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이 함께 쓴 동아시아 근현대사 1 - 국제 관계의 변동으로 읽는 동아시아의 역사
한중일3국공동역사편찬위원회 지음 / 휴머니스트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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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전 우연히 제일교포의 역사인식에 대한 다큐를 본 적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이라는 사실도 위안부의 존재자체도 알지 못하고 있었다. 왜곡된 역사를 안다는 것은 그만큼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해마다 위안부들의 가슴 아픈 사연들이 전국민의 가슴을 울려도 일본 정부에게 사과조차 받지 못하는 우리나라, 과거 아프리카 노예제도로 인하여 흑인들에게 비난을 받아왔던 미국 정부가 아프리카 국민들을 상대로 클린턴이 정중한 사과를 한 모습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그리고 잊을 만하면 불거지는 독도문제와 도를 넘는 망언들에 대한 정부의 대처는 지극히 실망만을 안겨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아시아의 평화는 진정 가능한지가 나로서도 무척이나 궁금하다. 이 책은 한중일 삼국이 그런 의문점에 무척 고무적인 답안이 될 것 같다. 일본의 역사교과서에는 일본이 이웃 국가들을 침략한 사실을 부정하고 황국사관에 입각하여 군국주의를 찬양하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으나, 이러한 사실에 문제의식을 느끼는 역사학자들이 왜곡된 역사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바른 역사를 공유하기 위해 모였다. 이들은 '한중일 역사 편찬위원회'를 발족하여 삼국의 역사를 국제변동과 다각적인 관점에서 역사를 조명한다. “아시아의 근현대‘는 서로 밀접하고도 유기적인 관계로 연결되어 있기에 한중일의 협력에 의해 편찬된 역사서는 많은 의의를 가진다.

 

1권의 전체적인 내용은 한중일의 국제 관계로 인한 정세로 어떻게 변화되는지를 살펴본다. 서구 열강의 동아시아 침략으로 시작되는 근대는  거센 바람앞의 등불처럼 커다란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면서  굴곡진 모습으로 요동치는 시대이다. 이때 서양과 통교하면서 청은 양무운동으로 일본은 메이지유신으로 부국강병을 도모하고 있는데 반해 조선만 고립된 채 혼란한 근대를 보내게 된다. 이때 등장하게 된 국제법을 '만국공법'이라고 불리었는데 이것은 주권국 간의 대등한 관계를 지향하는 법으로 청은 이 만국공법을 활용하여 서양에 침략의 빌미를 주지 않은 채 화이질서를 유지하는 것으로 , 일본은 동아시아에서 주도권을 잡으며 주변국가를 침략하기 위해 만국공법을 활용하였으나, 조선은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길을 걸어서인지 만국공법의 실효를 보지 못하였다. 과거는 현재의 거울이란 말이 있듯이 만국공법에 대해 바른 인지를 못하고 있던 조선은 불평등조약에 대처할 만한 아무 힘도 없었다. 이어 서구 열강은 힘으로 갖가지 이권을 차지하여 한중일 3국의 주권과 국익을 크게 훼손시키기 시작한다.

 

 

일본의 대륙침략에 대해서는 일본 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일본은 청일전쟁으로 타이완을 식민지화하고 러일전쟁으로 조선과 남만주를 지배하는 대륙국가가 되는데 일본의 팽창주의, 침략주의를 필연에 의한 것이 아니라 '청일전쟁의 전환점'으로 설명한다. 중국에서는 이를 두고 일본의 대륙정책의 목표가 한반도와 만주를 차지하는 것이었으며, 한국에서는 ‘정한론’에 주목하고 있다. 여기서 삼국의 차이점이 두드러지는데 전쟁에 대한 시각은 명칭부터 원인까지 다르게 보고 있다. 중국이 ‘항일전쟁’이라 부르는 전쟁은 중국 인민이 일본 군국주의의 침략에 맞서 싸운 전쟁을 가리키며 ‘전면항전’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일본은 전시에는 ‘지나사변’으로 불렀고 전후에는 ‘일중전쟁’으로 부른다. 태평양 전쟁을 일본은 전시에는 ‘대동아전쟁’이라 불렀는데 일본에서는 이 전쟁을 대동아 신질서 건설을 목적으로 하는 전쟁이라 분명하게 밝힌다. ‘대동아전쟁’은 아시아를 구미 열강의 통치에서 해방시켜 대동아공양권을 건설하는 ‘성전’이라고 일본은 강조했다.  아이러니 한 것은 히로시마의 핵폭탄 투하로 인하여 일본은 전쟁의 가해자에서 피해자로 변신하였다는 사실이다. 이때 일본인들에게 전쟁의 폐해를 뿌리깊이 각인시키게 되어 일본인들 사이에는 모든 전쟁은 나쁘다는 인식이 팽배하였는데 절대로 스스로 일으킨 침략전쟁에 대한 깊은 반성에 의한 인식은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까지도 일본인들이 과거 침략전쟁으로 인한 반성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이유도 아마 이때부터 (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라는 ) 가 아닌가 싶다. 아마도 일본 국민에게는 전쟁에 대한 참혹보다는 원폭 피해의 참혹함을 뼈져리게 체험했던 탓이다.

