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있지 말아요 - 당신의 가슴속에 영원히 기억될 특별한 연애담
정여울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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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사랑하는 이에게 애절한 편지를 쓴다.. 보고 싶어 애타는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우편함이 가득 차도록 우체부는 오지 않는다. 시인의 편지는 바람에 날려 남의 집 담벼락에 붙거나 아이들이 종이비행기로 변신하여 허공을 날아다닌다. 그걸 바라보는 시인의 마음만 애가 탄다. 그래서 또 편지를 쓴다. 잘 있지 말라고..

 

안녕

오늘 안으로 당신을 만나야 해요

편지 전해줄 방법이 없소

 

잘 있지 말아요

그리운.........-이성복 [편지]

 

정여울의 문학 감성 에세이들은 꼭 챙겨보는 편이었는데 제목 잘 있지 말아요의 반어법을 영문도 몰랐을 때는 이 글귀가 참 귀엽다고 생각했다. 평소, 아무리 상대가 밉더라 하더라도 잘 지내라고 하는 것이 타인에 대한 예의이자 미덕이라 여긴다. 그런데 잘 있지 말아요라고 해도 부정적이거나 나쁜 감정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 안에 숨겨져 있는 반어법의 씨앗이 부디 잘 있어 달라는 기도의 언어로 파생되어 각인된다. 한편으로는 이 문장에서 보여지듯 사랑하는 이의 기쁨도 슬픔도 자기로 비롯되어야 한다는 이기利己의 반어법을 우린 얼마나 이해하며 살까?

 

알랭 바우디는 사랑을 둘의 경험이라 말한다. 둘의 경험이라는 것은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는 말과 같다. 서로에게 주인공이 되는 경험은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사람이 모든 걸 다 가진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 책의 제목 잘 있지 말아요는 사랑에 빠진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이 뜨거운 반어법의 씨앗에 대해 정여울 특유의 감성필치로 들려준다. 숨이 끊어질 듯 사랑하면서도 나 없이는 잘 있지 말아요라고 속삭이고, 절절하게 사랑을 담은 편지를 쓰고 싶지만 차마 보내기는커녕 완성조차 하지 못하는 말하지 못하는 사랑이야기들을 구석구석 도처에서 건져 올린다.   

 

로맨스 영화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원데이》였다. 자신의 삶을 망가뜨리는 재미로 사는 덱스터에게 유일한 친구 엠마, 덱스터와 엠마는 사랑과 우정의 경계를 넘어서지 않지만, 마치 커다란 원이 작은 조각을 잃어버려 찾아다니는 것처럼 덱스터의 망가진 삶 저편에 항상 엠마가 기다리고 있었다. 덱스터가 결혼을 하고 딸을 낳고 이혼을 하는 동안 자신의 삶을 충실하게 채워가는 엠마를 보면서 자신의 가슴 한 편에 자리한 엠마의 존재를 깨달아가는 덱스터. 오랫동안 평행선을 그리던 두 사람이 서로의 선을 구부려 만나게 되지만 둘의 행복을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엠마가 자전거를 타고 덱스터가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샛길로 가다 트럭에 치여 쓰러졌을 때의 충격은 엠마의 오랜 사랑에 비해 짧은 행복이 가여워서 더 크게 다가왔다. 만약 엠마의 죽음에서 영화가 끝이 났다면, 이 아름다운 연인의 사랑이야기는 비극으로만 남겨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영화는 엠마가 죽은 후 새 삶을 살아가고 있는 덱스터가 딸의 손을 잡고 힘차게 언덕을 오르는 것으로 끝난다. 마치 구름 뒤에 숨어있는 해의 모습이 더욱 눈부시게 빛나는 모습처럼 엠마의 죽음으로 더욱 단단해진 사랑의 힘이 느껴지는 영화였다.

