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군 이야기 1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 1
시오노 나나미 지음, 송태욱 옮김, 차용구 감수 / 문학동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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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부터 가고 싶었던 나라가 있었다. 예루살렘 성지를 맨발로 걸어보고 싶은 꿈이 있었는데 시간이 흘러가면서 탈색되어버린 꿈처럼 기억되지만, 한때 예루살렘 성지순례는 여행사의 인기 패키지 상품 중의 하나였었다. 최근 몇 년간은 그 여행패키지 상품 자체를 아예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여전히 지속되는 분쟁과 전쟁소식에 불안함도 한 몫 했을 테지만 언제나 예루살렘은 ‘성스러운 도시’이자 신의 도시로 느껴진다. 또한 세계사에 한 획을 그었던 십자군 전쟁의 중심지였던 이유이기도 한데 대부분의 사람들의 인식에 예루살렘은 신이 사는 지상의 집인 동시에 두 민족의 수도이며 세 종교의 사원이고, 하늘과 땅 사이에 존재하는 유일한 도시로 기억되지 않을까 한다. 하지만 이곳은 현재도 두 민족과 세 종교가 서로 소유권을 주장하고 있으며 예루살렘의 역사속으로 들어가보면 예루살렘은 결코 단순한 도시가 아니다. 지구촌에서 가장 대표적인 분쟁도시이자 끊임없는 중동 분쟁과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갈등은 민족적 주권과 영토권을 둘러싼 역사적 분쟁과 관련되어 있다. 천국과 같은 이상의 도시이자 참혹한 현실이 공존하는 곳이 바로 예루살렘이다.

 

 

십자군을 떠올리면 알 수 없는 종교적인 ‘광기’가 연상되어지곤 한다. 나는 그 이유를 내가 그리스도인이기에 이해하는 부분도 있기 때문이다. ‘성스러운 도시’라는 이미지가 나도 모르게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으며 만약에 그 ‘ 성스러운 도시’ 가 이교도들에 의해 파탄이 나고 있다면 예루살렘을 구원하기 위해 십자군에 참여하였을 것 같다. 어쨌든 그 시대의 십자군도 그런 순수한 종교적의미를 가진 사람도 있을 것이고, 아니면 면죄부와 신분상승을 이유로 참여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은 자명한 이치 같다. 이익을 따라 움직이는 것이 사람의 심리라면 당시 시대상에 십자군은 유일한 탈출구가 될 수도 있었기에... 아마도 그렇게 십자군은 예루살렘을 구원하는 전사인 동시에 순례자가 되었을 것이라고 어림짐작해 왔다.

 

전쟁은 인간이 여러 난제를 한꺼번에 해결하려 할 때 떠올리는 아이디어다.

 

첫 장을 펼치자마자 튀어나오는 이 단어는 시작부터 에누리 없다. 역사의 주인공들의 심리에 파고들어 눈으로 마치 그 장면을 보는 기분처럼 생생하게 이야기를 풀어놓는 솜씨는 거침이 없다. 특이한 것은 기록을 중심으로 역사를 말하는 일반 역사책과는 달리 ‘인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저술하였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우리가 접해왔던 역사는 승자의 기록인 셈이고 시오노 나나미가 그리고 있는 역사는 승자중심이 아닌 인간 중심인 역사이야기이다. 어떤 면에서는 더 사실적으로 다가오는 듯 하기도 하다.

 

십자군 전쟁은 표면적으로는 예루살렘 성지의 회복(해방)이지만, 그 이면에는 우루바누스 교황2 세와 하인리히 황제의 권력싸움이다. 우르바누스 황제는 자신의 권리에 충실한 사람이었으며 그것을 이용할 줄 알았다. 그것은 십자군을 선동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도 신념어린 자신의 권력을 만천하에 알릴 수 있는 말 “신이 그것을 바라신다.” 라는 대의명분을 내거는 것으로 황제에게 정면승부를 띄운 것이다. 이교도에 의해 점령당한 예루살렘 성지탈환은 많은 이들의 가슴을 뛰게 하였음은 틀림없을 것이다. 타락해 가고 있는 종교에 대항하여 종교개혁을 부르짖고 있는 황제파를 상대로 교황의 권위를 세움과 동시에 종교회복의 성격을 띄고 있는 황제의 선언은 막혀 있던 가슴을 뻥 뚤리게 하는 힘이 있었으리라.... 당시 십자군에 참여하는 이들에게는 신분상승과 면죄부가 주어졌다. 결과적으로는  전 유럽의 그리스도교들을 이슬람과의 전쟁에 내보냄으로써 로마 교황의 권위를 과시하는 데 성공과 동시에 황제 하인리히 상대로 20 년 만에 승리 하게 된다.