 

 

“한중일이 함께 쓴 동아시아 근현대사”는 일본의 위험한, 왜곡된 교과서에 대응하기 위해서이다. 기본 취지가 그런 탓에 일본에 대한 중국과 한국의 역사적 관점은 날카롭다. 책을 읽다보니 한중일 삼국의 역사학자들이 근현대사에 대한 매우 정확하고 바른 역사 인식을 공유하기 위해 애쓴 흔적들이  곳곳에서 보인다. 특히 중국에서 동북공정의 역사를 새로이 조명하고 있기에 이 책은 더욱 우리에게 가치가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일본의 왜곡된 교과서와 중국의 동북공정보다 더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바른 역사인식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일본의 침략으로 인해 중국과 한국사이의 연대의식을 가질 필요도 없고 일본에게 사과를 받지 못하였다고 무조건 나쁘게 받아들이는 것은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다. 전 세계가  빠르게 일원화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가  현재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아있다는 사실의 인지라는 생각이 든다.  민족의 정체성 확립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고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통일이라는 큰 숙제가 남아있기에 그 어느 때보다  보편타당한 역사관이 간절한 때이다. 한중일 정부와 국민들은 “ 동아시아 공동체‘를 말하고 있지만, 실현하기는 무척 힘들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인지하고 있다. 그러나 ,' 한중일이 함께 쓴 동아시아 근현대사'는 그 공동체의 첫걸음이자, 미래를 안내하는 길라잡이의 역할을 해 줄 것이라 본다.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상호 존중과 다원적이며 다각적인 역사인식은 더욱 간절해지는 현실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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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전기 - 축복과 저주가 동시에 존재하는 그 땅의 역사
사이먼 시백 몬티피오리 지음, 유달승 옮김 / 시공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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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막연하게 예루살렘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지금에 와서는 하나의 꿈이련가 싶다. 삶이 팍팍해서 잊은 이유도 있지만, 조금씩 식어간 종교의 열정도 한 몫 했던 것 같다. “신의 축복과 인간의 탐욕이 공존하는 도시” 라는 수식어는 예루살렘에 대한 더 이상의 수식어는 없을 듯하다. 솔직히 읽는 내내 너무 충격적이다. 예루살렘의 어떤 마력이 그 많은 사람들의 피를 흘리게 했을까. 인간의 잔혹함이 서려있는 그곳은 성지가 아니라 광기가 서려있는 저주받은 땅으로서 역사를 써왔다는 사실을, 예루살렘의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매일 해가 뜰 때마다 세 종교의 세 성지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생명을 얻는다. ( 848쪽)

 

예루살렘은 어떤 면에서는 너무도 사랑스럽지만, 어떤 면에서는 증오와 공허함과 무모함이 가득하다. 하나의 신이 사는 집, 두 민족의 수도, 세 종교의 사원. 하늘과 땅에서 두 번 존재하는 유일한 도시이다. 그 땅은 오랜 역사를 지나면서 단 한순간도 지속적인 평화를 가진 적이 없으며 파괴되고 건설되고, 약탈과 소유되기를 번복하며 성장해왔다. 예루살렘은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의 사람들과 싸워야 했으며, 뺏고 빼앗는 싸움속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신성의 이미지를 더 굳혀갔다. [예루살렘 전기](Jerusalem : The Biography) 는 예루살렘 땅의 모든 역사이다. 그 땅의 장대하고 성스러운 역사를 비롯하여 예루살렘에 살고 배회하며 소유하려 들었던 수많은 개인과 민족의 역사를 담았다. 따라서 , 단순히 종교이야기만이 아닌 예루살렘을 형성해 온 수많은 민족들의 역사를 다루었다.