 

덱스터는 엠마의 죽음으로 인해 철저하게 부서져버린 자신의 삶을, 벽돌로 하나하나 집을 쌓아 올리듯 천천히 다시 쌓아 올리기 시작한다. 엠마가 살아 있을 때처럼, 엠마가 늘 곁에 있는 것처럼 그는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할 것이다. 그것이 두 사람이 영원히 함께할 수 있는 유일한 길, 유일한 사랑이니까. 다만 돌이킬 수 없는 것은 '조금만 더 일찍, 조금만 더 열심히 사랑할 것을' 하는 후회일 것이다.-p139

 

영화로 보면서도 눈시울 적셨던 감동은 정여울의 감성터치로 되살아나 눈물을 훔치며 읽곤 하였다. 세상에 단 한 장뿐인 폴라로이드 사진처럼 남겨져 있는 이반 투르게네프의 첫사랑을 시작으로 하여 상처 사이로 보이는 아픔을 보여주는 드라큐라의 애면글면한 사랑과 흉한 외모로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에릭 앞에 나타난 매력적인 여가수 크리스틴의 사랑, 못생겨서 사랑을 포기하고 살았던 시라노와 시라노를 대신해서 사랑하는 크리스티앙의 사랑법, 온 생을 다바쳐 강렬한 사랑을 하면서 천국 같은 사랑과 지옥 같은 사랑의 모습을 보여주는 히스클리프의 사랑, 사랑의 메신저 역할을 자처하였던 장발장, 언니의 사랑을 질투해서 연인을 누명씌워 전쟁에 보내게 한 브리오니의 평생에 걸친 속죄의 고행은 '글쓰기' 안에서 그들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연인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이렇게 사랑의 모습은 정말 너무도 다양하고 수많은 의미를 지닌 얼굴을 하고 있다.

 

사랑은 도처에 있다. 그러나, 내 삶에 개입되는 하나의 사건으로서 유일하게 '나'의 경험과 나만이 주인공일 수 있는 사랑은 이기적일 수 밖에 없다. 둘 만의 경험이 사랑이라 한다면, 나와 상대외에는 절대 눈에 들어오지도 , 들어 올 수도 없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 틈새에서 정여울이 외친다. '잘 있지 말아요'라는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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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처럼
김경욱 지음 / 민음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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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결혼을 경계짓는 것은 이상과 현실이다. 이상은 미래처럼 추상적이고 결혼은 현실처럼 실제적이다. 사랑에는 이 두 가지 경계가 물과 기름처럼 공존하고 있는 감정이다. 결혼해서 살다보면 이상과 현실이 만나는 지점, 즉 현재와 미래가 충돌하게 되는 순간이 온다.  내게도 그랬던 것 같다. 멋지기만 했던, 동화속 백마탄 왕자님인 줄 알았지만 결혼하고 나서 철저히 깨어지는 이상의 파편은 척박한 현실을 환히 비추어준다. 

 

요즘 혼자 앓이하는 드라마가 있다.  결혼한 여자 일리와 두 남자의 사랑을 그린 [일리 있는 사랑]이다. 스토리상으로는 분명 비상식적인 사랑이지만, 결혼한 여성의 사랑과 삶을 너무 현실적으로 그리고 있어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운명같은 사랑으로 만나 결혼에 성공하지만, 일리 앞에 던져진 현실은 냉혹하다. 시부모의 갖은 구박과 싸움, 철없는 시동생의 뒤치닥거리와 식물인간이 되어 버린 시누이의 병수발까지 도맡으며 막노동과 다름없는 페인트공을 하는 일리는 그래도 사랑하나로 만족하며 산다. 아니 살려고 했다. 김목수가 나타나기 전까지, 일리의 불행을 먼발치에서 안타깝게 바라보다가 사랑에 빠진 김목수는 일리에게 위로이자 숨통같은 것이었다. 일리와 김목수와의 관계를 눈치채게 된 선생님은 처음에는 분노하지만 어머니마저 치매에 걸리자 일리와 헤어지려 한다. 사랑하지만 일리를 더 가슴아프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때부터일까. 일리의 사랑과 현실은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는 두꺼운 경계가 되어 장막을 두른다. 사랑과 현실, 그 가운데에 일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반면, 두 남자를 사랑하는 일리는 사랑과 결혼이라는 접점을 찾을 수 있을까.

