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의 기록 - 버나드 루이스의 생과 중동의 역사
버나드 루이스.분치 엘리스 처칠 지음, 서정민 옮김 / 시공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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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알면 알수록 신비한 곳이다.  나에게 중동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것은  <예루살렘 전기/시공사>를 만나고 나서였다.  유대인이 저술한 예루살렘의 역사를 보면서 그동안 서구역사에만 치중했던 세계사를 중동의 시각으로 바라보게 해 주었던 책이다.  제목만 보고 <예루살렘 전기>와 같은 맥락일 거라는 생각을 했는데  이 책 100년의 기록(원제: Notes on a Century) 은 학자의 관점에서 중동의 역사를 다루었다. 영국인 최초의 중동학자인  버나드 루이스는 아흔 다섯의 나이에 학자로서 근 100년의 삶을 이 책에 담아낸 필생의 역작을 남겼다. 

 

영국에서 태어나 인생의 대부분을 영국과 미국에서 보내며 저자는 중동을 안에서부터 이해하는 시각으로 이 책을 집필했다고 밝히며 2차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되면서 터키어 뿐만 아니라 알바니아어를 터득하여 문서 해독가로 일하던 경험을 들려주기도 하고 전쟁국가들의 긴박한 상황들을 설명해주기도 한다. 중동의 역사전문가로 터키와 이집트의 대통령, 파키스탄 장성들과의 교류도 하며 이슬람학세계총회에 참석하는 등 다양한 활동들을 통해 이슬람 국가와 무슬림 성직자들과의 에피소드들이 저자의 삶의 궤적과 함께 한다.

 

무엇보다 의미있었던 것은 저자가 역사학자로서 가졌던 가치관이 시대와 함께 행간에 도드라지는데 이는 자신의 삶을 반추하면서 역사적 사건에 주목하여, 역사는 현재라는 시간에 충실함으로 공정성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저자는 중동의 100년을 자신의 삶과 함께 엮음으로  역사가들이 자칫 범하기 쉬운 오류인 '개인의 관점'을 배제하려 애쓴 흔적들이 곳곳에서 느껴졌고, 역사학자로서 가져야할 기본 자세를 가장 가치있게 여겼다.

 

역사학자의 책임과 의무는 자신이 확인한 진실만을 말하는 것이다. 진실 외에 다른 어떤 주장을 내놓아서는 안 된다. 자신이 선전가가 되거나 선전가들에게 이용당하게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 역사는 누군가에 의해 정치적으로 쉽게 왜곡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유혹인 존재하는데, 이는 역사학자가 직면할 수 있는 큰 위험이다.-p191

 

"위대한 역사학자는 자신의 분야에 새로운 불확실성을 추가해 더 풍요롭게 만드는 사람이다.“

 

정직한 역사 연구에는 두 가지 조건이 있다.

첫째, 가설은 분명한 목적과 인식을 가진 것이어야 한다.

둘째. 학자는 증거에 따라 자신의 가설을 어떤 단계에서라도 수정하거나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

역사학자도 인간이다. 따라서 다른 사람들처럼 실수도 하고 실패할 수도 있다. 특정 이념과 권력에 대한 충성심과 편견이 학자의 역사 인식과 표현을 왜곡할 수 있다. -p199

 

역사가 사실인지 묻는다는 것은 역사가 때때로 거짓일 수 있음을 의미한다. 왜 거짓일 수 있을까? 왜 그리고 어떻게 역사를 날조하는 것일까? 이 질문은 모든 사회의 역사가들이 직면한 큰 문제들 중 하나다. -p202

 

역사의 주요 목적과 용도 중 하나는 정당화다. 과거를 이용하여 현재를 정당화하는 것이다.-p203

 