 

저자는 십자군이야기를 역사 속에서 찾아보기 힘든 이유를 ‘양자와 이해관계가 없는 제 삼자가 남긴 기술이 존재’하지 않으며 정확성을 기하는 것이 습관이자 전통인 민족이 남긴 ‘기록’을 참고 할 수 있어야 하지만, 십자군의 역사에는 ‘제 삼자’도, ‘기록’도 남겨있지 않은 상태라 사료에는 십자군의 경로나 참사가 정확하게 기술되어 있지 않다고 한다.

 

계속된 십자군과 이슬람과의 전쟁부분은 스펙타클하며 생동감 있게 그려내서인지 마치 책을 읽으면서도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착각에 빠지게 만들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이슬람 군대가 의외로  대패가  많아 의아한 부분이 많았는데 그 이유를 저자는 당시 이슬람 세계는 이 십자군이 종교를 기치로 내건 군대라는 인식을 아무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처음부터 비잔틴제국의 알렉시우스 황제가 원군요청으로 도착한 용병부대라고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영토획득을 노린 상대로만 대했으며, 이슬람인 들이 숫자는 배로 많음에도 서로 군웅할거하고 있었기에 단합된 십자군대를 당해낼 수가 없었던 것으로 보았다.

 

  안티오키아 함락의 주역인 공작 보에몬드를 필두로 트리폴리 지방을 지배한 레몽백작,에데사 지방을 정복한 고드프루아 백작 , 그의 동생 보두앵은 1대 예루살렘 왕이 되고 보에몬드 1세의 오른 팔로서 탁월한 활약상을 펼친 탄크레디까지 , 이들 제후들은 순수한 신앙심으로 무장하였으며, 중세 기사의 용맹까지 전장에서 종횡무진하며 중동근을 십자군 국가로 만드는 데 까지 성공하며 예루살렘 성지를 탈환한다. 이들을 상대로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 했던 교활한 비잔틴제국의 알렉시우스 황제와의 두뇌싸움과 안티오키아 성에서의 공성전, 광기속에서 벌인 인육사건등은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는 동시에 굶주림과 더불어 이교도라면 한 명도 살려 남기지 않았던 잔혹함을 보았을 때, 프로이트가 말한 죽음 본능이 인간의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골이 송연해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예루살렘의 탈환과 성지 팔레스티나의 탈환소식은 서유럽 전역을 열광의 도가니에 사로잡히게 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그들에게 남은 것은 계속된 병력감소와 십자군 1세대 제후들의 죽음과 더불어 조금씩 전세가 강해지고 있는 이슬람무리들이라는 사실을 남기고 2권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이렇게 1095년부터 시작하여 1099년까지 불과 3년만에 1차 십자군은 ‘예루살렘 해방’이라는 거대한 목적을 달성하였다.

 