 

눈물의 여왕 장미와 침묵의 왕자 명제

 

 

사랑과 결혼의 경계에서 고민하는 장미와 명제의 이야기는 동화속의 이야기를 닮았다. 그러나, 이들은 동화속의 주인공이 아니라 조연이다. 너무 평범하여 초라한, 화려한 동화속 주인공이 아닌 현실의 우리와 같은 모습을 한 이들이다. 엄마의 괴팍한 성격으로 힘든 어린 시절을 보낸 장미와 아버지의 인색함 아래 우울하게 자란 명제와는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동화처럼 통하는 구석이 많다. 슬픔이나 어려움에 처했을 때마다 동화의 한 구절을 떠올리며 위로하는 버릇도 같다. 동아리에서 만난 명제와 장미는 평범한 연애를 하고 평범한 결혼을 한다. 아주 사소한 말다툼으로 이혼을 하고 다시 만나게 된 명제와 장미는 두 번째 결혼을 한다. 첫 번째 실패의 경험이 용기가 되어주었지만 라이벌의 등장과 명제의 실수로 불거진 오해는 장미에게 우울증을 심어주고 결론은 다시 이혼이었다.

 

동화속 주인공들 처럼 결혼하면 행복하고 오래오래 살게 되는 엔딩을 꿈꾸지만 막상 결혼의 현실은 지치고 힘든 삶의 무게를 버티는 데에 있다. 명제와 장미가 두 번의 이혼과 세 번의 결혼으로  깨우쳐가는 사랑의 의미는 바로 여기에 있다.  타인의 얼굴에서 내 안에 들어온 타자는 내 안에서 타자를 위해 짐을 짊어질 수 있도록 나를 키워낸다. ”라고 강영안이 말하였듯 장미와 명제는 두 번의 이별을 통해 타자를 위해 짐을 질 준비를 하는 방법을 배운다. 미성숙한 아이와도 같았던 이들은 세 번째의 만남에서야 이상의 파편을 깨고 현실에 눈을 뜨게 된 것이다.  한 사람을 통해 세상을 발견하는 것, 어쩌면 그것이 결혼의 참의미이자 본질이 아닐까한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처럼 단순하고 유쾌한 필치의 소설이지만 그 안에 담긴 결혼의 의미는 가볍지 않다. 우리가 흔히 이상적이라 말하는 아름다운 사랑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 엔딩이 아니라 행복하고 오래 살기 위해 '나'를 내려놓고 타자의 짐을 질 수 있는 성숙된 과정에 있지 않을까. 바로 그 순간이 이상과 현실이 만나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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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터홀릭 - 백야보다 매혹적인 스칸디나비아의 겨울 윈터홀릭 1
윤창호 글.사진 / 시공사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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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는 영원히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

 

 겨울엔 유난히 삶의 여백이 더 크게 느껴집니다. 그래서일까요. 겨울이 오면 그 여백에 무엇이든 채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충동이 일어나곤 합니다. 그래서 겨울에는 훌쩍 떠나고픈 유혹이 더 많아집니다. 그나마 겨울 풍경사진이라도 있어 여행의 유혹을 달래보는 것도 좋은 위로가 되곤 합니다. 흔히들 남는 게 사진이라고 하잖아요. 여행사진은 삶의 여백을 채워주는 기분 좋은 위로입니다. 서재를 서성이다가 겨울 여행의 방점을 찍어주었던  북유럽 여행기 《윈터홀릭》을 보면서 마음에 채워지지 않았던 감성여백이 메꾸어지는 기분을 받았습니다.  십여 년간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던  여행사진가인 저자는 북유럽 겨울의 매력 그대로를 사진과 글로 담았습니다. 유럽의 북단에 있는 스탄디나비아 반도인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아이슬란드의 겨울의 아름다운 풍광을 보면 스칸디나비아에 대한 동경이 절로 생긴답니다. 