역사가가 미래를 예측해줄 거라 기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역사가가 할 수 있고 또 반드시 해야 하는 것들도 있다. 역사가는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 현재까지 진행되어온 것을 관찰하고 발생하는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어떤 상황이 발생할 수 있을지 그 가능성들을 제시할 수 있다. 가까운 미래가 아니라 먼 미래의 역사적 흐름을 예견하는 것이다. 그러나 다양한 목적과 동기에 의해 때로 역사가들이 현재에 집착하는 경우가 생기곤 한다. 역사적 흐름을 기록하고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그 흐름에 영향을 주거나 혹은 방향을 바꾸고자 하는 정치적 목적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p214

 

기독교와 이슴람 두 종교의 공통적 과제는 다름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나는 옳고, 당신을 틀렸소. 지옥에나 가시오.”

 

나는 이 책이 역사학자로서 평생 살아온 연륜에서 묻어나는 역사관점의 지혜로 읽혀졌다. 무엇보다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은 공정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는 집필된 저자의 관점에 따라 편향되어 있다. 역사는  공정성을 가져야 하며 무엇보다 정치성을 배제해야 한다. 세계대전을 경험하고 영국에서 중동학자로 살아오면서 중립적인 시각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역사학자로서의 사명감이 한몫 했던 것 같다. 현재를 살면서 역사에 대해 얼마나 공정한 시각을 가지고 있는지를 생각해 볼 수 있었던 면에서 배울 점이 많았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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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발한다 - 드레퓌스사건과 집단히스테리
니홀라스 할라스 지음, 황의방 옮김 / 한길사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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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지 마라-출애굽기 232

 

드레퓌스 사건이 터지던 해는 1894년으로 정치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가장 민감한 시대였다. 사건의 개요는 알프레드 드레퓌스가 간첩으로 체포되는 사건이지만 이 사건은 프랑스혁명과도 같은 자유와 정의의 승리이기 때문에 역사적 사건이 되었다. 군에 대한 사명감으로 똘똘 뭉쳐있던 드레퓌스는 동료들과 잘 어울리는 성격이 못되었다. 드레퓌스가 결백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동료들이 방관한 것은 드레퓌스의 그러한 성격에서도 비롯된 것이지만 그것보다 더 우선적으로 드레퓌스가 유대인이었기 때문이다. 드레퓌스가 장교가 되었을 때 창간한 드뤼몽의 [라 리브르 파롤]지는 그야말로 프랑스인들의 '반유대주의 '감정을 부추기는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다. 지금도 언론은 선동의 선봉장에 있지만 당시 [라 리브르 파롤]지가 반유대주의의 앞잡이 역할을 하지 않았더라면 드레퓌스사건은 정치적문제로 비화되진 않았을지도 모른다.

 

프랑스혁명이후 반세기를 지나오며 프랑스인들의 의식을 지배해온 정신적 기조는  만인은 권리 앞에 평등하다는 민주주의의 신조였다. 하지만, '반유대주의'라는 감정이 스며들게 되자 이들은 집단히스테리에 빠져 인권을 유린하기 시작했다. 집단이 되어 버린 국가의 국민에게 개인의 권리는 절대 중요하지 않다.  

 

반유대주의 잡지[라 리브지 파롤] 지가 내세운 첫 번째 캠페인은 군내 유대인 장교들에 대한 맹렬한 공격이었다. 전술학교에는 드레퓌스 외에 또 한 명의 유대인 장교가 교육을 받고 있었고, 이 둘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부당한 성적을 받는다. 이에 드레퓌스는 군부에 항의하고 결정적으로 장교들의 미움을 받게 된다. 게다가 [라 리브로 파롤]지는 유대인들이야말로 외부의 적과 손을 잡고 프랑스를 멸망시키기 위해 준동하고 있는 내부의 적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 드레퓌스가 수습참모로 부속되자 군장교들은 핵심부서에 유대인이 한 명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결국 장교들은 독일과 내통한 이중첩자로 드레퓌스를 지목하고 진위여부와는 상관없이 드레퓌스는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하루 아침에 이중첩자로 체포되고,  뒤파티와 메르시에,부아데브르 장군과 진범(원래 간첩)이었던  에스테라지는  그를 이중첩자로 만들기 위해 날조를 시작했다.

