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십자군 이야기 1 ㅣ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 1
시오노 나나미 지음, 송태욱 옮김, 차용구 감수 / 문학동네 / 2011년 7월
평점 :
예전부터 가고 싶었던 나라가 있었다. 예루살렘 성지를 맨발로 걸어보고 싶은 꿈이 있었는데 시간이 흘러가면서 탈색되어버린 꿈처럼 기억되지만, 한때 예루살렘 성지순례는 여행사의 인기 패키지 상품 중의 하나였었다. 최근 몇 년간은 그 여행패키지 상품 자체를 아예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여전히 지속되는 분쟁과 전쟁소식에 불안함도 한 몫 했을 테지만 언제나 예루살렘은 ‘성스러운 도시’이자 신의 도시로 느껴진다. 또한 세계사에 한 획을 그었던 십자군 전쟁의 중심지였던 이유이기도 한데 대부분의 사람들의 인식에 예루살렘은 신이 사는 지상의 집인 동시에 두 민족의 수도이며 세 종교의 사원이고, 하늘과 땅 사이에 존재하는 유일한 도시로 기억되지 않을까 한다. 하지만 이곳은 현재도 두 민족과 세 종교가 서로 소유권을 주장하고 있으며 예루살렘의 역사속으로 들어가보면 예루살렘은 결코 단순한 도시가 아니다. 지구촌에서 가장 대표적인 분쟁도시이자 끊임없는 중동 분쟁과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갈등은 민족적 주권과 영토권을 둘러싼 역사적 분쟁과 관련되어 있다. 천국과 같은 이상의 도시이자 참혹한 현실이 공존하는 곳이 바로 예루살렘이다.
십자군을 떠올리면 알 수 없는 종교적인 ‘광기’가 연상되어지곤 한다. 나는 그 이유를 내가 그리스도인이기에 이해하는 부분도 있기 때문이다. ‘성스러운 도시’라는 이미지가 나도 모르게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으며 만약에 그 ‘ 성스러운 도시’ 가 이교도들에 의해 파탄이 나고 있다면 예루살렘을 구원하기 위해 십자군에 참여하였을 것 같다. 어쨌든 그 시대의 십자군도 그런 순수한 종교적의미를 가진 사람도 있을 것이고, 아니면 면죄부와 신분상승을 이유로 참여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은 자명한 이치 같다. 이익을 따라 움직이는 것이 사람의 심리라면 당시 시대상에 십자군은 유일한 탈출구가 될 수도 있었기에... 아마도 그렇게 십자군은 예루살렘을 구원하는 전사인 동시에 순례자가 되었을 것이라고 어림짐작해 왔다.
전쟁은 인간이 여러 난제를 한꺼번에 해결하려 할 때 떠올리는 아이디어다.
첫 장을 펼치자마자 튀어나오는 이 단어는 시작부터 에누리 없다. 역사의 주인공들의 심리에 파고들어 눈으로 마치 그 장면을 보는 기분처럼 생생하게 이야기를 풀어놓는 솜씨는 거침이 없다. 특이한 것은 기록을 중심으로 역사를 말하는 일반 역사책과는 달리 ‘인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저술하였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우리가 접해왔던 역사는 승자의 기록인 셈이고 시오노 나나미가 그리고 있는 역사는 승자중심이 아닌 인간 중심인 역사이야기이다. 어떤 면에서는 더 사실적으로 다가오는 듯 하기도 하다.
십자군 전쟁은 표면적으로는 예루살렘 성지의 회복(해방)이지만, 그 이면에는 우루바누스 교황2 세와 하인리히 황제의 권력싸움이다. 우르바누스 황제는 자신의 권리에 충실한 사람이었으며 그것을 이용할 줄 알았다. 그것은 십자군을 선동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도 신념어린 자신의 권력을 만천하에 알릴 수 있는 말 “신이 그것을 바라신다.” 라는 대의명분을 내거는 것으로 황제에게 정면승부를 띄운 것이다. 이교도에 의해 점령당한 예루살렘 성지탈환은 많은 이들의 가슴을 뛰게 하였음은 틀림없을 것이다. 타락해 가고 있는 종교에 대항하여 종교개혁을 부르짖고 있는 황제파를 상대로 교황의 권위를 세움과 동시에 종교회복의 성격을 띄고 있는 황제의 선언은 막혀 있던 가슴을 뻥 뚤리게 하는 힘이 있었으리라.... 당시 십자군에 참여하는 이들에게는 신분상승과 면죄부가 주어졌다. 결과적으로는 전 유럽의 그리스도교들을 이슬람과의 전쟁에 내보냄으로써 로마 교황의 권위를 과시하는 데 성공과 동시에 황제 하인리히 상대로 20 년 만에 승리 하게 된다.