시오노 나나미는 십자군을 종교가 주도한 ‘사회개혁운동’ 으로 정의한다. 첫 시작에도 말하였지만, 인류가 위기에 봉착하였을 때 항상 선택한 것은 다름 아닌 전쟁이었다. 2003년 이라크 전쟁 또한 미국의 헤게모니에 의한 석유획득을 목적을 한 전쟁이었듯이 십자군 전쟁은 종교라는 이름을 내건 사회에서 탈출구였다. 처음에는 순수한 신앙으로 출발하였더라도 이들이 점점 전쟁의 광기에 물들어가는 모습과 그 속에 다양한 인간군상 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지금도 끊임없이 분쟁과 전쟁에 물들어 있는 중동지역과 최근에도 전쟁의 소용돌이의 한복판에 있었던 투르크 족의 역사를 되돌아볼 수 있게 되어 십자군이야기는  한편으로는 현재의 지구촌역사를 이해하기에는 적합한 책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역사를 오늘의 거울이요 내일의 길라잡이라고 하는 이유도 개인과 사회와 한 민족을 형성한 공동체는 역사의 이해를 통해 현재를 돌아보게 하기 때문이다. 점점 강성해지고 있는 이슬람 세력들과 십자군 2세대들과의 대결은 향후 십자군 전쟁을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 된 전쟁을 남기는 데에 한 몫 하였을 듯하여 2권을 기대하며 1권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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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혁명 - 주 1회 출근으로 연봉 15억을 이룬 비밀의 역발상 노트
가와이 요시오 지음 / 페이퍼북(Paperbook)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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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을 하고 하이힐을 신고 출근한지 이제 한 달이 채 안 된다. 이제까지 개인 사업을 하고 있었음에도 입사를 한 것은 개인적인 나태함에 대한 채찍질과도 비슷한 이유였고, 기회를 그냥 흘러버리기 싫어서였다. 직장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드는 생각은 기존에 내가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로 살았는가에 대한 반성과 더불어 기존 사원이 뒤죽박죽 정리해 놓은 자료와 불분명한 파일명, 폐기처분을 기다리고 있는 파일, 분명히 시간낭비를 했을 파일들은 업무를 비효율적이게 함은 분명해 보였다. 이런 사소한 업무도 개인적인 생각에는 비즈니스 마인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생각혁명》의 저자 가와이 요시오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과자 가게를 하며 어머니에게 판매, 장부 기입까지 배웠으며 그것을 실제 경험과 믹스하여 정리해 놓았다.

1. 일의 양과 성과는 비례하지 않는다.

2. 상대가 원하는 것을 파악한다.

3. 심층심리를 읽는다.

 4. 경영자는 미래를 만든다.

 5. ‘당연한 것’을 찾는다.

 6. 세상의 흐름을 탄다.

 

이러한 비즈니스 원칙을 토대로 꾸준히 역발상을 한 결과, 가와이 요시오는 CEO로서 일주일에 한 번만 출근하면서도 연 수입 15억을 벌고 있다고 한다. 그의 성공비결은 다른 것이 아니라 돈을 벌 수 있는 소재가 떠오르면 항상 이 여섯 가지의 법칙과 비교해 보며 꾸준히 역발상을 한다고 한다. 이 책은 그렇게 역발상을 거치며 완성한 그의 80가지 생각 습관을 소개한다.

 

1장의 성과는 노력이 아닌 지혜에서 비롯된다는 말은 마치 자기계발서와 같은 분위기를 풍기지만, 그 이면에 자리 잡은 생각은 가와이 요시오는 아마도 뼛속까지 비즈니스맨이라는 생각이 든다. 성과는 노력이 아니라 지혜가 가져다주며, 사업의 번영은 종이로 된 자료가 아니라, 손님이 요구하는 것을 파악하는 것에 달려 있다는 것, 회사의 미래는 사장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손님에게 있다는 것, 소비자의 마음속에 눈에 보이는 ‘요구’뒤에 숨어 있는 ‘진정한 요구’라는 사실 등은 익숙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68 전문서적 세 권을 읽었다면 전문가이다 ! 하는 말에서는 전문서적을 지식의 목적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목표나 이념이 확실했을 때 읽으면 전문가를 능가하며 더욱 뜨거운 정열이 생긴다는 것에서는 고개를 끄덕이곤 한다. 어떤 일을 할 때 그것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 없으면 책을 통해서 얻는 것도 놀라운 비즈니스 효과를 나타내는 것을 경험을 통해 배워왔기 때문이다. 76 즐기는 것이 최고의 비결이라는 말은 가장 최고의 비즈니스 마인드라 여겨진다.  큰 아이는 학교 가는 것을 무척 좋아하는데 유독 자신이 좋아하는 수학 수업이 많은 날은 신이 나서 간다. 나는 수학을 워낙 싫어해 아이가 늘 행복하게 학교를 가는 모습이 신기했는데 자신이 즐기면 무엇이든 잘하게 되어 있는 것은 인지상정이 아닌가 한다. 다만, 즐기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을 만든다는 것도 누구나 다 알지만, 잘 안되는 부분이기도 한 ^^

 