 

   사건을 은폐하려고 하는 군을 상대로 드레퓌스의 결백을 주장하며 꾸준히 재심을 요청하고 있는 가족들과 어떤 억압에도 자신의 신념을 믿었던 클레망스의 변호에도 불구하고 드레퓌스는 유죄를 판결받고 남아메리카에 종신유폐 된다. 그러던 중 피카르 중령은 드레퓌스를 간첩으로 몰고 갔던 명세표를 쓴 사람이 에스테라지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사건을 은폐하려는 군을 상대로 진상규명을 요구하게 되며 다시 재판에 회부되는데 , 에스테라지의 자백이 있었음에도 군부와 프랑스는 드레퓌스 손을 들어주지 않는다. 오히려 군중들은 더욱 노골적으로 변하여 드레퓌스의 죽음만이 애국이라는 극단적 움직임까지 보인다. 이들 국가주의자들은 군의 신뢰가 무너지는 것(드레퓌스가 무죄라는 것)은 독일의 힘을 인정하는 정치적 분위기로 매도되어 드레퓌스의 결백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드레퓌스의 재판과 관련하여 '반유대주의'의 추악한 행동에 충격을 받은 사람은 또 하나 있었다. 이미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올랐던 에밀 졸라는 자신의 전 명예를 걸고 '나는 고발한다'라는 호소문을 발표한다. 이 글은 전세계에 퍼저 에밀 졸라의 표어로 남는 역사적인 글로서 당시 군부와 군중들의 집단 히스테리를 명백히 분석하고도 남는 글이었다. 그러나 그런 그조차 프랑스 국민들은 비난의 칼을 세우고 결국 에밀 졸라는 유죄 판결을 받는다.

 

졸라를 위시하여 자유주의파 지식인들은 '드레퓌스파'에 대거 참여하며 정의와 진실을 촉구하였고, 반대로 반유대주의자들은 국가의 신념을 내세우며 이들과 팽팽히 대립하게 된다. 드레퓌스파는 무고한 시민에게 가해진 법의 불공정함과 정의의 신념이었지만, 반유대주의자들은  프랑스라는 국가의 비뚤어진 신념으로 이성을 마비시켰다는 점에서 이 둘은 첨예하게 대립했다. 한쪽에서는 정의를 위한 자유투쟁이었기에 격렬했고, 다른 한쪽에서는 유대인이 독일, 영국, 미국과 짜고 프랑스를 분열시키려 한다는 음모론으로 치열했다. 

 

 

가장 하릴것없는 사람의 권리라 해도 그 권리의 침해는 억업받는 모든 사람의 이해관계에 위험을 부르게 된다. 인권이란 대의는 불가분의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찬성하거나 반대하거나 양자택일 할 수밖에 없다.-p235

 

 