 

저자 사이먼 시백 몬티피오리Simon Sebag Montefiore는 유대인이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예루살렘을 배회해오면서 가장 사실로서의 역사를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저자는 또한 예루살렘과 유대인을 위해 힘쓴 시온주의의 선구자 모지스 몬티피오리 경의 후손이기도 하다. 따라서 저자는 어쩌면 예루살렘의 역사를 기술하는 데 가장 적합하고 유일한 서술자일 것이다.

 

<제1부 유대교>의 역사는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 왕국의 역사이다. 히브리어 문자로 기록한 역사의 기록이 모세5경 (구약 성서 맨 앞의〈창세기〉,〈출애굽기〉,〈레위기〉,〈민수기〉,〈신명기〉를 말함)으로 종합되었으며, 유대인의 경전《타나크Tanakh》의 첫 번째 부분이 되었다. 독특한 것은 성경에 충실하기보다는 역사의 기록에 충실하기에 이스라엘의 역사를 조금 더 객관화하였다. 텍스트를 따라가다 보면 속속들이 펼쳐지는 역사의 한 장면들은 한편의 파노라마처럼 눈앞에서 펼쳐지듯 생생하다.  권력의 쟁점에서 로마황제들이 예루살렘에 가지는 집착과 알 수 없는 광기, 유대인들의 중심에 있는 도시 예루살렘에서 펼쳐지는 피의 향연들. 더군다나 신의 도시 예루살렘에는  단 1세기도 평화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기실 충격적이고도 경악스럽기까지 하였다.  예수의 죽음까지 밝히는 유대교의 역사는 종교적 관점을 떠나 예루살렘이 유대민족에게 어떠한 존재인지를 짐작케 한다. 이어 비잔틴 제국 콘스탄티누스에 의해 국교화 되면서 그리스도교는 번영하게 되는데 , 마찬가지로 이들에게도 예루살렘은 성지로 존재하게 된다. 이어 이슬람에게도 예루살렘은 이슬람의 거룩한 성지로 비춰지게 되는 역사를 말한다.

 

이슬람의 《쿠란》은 “오로지 신만이 아시는 심판이 가까웠음을 무엇이 그대로 하여금 알게 하리오?”라고 이야기한다. 모든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문헌은 그것이 오직 예루살렘에서만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이슬람이 성지를 탈환하자, 유럽에서 십자군을 결성하고 역사상 가장 오래 한 전쟁으로서의 십자군 전쟁이 시작된다. 오로지 예루살렘의 탈환을 위하여..

 

 

수천 년을 지속해온 예루살렘에 대한 열망과 집착. 저자는 그것은 앞으로도 꺼지지 않는 불씨로 남을 것이며 사그라지지 않는 욕망으로 국제 사회를 지배할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중동전쟁의 불꽃은 꺼지지 않은 채 흘러왔다. 60~70년대 중동전쟁, 현 팔레스타인 분쟁까지 계속된 분쟁지역의 한 중심지로서의 예루살렘의 역사는 방대하지만 첫 시작에서부터 몰입되어 눈을 뗼 수 없게 만든다. 마치 아름다운 장미의 가시처럼, 성스러운 도시지만, 소유하기에는 너무도 큰 출혈을 감수해야 하는 도시, 도돌이표처럼 되풀이되는 예루살렘의 쟁탈전은 잔혹하리만치 매혹적이다.  종교의 첫 시작과  아포칼립스로서 존재하기에 더 신성시 되는 도시이다.

 