 

 

 

 아이슬란드의 대표적인 명소 블루라군에서 지하수를 데워 사용하는 특이한 방식의 인공온천에 몸을 담그고 게이시르의 간헐천에서 솟아오르는 물기둥의 위용에 터져나오는 함성을 그대로 담은 듯한 사진은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전 국토가 온천인 아이슬란드에서는 수돗물에서도 유황냄새가 나고 북해의 고독한 섬나라 아쿠레이리에서만 맛볼 수 있는 세상 끝의 고독에서 그리움을 타전하는 여행자의 글은 마음을 따뜻하게 합니다. 푹신한 의자에 몸을 폭 파묻힌 채 너른 바다를 바라보는 시간의 고요가 묻어나는 헬싱키의 겨울과 오로라를 볼수 있는 로바니애미, 숲과 호수의 도시 탐페레, 흠모와 동경의 대상인 모스크바까지 저자의 시선에 머물러 있는 겨울은 가슴을 콩닥거리게 할 정도의 설레임입니다.

 

 모스크바에서는 도스트예프스키와 톨스토이,푸쉬킨,같은 러시아의 대문호와 각별한 인연이 있는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도스트예프스키가 살았던 집과 소설 속 라스콜리니코프의 우울한 그림자들을 같이 공유하는 기분이 들게 합니다. 안데르센 동화에 나오는 덴마크에서는 마치 동화가 현실이 된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히게 하는 동화같은 집과 동화같은 호수, 그림책에서 빠져 나온 듯한  덴마크의 병정들은 꿈과 현실의 경계를 허물게 합니다.

 

"누군가 여행이란 나를 버리는 일이라 했다.

내 인생에 있어서 소중한 한 뭉치의 기록들이

시간 저편의 창고에 던져지고 자물쇠를 채우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뒤돌아보지 말자.

나를 버리자."

 

 

북유럽 겨울 여행의 모든 로망이 이 책에 모두 담겨져 있습니다. 순백의 설원과 짙푸른 밤하늘에 수놓아져 있는 환상의 오로라를 보며 저자가 들려주는 북유럽 겨울여행과 함께 하다보면 어느새 삶의 여백이 아름다운 순백의 풍광으로 가득 채워지는 것을 느낍니다. 생생하게 살아있는 스칸디나비아의 매혹적인 겨울과 함께 하는 동안 어느새 가슴 가득 겨울의 낭만에 물들어가고 있는 나를 만나게 됩니다. 스칸디나비아의 겨울에 물들고 싶다면, 윈터홀릭을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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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08 14: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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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08 14: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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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몽영, 삶을 풍요롭게 가꿔라 - 임어당이 극찬한 역대 최고의 잠언집
장조 지음, 신동준 옮김 / 인간사랑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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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을 옆에 끼고 다닌다. 2년 전만 해도 스마트폰 중독에 대한 경고를 도처에서 들었지만 이제는 그 경고가  무색해질 만큼이나 생활의 많은 부분을 의지하고 있는 처지다. 그도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운동, 학습, 요리,음악,  쇼핑, 카드결제와 같은 앱과 소셜 네트워크는 일상과 늘 연결되어져 있는 생활밀착형이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책을 읽을 시간이 점점 더디어지고 있다. 게다가 책을 읽는 일이 다른 일을 할 때보다 더 많은 집중력이 필요함을 새삼 느낀다. 시간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이루어지는 스마트폰의 접속으로 가끔 고독할 자유를 침해당하는 기분도 든다.  그래서 지그문트 바우만은 우리에게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들에 경고를 날렸던가. 《유몽영》은 디지털이 선사한 광속의 시간 안에서 느림과 절제의 시간을 되찾아 주며 잃어버리고 있었던 고독한 사유의 기쁨을 만끽 할 수 있도록 해주는 철학서이다. 