드레퓌스 사건은 12년 만에 종결된다. 물론 자유와 정의의 승리였다. 에밀 졸라도 런던으로 망명한지 십 년만에 프랑스로 돌아왔다. 드레퓌스 사건을 보면서 감성적 집단주의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새삼 되새겨보며 극단으로 치닫는 사고는 이성적 사고를 마비시킨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와 비슷한 현상을 일컬어 '디지털 마오이즘'이라는  IT용어가 있다. 과거 중국의 마오이즘이나, 독일의 나치즘과 비슷한 집단주의를 말하는데 요즘 인터넷 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기도 하다. 극단적인 좌파와 우파의 대립, 극우의 일베문화, 자신과 다르면 무조건 배척하고 보는 현실의 정치문화에서 드레퓌스 사건은 따끔한 경종을 울려주는 듯하다. 소설보다 더 흥미진진했고, 국가의 권리 이전에 개인의 권리가 먼저라는 에밀 졸라의 '나는 고발한다'의 전문은 나를 감동으로 전율케 했다. 프랑스 혁명의 정신적 계보는 에밀 졸라로 이어져 내려왔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만일 한 인간의 권리가 부정되면 곧 전 국민의 권리가 위태롭게 될 거라고 주장했다. 국가는 모든 시민이 평등한 권리를 향유하게끔 보호하는 파수꾼이며, 그러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국가는 국가일 수가 없다. -P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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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의 탄생 - 유럽의 살롱과 클럽과 카페 그 자유로운 풍경
이광주 지음 / 한길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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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온라인이 형성하는 커뮤니티들을 보면 표현이 자유로와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물론 자유주의 사회에서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그 자유가 지나쳐, 오히려 독자(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거부감이 들게 하는 경우가 온라인에서는 자주 볼 수 있다. 뿐만아니라 사회적으로 명망있는 사람들조차도 말 한마디로 옷을 벗는 상황이니, 말은 분명 조심하고 삼가해야 한다. 온라인의 영역이 점점 일상에 깊숙이 스며들면서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서 자주 접하는 현상이 바로 이런 대화의 문제인데, 얼굴과 얼굴이 만나 이루어지는 대화가 아니다보니 일방적일 뿐 아니라 피상적인 말만 오갈 뿐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담론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흔한 현상이 대부분이 자신의 주장만일 옳고 진리라 주장할 뿐 상대의 의견을 경청하거나 받아들이는 자세는 찾아 볼 수가 없다. 

 

《담론의 탄생》의 저자 이광주는 이런 사회의 분위기에서 '담론'의 문화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쳐왔는지를 유럽의 문화와 사회를 통해 살펴본다. 담론하면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의 시금석이라 할 수 있는 아테네 광장 '아고라'를 시작으로 하여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를 거치면서 살롱과 클럽 , 그리고 도시 속에 폭넙게 열린 카페문화로 자리잡아 가게 되면서 피어나기 시작한 시민적 공공성을 통해 담론의 변천사를 설명해 주고 있다. 이런 변천사를 통해 서양에서 발달하기 시작한 사상적 흐름을 거시적으로 그려 볼 수 있었다. 저자는 유럽의 문화와 사회를 유교적 전통문화와 사회를 비롯해 다른 모든 문명권과 구별 짓는 특징으로 자유로운 담론문화의 전통을 강조하는 동시에 담론문화의 중심에 있는 살롱과 클럽, 카페를 통해 자유의 사상이 어떻게 스며드는지를 유추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일반적인 카페와는 다른 것이 유럽의 카페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열린 사교의 장이라는 역할을 톡톡히 했고 특히 신분제 사회였음에도 신분과 남녀노소의 차별을 초월하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따라서, 각계각층의 사람이 모여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분위기를 형성할 수 있던 유일한 공간이기도 하다. 특히 유럽에서 카페나 클럽은 생겨나자마자 남성들의 사랑방이 되었고 커피의 맛처럼 자유의 맛을 만끽하는 곳으로 자리잡아 갔다. 이들은 담론문화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에 눈떴고, 유대감을 느끼며 카페를 통해 정보를 교환하며 여론을 형성하는 새로운 공공성을 창출하는 터전이 되었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태동은 바로 이러한 담론문화를 바탕으로 하여 서로의 차이와 대립, 사회적 갈등과 부조리를 풀고자 하는 상호간의 노력이 바탕이 되어가며 시작되었다.

 

 

 

1 살롱과 클럽, 절도 있는 미학

담론문화의 흐름, 휴머니즘적 교양의 탄생

프랑스 귀부인의 살롱, 예절과 비전의 사교

영국 신사들의 클럽, 질서와 자유의 커먼센스

독일의 유대인 살롱, 진실을 향해

1930년대의 빈 살롱, 어제의 세계를 회상하며

 

2 카페, 도시 속의 열린 살롱

차와 커피는 세계를 하나로 묶었다

이스탄불, 카페 문화의 자기일탈 자기반란

환상의 베네치아, 카페 플로리안으로!

