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단식 - 머리를 쓰지 않고 발로 뛰지 않는 IT 중독을 벗어나라
엔도 이사오 & 야마모토 다카아키 지음, 김정환 옮김 / 와이즈베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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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불과 몇 년전만 해도 컴맹으로 살았었다. 그러나 최근 블로그와 트위터 , 페이스북을 이용하다보니 점점 IT 중독에 노출이 되어있는 기분이 들고 있다. 아이들의 교육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아 과감하게 텔레비전을 없애고 집에서는 절대 인터넷을 하지 않는 것이 우리 가족의 지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마트폰의 등장과 그에 따른 편리성은 인터넷 사용을 부추기고 페이스북으로 퍼나르는 실시간 정보 공유는 수십개의 댓글에 공감과 좋아요에 반하여 자꾸 들여다 보게 하는 마력이 있다. 개인적으로 컴과 친하지 않지만, 최근 페이스북에 빠져 있는 남편은 자신의 글에 공감해주는 재미에 빠져 있다. 어느 날은 페이스북을 하다가 날을 새는 경우도 있었다.

 

『디지털 단식』의 저자 엔도 이사오교수는 IT 시스템을 활용하는 기업가와 직장인을 대상으로 디지털 중독에 관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저자는 디지털 중독이 인간의 본능에 접근하여 뿌리를 내렸기 때문에 디지털 극복은 본능과 싸우는 힘겨운 싸움이라고 말한다. 이런 IT중독은 인간의 심층 심리에 각인되어 있는, 생물의 근원적인 본능이라고도 할 수 있는 욕구에서 기인한다. 예를 들자면,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 죄를 짓게 된 원인은 이런 인간의 “더 많은 것을 알고 싶다.”는 지식의 욕구이자 본능에 비롯된 것이다.  아담과 하와가 지식의 욕구로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이후 인류사에서 인간은 지능에 의존하여 생존하고 번영 해왔다. 높은 지능, 지식의 추구로 멸망하지 않고 살아남았다. 그리고 이런 지능을 발휘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정보’와 ‘대화’라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정보라는 입력이 있어야 비로소 지능이 발휘되며, 대화를 통해 개개의 인간이 지닌 지능이 연동·연계되고 융합되면 지능이 증폭된다고 한다.

 

디지털이 발달됨에 따라 ‘정보’만이 비대해지게 되고 인간의 행동을 위한 ‘정보여야 하는데, ’정보‘가 비대해짐에 따라 가장 중요한 ’행동‘에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고 그 결과로 ’행동‘하는 힘이 약해지게 되었다. 오직 ’정보‘만이 그 목적을 망각하고 폭주하기 시작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지금 이 시대 ‘1인 1컴퓨터’가 도래하며 컴퓨터 업계에서 외치던 실질적인 효과와 효용은 이루어진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변화하고 진보하는 것과 ‘결과’를 내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라는 사실이다. 무언가 커다란 변화와 진보가 있었다면, 반대로 그러한 변화로 인해 얻지 못한 결과와 성과, 나아가서는 잃어버린 것에도 주목해야 한다. 결과론적으로 기업의 디지털화는 정보는 없이 행동은 없는 , 기업의 경쟁력을 갉아먹고 있음을 지적한다.

 

