실제로 나는 개츠비나 마담 보바리, 젊은 베르테르나, 변신의 그레고리 잠자를 통해 현재 있을 법한 인물들의 심리를 이해하곤 했던 것 같다. 세계가 아무리 빠르게 변화하고 강산이 수백,수천번 뒤집어졌다해도 인간의 자연생태적 측면은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는 법이다. 저자 정혜윤이 말하듯이 고전의 이야기들은 소설속 이야기로만 멈추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때론 우리 삶 전체를 바꿀 수도 있는 내면의 삶의 출발점을 제공해 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고전은 무척 중요하고도 진실한 이야기이다.

 

 

삶 안에 또 하나의 삶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 내겐 황홀한 독서였다.

 

 

개츠비의 이상하리만치 집요한 데이지를 향한 사랑, 덧없는 열정과 더불어 설명되어 지는 미국적 성공과 몰락을 통해 개츠비의 욕망이 한 개인의 욕망이 아닌 덧없고 무절제한 번영의 시대를 보여주는 <위대한 개츠비>는 자본주의의 피조물이다. 그러나 , 개츠비만 따로 떨어뜨려 생각해보면, 순수하고 착하고 귀여운 소년이 자본주의와 쾌락의 물결에 휩쓸려 욕망의 덫에 걸려버린 한 남자의 씁쓸한 인생사이다. 저자의 <위대한 개츠비> 읽기에는 데이지가 바로 자신의 영혼이자 꿈이기에 , 개츠비가 자신의 꿈을 사랑한 순간, 언젠가는 사라져갈 텅 빈 무엇이자 시든 청춘, 영혼을 잃어버린 껍데기 같은 삶으로 전락하였기에 개츠비의 사랑을 슬픔과 쓸쓸함을 느끼지 않고는 볼 수 없다고 한다.

 

카프카의 <변신>에서 벌레로 변한 그레고리 잠자를 발터 벤야민은 이런 표현을 하였다.

동물적 존재란 그에게는 어쩌면 일종의 수치감 때문에 인간이라는 형상과 인간의 지혜를 포기하였음을 뜻하였는지도 모른다.” 벌레가 된 그레고리 잠자를 동물적 존재라 표현하며 그레고리 잠자를 저자는 '나를 향하는 칼날이라고 한다. 우리 모두에게 짊어져야 하는 공통적인 짐과 꿈은 자신안의 욕망과 다른 사람이 부여한 수많은 욕망을 통합해 내는 오묘하고 신비로운 능력을 원하면서 갖지 못하기에 꾸는 꿈을  카프카는 동물적 존재로 우리의 삶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

 

당신은 나에게 가장 사랑스러운 사람이다라고 내가 말할 때,

 그것은 어쩌면 진정한 사랑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사랑이란,내가 내 살을 도려낼 때 사용되는 칼이 바로 당신이라는 존재임을 뜻하는 것입니다 .

-카프카,밀레나에게 보내는 편지

 

한 남자가 폭풍이 휘몰아치는 밤 한 여인을 부르며 울부짖고 있는 장면은  <폭풍의 언덕>을 떠올리면 항상  생생하게 머릿속에 그려지곤 한다. 워더링하이츠에 부는 바람처럼 광적인 사랑의 모습과 , 캐서린에게 유령으로라도 매일 밤 자신의 곁을 찾아와주길 바라는 절망 가득한 부르짖음의 히스클리프에게 우리가 매혹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랑에 대한 광기와 집착때문일까?  저자는 폭풍의 언덕의 히스클리프가 매혹적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금욕주의자가 되느니 탐욕스러운 사람이 되고 싶기 때문이며, 열정으로 가득 찬 인간은 확실히 덜 타락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사라지고 오직 영원한 것만이 남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며, ‘나는 너야!’라는 선언이 인간의 삶에 얼마나 큰 의미를 부여하는지 알기 때문이다. 불행 없는 소망은 없다는 걸, 부도덕하지 않은 절대성은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줄리언 반스의 <플로베르의 앵무새><마담 보바리>의 이야기가 가장 재미있는 장이다. <보바리즘>의 저자 쥘 드 골티에에 따르면 보바리즘이란 자신과 , 자신이 실제로 그러한 것과는 다르다고 믿는 능력이라고 한다. 즉 플로베르의 주인공들은 인간의 본질을 이루는 자신은 자신이 그러한 것과는 다르다고 스스로 믿는 능력이 병리학적 양상을 제시하면서 나타난다는 것이다. 보바리 부인인 엠마는 자신의 전 생을 마치 ~처럼살았는데 사랑을 해도 마치 귀부인처럼, 사치를 부릴 때도 마치 파리의 부인처럼, 종교를 믿을 때도 마치 성녀처럼, 하는 것이다. ‘마치 ~처럼’ 인생을 살다보면 실제의 나와 상상속의 나는 다르다는 그 간극을 뼈져리게 의식할 때가 온다. 그땐 엠마처럼 파멸이 눈앞에 다가와 눈앞에 있을지도 모른다. 