런던의 커피하우스와 스위트 홈의 홍차문화

파리, 카페 문화의 영원한 토포스

베를린, 황금의 1920년대의 카페들

빈의 카페, 어제의 세계의 좋은 나날들

 

온라인 커뮤니티가 점차 확산되는 분위기에서 담론의 의미를 반추해 볼 수 있었는데, 르네상스 시대 자유로운 인간중심의 문화를 꽃피울 수 있게 했던 저변에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일구어낸 '대화'가 숨은 공신이었다. 앞으로도 더욱 온라인 커뮤니티의 영역은 오프라인의 영역을 뛰어넘을 것이다. 그렇게 확대되어 가는 온라인에서 조금씩 자신의 생각만이 옳다는 주장이 아닌 타인의 생각을 경청하고 공유할 수 있는 카페문화를 만들어간다면 온라인 커뮤니티도 충분히 시민적 공공성이라는 힘을 지닐 수 있다. 역사가 과거를 통해 현재의 부족한 부분을 개선하고 좋은 방향을 모색하도록 한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면 우리의 어긋나고 있는 담론의 문화를 역사의 한 부분에서 찾아보는 것은 필연적인 과정이나 다름없다. 그런 의미에서 읽어봄직한 문화이야기다.

 

 

근대 유럽 최고의 이야기꾼 몽테뉴는 그의 일생에서 최대 주제는 자기 자신이었다고 말 한 바 있다. 사실 삶이란 자기 자신과의 대화를, 자기 자신과의 만남을 일상적으로 되풀이하는 나날들이 아닌가하고 가끔 생각한다.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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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블 이야기
헬렌 맥도널드 지음, 공경희 옮김 / 판미동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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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뜻과 관계없이 갑자기 그것을 빼앗겼을 때, 더구나 그것이 복구할 수 없는 상실일때의 절망감은 직접 경험하지 않았다 해도 공감하거나 이해되지 않던가. 바로 이것이 헬렌과 참매 메이블의 이야기가 나와 우리의 이야기가 될 수 있는 지점이다. -p6

   

상실이 깊을 때 누군가는 그 상처를 마주하여 상실을 벗어나려 하지만 누군가는 그 상처를 피해 도망가려 하기도 한다. 그 도망이라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내 안으로의 도망이며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언젠가는 닿아야하는 인생길이다. 상실의 아픔을 마주하거나 도망가거나 그것은 둘 다 선택의 갈림길이지만, 결국 삶이라는 외길에서 만나게 되는 것이 인생이다. 살아가면서 누구나 한번 쯤은 이런 상실의 고통을 만난다.

   

부모에게 학대 당하며 성장기를 보냈고, 학교생활에서는 왕따였고, 영어 교사가 되었지만, 결국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한 남자가 있다. 그는 동성애자였고, 세상에서부터 받은 소외감과 상실을 야생동물을 키우며 메워나갔다. 화이트는 매' 고스'를 키우며 매훈련 지침서라 할 수 있는 [참매]라는 책을 썼는데, 이 책은 훗날 헬렌의 메이블이야기가 탄생할 수 있는 정신적 지주가 된다. 헬렌은 화이트의 책을 통해 메이블이라는 매를 길들일 수 있었고, 화이트가 살아가는 방식을 상상하며 자시의 삶을 응시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이 책에는 메이블과 헬렌, 그 사이에 화이트가 존재한다.