예루살렘 도시 곳곳에 세운 기독교와 유대교, 이슬람교는  매일 아침 자신들의  예루살렘에서 자기들만의 성전을 본다. 세 종교의 선택된 도시 예루살렘에는 그러한 종말론적이고 정치적인 강렬함이 그 모든 갈등과 환상의 십자로에 놓여 있다.(842P) 그것만으로도 예루살렘의 존재는 언젠가는 터질 시한폭탄 같은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그러한 긴장감은 현대에 이르러서도 지속되고 있다. 1900년 초에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에는 중동전쟁과 인티파다가 발생했다. 1993년 이후로는 길고 긴 협상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예루살렘을 공유할 계획은 갖고 있지 않다. 예루살렘의 현재는 과거 헤롯 시대, 십자군 시대, 이슬람시대처럼 똑같이 복잡하고 미묘하다. 이제껏 이렇게 잔혹하고도 무서운 역사이야기를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항상 로마제국과 비잔틴 제국, 이슬람제국의 역사가 혼동되어 인식되어 왔으나, 이 책을 읽으면서 차이점을 이해하게 되어서 기쁜 마음도 들고 , 이렇게 중동의 모든 역사가 들어있는 역사서는 처음 접해 본다. 아마도 내 기억으로는 기존에 이렇게 세세하게 예루살렘을 다룬 역사서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 같다. <중국과 이란>의 저자가 이란의 역사를 다른 책은 단 두권 뿐이라고 했듯이 대부분이 미국의 역사나 유럽의 역사에 익숙한 반면에 중동의 역사에는 무관심하다. 예루살렘 역사를 보는 것은 현 국제 사회를 이해하는 첫걸음이나 마찬가지다. 이렇게 생생하게 예루살렘이라는 도시의 역사를 복원하기란 쉽지 않을 듯 한데 너무도 방대한 역사를 지루하지 않게  생생하게 역사이야기를 풀어낸 저자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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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 밀란 쿤데라 전집 9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 민음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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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이기도 한데, 밀란 쿤데라의 전집중 아홉 번 작품으로서의 <정체성>은 밀란 쿤데라가 기존 작품세계에서 보여주었던 비키치에 대한 세상-, 보이는 세상이 아닌 ,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통찰이 제일 잘 드러나 있는 책이다. 밀란 쿤데라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사랑이 삶에 주는 영향에 대한 깊은 사유를 통해 현실을 통찰하게 하는 데에 뛰어난 작가이다. 이 책 역시도 사랑이야기로 보여지지만, 그 사랑이 현실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주인공 샹탈과 장마르크를 통해서 밀란 쿤데라의 문학의 매력이 돋보인다. 

 

 

샹탈은 어린 아들이 죽은 후 남편과 이혼하고 연하의 연인 장마르크와 살고 있다. 아들이 없다는 사실은 연하인 연인 장마르크의 절대적인 사랑을 의미라기에 그녀는 아들이 죽어서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점점 아들에 관한 회상은 비윤리적인 행복한 느낌을 동반하여 그녀를 고통스럽게 한다. 그 고통은 그녀에게 꿈으로 나타나고 꿈을 꾸는 것인지, 현실인지조차 구분을 못할 정도로 샹탈의 세계는 모호해진다. 그런 모호함 속에서 샹탈은 아들의 죽음으로 인해 비키치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되고 아들의 죽음이 남겨진 세계에 대한 통찰에 이른다. 아들(아기)가 없기에 이 세계에 집착할 이유가 없어졌으며, 아기의 부재로 인해 자유로워졌음을, 내가 사랑하지 않는 이 세계를 정면으로 응시할 수 있게 되었음을, 아들이 죽은 후 수십 년이 흘러서야 아들의 죽음은 하나의 선물, 결국에는 받아들이고 만 끔찍한 선물이라는 현실(키치)의 세계에 직면한다.

 

 

존재에 대한 확고부동한 동의가 미학적 이상으로 삼는 세계는, 똥이 부정되고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각자가 처신하는 세계라는 결론이 도출된다. 이러한 미학적 이상은 키치라고 불린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중에서 )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마주친 젊은 남자, 보잘 것 없이 늙어가는 자신의 육체 앞에서 발산하는 젊음의 싱싱함 앞에서 일종의 혐오감을 느낀 샹탈은 충격을 받고 장마르크에게 남자들이 더 이상 날 쳐다보지 않아.라는 말을 던진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육체의 점진적 소멸의 시작을 알리는 적신호였다. 이 말을 듣고 장마르크는 샹탈을 기쁘게 해 주기 위해 익명으로 그녀에게 편지를 보내기 시작한다.

 

그녀를 사랑하고 아름답다고 생각한다는 말을 아무리 해 주어도 소용없고 사랑에 가득한 시선도 그녀에겐 위로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사랑의 시선은 외톨이로 만드는 시선이기 때문이다. 장마르크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투명하게 변한 두 늙은이의 사랑스러운 고독에 대해 생각했다. 그것은 죽음을 예고하는 슬픈 고독이다. 아니다,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의 시선이 아니라 천박하고 음탕한 익명의 시선, 호감이나 취사선택에 의한 것이 아니고 사랑도 예의도 없이 필연적으로, 숙명적으로 그녀 육체로 쏟아지는 시선이다. 이런 시선들이 그녀를 인간 사회에 머무르게 하고 사랑의 시선은 그녀를 사회로부터 유리한다. -p46

 

익명의 편지를 받으면서 샹탈은 처음에는 불쾌감이었으나, 알 수 없는 감정에 사로잡히고 장마르크와 익명의 주인공을 비교하며 상상하는 즐거움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편지를 보낸 사람의 정체, 혹은 그 정체성에 의혹을 품기 시작하면서 두 사람 관계에는 급격한 변화가 찾아온다. 그리고 편지의 주인공이 장마르크란 사실은 오히려 샹탈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안겨준다. 급기야 샹탈은 자신이 정말 잘 안다고 여긴 장마르크의 마음까지 믿지 못하게 된다. 이에 따라 샹탈은 점점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과거의 자신이 누구였는지, 그리고 지금 여기 있는 그녀는 누구인지 혼란에 빠진다.