저자는 IT중독이 무서운 점은 상당히 악화되어도 자각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데에 있다고 한다. 지나친 것은 모자란 것만 못한다는 말도 있듯이 무엇이든지 넘치면 탈이 나게 되어있다. 지나치게 많이 먹으면 비만을 불러와 각종 병을 유발하듯이 술이 지나치면 알콜중독자가 되듯이 IT중독은 이제 위험수위에 와 있다. 아마도 SNS를 활용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SNS를 적절히 활용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은연중의 우리의 대부분의 삶이 IT에 속박되어 무의식중에 많은 시간을 빼앗기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디지털 단식』에서는 인간의 편리함으로 사용하는 도구에 지나친 의존을 버리고 현명하게 활용을 할 줄 알아야 디지털 시대의 진정한 ‘주역’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사회에서는 컴퓨터와 게임중독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사건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 디지털 단식을 통해 조금 더 현명해질 필요가 있음을 깨닫는다. 아무리 디지털 시대라 해도 사람이 중심인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진리이다. 저자가 위에 말하였듯이 정보와 대화가 융합될 때 지능은 발달한다고 한다. 아무리 지식이 뛰어나다 해도 그것을 나눌 수 있는 대화나 행동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모든 것은 백해무익하다. IT가 삶의 모든 중심이 되어가고 있는 지금 , 여러가지 면에서 아주 유익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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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타라 - 하
후지타니 오사무 지음, 이은주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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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라는 바다를 항해하는 것은 엄청난 끈기와 인내를 필요로 하며 표류하는 배가 되지 않기 위해 끝없는 사투를 벌여야 하는, 그래서 인생은 하나의 배로 보는지도 모르겠다. 인생의 배에는 한번 오르고 나면 내릴 수 없으며 연습할 수도 없고 몇 번씩 반복할 수도 없는 일회성의 시간속의 무정한 배. 시간이라는 무정한 배에 승선하고 나서야 돌아볼 수 있는‘나’의 모습은 이미 현재의 모습인 ‘나’가 아닌 과거형의 ‘나’이다. 지난날의 내 모습을 지금의 내 모습과 반추해 보고 나서야 과거를 돌이킬 수 없음을 깨닫고는 부끄러움에 견딜수 없게 될 때가, 그럴때가 있다....<1권 리뷰 첫머리 >...

 

 

독일에서 돌아온 사토루, 막연하게나마 불안을 감지하던 사토루는 미나미의 행방불명으로 미나미의 집까지 찾아가지만 부모님들께 제지당하고 따가운 눈총을 받은 채 돌아와야 했다. 그러던 중 미나미로부터 현재 임신 중이며 곧 결혼한다는 말을 전해 듣는다. 학교도 물론 자퇴하고 ... 독일로 떠나기전 조금씩 느껴지던 불안감의 실체는 곧 미나미의 임신으로 정체를 드러내고 자신에게 남아있는 아름다움 시절도 순식간에 사라진다. 함께 연주를 하고 가끔 편지를 주고 받으며 미나미와 미래를 계획했던 일들이 물거품이 되자, 사토루는 살인을 꿈꾼다. 그러나 살인하고 싶다는 말을 가나쿠보 선생님께 털어놓자 선생님은 소크라테스의 이야기를 빗대어 살인의 비정당성을 말해준다. 무언가에게 화풀이를 해야만 했던 사토루는 결국 선생님에게 빗나간 화살을 쏘게 된다. 그것은 젊은 날의 혈기로 설명되어질 수 있는 행위일까?

 

 

어이없이 학교에서 해고당하게 된 가나쿠보 선생님은 사토루에 대한 아무 원망도 해명도 하지 않은 채 소크라테스의 마지막을 학생들에게 들려주는 것으로 학교를 떠난다. (아마 사약을 받은 채 죽어야 하는 기분과 같아서 인지도 , 소크라테스도 도망갈 수 있음에도 도망가지 않은 이유처럼, 선생님도 변명할 여지가 있음에도 변명하지 않은 채 소크라테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으로 보아 자신을 소크라테스와 동일시 한 것으로 보인다) 단지 <안다>는 것의 진정한 뜻을 모른 채 안다는 척을 하는 것은 장식품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 자신을 진정으로 아는 사람은 이세상에 아무도 없다는 말을 남긴 소크라테스와 인생자체가 간단하게 판단할 수 없는 것 투성이라는 것, 선을 선이라고 할 수 없고, 악을 악이라고 할 수 없을 때가 많은 것이 인생이라는 말과 “우리 앞에 어느 쪽에 더 좋은 것이 기다리고 있는지, 신 외에 누구도 분명히 알지 못할 것입니다. ” 말을 남긴채 학교를 떠난다.“

