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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있지 말아요 - 당신의 가슴속에 영원히 기억될 특별한 연애담
정여울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10월
평점 :
시인이 사랑하는 이에게 애절한 편지를 쓴다.. 보고 싶어 애타는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우편함이 가득 차도록 우체부는 오지 않는다. 시인의 편지는 바람에 날려 남의 집 담벼락에 붙거나 아이들이 종이비행기로 변신하여 허공을 날아다닌다. 그걸 바라보는 시인의 마음만 애가 탄다. 그래서 또 편지를 쓴다. 잘 있지 말라고..
안녕
오늘 안으로 당신을 만나야 해요
편지 전해줄 방법이 없소
잘 있지 말아요
그리운.........-이성복 [편지]
정여울의 문학 감성 에세이들은 꼭 챙겨보는 편이었는데 제목 『잘 있지 말아요』 의 반어법을 영문도 몰랐을 때는 이 글귀가 참 귀엽다고 생각했다. 평소, 아무리 상대가 밉더라 하더라도 잘 지내라고 하는 것이 타인에 대한 예의이자 미덕이라 여긴다. 그런데 ‘잘 있지 말아요’라고 해도 부정적이거나 나쁜 감정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 안에 숨겨져 있는 ‘반어법’의 씨앗이 부디 잘 있어 달라는 기도의 언어로 파생되어 각인된다. 한편으로는 이 문장에서 보여지듯 사랑하는 이의 기쁨도 슬픔도 자기로 비롯되어야 한다는 이기利己의 반어법을 우린 얼마나 이해하며 살까?
알랭 바우디는 사랑을 둘의 경험이라 말한다. 둘의 경험이라는 것은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는 말과 같다. 서로에게 주인공이 되는 경험은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사람이 모든 걸 다 가진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 책의 제목 ‘잘 있지 말아요’는 사랑에 빠진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이 뜨거운 반어법의 씨앗에 대해 정여울 특유의 감성필치로 들려준다. 숨이 끊어질 듯 사랑하면서도 나 없이는 ‘잘 있지 말아요’ 라고 속삭이고, 절절하게 사랑을 담은 편지를 쓰고 싶지만 차마 보내기는커녕 완성조차 하지 못하는 말하지 못하는 사랑이야기들을 구석구석 도처에서 건져 올린다.
로맨스 영화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원데이》였다. 자신의 삶을 망가뜨리는 재미로 사는 덱스터에게 유일한 친구 엠마, 덱스터와 엠마는 사랑과 우정의 경계를 넘어서지 않지만, 마치 커다란 원이 작은 조각을 잃어버려 찾아다니는 것처럼 덱스터의 망가진 삶 저편에 항상 엠마가 기다리고 있었다. 덱스터가 결혼을 하고 딸을 낳고 이혼을 하는 동안 자신의 삶을 충실하게 채워가는 엠마를 보면서 자신의 가슴 한 편에 자리한 엠마의 존재를 깨달아가는 덱스터. 오랫동안 평행선을 그리던 두 사람이 서로의 선을 구부려 만나게 되지만 둘의 행복을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엠마가 자전거를 타고 덱스터가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샛길로 가다 트럭에 치여 쓰러졌을 때의 충격은 엠마의 오랜 사랑에 비해 짧은 행복이 가여워서 더 크게 다가왔다. 만약 엠마의 죽음에서 영화가 끝이 났다면, 이 아름다운 연인의 사랑이야기는 비극으로만 남겨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영화는 엠마가 죽은 후 새 삶을 살아가고 있는 덱스터가 딸의 손을 잡고 힘차게 언덕을 오르는 것으로 끝난다. 마치 구름 뒤에 숨어있는 해의 모습이 더욱 눈부시게 빛나는 모습처럼 엠마의 죽음으로 더욱 단단해진 사랑의 힘이 느껴지는 영화였다.
덱스터는 엠마의 죽음으로 인해 철저하게 부서져버린 자신의 삶을, 벽돌로 하나하나 집을 쌓아 올리듯 천천히 다시 쌓아 올리기 시작한다. 엠마가 살아 있을 때처럼, 엠마가 늘 곁에 있는 것처럼 그는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할 것이다. 그것이 두 사람이 영원히 함께할 수 있는 유일한 길, 유일한 사랑이니까. 다만 돌이킬 수 없는 것은 '조금만 더 일찍, 조금만 더 열심히 사랑할 것을' 하는 후회일 것이다.-p139
영화로 보면서도 눈시울 적셨던 감동은 정여울의 감성터치로 되살아나 눈물을 훔치며 읽곤 하였다. 세상에 단 한 장뿐인 폴라로이드 사진처럼 남겨져 있는 이반 투르게네프의 첫사랑을 시작으로 하여 상처 사이로 보이는 아픔을 보여주는 드라큐라의 애면글면한 사랑과 흉한 외모로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에릭 앞에 나타난 매력적인 여가수 크리스틴의 사랑, 못생겨서 사랑을 포기하고 살았던 시라노와 시라노를 대신해서 사랑하는 크리스티앙의 사랑법, 온 생을 다바쳐 강렬한 사랑을 하면서 천국 같은 사랑과 지옥 같은 사랑의 모습을 보여주는 히스클리프의 사랑, 사랑의 메신저 역할을 자처하였던 장발장, 언니의 사랑을 질투해서 연인을 누명씌워 전쟁에 보내게 한 브리오니의 평생에 걸친 속죄의 고행은 '글쓰기' 안에서 그들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연인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이렇게 사랑의 모습은 정말 너무도 다양하고 수많은 의미를 지닌 얼굴을 하고 있다.
사랑은 도처에 있다. 그러나, 내 삶에 개입되는 하나의 사건으로서 유일하게 '나'의 경험과 나만이 주인공일 수 있는 사랑은 이기적일 수 밖에 없다. 둘 만의 경험이 사랑이라 한다면, 나와 상대외에는 절대 눈에 들어오지도 , 들어 올 수도 없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 틈새에서 정여울이 외친다. '잘 있지 말아요'라는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