요즘 혁명이라는 단어가 서점에서는 새로운 '화두'인 것 같다. 과거에는 혁명이란 단어가 금지였을 정도로 모든 면에서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어져 왔던 것 같은데 곳곳에서 혁명을 외쳐댄다. 스티브 잡스를 시대의 혁명가이자 아이콘으로 부상시키게 된 이유는 오로지  기존의  생각의 틀을 깨고 역발상의 아이디어를 시대의 흐름을 관통했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저자 역시 기존의 고수익 사업도 '이 혁명가'가 나타남으로써 매너리즘에서 탈출해야 하며, 회사는 끊임없이 '혁명가'를 키울 수 있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한다.  외부에서 혁명가가 나타나도 무너지지 않도록 대책을 세우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바로 ‘사장’ 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사장은 직원을 독려하는 입장이지, 직원을 감시하는 입장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저자의 이런 깨인 방식은 회사에 직원과의 원활한 대화를 위해서 건물 1층에 바 bar를 만들어 한 달에 두번 정도는 '사장 바'에서 이야기를 한다고 한다.《생각혁명》을 읽으면서, 15억을 번다는 것이 부럽다기보다는 성공한 사람들의 바탕에는 언제나 긍정적인 마인드가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는 책이다. 저자의 역발상 노트는 얇지만, 한 장, 한 장, 격언처럼 새겨 읽느라고 조금 시일을 두고 읽었는데, 거듭되는 불황속에서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사업자나 회사원들이 읽으면, 가슴을 탁 !치는 조언들이 많은 것이라 생각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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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금지된 공간 내가 소망한 공간 - 금지와 소망이라는 실로 책의 그물을 엮고 생각의 집을 지은 한 여자의 이야기
서윤영 지음 / 궁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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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에 산 지 1년이 넘었음에도 아직 적응되지 않는다. 집이 주는 안락함이나, 평안함을 느끼기에는 단독주택이 제격이다. 아파트는 늘 남의 집에 사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건축과를 나온 것은 아니지만, 집안에 건축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있어 이사할 때마다 인테리어나 집수리를 할 때 덕을 많이 보는 편이다.원체가 건축과 인테리어는 젬병인 편이라 늘 도움을 받는데 가끔 쇼파에 누워 휘황찬란한 조명은 내 집이 아닌 착각을 일으키는 거 빼고는 대체적으로 우리 집의 인테리어와 조명은 마음에 쏙 든다. 넓은 집에 달랑 네 식구 인데도 항상 거실에서 옹기종기 모여 자다 보니 아직까지는 서재나 사적인 공간을 갖고 싶다는 생각은 해 본적이 없다.

 

 

이 책의 저자는 서재에 대한 소망을 중학교 때부터 가졌다고 한다. 저자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는데 벌써 여섯 권의  다작을 낸 작가다. 저자의 이력 중에 참 독특하다고 느낀 것은 본인 스스로 말하는 수학과에서 건축과로 전과를 했고, 서른네 살에 T자 대신 펜을 잡는 것으로 전업한 것보다는 오히려 서른두 살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다는 부분이다. 서른두 살부터 시작된 책읽기로 비롯하여 인터넷 서점에 서평등록을 하면서 시작된 글쓰기는 그녀를 현재 건축칼럼리스트이자 여성작가로 불리게 만들어 주었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시작된 목록이 어느새 600권이 넘어가고 있으며 여섯 번의 이사를 하며 건축도면과 함께 읽은 책들의 목록을 기록해놓았다.

 

저자는 일정 분량의 책들을 읽었을 때 인생의 어떤 변화가 뚜렷하게 생겼다고 고백한다. 요즘 책 읽는 재미에 빠져 사는 내 입장에서 십분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나 역시도 책을 읽고 서평을 쓴다. 그러나, 나는 그 이상의 의미를 두지 않는다. 다만 책을 오롯이 책이 가지고 있는 의미로서 책으로 보고 어느 정도 시일이 지나서 책이 내 인생의 동반자라는 확신으로 자리잡게 되자, 어떤 환경이 와도 흔들리지 않을 자신감이 생겼다. 그것으로 만족하며 늘 감사함을 느끼는 요즘이다. 저자 역시 인생을 살다보니 의도하지 않은 불행을 만나게 되는데 그때마다 자신의 구원이 되어준 것이 책이었다고 한다. 내게도 책은 구원이다. 근 몇 년을 책이 내 옆에서 항상 함께 해주었다. 그러나 그 뿐이다. 책이 내게 바라는 것이 없듯 나도 책에게 바라는 것은 없다. 그냥 남은여생도 늘 내 옆에 있어주었으면 하는 소망이다. 누군가는 참 그런 것도 소망이 되는가 할지 모르지만, 인생이란 모르는 것이니까,