   

사진작가였던 아버지 덕에 늘 자연과 벗하며 성장하였던 헬렌은 갑작스런 아버지의 죽음으로 큰 충격을 받는다.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의 크기에 짓눌려 세상으로부터 담을 높이 쌓아올리고 자기방에 숨어 버린 헬렌은 아버지를 따라 매를 보러간 기억을 더듬으며 매를 길들이는 것으로 상실의 구멍을 메우려 한다. 그녀는 화이트가 자신의 매 고스를 길들이면서 쓴 자전적인 책을 통해 자신의 매메이블을 관찰하기 시작하는데, 자연학자였던 그녀는 인내와 정성에 학자의 고집스러운 관찰력이 합쳐져 매와 인간의 합일을 보여주고 있다. 그 위에 평생을 애정 결핍에 시달려 상처로 얼룩진 삶을 살았던 화이트가 매의 이야기가 겹치면서 '교감'이라는 의미를 반추하게 한다.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던 화이트는 매와의 관계도 틀어지지만, 헬렌은 아버지의 사랑을 메이블에게 답습하는 것으로 메이블과 자신을 일치해가는 사랑의 모습을 보여준다. 화이트의 매 훈육법은 참고하지만 헬렌만의 메이블 길들이기가 서로 다르게 전개 되어 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

   

나는 동물을 키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키우던 강아지가 죽고 나서 동물을 나만 좋다고 가두워 키운다는 것이 참 잔인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러니 저자가 야생매를 길들이려 한다는 것자체가 그다지 좋은 시도 같아 보이진 않았다. 게다가 가장 길들이기 힘들다는 맹수인 야생매를 키운다는 사실을 처음에는 놀랍고 이기적인 발상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헬렌의 메이블 이야기는 동물을 길들인다는 의미와는 많이 달랐다. 헬렌은 자신을 사라지게 하고, 매의 눈으로 세상을 보려 했고, 매처럼 세상을 이해하고 싶어했다. 사회에서 소외된 동성애자의 눈으로 화이트를 이해하려 했고, 화이트의 매 길들이기 실패를 인간적으로 이해했다. 그런 이해의 과정들이 세상으로부터 높은 담을 쌓았던 헬렌의 마음을 활짝 열어주며 다시 세상을 향해 설 수 있도록 했다. 그렇기에 이 책은 하나의 성장소설이다. 자신을 메이블화 시켜가면서까지 자신을 매에 투사하여 상처로부터 도망가려 했던 헬렌은 그렇게 세상을 다시 마주한다. 상실로 시작하지만, 그 상실이 아름다운 한 편의 서사시라는 것을 알게 되는 책이다.

 

 

내 모습을 보이지 않게 하면서 모든 것을 보는, 강렬한 차분함에 휩싸인 채로, 지켜보기는 하되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나를 보이게 하지 않음으로써 안전을 모색하는 것, 자신을 보이지 않게 하는 것은 충분히 만들 수 있는 습관이다, 그런데 인생에서는 그게 잘되지 않는다. 내 말이 맞으니 믿으시길. 사람들, 사랑, 마음,, 직장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하지만 새 매와 첫 며칠을 보내며 나를 사라지게 하는 것은 가장 멋진 일이다.-p115

 

 

 

옛 매잡이들은 이렇게 매가 사람을 개의치 않게 만드는 것을 와칭(지켜보기)’이라고 했다. 이것은 사색적이고 신중하고 진중하며 용기를 주는, 익숙한 마음 상태였다. 몇 달 만에 처음으로 삶에 목적이 생겼다. 나는 다른 모든 게 시작될 수 있는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매가 고개를 숙이고 먹기 시작했다. 기다림, 지켜보기, 매와 앉아 있으니, 꼭 노력하지 않고도 몇 시간 동안 숨을 멈추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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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은 미래보다 새롭다 - 유하 산문집, 개정증보판
유하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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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을 볼 때 무한공감을 느끼는 책이 있다. 그 공감의 의미는 내 경험과 비추었을 때, 뇌리에서 늘 머뭇거리다가 떠나갔던 이미지를 행간에서 발견하게 되었을 때 커져만 간다. 유하의 <추억은 미래보다 새롭다>는 다른 책과 달리 정말 오래 두고두고 읽었다. 이 책은 70년대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온 이들의 무한공감을 불러 일으켰던 말죽거리 잔혹사의 유하 감독의 산문집으로 저자는 자신을 가리켜 키치 소비자라 한다. 키치라는 정의는 방대하지만 가장 쉽게 풀이하자면 고급문화를 값싸게 대량으로 모방해낸 문화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면 될 것 같다. 대중과 친밀한 예술장르의 총체적 의미를 말하는 키치는 한 세대를 풍미했던 또는 현 자본주의 사회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의미의 문화 산업의 포괄적 개념이기도 하다.