 

 슬픔이 있는 사람은

슬픔이 없는 사람처럼 지내고.

기쁜 일이 있는 사람은

기쁜 일이 없는 사람처럼 살고,

물건을 산 사람은

그 물건이 자기 것이 아닌 것처럼 생각하고,

세상과 거래를 하는 사람은

세상을 거래를 하지 않는 사람처럼 살아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730~31-

 

이 고독하고 아름다운 구절 다음 문장이 바로 우리가 보는 이 세상의 모습이 사라져 가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마치 ~처럼살아가는 세계에 대한 저자의 독특한 해석을 들을 수 있는데 '마치 ~ 처럼' 세상을 살면  상상력이 부족하고 필연적으로 자신을 불쌍하게 여기게 되므로 자애심과 자기 연민의 저 밑바닥엔 자기 경멸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세계를 '마치 ~ 처럼'이 아닌 마치 ~ 이 아닌 것처럼’ 으로  보는 시각은 무척 중요하다고 한다. 마치 ~ 아닌 것처럼 을 통한 질문과 의심,끝없는 문제제기만이 우리 마음을 작동시키고 다른 세계를, 더 광활한 세계를 볼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

 

이외에 저자의 감각적인 독서법을 통해 다시 읽게 된 <거미여인의 키스>라든지<위대한 유산>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주홍글자>등은 더욱 감미롭게 읽혀진다. 고전에서 끌어올린 알토란 같은 명대사들과 명장면들은 다시 한번 감동에 사로잡히기 충분하였고, 텍스트와 더불어 의미를 전달하는 독서법은 고전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더욱 감성을 충만하게 한다. 저자의 감각적인 독서법으로 인해 책을 덮은 순간 폭풍의 언덕위에 세워진 워더링 하이츠를 떠올려보게 되는 고전의  황홀감이 그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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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딩 프라미스 - 아빠와 함께한 3218일간의 독서 마라톤
앨리스 오즈마 지음, 이은선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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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는 약속이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후손들에게 책과 독서를 사랑하는 마음을 물려주는 것만큼 값진 선물이 있을까? 11쪽

 

 

젊은 날에 성공에 목말라 했을 때, 성공이란 의미를 깨우쳐 준 시 한 줄이 있다. 랄프 왈도 애머슨의 성공이란 시에서 성공이란 ‘자신이 한때 이 세상에 살았음으로 해서 단 하나의 다른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이라는 싯귀가 척박하였던 내 마음에 뿌려져 진정한 성공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을 때, 내 삶은 달라졌다. 그리고 나는 성공을 위하여 책을 읽기 시작했다.

 

 

 

내 윗세대들은 바쁜 세대였다. 사는 게 너무 빠듯했고 목구멍이 포도청이었던 시절이라, 하루 24시간을 일해도 모자란 세대들이었다. 새벽부터 나가신 부모님들을 대신으로 남매들끼리 의지하며 가족을 사랑하는 법을 터득해갔다. 부모님께 받은 가장 값진 선물은 지금 생각해보니 '고전문학 전집'이라는 생각이 든다. 바쁘신 부모님이 주신 ‘어쩔 수 없는 자유’ 속에서 우리 4남매는 독서가 무척 재미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것이 부모님이 주신 값진 유산임을 깨달았다. 그렇게 바쁜 부모세대를 보고 자라며 삶의 지혜는 고스란히  부모가 된 나에게 이어져 내려왔다. 부모님이 바쁘게 사시면서도 내게 주신 생활의 지혜를 이제는 아이들에게 내려줄 차례이다. 우리는 그런 삶의 연속선상에 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독서는 삶을 이해하게 되는 것.