 

동양철학은 수신의 학문이다. 서양철학의 출발은 그 대상이 신이던 자연이던 밖으로만 치닫고 있는 반면에 동양철학의 출발은 내면세계를 향한다. 수신이라는 나무에 제가와 치국, 평천하라는 열매가 열린다는 개념으로 자신의 삶을 완성하는 것이 최고의 미덕이자 가치이다.

 

조용히 앉아 생각하는 정좌를 하지 않으면 바쁜 행보가 얼마나 빨리 정신을 소진시키는지 알 길이 없고, 이리저리 불려 다니는 범웅을 당하지 않으면 한가한 행보가 얼마나 참되게 마음을 길러주는지 알 길이 없다.” -유몽속영 제 24-

 

유몽영은 청나라 강희제 때 장조가 쓴 소품 잠언집이다. 장조는 자가 산래, 호가 심재로 순치 17년 안휘성 흡현에서 태어났다. 우리나라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조선시대만 해도 실학자인 유득공과 이덕무 , 정약용이 유몽영을 읽었다. 게다가 청조에는 조석수가  <유몽속영>을 짓기도 하였다. 역자는 유몽영을 내용별로 분석한 후 총 305칙에 달하는 <유몽영><유몽속영> 의 잠언을 네가지로 나누었다.

첫째, 독서와 문학( 57칙)

둘째, 자연과 예술(83)

셋째, 꽃과 여인(43칙)

넷째, 인생과 처세(122칙)

 인생과 처세를 논하는 내용이 많은 것은 <유몽속영>의 내용이 이와 관련된 게 많기 때문이다.

 

책을 수장하는 장서가가 되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필요할 때 능히 찾아보는 간서가가 되는 게 어렵고, ‘看書가 되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능히 책을 읽고 이해하는 讀書(독서)가가 되는 게 어렵고, ‘독서가가 되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책을 통해 배운 지식을 능히 실제에 활용하는 (능)가가 되는 게 어렵고,‘능용가가 되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능히 머릿속에 체계적으로 정리해 기억하는 (능)가가 되는 게 어렵다.”

 

장자사상의 핵심어 '물화'는 만물이 모두 같다는 뜻으로 '나'와 외물의 경계를 허물고 하나가 된 일종의 무아지경에 해당한다. 불가에서 말하는 물아일체와 같다. 노자의 무위자연과도 일맥상통한다. 책은 채근담처럼 인생과 처세에 관한 잠언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풍류를 즐기며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유유자적한 삶이 주는 의미를 반추하게 한다. 채근담보다 쉽게 쓰여져 있고 간결한 문장에 삶의 철학을 응축해 놓아 읽고 나서도 여운이 많이 남겨지는 명문장들이 많았다. 채근담 이전 시대인지는 모르겠으나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한자어가 아닌 느낌도 들었다. 유몽영 잠언집으로 가출했던 고독의 시간들이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제자백가의 학문은 크게 수신제가와 치국평천하로 나눌 수 있다. 수신제가는 독경, 치국평천하는 독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헤겔의 말을 인용해 표현하면 '독사'를 배제한 독경은 맹목적이고, 독경을 배제한 독사는 공허하다'고 표현할 만하다. 

 

제35칙 대상완월 臺上玩月 (노년 독서는 누대 위 완월과 같다)

소년 독서는 문틈사이로 달을 엿보는 극중규월, 중년 독서는 뜰에서 달을 바라보는 정중망월, 노년 독서는 누대 위에서 달을 감상하는 대상완월과 같다. 누대 위에서 달을 감상하는 까닭에 천지 사방을 두루 밝히는 달빛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모두 살아온 세월에 따라 터득한 바도 천심이 있기 때문이다.

 

속36칙 습정축망 習靜逐忙 고요함을 익히며 바쁘게 지내라

고요함을 익혀야 하루가 긴 줄 알고, 바쁘게 지내봐야 하루가 짧은 줄 알고, 독서를 해야 하루하루가 아까운 줄 안다.

 

속37칙 중년한경 中年䦘境 한가한 중년이 되지 마라.