 

이외수 선생님이 <공중부양>에서 글을 쓰려고 소망하는 사람(작가의 꿈을 가진 사람)은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많다고 한다. 그러나 그 중에서 이름을 알리거나, 이 책의 작가처럼 여섯 권이라는 책을 낼 수 있는 경우는 더욱 드물다. 저자가 처음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가 100권의 책을 읽었을 때라고 한다. 다른 사람들은 100권을 보겠지만, 나는 작가가 100권의 책을 읽으면서 그 책을 통해 배웠을 그 무언가를 떠올린다. 똑같은 100권을 읽어도 완독을 하느냐, 정독을 하느냐, 발췌독( 중요부분만 골라서 읽는 것)을 하느냐의 문제인데, 저자는 어떤 책이든 완독을 고집한다고 한다고 하는 것을 보아서 책을 얼마나 치열하게 읽어야 하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책읽기도 치열하게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언제나 치열하게 읽는 기분으로 읽는다.  내가 생각하는 책읽기는 쓰기로 비로서 완성되는 것 같다. 간혹 이해가 가지 않는 어려운 책을 만났을 때는 무조건 쓴다. 이렇게 쓰는 것은 책을 읽는 것보다 쓰는 것의 이해가 더 빠르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하지만, 조금 책에서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서재가 두 개인 사실이 그렇게 새롭지 않다는 사실이다. ( 요즘은 개성을 중요시하는 시대이니) 많은 사람들이 저자에게 서재가 두 개예요? 하고 물어본다고 하는데, 그것은 다 자신의 사는 스타일이지, 독특한 삶으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예를 들면, 우리 집에 텔레비전과 컴퓨터가 없고 빔 프로젝트만 거실에 달랑 있는 거 봐도 사람들은 그렇게 물어보는데, 사람들이 모두 서재가 두 개인 것을 힐문한다는 것을 금지된 소망을 꿈꾼 것으로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다. 하지만, 책에는 '서재가 두 개'에 대한 이야기가 지나치게 반복이 되어  슬며시 반감이 고개를 들이민다. 요즘 세상은 개성이 많은 사람이 지나치게 널린 세상인데, 서재가 두 개를 가졌다는 것을 개성으로 부각시키기엔 , 더구나 작가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면, 당연하고도 지나치게 평범한 사실 아닌가.

 어떤 면에서는 무한 공감을 일으키는 부분도 있었지만, 어떤 면에서는 솔직히 소망과 금지라는 모호한 경계선 사이의 의미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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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라리티 - 광고 마케팅 인문학과 정신분석학으로 도발하기
홍정 지음 / 인간사랑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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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를 안 보다가 어느 날 우연히 TV광고를 보면 눈이 현란하다. 게다가 선정적이고 자극적이기까지 하다. 소비자 입장에서 광고를 보면 언제나 눈은 즐겁지만, 나는 책에서 말하는 소위 냉소적 소비자에 속한 것 같다. 어쩌면 소비자들은 점점 더 냉소적으로 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광고매체에 익숙해짐에 따라 점점 눈으로 보는 것만이 아닌 그 이면의 것을 생각하기 때문인 듯하다. 언젠가 쇼핑중독의 주부들이 많아지고 있으며, 쇼핑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해 방송사에서 심리치료과정을 보여준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아마도 쇼핑중독에 걸린 여자를 페티시 소비자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페티시는 물신처럼 숭배하는 대상을 말하는데 마케팅 전략은 모든 역량을 다해 소비자의 마음속에 페티시로 자리 잡게 한다면 성공한 마케팅이라 할 수 있다. 가면을 쓴 표지그림이 무척 매혹적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아마도 이 책의 의도는 페르소나 이면에 자리잡은 심리를 연구하는 데에 목적이 있는 듯 하다. 한마디로 잠재된 인간 내면 심리를 이해하여 마음 속 깊게 자리 잡게 하는 하나의 마케팅 전략이라 할 수 있겠다. 저자는 독특하게도 이런 이해를 인문학과 정신분석학으로 접근하였다

 

 

 

싱글라리티는 기존의 마케팅을 전통적인 마케팅으로, 전통 이후의 마케팅을 싱글라리티 마케팅이라고 한다.