 

《리딩 프라미스》는 아빠와 함께 3218일간의 독서 마라톤을 하면서 성장한 딸 앨리스가 성인이 돼서 펴낸 에세이다. 아빠와 딸이 책을 읽는다는 것! 얼마나 멋진 일인가? 책을 읽으면서 나는 어린 앨리스가 성인인 아빠의 삶을 이해하는 과정이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앨리스는 사춘기 딸을 둔 홀아버지가 겪었을 고충을 이해하고 있었고, 어머니의 빈자리까지 채워야했던 아버지의 외로움을 이해하였고, 아버지의 짝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그리고 그런 이해를 가능하게 했던 것은 독서였다. 로이스 로리의 《기억 전달자》를 읽으며 물고기 프랭클린의 죽음을 애도하는 방법을 배우며,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을 읽으며 별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슬픔을 이겨내는 방법을 배우는 성장과정은 그야말로 경이로움 그 자체이다.

 

 

모두들 눈물을 흘렸다.죽음은 힘든 것이기에. 죽음은 슬픈 것이기에.

하지만 죽음은 생의 일부이다.

아는 사람이 죽었을 때 계속 살아나가는 것이 그대들의 임무다.

-데버러 와일스 『작은 새의 노래』

 

 

 

 앨리스 내면 깊이 자리잡은  삶을 대하는 긍정적인 자세와 웅숭깊은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삶을 바라보는 시선자체가 경이로움이다.  앨리스의 그런 면모는 집을 나간 어머니를 이해하는 부분에서도 잘 드러난다. 생전 처음으로 교통사고를 낸 후 아버지와 집에 돌아오는 길, 삐뽀삐뽀 소리가 어머니의 심장소리와 비슷하다는 것을 기억해내고는 처음으로 가족이라는 의미를 떠올리며, 어머니를 용서하는 부분에서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려 볼을 적시고, 책을 통해 삶을 통찰해 가는 과정은 또 다른  울림으로 전해온다.

 어떤 일을 꾸준히 하려면 그만큼의 노력과 수고를 해야 한다. 세상의 모든 일은 꾸준함 없이는 지속하기 힘든 법이다. 무려 3218일이라는 독서 마라톤을 하면서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학교 주차장 차안에서 독서를 하는 두 부녀를 바라보며 ,세상에 노력없이 되는 일은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놀랍게도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있었다.

 

 

삶, 즉 사람의 힘, 기쁨의 힘, 감탄의 힘을 모두 포함하는 삶 외에 다른 부는 없다. 고귀하고 행복한 인간을 가장 많이 길러내는 나라가 가장 부유하다. 자신의 삶의 기능을 최대한 완벽하게 다듬어 자신의 삶에, 나아가 자신의 소유를 통해서 다른 사람들의 삶에도 도움이 되는 영향력을 가장 광범위하게 발휘하는 그런 사람이 가장 부유한 사람이다. -알랭 드 보통-

 

책을 읽는다는 것은 삶의 풍요를 위한 훈련으로 꼭 필요하다. 삶에서 예찬할 줄 모르는 사람은 비참하다고 미셀 투르니에가 말했듯이 우리는 주변에 있는 모든 것과 대화하는 방법을 배워야하며 삶과 더불어 이야기가 씨앗이 되어 마음속에 싹이 트는 과정을 겪으며, 성공을 이루어야 한다. 그리고 인생에서의 성공이란  우리가 한때 이 세상에 살았음으로 해서 단 하나의 다른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이며 그것을 이루게 해주는 것이  바로 독서가 주는 선물이다. 그리고 나는 이것이 부모가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몫이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주려고 하지만, 부모가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우리 윗세대 부모들이 바쁜 삶속에서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와 교훈을 남겨주었듯이 오로지 단 하나, 삶을 사랑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이다. 이 책의 주인공 앨리스를 보며 책읽기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으며, 나의 사랑하는 딸들 또한 앨리스처럼 긍정적이며 아름답게 자라주기를 소망하며, 리딩 프라미스를 약속한다.