 

그러나 선생님이 들려준 마지막 말은 사토루의 전생을 지배한다. 자신에게 아무 원망도 하지 않았던 선생님이 들려주신 소크라테스의 이야기처럼 자신이 이제껏 음악을 아는 척 한 것에 불과하였음을, 언제나 “나” 를 알수 없었다는 것을 , 인생은 언제나 출렁이고 있는 바다라는 것을 , 너무 늦게 깨달았는지도 모르겠다. 선생님이 떠나고 나서 음악을 더 이상 할 수 없다는 것을...

바흐든 헨델이든 하이든이든 모두 먹고 살기 위해 음악을 했으나, 자신에게는 그런 간절함이 없었다는 것을 20년이 지난 어른이 되어서야 깨달았다.

 

늘 가장조의 버금딸림화음과 멘델스존의 음악이 있던 세계에서 별세계인 일반세계에 적응하는 동안 사토루는 안개 속을 걷는 기분이었다고 한다. 이후 온전한 어른이 되어서도 별반 다르지 않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선생님께 용서를 빌기 위해 찾아갔을 때 들려주신 이야기처럼

 

“배를 타면 흔들린다. 파도에 흔들리기 때문에 뱃멀미를 한다. 뱃멀미는 언젠가 없어질 것이다. 그렇지만 흔들림은 언제까지나 계속된다. 뱃멀미가 사라졌을 때 배가 더 이상 흔들이지 않는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어른들의 거짓말이다. 배가 계속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누가 뭐라고 해도 잊어서는 안 된다.”

 

2권은 철학적인 사색이 대부분이다.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사랑의 아픔을 통해 성숙되어 가는 과정을 음악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자아를 깨우쳐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마치 데미안에서 싱클레어가 발견한 쪽지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를 연상케 한다. 저자의 자전적 소설이라 음악에 대한 애정과 슬픔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어 더 애틋하게 다가오는 음악 청춘 소설이다. 젊은 날의 자화상을 고스란히 담은『배를 타라』는 인생의 긴 터널속에서 청춘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니체가 철학가들에게 배를 타라고 외쳤듯이, 이 소설은 서툴고 미숙한 청춘들이 알을 깨고 나올 수 있는 용기를 주는 소설이다. 청춘이여 ! 배를 타라 ~우리가 발견해야 할 또 하나의 세계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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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타라 - 상
후지타니 오사무 지음, 이은주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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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지금 우리들이 타고 가는 시간이라 하는 무정한 배

미움을 싣기에는 너무 좁아요. 그리움만 실어요

구름은 바람따라 떠나도 그 하늘 그냥 구르고

인생은 세월따라 떠나도 그마음 그대로 피네

 

패티 김의 노래 중 『인생은 작은 배』라는 노래다. 흔히들 인생을 배에 비유하곤 한다. 인생이라는 바다를 항해하는 것은 엄청난 끈기와 인내를 필요로 하며 표류하는 배가 되지 않기 위해 끝없는 사투를 벌여야 하는, 그래서 인생은 하나의 배로 보는지도 모르겠다. 인생의 배에는 한번 오르고 나면 내릴 수 없으며 연습할 수도 없고 몇 번씩 반복할 수도 없는 일회성의 시간속의 무정한 배.

시간이라는 무정한 배에 승선하고 나서야 돌아볼 수 있는‘나’의 모습은 이미 현재의 모습인 ‘나’가 아닌 과거형의 ‘나’이다. 지난날의 내 모습을 지금의 내 모습과 반추해 보고 나서야 과거를 돌이킬 수 없음을 깨닫고는 부끄러움에 견딜수 없게 될 때가, 그럴때가 있다....