 

  기존의 전통 마케팅은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 (To see is to believe)" 라는 말에 충실한 전략이다 눈으로 보는 것이 중요한 이유를 저자는 라캉과 지젝, 샤르트르, 데카르트의 철학을 통해 방증하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잉여 쾌락이라는 말이다. 현대인들은 눈으로 보는 것을 즐기는 잉여쾌락을 추구하는데 이 잉여쾌락이란 타자의 시선을 자신이 스스로 그 대상이 된다고 여기면서 충족시키기 때문에 자아는 시각적 욕구의 쾌락만족을 넘어 불쾌의 충동의 만족을 추구하기 때문에 과잉의 쾌락또는 잉여의 쾌락이라고 한다. 타자의 시선을 즐겨라라는 잉여쾌락은 싱글라리티의 핵심요소이자 컨셉 플래닝이다.

 

혁신의 대명사인 스티브 잡스가 피카소는 좋은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고 했다는데 나는 훌륭한 아이디어를 훔치는 것을 부끄러워한 적이 없다.” 고 말했으며, 직원들 또한 타인의 것을 서슴지 않고 훔치기도 하는 행동을 바랐다는 것을 저자는 싱글라리티의 컨셉플래닝인 즐기라는 잉여쾌락의 시대 흐름에 창조적으로 적용했다고 본다.

 

저자는 기존의 전통 마케팅이 천편일률적으로 눈의 차원에서만 마케팅기획을 하고 있지만, 싱글라리티가 추구하는 것은 바로 '타자라는 대상에 맞추어 마케팅 기획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것을 니체식으로 말하자면, 눈의 차원이 아폴론이라면, 타자의 시선의 차원은 디오니소스다. 니체는비극의 탄생에서 이성의 질서인 로고스의 세계를 아폴론이라고 하고 , 소의 내장을 먹으면서 축제의 열기에 휩싸인 격정의 욕망과 충동의 세계를 디오니소스라고 한다.

 

 

 

 

기존의 전통 마케팅은 욕구충족이었던 전략에 의한 것이었지만,

 

 

 

즐겨라컨셉 플래닝은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에 근거한 마케팅이 아니라, 소비자가 브랜드가 제공하는 어찌할 수 없는 즐거움에 빠져든다는 전략이다. 여기서 브랜드는 소비자에게 억제할 수 없는 쾌감을 주는 대상으로 승화된다.

 