소년에는 순탄한 순경에 처해서는 안 되고, 중년에는 한가한 한경에 처해서는 안 되고, 노년에는 껄끄러운 역경에 처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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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5-05-07 15: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가한 행보가 얼마나 참되게 마음을 길러주는지‥ 부산스러운 날들에 필요한 절제술일 것 같네요. 드림님에게도 그런날들이시길요~

드림모노로그 2015-05-07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지내시지요~~^^
어느새 꽃이 지고 신록이 푸르러지는 입하를 지나고 있네요~~
바쁜 시간들에 마음을 뺏기기 보다는 그 시간들을 누르며 여유롭게 지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프레이야님도 바쁘신 가운데 여유로운 5월을 누리시길요~^^
 
HRC 힐러리 로댐 클린턴
조너선 앨런.에이미 판즈 지음, 이영아 옮김 / 와이즈베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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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궐선거 야당의 참패이후 격돌하던 여야정치 갈등은 오히려 소강상태에 들어선 느낌이다. 여당은 마냥 기뻐하기에는 마무리 지어야 할 사안들이 많이 남겨져 있고 야당은 선거의 패배 원인에 대한 분석조차 티미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힐러리의 책이 출판사에 봇물 터지듯이 출간되고 있다. 한때 오바마에 대한 책이 봇물을 이루었던 시절과 비슷한 현상이기도 하다. 그런데 읽으면 읽을수록 힐러리가 대단한 여성이라는 사실이 실감난다. 물론 오바마 역시.


2008년 민주당 예비선거에서 대패한 힐러리가 오바마가 제안한 국무장관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부터 현재까지의 정치적 행보를 그린 책으로 , 그들이 거느리고 있는 선거캠프의 소리없는 전쟁을 생생하게 전달해주고 있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우리나라 정치에서 보기 힘든 ‘화합’ 즉 유니티(unity) 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었다. 힐러리가 민주당 예비 선거 대패후 오바마가 제안한 국무장관직을 수행하면서 두 후보의 지지자들의 충돌은 더욱 거세어 졌다. 백악관의 보좌관들은 힐러리 팀이 패배한 후에도 콧대를 꺾지 않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고 힐러리 팀들은 오바마의 보좌진들의 젊은 혈기에 심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 양측의 보좌관들은 대선 후보 경선의 앙금을 씻어내지 못하였지만 두 진영의 화합을 꽤한 것은 오바마와 힐러리 두 사람이었다. 힐러리는 자신의 보좌진들에게 ‘졌어도 품위를 잃으면 안 돼’ 라고 다독였고 '그는 대통령이야' 라며 예의 바른 존중의 표현을 하라고 지적했다. 오바마 역시 시간만 되면 힐러리를 공격하는 보좌진들에게 옛 원한을 버리고 최대한 품위있고 정중하게 국무장관으로서 힐러리를 대하라고 강경한 태도로 지시했다.

 

 

 

PART 1
01 힐러리의 살생부
02 패배했어도 품위를 지켜라
03 예측된 위험
04 우리와 그들

PART 2
05 심어진 곳에서 꽃을 피워라
06 내각의 최고 실력자로 우뚝 서다
07 “우리가 해냈어, 친구”
08 “나를 앱처럼 사용하세요”
09 오바마 걸(girl)

PART 3
10 희망과 위험
11 수면 아래에서
12 힐러리의 정치학
13 HRC 브랜드
14 빌 클린턴의 외조
15 리비아의 화약고 벵가지

 

 

《HRC 힐러리 로댐 클린턴》은 정치인으로서의 힐러리의 진면모를 보여주는 정치 르포르타주이다.  오바마가 힐러리를 '훌륭한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한 부분 역시도 우리나라 정치에서 보기 드문 모습이어서 한편으로는 매우 모범적인 정치문화를 보는 느낌도 들었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이런 화합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정치에 대한 혐오가 지금처럼 극으로만 치닫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씁슬함을 삼키며 정치의 프레임을 새롭게 정립할 수 있는 책이 되지 않을까한다.  

