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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배신 - '긍정의 배신'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워킹 푸어 생존기 ㅣ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배신 시리즈
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 최희봉 옮김 / 부키 / 2012년 6월
평점 :
역사를 보면 유장하게 지속되는 삶의 한가운데에는 언제나 중심에 사람이 있다. 지나치게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21세기 자본주의 사회는 사람이 중요하다는 원초적인 사실조차도 잊게 하는 것 같다. 사람이 중심이 아닌 물질이 중심이 되어 가고 있는 사회의 모습에서 한편으로는 위기의식을 느끼기도 한다. 최근 한 대선후보가 최저임금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로 구설수에 오른 적이 있다. 한편으로는 정치인들의 생활상과 빈곤층사이의 생활의 갭을 잘 보여주고 있는 모습이란 생각이 든다. 최근 들어 급증하고 있는 생활고로 인한 자살률만 보아도 자본주의 사회이자 시장만능주의 사회에서 워킹 푸어로 살아간다는 것은 힘겨운 삶인 것만은 확실하다.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노동의 배신』은 기자인 저자가 이런 빈민층들의 실제적인 삶으로 뛰어들어 최저 임금만을 가지고 생활이 가능할까? 라는 물음의 답을 찾기 위해 직접 저임금 노동의 현장에 뛰어들어 식당 웨이트리스, 청소부, 요양원 보조원, 월마트 판매 직원 등으로 위장 취업하여 노동의 실태를 보고하는 일종의 워킹 푸어(근로 빈곤층) 생존 프로젝트이다.
전국노숙자연합은 시간당 8달러 89센트는 받아야 미국에서 평균적으로 침실이 하나 딸린 아파트에 살 수 있다고 발표했다. 워킹 푸어의 시간당 임금은 6~7달러. 경제정책연구소에서 1998년 발표에서는 노동인구의 거의 30퍼센트가 시간당 8달러 이하를 받는다고 한다. 이런 사실들이 에런라이크에게 실험정신을 자극하게 했다. 에런라이크는 이들이 8달러 이하를 받으면서도 생활이 가능한 것을 보며 그들에게 나름의 생존비법이 있다고 생각하였다고 한다. 그런 모험심과 호기심으로 시작된 프로젝트이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만 아는 절약법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플로리다의 키웨스트에서 저임금 노동자 생활을 시작은 오후 2시부터 밤 10시까지 시간당 2.43달러에 팁을 더한 금액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에런라이크는 식당을 맨손으로 나와야 했다.
가난하기 때문에 추가로 드는 비용이 수두룩했다. 아파트를 구할 때 지불해야 하는 집세와 보증금이 없으니 일주일 단위로 방을 빌리면서 엄청난 방세를 내야 한다.
의료보험에 들 형편이 안 되니 정기 검진을 받을 수 없고, 처방전이 있어야 살 수 있는 약도 구할 수 없고 그러다 결국에는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 |
저자는 워킹 푸어의 생활과 더불어 수입과 집세를 맞추는 것이 가능한지를 실험하지만,
딸린 가족이 없는 홀몸에 , 건강하고, 차까지 있는 나 같은 사람이 땀 흘리며 열심히 일을 해도
먹고 살기가 아주 힘겨울 정도로 빠듯하다면 뭐가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된 것이다.
경제학자가 아니더라도 임금은 너무 낮고 집세는 너무 높다는 걸 알 수 있다. |
저자 에런라이크는 생물학박사이자, 저널리스트이자 사회운동가이다. 그녀에게는 노후를 편히 보낼 수 있는 연금과 의료보험도 있고, 청결한 아파트가 있다. 중산층였던 그녀가 빈곤층의 생활을 겪어보는 과정에서 느꼈던 것은 “세상에 아무리 보잘것없는 직업이라도 ‘아무 기술도 필요 없는’일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라고 한다. 자신의 학식이 자신이 일을 배우는 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으며, 자신이 겪은 여섯 가지의 노동에서 배운 업무중에서 손쉽게 익힌 업무는 없었다고 한다. 자신의 인생 전반에서 성취한 업적과는 상관없이 저임금 노동의 세계에서 그저 저자는 지극히도 평균적인 사람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것은 자신의 노동보다 더 값진 깨달음이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괴테가 삶의 진리는 체험에서 비롯된다고 하였듯이 삶은 몸으로 직접 부딪쳐 얻게 되는 체험에서 깨달음이 온다. 책상머리에 앉아서 백 날 공부해봤자, 삶이 주는 위대한 깨달음은 책상머리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진리를 행동으로 직접 보여주는 저자 에런라이크의 워킹푸어 생존기는 많은 울림을 전해온다. 저자가 이 책을 집필할 당시는 그래도 경제 호황기였다. 경제호황기에서도 워킹 푸어의 삶은 빈곤 그 자체였으니, 지금은 아마도 더 심각하면 심각했지, 덜 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 워킹 푸어의 생활 역시 더하면 더했지 덜 하지 않다. 우리나라도 최근 최저 임금의 상승률이 물가 상승률에 따라가지 못하면서 임금이 사실상 깎여지는 결과가 초래되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결국 그대로 이거나 빚에 허덕여 살 수 밖에 없다. 반면 기업은 원자재가가 조금만 올라도 물건 값을 대폭 올리기 때문에 소비자인 노동자들은 그 돈을 다시 기업들에게 이자까지 쳐서 상납하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임금이 오르지 않는 가장 명백한 이유는 고용주들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임금 상승을 막기 때문이다. 274쪽
정치적 분위기도 빈곤과 가난한 사람들에 관해 침묵을 지키자는 ‘암묵적 합의’라도 맺은 듯하다. 291쪽
책의 마지막에 저자는 워킹 푸어들을 바라보며 우리가 느껴 마땅한 감정은 수치심이라고 한다. 다른 사람들이 정당한 임금을 못 받으며 수고한 덕분에 우리가 편하게 살고 있다는 것이다. 예전에 모방송에서 외국인이 우리나라에서 임금착취 당하는 현장을 고발한 프로그램이 방영된 적이 있었다. 하루 종일 한 끼도 못 먹고 집에 와서 겨우 밥 한 끼 먹는데 한 끼 밥상이 밥과 김치도 아닌 김칫국물이 전부인 밥상이다.
저자 에런라이크는 누군가가 배를 곯는 덕에 우리는 더 싸고 편리하게 먹을 수 있고, 먹고 살기에 형편없이 모자란 임금을 받는 그 누군가가 있기에 우리의 삶이 편안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고 한다. 비록 최저임금을 몰랐더라도 당신이 누리고 있는 부는 누군가의 희생 덕분이란 사실 정도는 기억해주기를 바란다. 이 책으로 인해 미국은 최저임금을 인상하기로 하였다. 지금도 최고의 베스트셀러로 워킹 푸어들에게 사랑을 받으며 예일대를 비롯한 600여개 대학의 필독서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만큼 워킹 푸어에 대해 사회적으로 보호와 안전장치가 시급하다고 보아야 한다. 가난을 범죄로 내모는 나라가 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노동의 배신』은 자본주의 이면을 몸소 체험으로서 보여주는 최고의 프로젝트이다.
정부에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이나 길에 나앉은 극빈자들을 제도적으로 괴롭히는 일을 중단하자. 어쩌면 오늘날 수많은 미국인이 생각하듯이, 빈곤을 줄이는 공공 프로그램을 집행할 예산을 확보하기가 정말로 불가능한지도 모른다. 물론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그러나 적어도 우리는 아주 기본적인 원칙을 정해서 사람들이 넘어졌을 때 그들을 발로 차지는 않겠다고 다짐해야 한다.(31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