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두 번 진행되길 원한다면 - 감각의 독서가 정혜윤의 황홀한 고전 읽기
정혜윤 지음 / 민음사 / 2010년 3월
평점 :
품절


그래서 세계는 두 번 진행된다.

한 번은 우리가 그것을 보이는 그대로 보는 순간,

두 번째는 그것이 존재하는 그대로 전설로 새겨지는 순간,

 

매 순간 우리는 미래의 자신이다. 세계가 한 번만 진행된다면 우리는 매 순간 과거의 자신이다. 확실히 우리는 한 몸 안에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갖고 있다. 한 순간에도 과거와 미래를 산다

 

인생을 서서히 관조할 수 있는 나이 때문인지 모르지만, 나이가 들어 다시 읽는 고전은 확실히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위대한 개츠비>를 읽으며 사랑을 읽었다면, 이제는 개츠비가 그런 사랑을 한 이유를 이해하게 되는 것 같고, <마담 보바리>를 그저 사랑에 맹목적인 여성으로만 바라보았던 젊은 날과는 달리 보바리부인을 보면서 상상이 주는 현실의 참혹함을 이해하게 되고 <폭풍의 언덕>의 히스클리프의 광기 어린 사랑의 모습으로 진정한 사랑의 모습을 다시 떠올려보곤 하는데 고전은 내가 나이가 든 만큼의 몫만 이해할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의 저자 정혜윤 또한 고전을 나와 함께 나이가 드는 책이라고 하는데 이 표현은 내가 즐겨 했던 말이기도 하여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묘한 공감대가 이런 느낌이 아닐까 한다.

 

처음 제목을 본 순간 , 언뜻 이해되지 않았던 제목이었다. 세계가 두 번 진행되길 원한다면,.... 이 책을 책꽂이에 꽂아두고 수십 번을 읊조리고는 하였는데, 어느 순간 아 ~지금의 나는 미래를 준비하는 현재의 나이고 그래서 조금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는 고전을 읽어야 한다는 뜻임을  책을 읽으면서 이해가 되었다.  고전 안에는 현재를 읽을 수 있는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숨겨져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실제로 나는 개츠비나 마담 보바리, 젊은 베르테르나, 변신의 그레고리 잠자를 통해 현재 있을 법한 인물들의 심리를 이해하곤 했던 것 같다. 세계가 아무리 빠르게 변화하고 강산이 수백,수천번 뒤집어졌다해도 인간의 자연생태적 측면은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는 법이다. 저자 정혜윤이 말하듯이 고전의 이야기들은 소설속 이야기로만 멈추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때론 우리 삶 전체를 바꿀 수도 있는 내면의 삶의 출발점을 제공해 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고전은 무척 중요하고도 진실한 이야기이다.

 

 

삶 안에 또 하나의 삶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 내겐 황홀한 독서였다.

 

 

개츠비의 이상하리만치 집요한 데이지를 향한 사랑, 덧없는 열정과 더불어 설명되어 지는 미국적 성공과 몰락을 통해 개츠비의 욕망이 한 개인의 욕망이 아닌 덧없고 무절제한 번영의 시대를 보여주는 <위대한 개츠비>는 자본주의의 피조물이다. 그러나 , 개츠비만 따로 떨어뜨려 생각해보면, 순수하고 착하고 귀여운 소년이 자본주의와 쾌락의 물결에 휩쓸려 욕망의 덫에 걸려버린 한 남자의 씁쓸한 인생사이다. 저자의 <위대한 개츠비> 읽기에는 데이지가 바로 자신의 영혼이자 꿈이기에 , 개츠비가 자신의 꿈을 사랑한 순간, 언젠가는 사라져갈 텅 빈 무엇이자 시든 청춘, 영혼을 잃어버린 껍데기 같은 삶으로 전락하였기에 개츠비의 사랑을 슬픔과 쓸쓸함을 느끼지 않고는 볼 수 없다고 한다.

 

카프카의 <변신>에서 벌레로 변한 그레고리 잠자를 발터 벤야민은 이런 표현을 하였다.