독특하고도 색다른 광고를 해오고 있는 베네통 광고는 이런 타자의 응시를 즐기는 것을 광고컨셉을 잡아 지금도 사람들에게 자주 회자되고는 한다. 수녀와 신부의 키스장면 , 버락 오바마가 한 남성과 키스하는 모습, 남성과 남성의 진한 키스, 이런 금기를 깨는 외설적인 장면들은 소비자들에게 타자의 응시를 즐기는 묘한 쾌감을 느끼게 해준다고 한다. ( 나 역시도 이 장면을 보며 느꼈나? 생각해본다. 하지만 베네통 광고는 한번 보고는 웬만하면 머릿속에 각인되어지기에 마케팅 전략으로는 훌륭하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싱글라리티는 무척 색다른 마케팅이야기이다. 특히나 소크라테스와 라캉, 지젝을 관통하는 인문학과 정신분석학을 바탕으로 했다는 말을 빌어 알 수 있듯이 쉽지는 않은 책이다. 그러나 마케팅 역시 뭔가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한 시대이다. 현재 경제나 정치, 사회 , 문화 다방면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하는 있는 분위기이다. 그런 흐름에 발 맞추어 '마케팅' 역시 기존에 보는 것에만 맞추었던 마케팅전략을 인문학과 정신분석학에서 찾아보는 것은 무척 색다르면서도 말 그대로 싱글라리티(독특)하다. 창조적이고도 독창성을 추구하는 일을 하고 있는 (특히 광고업계) 사람이라면 무척 도움이 될 마케팅 전략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며 , ‘즐겨라라는 컨셉플래닝은 아마도 미래에는 모두가 이런 플래닝을 추구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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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 정치를 깨우다 - 지도자의 지침서 노자 강의 시리즈 2
안성재 지음 / 어문학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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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의 제자백가 시리즈 중 1편인<철학의 시대>에는 춘추전국시대 이전의 시대에 대해서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노자, 정치를 깨우다』에서는 삼황오제가 통치하던 시대로 복귀해야 한다는 주장에 따라 노자의 사상을 정치적인 이념으로 풀어놓았다. 삼황은 일반적으로 복희씨(伏羲氏) ·신농씨(神農氏) ·여와씨(女媧氏)를 말하며 이를 천황(天皇) ·지황(地皇) ·인황(人皇 또는 泰皇)으로 기록하기도 한다. 복희씨는 사람들에게 물고기 잡는 법을 전수해 주었으며, 신농씨는 농사법을 전해주었다. 여와씨는 인간을 창조하였다고 한다. 사마 천(司馬遷)은 삼황의 전설을 믿을 수 없는 것으로 생각했는지, 《사기(史記)》의 기술을 오제본기(五帝本紀)에서부터 시작한다. 《철학의 시대》에서는 조금 더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사마 천이 오제로 든 것은 황제헌원(黃帝軒轅) ·전욱고양(顓頊高陽) ·제곡고신(帝嚳高辛) ·제요방훈(帝堯放勳:陶唐氏) ·제순중화(帝舜重華:有虞氏)이다. 원래 이 전설은 다양한 신화 ·전설이 혼합된 것이며, 도덕적 ·정치적으로 억지로 끌어들인 것이어서 그 기원은 애매하다고 한다. 이 삼황오제가 통치하던 시기를 일컬어 대동사회라고 하는데 이때는 지도자를 백성들의 뜻을 따라 받들어 통치하였으며, 중국에서 이 시기를 가장 이상적인 태평성대라고 하여 진나라를 세워 중국을 통일한 시황제의 황제(皇帝)라는 호칭은 여기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삼황오제의 기운과 그들 이후 최초의 황제를 의미하는 시(始)를 넣어 작명하였을 정도로 대동사회는 가장 이상적이고도 완벽한 사회를 말한다.

 

 

노자는 도가(道家)의 시조이다. 초(楚)나라에서 태어나 주(周)왕실의 신하가 되었다는 기록이 있지만 실재의 인물은 아니라고 하는 견해도 있다. 노자 역시 대동으로서의 복귀를 주장하는 이상주의자였고 그의「도덕경」은 이러한 가치관을 반영한 이상주의적 정치이념서적이다. 공자와 동시대를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노자는 공자의 중심사상인 인의(仁義)보다도 더 앞선 것으로 무위자연(無爲自然)을 최고의 덕으로 보았다. 따라서 이 책은 이상적인 정치를 하는 대동사회란 어떤 사회인지를 살펴보는 동시에 대동사회로의 복귀를 주장하는 노자의 사상에도 한 발 더 다가간다.

 

 

책은 미언대의(美言大義 : 짧은 말 속에 심오한 의미가 담겨져 있음) 로 미언과 대의, 해설 부분으로 나누어 풀이되어 있는데, 각 문장의 의미를 역사적 사실과 함께 기록하여 노자가 말하고자 하는 진의를 파악하기 쉽도록 해놓았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주장하였듯이 ‘대동사회’의 천성에 따라 나라를 다스리며 인위적으로 제도를 통제하지 않는 통치이념’을 실천해야 만이 변치 않고 오랫동안 나라를 안정되게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 주된 사상이다. 이러한 사상은 도덕경 전반에 잘 나타나 있는데 가장 잘 나타나 있는 장이 2장과 7장으로 보여진다.

〔도덕경 2장 고유무상생 난이상성 장단상교 고하상경 음성상화 전후상수 故有無相生 難易相成 長短相較 高下相傾 音聲相和 前後相隨 대동사회의 이치는 있음과 없음이 함께 조화를 이루는 것이고, 어려움과 쉬움이 함께 조화를 이루는 것이며, 길고 짧음이 함께 조화를 이루는 것이고, 높고 낮음이 함께 조화를 이루는 것이며, 소리와 음률이 함께 조화를 이루는 것이고, 앞과 뒤가 함께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이것은 노자가 말하는 정치이념이 잘 드러나 있는 장이다. 바로 ‘상생의 도리' , 즉 ’화(和)이다.