 

저자는 키치 소비자 답게 70년대 유년시절과 청소년기를 지나오면서 함께 했던 대중문화를 통해 70년대적 감수성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계몽사의 세계명작 동화와 만화책, 흑백 티비, 동시상영관 그리고 세운상가, 욕망의 찌꺼기와 페기물로 붐비는 쓰레기통 같은 압구정동 문화를 저자는 갑자기 쏟아져 나온 대중문화에 비판적이지도 못한 채 그렇다고 지금의 신세대들처럼 영혼과 육체가 완벽하게 대중문화와 합일되는 것도 아닌, 엉거주춤한 상태로 흘려보냈던 70년대의 감수성을 추억해 낸다.

 

추억은 희미한아련함이다. 그 희미함에 나의 그리움을 보태다 보면 기억은 윤색되고 각색되어 가면서 나만의 액체성 풍경이 된다. 세월이라는 거역할 수 없는 시간의 흐름 속에 살아있는 추억이라는 이미지는 고정된 풍경이 아니라 그것을 기억하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변화는 유동하는 풍경이다. 그 추억에 반추되는 현재의 나는 언제나 그리움으로 달음박질하는 그 순간들을 끌어 안으며 살아간다. 그랬다. 나는 언제나 그리움이 달음박질 하는 의식의 편린으로 이 시절을 버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눈 오는 날 명동 성당 앞을 가득 메웠던 시위현장과 홍대앞에서 매일 젊음을 불사르기 위해 분기탱천하였던 방황의 기억들과 올림픽이 열리던 해, 시청 앞에서 목청 터져라 외쳤던 '대한민국'은 내 영혼을 살라먹던 청춘의 초상들이었다. 외로움의 깊은 뿌리를 건드리는 것처럼 그 시절들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저자가  명명하는 70년대의 이소룡과 대중문화 1세대는 시차는 조금 있지만, 그 시대의 대중문화를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은 거의 비슷한 시점이기 때문이었다. 지금의 세대들은 미디어 세대들이지만  급속도로 확산되기 시작한 대중문화의 거대한 스펙터클에 감염되는 것은 70년대와 80년대를 살아온 우리들에게는 격차가 그리 크지 않은 탓이다. 중국 무협영화와 이소령, 라디오 전성 문화, 급격한 변화에 민감하였던  시인들의 텍스트에 고스란히 담겨있는 도시의 욕망들이  감독이자 시인인 유하의 시선으로 다시 읽혀진다. 

 

유하 시인의 [세운상가 키드의 사랑]을 워낙 좋아한다. 그 감성코드와 그리움의 물결들, 시를 쓰기 위해 고투하는 시간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길들을 추억하며 그 위에 다시 마음의 길을 놓는 시인의 노래가 밀물듯이 가슴에 들어온다. 누구나 자신의 추억 속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순간들을 부유하며 추억하는 순간들은 과거로의 회귀를 허용한다. 희미한 아련함 너머로 추억들을 짜집기 하다보면 쏟아져 나오는 그리움들, 우리는 누구도 그 그리움에 자유롭지 못하다. 유하의 책을 차마 덮지 못했던 이유였다.

 

삶이란 그 영혼의 백지도 위에 갖가지 색깔을 입혀가는 과정 그 색깔을 얻기 위해서는 많은 굴욕과 비굴이 필요한 것이다. 돌이킬 수 없이 살아온 지금, 그 영혼의 백지도 상태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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