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군 이야기 3 - 완결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 3
시오노 나나미 지음, 송태욱 옮김, 차용구 감수 / 문학동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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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을 다시 이슬람에게 넘겨주자 , 유럽에서는 충격에 휩싸이게 되고 이 소식으로 교황 우르바누스 3세가 죽었고, 바로 즉위한 그레고리우스 8세도 죽게 된다. 게다가 살라딘에게 하릴없이 내몰려 열세에 처한 십자군 국가의 상황은 전 유럽에 3차 십자군을 결성하는 원인이 된다. 그러나 3차 십자군부터는 종교가 배제된 신앙과는 상관없는 세속적인 십자군의 성격이 강하다.

 

 프랑스 존엄왕 필리프2세, '사자심왕'이라 불리우는 영국왕 리처드 1세의 원정을 시작되는 3차 십자군은  십자군 전쟁의 클라이막스라 할 수 있다.  하지만 , 이 십자군 멤버들의 화려한 등장과는 달리 리처드를 제외하고는 다른 멤버들은  전쟁에 딱히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가장 여유 있고 이슬람에 두려움을 안겨준 미친  존재감 1위였던 프리드리히 1세가 어이없이 익사로 죽고, 사자심왕 리처드는 정의와 명예로 똘똘 뭉쳐졌으나, 지나치게 느긋하여 십자군 원정도 필리프보다 한달이나 늦게 도착하는데 그 와중에 결혼도 하고 신혼여행도 가고 , 리처드 1세의 패기와 여유가 한편으로는 대단하게 느껴지기도 하면서 리처드의 행보에 중간 중간 빵 터지곤 했는데 , 지금까지 사자심왕으로 영국에서 많은 사랑을 받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살라딘 vs 리처드

결국 십자군에서는 2권에서도 말했듯이 그렇다할 인재가 없는데다가 유능한 지휘관이 없었다. 리처드가 도착하자, 이 젊은 왕의 전략과 전투력에 힘이 모아지게 되는 것은 자명한 일, 싸움은 리처드와 살라딘의 대결의 양상을 띠게 된다. 아코에서의 공방전과 더불어 첫 전투인 ‘아르수프 전투’ 에서도 리처드의 압도적인 승리였다. 불패였던 살라딘에게는 첫 패배이자, 그리스도교측에는 자신감과 용기를 불어넣어준 전투였다. 이어진 ‘야파전투’에서도 살라딘의 패배이지만, 기록에 살라딘은 이 전투에서 리처드의 전략에 감탄하였다고 한다. 십자군 이야기에서 가장 인상 깊게 다가 오는 장면은 이 두 사람의 만남이다. 리처드는 싸움을 계속해봤자, 많은 전사자만 나올 것이라 생각했는지,어쨋든 승승장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살라딘에게 진솔한 편지를 보낸다. ( 적군에게 말이다) 귀국하고 싶으니 예루살렘은 포기하겠다. 대신 몇가지 제안만 들어달라는( 이로 인해서 예루살렘 순례는 가능해진다.) 종교가 다르고 서로 적인 상황이지만 남자대 남자로서의, 사람과 사람으로서 순수한 마음이 전해지는 순간이라 살라딘과 리처드는 십자군 전쟁에서는 최고의 영웅으로 기억될 것 같다. 이렇게 맺은 강화조약은 30년 동안 평화를 유지한다.

 

 

4차 십자군

 인노켄티스3세가 교황에 즉위하자, “교황은 태양이고, 황제는 달이다.” 라는 권위의식을 다시 내세우며 종교적인 성격이 가장 적었던 3차 십자군을 '불신의 무리'로 일컬으며 ‘신의 뜻’을 다시 강조하여 십자군에 참여한 이들에게 무조건 면죄부의 포고를 선언하자, 다시 4차 십자군이 결성된다. 그러나 이들의 목적지는 예루살렘이 아니라, 이집트의 카이로였다. 그러나, 4차 십자군은 목적한 곳이 아닌 같은 그리스도교인 비잔틴 제국을 공격한다. 그리스도교가 그리스도교를 공격한 것도 모자라 나라까지 빼앗았다는 사실은 십자군 이야기중의 가장 최악의 원정대이다.

 

 1291년, 1차(1096년) 부터 8차까지 근 300년 가까이 지속된 전쟁은  결국 아코 공방전으로 끝나는데  이 때 아코를 탈환한 이슬람측이 “두번 다시 그리스도교가 상륙할 수 없도록 ”  아코를 파괴하는 것으로 십자군 전쟁은 그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역사에 대한 글을 쓰면서 통감하는 것 중 하나는, 정보란 그 중요성을 인식한 자에게만 올바로 전해진다는 사실이다. 십자군 역사에서도 마찬가지이고, 이 점에 대해선 그리스도교도든 이슬람교도든 예외가 아니었다. 고대 로마의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이렇게 말했다. “현실의 모든 것이 누구에게나 보이는 건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현실만 본다.” 역사를 인식하는 자, 는 아마도 십자군을 저술하면서 이슬람 측의 사료와 십자군 역사가 즉, 그리스도교나 유럽의 역사학자들의 사료를 참고하면서 느껴지는 말인 듯하다. 각측에서 십자군 전쟁의 역사를  기록한 바로는 자신들의 유리한 점들만을 기록하였다고 저자는 느꼈던 듯하다. 1권에서도 말하였지만 시오노 나나미는 그런 역사의 관점에서 벗어나 오로진 ‘인간’ 의 관점으로 역사를 보기를 원하였던 것 같다.  인간의 관점으로 본다는 것은 작가의 상상력에 의지하여 역사를 상상할 수밖에 없지만 , 예를 들어 사자심왕에 대한 평가를 주관적인 시각으로 혹평한 역사학자의 주관적인 시각보다는 오히려 시오노 나나미의 역사에 대한 통찰이 의외로 조금 더 냉정하게 시대상을 직시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게다가 시오노 나나미의 역사적 관점을 지나치게 주관적이라고 할 수 없는 이유는 역사의 기록에 또한 충실했기 때문이다. 단지 십자군 전쟁을  종교가 아닌 영토와 이권을 둘러싼 전쟁에 종교를 덧입힌 '인간'의 욕망에 충실한 전쟁으로 바라보는 점은 기존의 역사이야기보다 더 사실적이고 실존적이다.  

 

십자군 전쟁이 인류사에 남긴 것은 어찌되었든 간에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된 종교 전쟁이라는 기록은 변치 않을 것이다. 결국 이 전쟁으로 인하여 이슬람은 자신들만의 성전을 구축하여 미국(현재 대표적인 그리스도교로 본다면) 의 헤게모니에 굴복하지 않은 유일한 민족으로 존재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십자군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방증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 '신이 그것을 바라신다.' 로 시작된 전쟁은  신이 그것을 바라지 않으셨음을 알게 되는 전쟁이다.

 

옳은 것만 말하는 신이 바란 일이니 옳은 전쟁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따라서 신의 존재가 후퇴한 뒤에도 ‘옳은 전쟁’만은 남았다. 아니, 적어도 이 정도는 남기고 싶다고 인간이 생각했기에 남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20세기에 맹위를 떨치고 21세기인 지금까지 계속 남아, 전쟁을 이끌어내는 측이나 이끌려나간 측 모두, 옳은가 옳지 않은가 하는 문제를 두고 고민하게 만드는 것이다.(5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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