 

샹탈은 이후 계속 꿈을 꾼다.

하지만 그가 정말 그 편지를 보냈을까? 아니면 단지 상상 속에서만 썼을까? 현실이 비현실로, 사실이 몽상으로 변했던 정확한 순간은 언제일까? 그 경계선은 어디에 있을까? 어디에 경계선이 있을까? -p182

 

샹탈과 장마르크, 두 주인공은 이 경계선 사이에서 끊임없이 방황한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그리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서, 무심한 듯 스쳐 지나간 타인의 진짜 모습에 대해 혼란을 겪고 사랑하는 사람과 다른 여자의 육체적 외모를 혼동한다. 밀란 쿤데라는 이들의 혼돈된 모습 속에서 자아를 찾아가는 모습을 사랑의 완성이라는 과정으로 그려내고 있다. 현대인의 불안과 혼란의 원인을  밀란 쿤데라는  '권태'로 보았다. 참을 수 없는 현대인의 권태는 존재에 대한 인식조차 모호하게 만드는 것이다. 또한 이들이 보여지는 키치와 비키치의 세계를 넘나들며 펼쳐지는 세계는 무척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처음에는 아들의 죽음이 샹탈에게 그렇게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았다그러나 샹탈을 지배하는 고독과 무거움에 대해서 생각해보니 그녀를 억누르고 있는 어깨위의 무거운 짐은 바로 아들의 죽음이었다. 그럼에도 너무도 담담하게 아들의 죽음을 추억하는 샹탈에게서는 그 어떤 슬픔도 느끼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의 존재를 송두리째 상실케 할 정도의 고통이었기에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까지 모호해진 것이다. 그런 그녀를 사랑하는 장마르크의 두려움은 어느 순간, 늙고 추한 여인으로 변해있는 여인을 샹탈로 착각할 정도이다. 샹탈을 일깨워주는 방법으로 편지를 떠올렸지만, 결국 샹탈을 구원하게 한 것은 장 마르크의 한 마디 말이었다.

 

나는 더 이상 당신으로부터 눈길을 떼지 않을 거야. 쉴 새 없이 당신을 바라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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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이야기 3 - 완결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 3
시오노 나나미 지음, 송태욱 옮김, 차용구 감수 / 문학동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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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을 다시 이슬람에게 넘겨주자 , 유럽에서는 충격에 휩싸이게 되고 이 소식으로 교황 우르바누스 3세가 죽었고, 바로 즉위한 그레고리우스 8세도 죽게 된다. 게다가 살라딘에게 하릴없이 내몰려 열세에 처한 십자군 국가의 상황은 전 유럽에 3차 십자군을 결성하는 원인이 된다. 그러나 3차 십자군부터는 종교가 배제된 신앙과는 상관없는 세속적인 십자군의 성격이 강하다.

 

 프랑스 존엄왕 필리프2세, '사자심왕'이라 불리우는 영국왕 리처드 1세의 원정을 시작되는 3차 십자군은  십자군 전쟁의 클라이막스라 할 수 있다.  하지만 , 이 십자군 멤버들의 화려한 등장과는 달리 리처드를 제외하고는 다른 멤버들은  전쟁에 딱히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가장 여유 있고 이슬람에 두려움을 안겨준 미친  존재감 1위였던 프리드리히 1세가 어이없이 익사로 죽고, 사자심왕 리처드는 정의와 명예로 똘똘 뭉쳐졌으나, 지나치게 느긋하여 십자군 원정도 필리프보다 한달이나 늦게 도착하는데 그 와중에 결혼도 하고 신혼여행도 가고 , 리처드 1세의 패기와 여유가 한편으로는 대단하게 느껴지기도 하면서 리처드의 행보에 중간 중간 빵 터지곤 했는데 , 지금까지 사자심왕으로 영국에서 많은 사랑을 받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살라딘 vs 리처드