 

 

우리는 그것을 독서 마라톤이라고 불렀지만, 실제로는 약속에 가까웠다. 서로에게 한 약속, 우리 자신에게 한 약속이었다. 항상 그 자리를 지킬 것이며,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p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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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배신 - '긍정의 배신'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워킹 푸어 생존기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배신 시리즈
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 최희봉 옮김 / 부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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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보면 유장하게 지속되는 삶의 한가운데에는 언제나  중심에 사람이 있다. 지나치게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21세기 자본주의 사회는 사람이 중요하다는 원초적인 사실조차도 잊게 하는 것 같다. 사람이 중심이 아닌 물질이 중심이 되어 가고 있는 사회의 모습에서 한편으로는 위기의식을 느끼기도 한다. 최근 한 대선후보가 최저임금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로 구설수에 오른 적이 있다. 한편으로는 정치인들의 생활상과 빈곤층사이의 생활의 갭을 잘 보여주고 있는 모습이란 생각이 든다최근 들어 급증하고 있는 생활고로 인한 자살률만 보아도 자본주의 사회이자 시장만능주의 사회에서 워킹 푸어로 살아간다는 것은 힘겨운 삶인 것만은 확실하다.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노동의 배신은 기자인 저자가 이런 빈민층들의 실제적인 삶으로 뛰어들어 최저 임금만을 가지고 생활이 가능할까? 라는 물음의 답을 찾기 위해 직접 저임금 노동의 현장에 뛰어들어 식당 웨이트리스, 청소부, 요양원 보조원, 월마트 판매 직원 등으로 위장 취업하여 노동의 실태를 보고하는 일종의 워킹 푸어(근로 빈곤층) 생존 프로젝트이다.

 

전국노숙자연합은 시간당 8달러 89센트는 받아야 미국에서 평균적으로 침실이 하나 딸린 아파트에 살 수 있다고 발표했다. 워킹 푸어의 시간당 임금은 6~7달러. 경제정책연구소에서 1998년 발표에서는 노동인구의 거의 30퍼센트가 시간당 8달러 이하를 받는다고 한다. 이런 사실들이 에런라이크에게 실험정신을 자극하게 했다. 에런라이크는 이들이  8달러 이하를 받으면서도 생활이 가능한 것을 보며 그들에게 나름의 생존비법이 있다고 생각하였다고 한다. 그런 모험심과 호기심으로 시작된 프로젝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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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들만 아는 절약법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플로리다의 키웨스트에서 저임금 노동자 생활을 시작은 오후 2시부터 밤 10시까지 시간당 2.43달러에 팁을 더한 금액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에런라이크는 식당을 맨손으로 나와야 했다.

 

 가난하기 때문에 추가로 드는 비용이 수두룩했다. 아파트를 구할 때 지불해야 하는 집세와 보증금이 없으니 일주일 단위로 방을 빌리면서 엄청난 방세를 내야 한다.

의료보험에 들 형편이 안 되니 정기 검진을 받을 수 없고, 처방전이 있어야 살 수 있는 약도 구할 수 없고 그러다 결국에는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

 

 

저자는 워킹 푸어의 생활과 더불어 수입과 집세를 맞추는 것이 가능한지를 실험하지만,

 

 딸린 가족이 없는 홀몸에 , 건강하고, 차까지 있는 나 같은 사람이 땀 흘리며 열심히 일을 해도

먹고 살기가 아주 힘겨울 정도로 빠듯하다면 뭐가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된 것이다.

경제학자가 아니더라도 임금은 너무 낮고 집세는 너무 높다는 걸 알 수 있다.

