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블 이야기
헬렌 맥도널드 지음, 공경희 옮김 / 판미동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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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뜻과 관계없이 갑자기 그것을 빼앗겼을 때, 더구나 그것이 복구할 수 없는 상실일때의 절망감은 직접 경험하지 않았다 해도 공감하거나 이해되지 않던가. 바로 이것이 헬렌과 참매 메이블의 이야기가 나와 우리의 이야기가 될 수 있는 지점이다. -p6

   

상실이 깊을 때 누군가는 그 상처를 마주하여 상실을 벗어나려 하지만 누군가는 그 상처를 피해 도망가려 하기도 한다. 그 도망이라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내 안으로의 도망이며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언젠가는 닿아야하는 인생길이다. 상실의 아픔을 마주하거나 도망가거나 그것은 둘 다 선택의 갈림길이지만, 결국 삶이라는 외길에서 만나게 되는 것이 인생이다. 살아가면서 누구나 한번 쯤은 이런 상실의 고통을 만난다.

   

부모에게 학대 당하며 성장기를 보냈고, 학교생활에서는 왕따였고, 영어 교사가 되었지만, 결국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한 남자가 있다. 그는 동성애자였고, 세상에서부터 받은 소외감과 상실을 야생동물을 키우며 메워나갔다. 화이트는 매' 고스'를 키우며 매훈련 지침서라 할 수 있는 [참매]라는 책을 썼는데, 이 책은 훗날 헬렌의 메이블이야기가 탄생할 수 있는 정신적 지주가 된다. 헬렌은 화이트의 책을 통해 메이블이라는 매를 길들일 수 있었고, 화이트가 살아가는 방식을 상상하며 자시의 삶을 응시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이 책에는 메이블과 헬렌, 그 사이에 화이트가 존재한다.

   

사진작가였던 아버지 덕에 늘 자연과 벗하며 성장하였던 헬렌은 갑작스런 아버지의 죽음으로 큰 충격을 받는다.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의 크기에 짓눌려 세상으로부터 담을 높이 쌓아올리고 자기방에 숨어 버린 헬렌은 아버지를 따라 매를 보러간 기억을 더듬으며 매를 길들이는 것으로 상실의 구멍을 메우려 한다. 그녀는 화이트가 자신의 매 고스를 길들이면서 쓴 자전적인 책을 통해 자신의 매메이블을 관찰하기 시작하는데, 자연학자였던 그녀는 인내와 정성에 학자의 고집스러운 관찰력이 합쳐져 매와 인간의 합일을 보여주고 있다. 그 위에 평생을 애정 결핍에 시달려 상처로 얼룩진 삶을 살았던 화이트가 매의 이야기가 겹치면서 '교감'이라는 의미를 반추하게 한다.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던 화이트는 매와의 관계도 틀어지지만, 헬렌은 아버지의 사랑을 메이블에게 답습하는 것으로 메이블과 자신을 일치해가는 사랑의 모습을 보여준다. 화이트의 매 훈육법은 참고하지만 헬렌만의 메이블 길들이기가 서로 다르게 전개 되어 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

   

나는 동물을 키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키우던 강아지가 죽고 나서 동물을 나만 좋다고 가두워 키운다는 것이 참 잔인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러니 저자가 야생매를 길들이려 한다는 것자체가 그다지 좋은 시도 같아 보이진 않았다. 게다가 가장 길들이기 힘들다는 맹수인 야생매를 키운다는 사실을 처음에는 놀랍고 이기적인 발상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헬렌의 메이블 이야기는 동물을 길들인다는 의미와는 많이 달랐다. 헬렌은 자신을 사라지게 하고, 매의 눈으로 세상을 보려 했고, 매처럼 세상을 이해하고 싶어했다. 사회에서 소외된 동성애자의 눈으로 화이트를 이해하려 했고, 화이트의 매 길들이기 실패를 인간적으로 이해했다. 그런 이해의 과정들이 세상으로부터 높은 담을 쌓았던 헬렌의 마음을 활짝 열어주며 다시 세상을 향해 설 수 있도록 했다. 그렇기에 이 책은 하나의 성장소설이다. 자신을 메이블화 시켜가면서까지 자신을 매에 투사하여 상처로부터 도망가려 했던 헬렌은 그렇게 세상을 다시 마주한다. 상실로 시작하지만, 그 상실이 아름다운 한 편의 서사시라는 것을 알게 되는 책이다.

 

 

내 모습을 보이지 않게 하면서 모든 것을 보는, 강렬한 차분함에 휩싸인 채로, 지켜보기는 하되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나를 보이게 하지 않음으로써 안전을 모색하는 것, 자신을 보이지 않게 하는 것은 충분히 만들 수 있는 습관이다, 그런데 인생에서는 그게 잘되지 않는다. 내 말이 맞으니 믿으시길. 사람들, 사랑, 마음,, 직장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하지만 새 매와 첫 며칠을 보내며 나를 사라지게 하는 것은 가장 멋진 일이다.-p115

 

 

 

옛 매잡이들은 이렇게 매가 사람을 개의치 않게 만드는 것을 와칭(지켜보기)’이라고 했다. 이것은 사색적이고 신중하고 진중하며 용기를 주는, 익숙한 마음 상태였다. 몇 달 만에 처음으로 삶에 목적이 생겼다. 나는 다른 모든 게 시작될 수 있는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매가 고개를 숙이고 먹기 시작했다. 기다림, 지켜보기, 매와 앉아 있으니, 꼭 노력하지 않고도 몇 시간 동안 숨을 멈추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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