 

이것은 〔도덕경7장〕의 천장지구 천지소이능장차구자 天長地久 天地所以能長且久 에서도 볼 수 있는데 하늘과 땅이 변치 않고 오랫동안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하늘과 땅만이 살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세상의 모든 존재들 즉 자연의 모든 생물 및 무생물들과 어우러져 함께 살려고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라가 변치 않고 오래 유지되려면 이처럼 좋은 것만 취하고 나쁜 것은 버리는 것이 아니라, 어느 누구 하나 버리지 않고 어우러져 살아야하는 것이다.

 

 

이는 상생의 도리가 대동사회의 주된 특징이기 때문이다. 고유지이위리,무지이위용故有之以爲利,無之以爲用에서 강조하는 것 역시 세상의 모든 이치는 ‘있음’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로움을 주는 것이고, ‘없음’이 존재하기 때문에 세상에 쓰임이 있게 되는 것이니, 어느 한 쪽만 존재해서는 안 되고 ‘좋음’과 ‘나쁨’ ‘긍정’과 ‘부정’이 모두 공존해야 한다.

 

 

이렇게 노자는 14장까지 ‘대동의 통치이념’을 이해시키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특히 그 중요한 특징으로서 신중함과 정중함, 화해, 순박함, 자애로움 그리고 모호함 등을 부각시키고 있다. 81장을 통틀어 노자가 강조하고 있는 사상 또한 이런 상생의 도리 즉 ‘화和’를 말한다. 더불어 노자에게 있어서 최상의 가치관은 바로 ‘자연’이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자연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알고 있는 자연이 아니라 ‘스스로 그러함(존재하는)’이라는 ‘무위’라는 것이며 , ‘무위’ 즉 억지로 작위하지 않고 천성에 따르는 것을 최상의 가치로 여겼다. 게다가 노자는 공자의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도리를 강조하는데 공자와 노자의 도리이전에 이것은 태평성대의 치세라 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는 노자의 ‘도’가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져 왔던 형이상학적 ‘무위자연의 도’를 지칭하는 것이 아님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음이다. 만일 노자가 주장하는 바가 ‘형이상학적 개념의 무위자연의 도’라면 오늘날까지도 일반인들의 상식으로 노자의 가치관을 이해할 수 없어야 한다. 왜냐하면 노자의 사상과 당시 사상가들의 사상적 괴리감을 피력하는 장이 여러군데 에서 보여지기 때문이다. 노자의 무위를 기존에 형이상학적인 관점으로만 보아왔는데 보편적인 개념의 무위로 보는 시각으로 노자의 사상은 조금 현실감 있게는 다가오지만, 이 모든 것이 행하는 바가 없으면 무의미한 사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누구나 마음을 비워야 채울 수 있으며, 넘치면 화가 된다는 말을 알고 있다. 그러나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다르다. 정치인들이 도덕경을 읽는다고 해서 행함이 없으면 이롭지 않듯이 무엇이든 행함이 있어야 우리에게도 대동사회를 꿈꿀 수 있는 이상이 생길 것 같다. 도덕경 44장에는 만족할 줄 알면 수치를 당하지 않으며, 멈출 줄 알면 위험에 처하지 않고, 오래 복을 누릴 수 있다.(지족불욕, 지지불태, 가이장구) 는 말이 있다. 2012년을 너나없이 정치의 해라고 떠들썩하지만, 지난 선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올바른 정치이념을 지닌 정치지도자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 국민들을 더욱 피폐하게 만드는 게 아닐까 한다. 무엇이든지 적당 선 에서 멈출 줄 안다는 것은 분명 쉽지는 않지만, 권력이든, 명예도 쾌락도 지나치면 땅을 치고 후회하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으면서도 더 가지지 못해 안달하는 것이 작금의 정치의 모습이다. 도덕경을 읽으면서 반신반의하는 것은 대동사회의 복귀이념자체가 그저 이상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 때문이다. 우리가 꿈꾸는 지도자가 《도덕경》을 읽는 지도자라면 모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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