 

 

 

저자 에런라이크는 생물학박사이자, 저널리스트이자 사회운동가이다. 그녀에게는 노후를 편히 보낼 수 있는 연금과 의료보험도 있고, 청결한 아파트가 있다중산층였던 그녀가  빈곤층의 생활을 겪어보는 과정에서 느꼈던 것은 세상에 아무리 보잘것없는 직업이라도 아무 기술도 필요 없는일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라고 한다. 자신의 학식이 자신이 일을 배우는 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으며, 자신이 겪은 여섯 가지의 노동에서 배운 업무중에서 손쉽게 익힌 업무는 없었다고 한다. 자신의 인생 전반에서 성취한 업적과는 상관없이 저임금 노동의 세계에서 그저 저자는 지극히도 평균적인 사람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것은 자신의 노동보다 더 값진 깨달음이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괴테가 삶의 진리는 체험에서 비롯된다고 하였듯이 삶은 몸으로 직접 부딪쳐 얻게 되는  체험에서 깨달음이 온다. 책상머리에 앉아서 백 날 공부해봤자, 삶이 주는 위대한 깨달음은 책상머리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진리를 행동으로 직접 보여주는 저자 에런라이크의 워킹푸어 생존기는 많은 울림을 전해온다 저자가 이 책을 집필할 당시는 그래도 경제 호황기였다. 경제호황기에서도 워킹 푸어의 삶은 빈곤 그 자체였으니,  지금은 아마도 더 심각하면 심각했지, 덜 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 워킹 푸어의 생활 역시 더하면 더했지 덜 하지 않다. 우리나라도 최근 최저 임금의 상승률이 물가 상승률에 따라가지 못하면서 임금이 사실상 깎여지는 결과가 초래되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결국 그대로 이거나 빚에 허덕여 살 수 밖에 없다. 반면 기업은 원자재가가 조금만 올라도 물건 값을 대폭 올리기 때문에 소비자인 노동자들은 그 돈을 다시 기업들에게 이자까지 쳐서 상납하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임금이 오르지 않는 가장 명백한 이유는 고용주들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임금 상승을 막기 때문이다. 274

 

정치적 분위기도 빈곤과 가난한 사람들에 관해 침묵을 지키자는 암묵적 합의라도 맺은 듯하다. 291

 

책의 마지막에 저자는 워킹 푸어들을 바라보며 우리가 느껴 마땅한 감정은 수치심이라고 한다. 다른 사람들이 정당한 임금을 못 받으며 수고한 덕분에 우리가 편하게 살고 있다는 것이다. 예전에 모방송에서  외국인이 우리나라에서 임금착취 당하는 현장을 고발한 프로그램이 방영된 적이 있었다. 하루 종일 한 끼도 못 먹고 집에 와서 겨우 밥 한 끼 먹는데 한 끼 밥상이 밥과 김치도 아닌 김칫국물이 전부인 밥상이다.  

 

저자 에런라이크는  누군가가 배를 곯는 덕에 우리는 더 싸고 편리하게 먹을 수 있고, 먹고 살기에 형편없이 모자란 임금을 받는 그 누군가가 있기에 우리의 삶이 편안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고 한다.  비록 최저임금을 몰랐더라도 당신이 누리고 있는 부는 누군가의 희생 덕분이란 사실 정도는 기억해주기를 바란다. 이 책으로 인해 미국은 최저임금을 인상하기로 하였다. 지금도  최고의 베스트셀러로 워킹 푸어들에게 사랑을 받으며 예일대를 비롯한 600여개 대학의 필독서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만큼 워킹 푸어에 대해 사회적으로 보호와 안전장치가 시급하다고 보아야 한다. 가난을 범죄로 내모는 나라가 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노동의 배신』은  자본주의 이면을 몸소 체험으로서 보여주는 최고의 프로젝트이다. 

  

정부에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이나 길에 나앉은 극빈자들을 제도적으로 괴롭히는 일을 중단하자. 어쩌면 오늘날 수많은 미국인이 생각하듯이, 빈곤을 줄이는 공공 프로그램을 집행할 예산을 확보하기가 정말로 불가능한지도 모른다. 물론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그러나 적어도 우리는 아주 기본적인 원칙을 정해서 사람들이 넘어졌을 때 그들을 발로 차지는 않겠다고 다짐해야 한다.(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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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과 마흔 사이 인생병법
노병천 지음 / 청림출판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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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전쟁과 비유하여 손자병법의 문리를 깨우치는 스토리텔링이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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