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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의 기록 - 버나드 루이스의 생과 중동의 역사
버나드 루이스.분치 엘리스 처칠 지음, 서정민 옮김 / 시공사 / 2015년 6월
평점 :
중동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알면 알수록 신비한 곳이다. 나에게 중동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것은 <예루살렘 전기/시공사>를 만나고 나서였다. 유대인이 저술한 예루살렘의 역사를 보면서 그동안 서구역사에만 치중했던 세계사를 중동의 시각으로 바라보게 해 주었던 책이다. 제목만 보고 <예루살렘 전기>와 같은 맥락일 거라는 생각을 했는데 이 책 《100년의 기록》(원제: Notes on a Century) 은 학자의 관점에서 중동의 역사를 다루었다. 영국인 최초의 중동학자인 버나드 루이스는 아흔 다섯의 나이에 학자로서 근 100년의 삶을 이 책에 담아낸 필생의 역작을 남겼다.
영국에서 태어나 인생의 대부분을 영국과 미국에서 보내며 저자는 중동을 안에서부터 이해하는 시각으로 이 책을 집필했다고 밝히며 2차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되면서 터키어 뿐만 아니라 알바니아어를 터득하여 문서 해독가로 일하던 경험을 들려주기도 하고 전쟁국가들의 긴박한 상황들을 설명해주기도 한다. 중동의 역사전문가로 터키와 이집트의 대통령, 파키스탄 장성들과의 교류도 하며 이슬람학세계총회에 참석하는 등 다양한 활동들을 통해 이슬람 국가와 무슬림 성직자들과의 에피소드들이 저자의 삶의 궤적과 함께 한다.
무엇보다 의미있었던 것은 저자가 역사학자로서 가졌던 가치관이 시대와 함께 행간에 도드라지는데 이는 자신의 삶을 반추하면서 역사적 사건에 주목하여, 역사는 현재라는 시간에 충실함으로 공정성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저자는 중동의 100년을 자신의 삶과 함께 엮음으로 역사가들이 자칫 범하기 쉬운 오류인 '개인의 관점'을 배제하려 애쓴 흔적들이 곳곳에서 느껴졌고, 역사학자로서 가져야할 기본 자세를 가장 가치있게 여겼다.
역사학자의 책임과 의무는 자신이 확인한 진실만을 말하는 것이다. 진실 외에 다른 어떤 주장을 내놓아서는 안 된다. 자신이 선전가가 되거나 선전가들에게 이용당하게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 역사는 누군가에 의해 정치적으로 쉽게 왜곡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유혹인 존재하는데, 이는 역사학자가 직면할 수 있는 큰 위험이다.-p191
"위대한 역사학자는 자신의 분야에 새로운 불확실성을 추가해 더 풍요롭게 만드는 사람이다.“
정직한 역사 연구에는 두 가지 조건이 있다.
첫째, 가설은 분명한 목적과 인식을 가진 것이어야 한다.
둘째. 학자는 증거에 따라 자신의 가설을 어떤 단계에서라도 수정하거나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
역사학자도 인간이다. 따라서 다른 사람들처럼 실수도 하고 실패할 수도 있다. 특정 이념과 권력에 대한 충성심과 편견이 학자의 역사 인식과 표현을 왜곡할 수 있다. -p199
역사가 사실인지 묻는다는 것은 역사가 때때로 거짓일 수 있음을 의미한다. 왜 거짓일 수 있을까? 왜 그리고 어떻게 역사를 날조하는 것일까? 이 질문은 모든 사회의 역사가들이 직면한 큰 문제들 중 하나다. -p202
역사의 주요 목적과 용도 중 하나는 정당화다. 과거를 이용하여 현재를 정당화하는 것이다.-p203
역사가가 미래를 예측해줄 거라 기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역사가가 할 수 있고 또 반드시 해야 하는 것들도 있다. 역사가는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 현재까지 진행되어온 것을 관찰하고 발생하는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어떤 상황이 발생할 수 있을지 그 가능성들을 제시할 수 있다. 가까운 미래가 아니라 먼 미래의 역사적 흐름을 예견하는 것이다. 그러나 다양한 목적과 동기에 의해 때로 역사가들이 현재에 집착하는 경우가 생기곤 한다. 역사적 흐름을 기록하고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그 흐름에 영향을 주거나 혹은 방향을 바꾸고자 하는 정치적 목적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p214
기독교와 이슴람 두 종교의 공통적 과제는 다름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나는 옳고, 당신을 틀렸소. 지옥에나 가시오.”
나는 이 책이 역사학자로서 평생 살아온 연륜에서 묻어나는 역사관점의 지혜로 읽혀졌다. 무엇보다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은 공정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는 집필된 저자의 관점에 따라 편향되어 있다. 역사는 공정성을 가져야 하며 무엇보다 정치성을 배제해야 한다. 세계대전을 경험하고 영국에서 중동학자로 살아오면서 중립적인 시각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역사학자로서의 사명감이 한몫 했던 것 같다. 현재를 살면서 역사에 대해 얼마나 공정한 시각을 가지고 있는지를 생각해 볼 수 있었던 면에서 배울 점이 많았던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