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전기 - 축복과 저주가 동시에 존재하는 그 땅의 역사
사이먼 시백 몬티피오리 지음, 유달승 옮김 / 시공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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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막연하게 예루살렘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지금에 와서는 하나의 꿈이련가 싶다. 삶이 팍팍해서 잊은 이유도 있지만, 조금씩 식어간 종교의 열정도 한 몫 했던 것 같다. “신의 축복과 인간의 탐욕이 공존하는 도시” 라는 수식어는 예루살렘에 대한 더 이상의 수식어는 없을 듯하다. 솔직히 읽는 내내 너무 충격적이다. 예루살렘의 어떤 마력이 그 많은 사람들의 피를 흘리게 했을까. 인간의 잔혹함이 서려있는 그곳은 성지가 아니라 광기가 서려있는 저주받은 땅으로서 역사를 써왔다는 사실을, 예루살렘의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매일 해가 뜰 때마다 세 종교의 세 성지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생명을 얻는다. ( 848쪽)

 

예루살렘은 어떤 면에서는 너무도 사랑스럽지만, 어떤 면에서는 증오와 공허함과 무모함이 가득하다. 하나의 신이 사는 집, 두 민족의 수도, 세 종교의 사원. 하늘과 땅에서 두 번 존재하는 유일한 도시이다. 그 땅은 오랜 역사를 지나면서 단 한순간도 지속적인 평화를 가진 적이 없으며 파괴되고 건설되고, 약탈과 소유되기를 번복하며 성장해왔다. 예루살렘은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의 사람들과 싸워야 했으며, 뺏고 빼앗는 싸움속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신성의 이미지를 더 굳혀갔다. [예루살렘 전기](Jerusalem : The Biography) 는 예루살렘 땅의 모든 역사이다. 그 땅의 장대하고 성스러운 역사를 비롯하여 예루살렘에 살고 배회하며 소유하려 들었던 수많은 개인과 민족의 역사를 담았다. 따라서 , 단순히 종교이야기만이 아닌 예루살렘을 형성해 온 수많은 민족들의 역사를 다루었다.

 

저자 사이먼 시백 몬티피오리Simon Sebag Montefiore는 유대인이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예루살렘을 배회해오면서 가장 사실로서의 역사를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저자는 또한 예루살렘과 유대인을 위해 힘쓴 시온주의의 선구자 모지스 몬티피오리 경의 후손이기도 하다. 따라서 저자는 어쩌면 예루살렘의 역사를 기술하는 데 가장 적합하고 유일한 서술자일 것이다.

 

<제1부 유대교>의 역사는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 왕국의 역사이다. 히브리어 문자로 기록한 역사의 기록이 모세5경 (구약 성서 맨 앞의〈창세기〉,〈출애굽기〉,〈레위기〉,〈민수기〉,〈신명기〉를 말함)으로 종합되었으며, 유대인의 경전《타나크Tanakh》의 첫 번째 부분이 되었다. 독특한 것은 성경에 충실하기보다는 역사의 기록에 충실하기에 이스라엘의 역사를 조금 더 객관화하였다. 텍스트를 따라가다 보면 속속들이 펼쳐지는 역사의 한 장면들은 한편의 파노라마처럼 눈앞에서 펼쳐지듯 생생하다.  권력의 쟁점에서 로마황제들이 예루살렘에 가지는 집착과 알 수 없는 광기, 유대인들의 중심에 있는 도시 예루살렘에서 펼쳐지는 피의 향연들. 더군다나 신의 도시 예루살렘에는  단 1세기도 평화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기실 충격적이고도 경악스럽기까지 하였다.  예수의 죽음까지 밝히는 유대교의 역사는 종교적 관점을 떠나 예루살렘이 유대민족에게 어떠한 존재인지를 짐작케 한다. 이어 비잔틴 제국 콘스탄티누스에 의해 국교화 되면서 그리스도교는 번영하게 되는데 , 마찬가지로 이들에게도 예루살렘은 성지로 존재하게 된다. 이어 이슬람에게도 예루살렘은 이슬람의 거룩한 성지로 비춰지게 되는 역사를 말한다.

 

이슬람의 《쿠란》은 “오로지 신만이 아시는 심판이 가까웠음을 무엇이 그대로 하여금 알게 하리오?”라고 이야기한다. 모든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문헌은 그것이 오직 예루살렘에서만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이슬람이 성지를 탈환하자, 유럽에서 십자군을 결성하고 역사상 가장 오래 한 전쟁으로서의 십자군 전쟁이 시작된다. 오로지 예루살렘의 탈환을 위하여..

 

 

수천 년을 지속해온 예루살렘에 대한 열망과 집착. 저자는 그것은 앞으로도 꺼지지 않는 불씨로 남을 것이며 사그라지지 않는 욕망으로 국제 사회를 지배할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중동전쟁의 불꽃은 꺼지지 않은 채 흘러왔다. 60~70년대 중동전쟁, 현 팔레스타인 분쟁까지 계속된 분쟁지역의 한 중심지로서의 예루살렘의 역사는 방대하지만 첫 시작에서부터 몰입되어 눈을 뗼 수 없게 만든다. 마치 아름다운 장미의 가시처럼, 성스러운 도시지만, 소유하기에는 너무도 큰 출혈을 감수해야 하는 도시, 도돌이표처럼 되풀이되는 예루살렘의 쟁탈전은 잔혹하리만치 매혹적이다.  종교의 첫 시작과  아포칼립스로서 존재하기에 더 신성시 되는 도시이다.

 

예루살렘 도시 곳곳에 세운 기독교와 유대교, 이슬람교는  매일 아침 자신들의  예루살렘에서 자기들만의 성전을 본다. 세 종교의 선택된 도시 예루살렘에는 그러한 종말론적이고 정치적인 강렬함이 그 모든 갈등과 환상의 십자로에 놓여 있다.(842P) 그것만으로도 예루살렘의 존재는 언젠가는 터질 시한폭탄 같은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그러한 긴장감은 현대에 이르러서도 지속되고 있다. 1900년 초에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에는 중동전쟁과 인티파다가 발생했다. 1993년 이후로는 길고 긴 협상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예루살렘을 공유할 계획은 갖고 있지 않다. 예루살렘의 현재는 과거 헤롯 시대, 십자군 시대, 이슬람시대처럼 똑같이 복잡하고 미묘하다. 이제껏 이렇게 잔혹하고도 무서운 역사이야기를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항상 로마제국과 비잔틴 제국, 이슬람제국의 역사가 혼동되어 인식되어 왔으나, 이 책을 읽으면서 차이점을 이해하게 되어서 기쁜 마음도 들고 , 이렇게 중동의 모든 역사가 들어있는 역사서는 처음 접해 본다. 아마도 내 기억으로는 기존에 이렇게 세세하게 예루살렘을 다룬 역사서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 같다. <중국과 이란>의 저자가 이란의 역사를 다른 책은 단 두권 뿐이라고 했듯이 대부분이 미국의 역사나 유럽의 역사에 익숙한 반면에 중동의 역사에는 무관심하다. 예루살렘 역사를 보는 것은 현 국제 사회를 이해하는 첫걸음이나 마찬가지다. 이렇게 생생하게 예루살렘이라는 도시의 역사를 복원하기란 쉽지 않을 듯 한데 너무도 방대한 역사를 지루하지 않게  생생하게 역사이야기를 풀어낸 저자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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