저자는 십자군이야기를 역사 속에서 찾아보기 힘든 이유를 ‘양자와 이해관계가 없는 제 삼자가 남긴 기술이 존재’하지 않으며 정확성을 기하는 것이 습관이자 전통인 민족이 남긴 ‘기록’을 참고 할 수 있어야 하지만, 십자군의 역사에는 ‘제 삼자’도, ‘기록’도 남겨있지 않은 상태라 사료에는 십자군의 경로나 참사가 정확하게 기술되어 있지 않다고 한다.
계속된 십자군과 이슬람과의 전쟁부분은 스펙타클하며 생동감 있게 그려내서인지 마치 책을 읽으면서도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착각에 빠지게 만들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이슬람 군대가 의외로 대패가 많아 의아한 부분이 많았는데 그 이유를 저자는 당시 이슬람 세계는 이 십자군이 종교를 기치로 내건 군대라는 인식을 아무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처음부터 비잔틴제국의 알렉시우스 황제가 원군요청으로 도착한 용병부대라고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영토획득을 노린 상대로만 대했으며, 이슬람인 들이 숫자는 배로 많음에도 서로 군웅할거하고 있었기에 단합된 십자군대를 당해낼 수가 없었던 것으로 보았다.
안티오키아 함락의 주역인 공작 보에몬드를 필두로 트리폴리 지방을 지배한 레몽백작,에데사 지방을 정복한 고드프루아 백작 , 그의 동생 보두앵은 1대 예루살렘 왕이 되고 보에몬드 1세의 오른 팔로서 탁월한 활약상을 펼친 탄크레디까지 , 이들 제후들은 순수한 신앙심으로 무장하였으며, 중세 기사의 용맹까지 전장에서 종횡무진하며 중동근을 십자군 국가로 만드는 데 까지 성공하며 예루살렘 성지를 탈환한다. 이들을 상대로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 했던 교활한 비잔틴제국의 알렉시우스 황제와의 두뇌싸움과 안티오키아 성에서의 공성전, 광기속에서 벌인 인육사건등은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는 동시에 굶주림과 더불어 이교도라면 한 명도 살려 남기지 않았던 잔혹함을 보았을 때, 프로이트가 말한 죽음 본능이 인간의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골이 송연해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예루살렘의 탈환과 성지 팔레스티나의 탈환소식은 서유럽 전역을 열광의 도가니에 사로잡히게 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그들에게 남은 것은 계속된 병력감소와 십자군 1세대 제후들의 죽음과 더불어 조금씩 전세가 강해지고 있는 이슬람무리들이라는 사실을 남기고 2권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이렇게 1095년부터 시작하여 1099년까지 불과 3년만에 1차 십자군은 ‘예루살렘 해방’이라는 거대한 목적을 달성하였다.
시오노 나나미는 십자군을 종교가 주도한 ‘사회개혁운동’ 으로 정의한다. 첫 시작에도 말하였지만, 인류가 위기에 봉착하였을 때 항상 선택한 것은 다름 아닌 전쟁이었다. 2003년 이라크 전쟁 또한 미국의 헤게모니에 의한 석유획득을 목적을 한 전쟁이었듯이 십자군 전쟁은 종교라는 이름을 내건 사회에서 탈출구였다. 처음에는 순수한 신앙으로 출발하였더라도 이들이 점점 전쟁의 광기에 물들어가는 모습과 그 속에 다양한 인간군상 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지금도 끊임없이 분쟁과 전쟁에 물들어 있는 중동지역과 최근에도 전쟁의 소용돌이의 한복판에 있었던 투르크 족의 역사를 되돌아볼 수 있게 되어 십자군이야기는 한편으로는 현재의 지구촌역사를 이해하기에는 적합한 책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역사를 오늘의 거울이요 내일의 길라잡이라고 하는 이유도 개인과 사회와 한 민족을 형성한 공동체는 역사의 이해를 통해 현재를 돌아보게 하기 때문이다. 점점 강성해지고 있는 이슬람 세력들과 십자군 2세대들과의 대결은 향후 십자군 전쟁을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 된 전쟁을 남기는 데에 한 몫 하였을 듯하여 2권을 기대하며 1권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