결국 십자군에서는 2권에서도 말했듯이 그렇다할 인재가 없는데다가 유능한 지휘관이 없었다. 리처드가 도착하자, 이 젊은 왕의 전략과 전투력에 힘이 모아지게 되는 것은 자명한 일, 싸움은 리처드와 살라딘의 대결의 양상을 띠게 된다. 아코에서의 공방전과 더불어 첫 전투인 ‘아르수프 전투’ 에서도 리처드의 압도적인 승리였다. 불패였던 살라딘에게는 첫 패배이자, 그리스도교측에는 자신감과 용기를 불어넣어준 전투였다. 이어진 ‘야파전투’에서도 살라딘의 패배이지만, 기록에 살라딘은 이 전투에서 리처드의 전략에 감탄하였다고 한다. 십자군 이야기에서 가장 인상 깊게 다가 오는 장면은 이 두 사람의 만남이다. 리처드는 싸움을 계속해봤자, 많은 전사자만 나올 것이라 생각했는지,어쨋든 승승장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살라딘에게 진솔한 편지를 보낸다. ( 적군에게 말이다) 귀국하고 싶으니 예루살렘은 포기하겠다. 대신 몇가지 제안만 들어달라는( 이로 인해서 예루살렘 순례는 가능해진다.) 종교가 다르고 서로 적인 상황이지만 남자대 남자로서의, 사람과 사람으로서 순수한 마음이 전해지는 순간이라 살라딘과 리처드는 십자군 전쟁에서는 최고의 영웅으로 기억될 것 같다. 이렇게 맺은 강화조약은 30년 동안 평화를 유지한다.

 

 

4차 십자군

 인노켄티스3세가 교황에 즉위하자, “교황은 태양이고, 황제는 달이다.” 라는 권위의식을 다시 내세우며 종교적인 성격이 가장 적었던 3차 십자군을 '불신의 무리'로 일컬으며 ‘신의 뜻’을 다시 강조하여 십자군에 참여한 이들에게 무조건 면죄부의 포고를 선언하자, 다시 4차 십자군이 결성된다. 그러나 이들의 목적지는 예루살렘이 아니라, 이집트의 카이로였다. 그러나, 4차 십자군은 목적한 곳이 아닌 같은 그리스도교인 비잔틴 제국을 공격한다. 그리스도교가 그리스도교를 공격한 것도 모자라 나라까지 빼앗았다는 사실은 십자군 이야기중의 가장 최악의 원정대이다.

 

 1291년, 1차(1096년) 부터 8차까지 근 300년 가까이 지속된 전쟁은  결국 아코 공방전으로 끝나는데  이 때 아코를 탈환한 이슬람측이 “두번 다시 그리스도교가 상륙할 수 없도록 ”  아코를 파괴하는 것으로 십자군 전쟁은 그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역사에 대한 글을 쓰면서 통감하는 것 중 하나는, 정보란 그 중요성을 인식한 자에게만 올바로 전해진다는 사실이다. 십자군 역사에서도 마찬가지이고, 이 점에 대해선 그리스도교도든 이슬람교도든 예외가 아니었다. 고대 로마의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이렇게 말했다. “현실의 모든 것이 누구에게나 보이는 건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현실만 본다.” 역사를 인식하는 자, 는 아마도 십자군을 저술하면서 이슬람 측의 사료와 십자군 역사가 즉, 그리스도교나 유럽의 역사학자들의 사료를 참고하면서 느껴지는 말인 듯하다. 각측에서 십자군 전쟁의 역사를  기록한 바로는 자신들의 유리한 점들만을 기록하였다고 저자는 느꼈던 듯하다. 1권에서도 말하였지만 시오노 나나미는 그런 역사의 관점에서 벗어나 오로진 ‘인간’ 의 관점으로 역사를 보기를 원하였던 것 같다.  인간의 관점으로 본다는 것은 작가의 상상력에 의지하여 역사를 상상할 수밖에 없지만 , 예를 들어 사자심왕에 대한 평가를 주관적인 시각으로 혹평한 역사학자의 주관적인 시각보다는 오히려 시오노 나나미의 역사에 대한 통찰이 의외로 조금 더 냉정하게 시대상을 직시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게다가 시오노 나나미의 역사적 관점을 지나치게 주관적이라고 할 수 없는 이유는 역사의 기록에 또한 충실했기 때문이다. 단지 십자군 전쟁을  종교가 아닌 영토와 이권을 둘러싼 전쟁에 종교를 덧입힌 '인간'의 욕망에 충실한 전쟁으로 바라보는 점은 기존의 역사이야기보다 더 사실적이고 실존적이다.  

