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금지된 공간 내가 소망한 공간 - 금지와 소망이라는 실로 책의 그물을 엮고 생각의 집을 지은 한 여자의 이야기
서윤영 지음 / 궁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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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에 산 지 1년이 넘었음에도 아직 적응되지 않는다. 집이 주는 안락함이나, 평안함을 느끼기에는 단독주택이 제격이다. 아파트는 늘 남의 집에 사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건축과를 나온 것은 아니지만, 집안에 건축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있어 이사할 때마다 인테리어나 집수리를 할 때 덕을 많이 보는 편이다.원체가 건축과 인테리어는 젬병인 편이라 늘 도움을 받는데 가끔 쇼파에 누워 휘황찬란한 조명은 내 집이 아닌 착각을 일으키는 거 빼고는 대체적으로 우리 집의 인테리어와 조명은 마음에 쏙 든다. 넓은 집에 달랑 네 식구 인데도 항상 거실에서 옹기종기 모여 자다 보니 아직까지는 서재나 사적인 공간을 갖고 싶다는 생각은 해 본적이 없다.

 

 

이 책의 저자는 서재에 대한 소망을 중학교 때부터 가졌다고 한다. 저자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는데 벌써 여섯 권의  다작을 낸 작가다. 저자의 이력 중에 참 독특하다고 느낀 것은 본인 스스로 말하는 수학과에서 건축과로 전과를 했고, 서른네 살에 T자 대신 펜을 잡는 것으로 전업한 것보다는 오히려 서른두 살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다는 부분이다. 서른두 살부터 시작된 책읽기로 비롯하여 인터넷 서점에 서평등록을 하면서 시작된 글쓰기는 그녀를 현재 건축칼럼리스트이자 여성작가로 불리게 만들어 주었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시작된 목록이 어느새 600권이 넘어가고 있으며 여섯 번의 이사를 하며 건축도면과 함께 읽은 책들의 목록을 기록해놓았다.

 

저자는 일정 분량의 책들을 읽었을 때 인생의 어떤 변화가 뚜렷하게 생겼다고 고백한다. 요즘 책 읽는 재미에 빠져 사는 내 입장에서 십분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나 역시도 책을 읽고 서평을 쓴다. 그러나, 나는 그 이상의 의미를 두지 않는다. 다만 책을 오롯이 책이 가지고 있는 의미로서 책으로 보고 어느 정도 시일이 지나서 책이 내 인생의 동반자라는 확신으로 자리잡게 되자, 어떤 환경이 와도 흔들리지 않을 자신감이 생겼다. 그것으로 만족하며 늘 감사함을 느끼는 요즘이다. 저자 역시 인생을 살다보니 의도하지 않은 불행을 만나게 되는데 그때마다 자신의 구원이 되어준 것이 책이었다고 한다. 내게도 책은 구원이다. 근 몇 년을 책이 내 옆에서 항상 함께 해주었다. 그러나 그 뿐이다. 책이 내게 바라는 것이 없듯 나도 책에게 바라는 것은 없다. 그냥 남은여생도 늘 내 옆에 있어주었으면 하는 소망이다. 누군가는 참 그런 것도 소망이 되는가 할지 모르지만, 인생이란 모르는 것이니까,

 

이외수 선생님이 <공중부양>에서 글을 쓰려고 소망하는 사람(작가의 꿈을 가진 사람)은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많다고 한다. 그러나 그 중에서 이름을 알리거나, 이 책의 작가처럼 여섯 권이라는 책을 낼 수 있는 경우는 더욱 드물다. 저자가 처음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가 100권의 책을 읽었을 때라고 한다. 다른 사람들은 100권을 보겠지만, 나는 작가가 100권의 책을 읽으면서 그 책을 통해 배웠을 그 무언가를 떠올린다. 똑같은 100권을 읽어도 완독을 하느냐, 정독을 하느냐, 발췌독( 중요부분만 골라서 읽는 것)을 하느냐의 문제인데, 저자는 어떤 책이든 완독을 고집한다고 한다고 하는 것을 보아서 책을 얼마나 치열하게 읽어야 하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책읽기도 치열하게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언제나 치열하게 읽는 기분으로 읽는다.  내가 생각하는 책읽기는 쓰기로 비로서 완성되는 것 같다. 간혹 이해가 가지 않는 어려운 책을 만났을 때는 무조건 쓴다. 이렇게 쓰는 것은 책을 읽는 것보다 쓰는 것의 이해가 더 빠르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하지만, 조금 책에서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서재가 두 개인 사실이 그렇게 새롭지 않다는 사실이다. ( 요즘은 개성을 중요시하는 시대이니) 많은 사람들이 저자에게 서재가 두 개예요? 하고 물어본다고 하는데, 그것은 다 자신의 사는 스타일이지, 독특한 삶으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예를 들면, 우리 집에 텔레비전과 컴퓨터가 없고 빔 프로젝트만 거실에 달랑 있는 거 봐도 사람들은 그렇게 물어보는데, 사람들이 모두 서재가 두 개인 것을 힐문한다는 것을 금지된 소망을 꿈꾼 것으로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다. 하지만, 책에는 '서재가 두 개'에 대한 이야기가 지나치게 반복이 되어  슬며시 반감이 고개를 들이민다. 요즘 세상은 개성이 많은 사람이 지나치게 널린 세상인데, 서재가 두 개를 가졌다는 것을 개성으로 부각시키기엔 , 더구나 작가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면, 당연하고도 지나치게 평범한 사실 아닌가.

 어떤 면에서는 무한 공감을 일으키는 부분도 있었지만, 어떤 면에서는 솔직히 소망과 금지라는 모호한 경계선 사이의 의미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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