동물적 존재란 그에게는 어쩌면 일종의 수치감 때문에 인간이라는 형상과 인간의 지혜를 포기하였음을 뜻하였는지도 모른다.” 벌레가 된 그레고리 잠자를 동물적 존재라 표현하며 그레고리 잠자를 저자는 '나를 향하는 칼날이라고 한다. 우리 모두에게 짊어져야 하는 공통적인 짐과 꿈은 자신안의 욕망과 다른 사람이 부여한 수많은 욕망을 통합해 내는 오묘하고 신비로운 능력을 원하면서 갖지 못하기에 꾸는 꿈을  카프카는 동물적 존재로 우리의 삶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

 

당신은 나에게 가장 사랑스러운 사람이다라고 내가 말할 때,

 그것은 어쩌면 진정한 사랑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사랑이란,내가 내 살을 도려낼 때 사용되는 칼이 바로 당신이라는 존재임을 뜻하는 것입니다 .

-카프카,밀레나에게 보내는 편지

 

한 남자가 폭풍이 휘몰아치는 밤 한 여인을 부르며 울부짖고 있는 장면은  <폭풍의 언덕>을 떠올리면 항상  생생하게 머릿속에 그려지곤 한다. 워더링하이츠에 부는 바람처럼 광적인 사랑의 모습과 , 캐서린에게 유령으로라도 매일 밤 자신의 곁을 찾아와주길 바라는 절망 가득한 부르짖음의 히스클리프에게 우리가 매혹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랑에 대한 광기와 집착때문일까?  저자는 폭풍의 언덕의 히스클리프가 매혹적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금욕주의자가 되느니 탐욕스러운 사람이 되고 싶기 때문이며, 열정으로 가득 찬 인간은 확실히 덜 타락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사라지고 오직 영원한 것만이 남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며, ‘나는 너야!’라는 선언이 인간의 삶에 얼마나 큰 의미를 부여하는지 알기 때문이다. 불행 없는 소망은 없다는 걸, 부도덕하지 않은 절대성은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줄리언 반스의 <플로베르의 앵무새><마담 보바리>의 이야기가 가장 재미있는 장이다. <보바리즘>의 저자 쥘 드 골티에에 따르면 보바리즘이란 자신과 , 자신이 실제로 그러한 것과는 다르다고 믿는 능력이라고 한다. 즉 플로베르의 주인공들은 인간의 본질을 이루는 자신은 자신이 그러한 것과는 다르다고 스스로 믿는 능력이 병리학적 양상을 제시하면서 나타난다는 것이다. 보바리 부인인 엠마는 자신의 전 생을 마치 ~처럼살았는데 사랑을 해도 마치 귀부인처럼, 사치를 부릴 때도 마치 파리의 부인처럼, 종교를 믿을 때도 마치 성녀처럼, 하는 것이다. ‘마치 ~처럼’ 인생을 살다보면 실제의 나와 상상속의 나는 다르다는 그 간극을 뼈져리게 의식할 때가 온다. 그땐 엠마처럼 파멸이 눈앞에 다가와 눈앞에 있을지도 모른다. 

 

 슬픔이 있는 사람은

슬픔이 없는 사람처럼 지내고.

기쁜 일이 있는 사람은

기쁜 일이 없는 사람처럼 살고,

물건을 산 사람은

그 물건이 자기 것이 아닌 것처럼 생각하고,

세상과 거래를 하는 사람은

세상을 거래를 하지 않는 사람처럼 살아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730~31-

 

이 고독하고 아름다운 구절 다음 문장이 바로 우리가 보는 이 세상의 모습이 사라져 가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마치 ~처럼살아가는 세계에 대한 저자의 독특한 해석을 들을 수 있는데 '마치 ~ 처럼' 세상을 살면  상상력이 부족하고 필연적으로 자신을 불쌍하게 여기게 되므로 자애심과 자기 연민의 저 밑바닥엔 자기 경멸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세계를 '마치 ~ 처럼'이 아닌 마치 ~ 이 아닌 것처럼’ 으로  보는 시각은 무척 중요하다고 한다. 마치 ~ 아닌 것처럼 을 통한 질문과 의심,끝없는 문제제기만이 우리 마음을 작동시키고 다른 세계를, 더 광활한 세계를 볼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

 

이외에 저자의 감각적인 독서법을 통해 다시 읽게 된 <거미여인의 키스>라든지<위대한 유산>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주홍글자>등은 더욱 감미롭게 읽혀진다. 고전에서 끌어올린 알토란 같은 명대사들과 명장면들은 다시 한번 감동에 사로잡히기 충분하였고, 텍스트와 더불어 의미를 전달하는 독서법은 고전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더욱 감성을 충만하게 한다. 저자의 감각적인 독서법으로 인해 책을 덮은 순간 폭풍의 언덕위에 세워진 워더링 하이츠를 떠올려보게 되는 고전의  황홀감이 그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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