 

십자군 전쟁이 인류사에 남긴 것은 어찌되었든 간에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된 종교 전쟁이라는 기록은 변치 않을 것이다. 결국 이 전쟁으로 인하여 이슬람은 자신들만의 성전을 구축하여 미국(현재 대표적인 그리스도교로 본다면) 의 헤게모니에 굴복하지 않은 유일한 민족으로 존재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십자군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방증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 '신이 그것을 바라신다.' 로 시작된 전쟁은  신이 그것을 바라지 않으셨음을 알게 되는 전쟁이다.

 

옳은 것만 말하는 신이 바란 일이니 옳은 전쟁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따라서 신의 존재가 후퇴한 뒤에도 ‘옳은 전쟁’만은 남았다. 아니, 적어도 이 정도는 남기고 싶다고 인간이 생각했기에 남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20세기에 맹위를 떨치고 21세기인 지금까지 계속 남아, 전쟁을 이끌어내는 측이나 이끌려나간 측 모두, 옳은가 옳지 않은가 하는 문제를 두고 고민하게 만드는 것이다.(5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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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이야기 2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 2
시오노 나나미 지음, 송태욱 옮김, 차용구 감수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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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오키아 공작 보에몬드,트리폴리의 레몽백작, 에데사의 고드프루아 백작, 그의 동생 보두앵이 1대 예루살렘 왕을 중심으로 십자군 국가가 성립되고 보에몬드 1세의 오른 팔로서 탁월한 활약상을 펼친 탄크레디, 그리고 이들의 죽음까지가 1권이었다. 순수한 신앙과 용맹을 갖추었던 십자군 1세대들의 세대교체가 이루어지면서 삼면이 이슬람국가로 둘러싸인 십자군 국가의 ‘유지’가 당면한 과제였다. 그러나 인류역사에서는 인재는 한 쪽에서만 나타난다는 것이다. 십자군 국가를 유지할 수 있는 인재는 한마디로 2세대에는 거의 전무하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이제부터 시작하는 2권에서는, 그리스도교 측에서 배출되는 남자들을 그린 1권에 이어 이슬람 측에서 배출된 남자들을 중심으로 이야기한다. 왜 양쪽 모두 같은 시기에 인재가 배출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에 명쾌하게 답해준 철학자도 역사가도 없다. 인간은 인간의 한계를 알아야 한다는 신들의 배려인가, 아니면 이것이야말로 역사의 부조리인 것일까……(9쪽)

 

 

템플 기사단과 성 요한 기사단

계속된 병력 감소로 인하여 고민 중에 있던 보두앵 2세 앞에 어느 날 두 명의 기사가 찾아오면서 템플 기사단이 탄생하게 되었는데 이들은 시리아와 팔레스티나의 십자군 국가 내에 생겨난 전사 집단으로서 제후나 왕, 황제, 주교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은 독립된 기사이다. 청빈,복종,순결의 서약과 동시에 이교도를 보면 무조건 죽인다는 원칙을 맹세하여 입단한 이들은 대부분이 프랑스인 기사들이며 이때 이들과 쌍벽을 이루는 성 요한 기사단은 이탈리아 상인들에 의해 창립된 기사단이다. 십자군 국가들과 화려한 교역을 하였던 해양 도시국가인 아말피,피사,제노바,베네치아 가 예루살렘에 순례하러 오던 순례자들에 대한 ‘의료서비스’를 목적으로 설립되었으나, 이들은 템플기사단처럼 종교에 배타적이지 않았던 것으로 보았다. 중요한 것은 이 두 기사단의 존재는 십자군 국가에게 든든한 방어가 되어주었다는 사실이다. 십자군 역사관련 연구자들은 이들을 현대에서 비슷한 예를 ‘특수부대’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들의 존재가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강한 지휘력이 필요하며 바다를 앞에 두고 삼면이 이슬람 국가인 안티오키아, 에데사,트리폴리,예루살렘에 이르는 십자군 국가를 존속시킬 수 있는 관건은 오로지 ‘단결’ 이었다.

 

 

십자군의 여자들

십자군 2세대들은 후세복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에데사 백작 시절 보두앵 2세와 아르메니아 공주 모르피 사이에 딸만 넷이 있었는데 이 딸들을 십자군 국가들의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각국에 시집보내지만, 오히려 이들의 평화는 오래가지 못한데다가 아들에게 권력을 넘겨주기 싫어 권력다툼 하다가 쫓겨나 여생을 불행하게 보낸다.