 

우리나라는 민주공화국이다. 허나 최근에 들어서서는 ‘공화’의 개념이 쏙 빠진 채 달리는 민주주의 과속열차에 타고 있는 기분이다.  개인이나 개별적 집단의 권리와 자유만 지나치게 강조하다보니 정작 추구해야 할 사회의 공동선의 추구와 공동세계 구축은 뒷전이 되었다. 민주와 공화가 함께 어우러져 참여와 소통과 헌정주의를 추구하는 사회가 되었더라면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과의 소통이 원활해지고 서로 이해하고 합의하는 사회분위기를 기대하였을 텐데 한국정치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개인의 자유와 집단의 권리만이 남발되는 파편적 정치문화 형태로 자리잡아 가는 기분이랄까.

 

도처에서 묵도되는 갈등과 반목의 길목에서 투쟁과 시위로 사회를 이끌어가고 있는 시민단체들이 난무하고  개인과 집단 이기심에 따른 분출에 대한 혼란에 이데올로기 싸움으로 번져가고 있는 진보와 보수의 충돌에 오랜 세월 곪아가고 있는 지역갈등 뿐 아니라 인터넷 문화의 확산으로 더욱 극심해진 세대간의 갈등은 이제 단절의 국면으로까지 치닫는 상황에서 정치에 대한 이해의 폭 역시도 이제는 차이가 아닌 불통의 국면에 다다랐다. 정치인들은 국민들의 화합과 소통, 공동의의 선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과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대안도 없이 비난에만 몰두하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의 정치 현실이다. 이는 <공화와 민주의 나라> 에서 이동수가 밝히듯 자신의 권익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개인과 집단들의 힘이 충돌하는 '권력정치(politics)가 한국정치 현장에서 여전히 득세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그동안 억압받다 아무런 여과없이 한꺼번에 분출된 새로운 권익과 또 이 도전으로부터 기득권을 한사코 지키려는 기존의 권익 모두, 공동체와 공동선에 대한 고려 없이 '권력투쟁'에 진력함으로써 사회적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힐러리와 오바마가 연대하면서 서로간의 갈등을 극복하고 협력하는 과정은 바른 정치의 시금석이라 할 수 있다. 민주당 예비선거에서 패배 한 후 오바마를 적으로 돌리지 않았을 뿐더러 오바마가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커다란 요인이었던 유권자들과 소통과 홍보하는 전략을 전적으로 흡수하여 차기 대선 후보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오바마의 그림자처럼 보였던 힐러리는 오바마 임기 두 해를 거치면서 명망이 빛나기 시작한다.  아이티 지진에서부터 러시아와의 신전략무기감축협정, 이란에 대한 제재 조치에 이르기까지 잇따른 복잡한 외교문제들을 해결하면서 오바마의 그림자인 줄 알았던 힐러리가  결코 구름사이에 가려지지 않는 해라는 것이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대통령 차기 대선 후보인 힐러리의 책이 출판사마다 앞다투어 출간하는 것을 볼 때에도 그다지 큰 기대를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차기 대권 주자 후보 힐러리의 책을 읽는다는 것은 파편화된 정치 형태를 띠고 있는 우리나라의 정치현실에 시의적절한 책이다.  서로 대권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목적과 수단을 불사하지 않는 정치인들에게는 상대에게 조금 더 너그러울 수 있는 패를 ,  자신의 이익과 권리만을 앞세워 투쟁만을 일삼는 이해집단들에게는 공공선이란 무엇인가를  ,  타인의 의견에는 관심없으면서 자신의 주장만을 내세우는 지식인들에게는 공동 세계의 구축에 대한 열린 단상을,  이 책을 통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린지 백년의 역사를 가진 미국의 정치와 이제 민주화가 뿌리 내린지 겨우 30년을 지난 우리나라가 비교대상이 되긴 힘들다. 허나 성숙된 민주국가가 되기 위한 노력은 멈추지 말아야한다. 그런 면에서 힐러리에겐 배울 점이 아주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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