 

 

참고로 1차 십자군 전쟁이 성공한 이유는

1,이슬람 측에 방어준비가 불충분 했다는 것.

2,이슬람측의 분열.

 

 

이슬람의 인재배출 ( 장기-누레딘-살라딘)

이슬람의 주특기는 핏줄끼리의 싸움이다. 서로 군웅할거하며 싸움을 하는 민족들이 단결을 하게 되면 십자군으로서는 이들을 당해낼 수가 없다. 그러나 이들이 단합한다면 십자군 국가는 존폐위기가 된다. 이슬람의 민족들과의 싸움을 일소하고, 셀주크투르크의 깃발 아래 통합하는 안목을 지닌 인재 배출의 첫 주자는 장기이다. 장기의 아들 누레딘은 아버지가 다마스쿠스의 정복을 열망한 채 죽자 다마스쿠스를 무혈입성하며 이라크 북부에서 시리아 전역을 포함하는 광대한 영토의 주인공이 된다. 이어 예루살렘을 해방시킨 이슬람의 주역은 ‘살라딘’이다. 마키아벨리는 성공한 지도자의 필요조건으로서 역량, 행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자질, 이 세가지를 들었는데 저자는 살라딘에게 이 세가지 조건이 완벽하게 들어맞았다는 것을 밝힌다.

 

 

이와 반대로 십자군 국가에는 이렇다 할 인재가 전혀 배출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래전부터 안티오키아를 노리고 있던 비잔틴 제국에게 안티오키아를 고스란히 바치고, 에데사는 이슬람교도들에 의해 처참히 부수어 도시의 기능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초토화 된다. 유럽에서 한 이름 없는 수도사 베르나르두스에 의해서 2차 십자군이 파견되지만, 너무도 당연하게 실패한다. 그러나 한 가지 십자군 국가가 2차 십자군이 파견될 때까지 버틸 수 있었던 요인은 기사단의 존재도 한 몫 했지만, 저자는 ‘성채문화’가 가장 큰 이유로 보았다. 4대 예루살렘 왕 풀크의 치세 중 가장 잘한 일로 꼽자면,성채 네트워크의 확산이다. 성채는 소수 병력으로 지배하고 통제할 수 있는 건축양식으로 풀크치세에 속속들이 건축되어 그나마 오랜 세월을 적은 병력으로도 버틸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으로 보았다. 따라서 마땅한 지도자가 없었음에도 이슬람 군대가 섣불리 공격할 수 있기에는 성채의 위용이 너무나도 거대했기 때문이라고 저자가 막연히 추측할 뿐이다.

 

 

 

결국 2권은 이슬람의 손에 다시 예루살렘을 넘겨주게 되는 것으로 마무리되고 3차 십자군을 이끌 주역들 -프리드리히 1세와 존엄왕 필리프, ‘사자심왕’이라 불리우는 리터드 1세의 화려한 등장을 예고로 끝이 난다. 3차 십자군을 가장 화려한 조합이라고 부르는데 왠지 이름에서조차 풍기는 아우라가 예사롭지 않다.

 

 

한 나라의 역사를 살펴보는 것은 시대상과 맞물려져서 여러 가지 요인들을 이해해야 한다. 저자 시오노 나나미는 그런 면에서는 아주 탁월한 작가이다. 역사 속에서 사소한 것을 지나치지 않고 여러가지 요인을을 추측하여 서술하는 역사이야기는 거침이 없으나, 기존 역사서에 익숙한 독자라면, 의아함을 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나비의 사소한 날갯짓이 강한 태풍을 몰고 오듯이 사소한 움직임이 발단이 되어 인간역사에는 커다란 결과물을 남기고는 한다. ‘신이 그것을 바라신다.’ 라고 획책한 교황의 한마디가 역사의 가장 오래되고 큰 종교전쟁이라는 커다란 결과물을 남기었듯이 , 그리고 그렇게 탄생된 십자군 국가, (나는 종교국가라고 부르고 싶다) 가 이슬람지역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동정보다는 어째 남의 땅에서 이익을 차리려하는 유럽의 못된 제국주의 습성의 시초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 십자군 전쟁이 가져다 준 더욱 커다란 폐해는 현재도 평생을 전쟁만 하고 사는 이슬람인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지며 3권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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