『배를 타라』를 읽으면서 상념에 잠기는 이유가 그런 이유였다. 내가 아닌 시절,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만 같은 ‘나’의 모습을 특별히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아침, 점심, 저녁이 반복되는 일상속에서 웃기도 하고, 조용히 한숨짓는 어른의 삶을 살다가 문득 잃어버리려고 애쓰던 시절의 기억을 상기시키는 과거의 나로 회귀시키는 책이다. 지나치게 조숙하고 지적호기심에 니체와 소크라테스에 심취하여 주변에 시니컬한 반응을 보이는 주인공의 어린 시절속에 투영되는 ‘젊음의 혈기’로 자행되는 방황과 사랑은 어른이 되기 위한 자양분으로 후지타니 오사무의 자전적인 스토리를 담은 소설이다.

 

남들보다 조숙하고 성숙한, 그래서 오만한 사토루. 자신의 우수함을 의심해 본 적이 없던 사토루는 예술 음악 학교에 떨어지고 삼류학교에 들어가게 되면서 자신이 그다지 뛰어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삼류학교이지만 학교이사장인 할아버지의 후광덕인지는 모르나 나름 친구들과 적응도 잘하고 음악적인 교류를 나누기도 하며, 평온한 나날을 보내고 있던 중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가 꿈인 미나미에게 사랑에 빠진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 건너편 쪽을 마주볼 수 있는 장소에서 그녀가 내려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그녀가 내려오자마자 하행선 전철이 들어와, 나를 쳐다본 그녀를 금방 볼 수 없게 되었다. 순간, 내가 사랑에 빠진 것을 확실히 알았다. -p84

 

멘델스존의 피아노 트리오를 협주하면서 사랑하는 마음은 깊어가지만, 사토루가 착각하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여자를 현실이 아닌 ‘로맨틱한 사랑의 괴로움’으로만 느꼈다는 것이다. 한 번도 타인을 배려한 적이 없었던 사토루로서는 가장 최선으로 미나미를 사랑하였다. 첼로스트로서 단기로 독일 유학을 가게 되지만 가난해서 독일 단기유학에 제외되었던 미나미는 오히려 상심하게 되고, 사토루가 독일에서 돌아 왔을 때는 이미 모든 것이 변해있었다. (이후 내용은 2권에서 ^^)

 

 

꿈이 없는 인생을 배에 키가 없는 것과도 같다라는 말을 한다. 배를 항해하다 보면 궂은 날씨로 고생도 하고 암초에 부딪히기도 한다. 그리고 그 위기를 잘 이겨내고 나면 한동안은 순탄한 항해가 기다리고 있다. 주인공 사토루를 통해 서투른 사랑과 미완의 꿈으로 어설픈 모습을 살고 있는 사토루의 모습은 우리의 청춘의 모습과도 닮아있다. 인생이란 것이 끊임없는 연습도 가능하고 다시 고칠 수 있는 연습장 같으면 좋으련만, 배를 타고 나서야 내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인생이다. 그리고 그 마지막 인생의 성적표는 죽음이라는 종착역에서나 가능하다. 저자 오사무 역시 인생이라는 배에서 늘 트라우마로 자리잡고 있던 가슴 한 켠의 짐을 소설로 풀어놓음으로서 자신을 반추하는 모습이다. 그래서인지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저자의 삶에 고스란히 투영되어진 미완의 모습을 통해 우리의 어린 시절을 반추해보며 과거로 회귀되는 느낌을 받는다. 어쩌면 서툴러서 더 아름다울런지 모를 청춘들을 위한 소설이다.

 

 

사랑의 아픔이니 사랑의 슬픔이라는 말은 소설이나 영화는 물론이고 텔리비전의 멜로드라마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알아주지 않으면 남자들은 대부분 울거나 한숨을 쉬거나 일기를 쓰거나 벽을 치거나 빗속에서 절규하거나 했다. 소설은 그런 남자들을 아름답게 그리고, 영화는 그들을 슬픈 음악으로 포장한다. 하지만 실제로 자신이 그런 처지가 되면 아무리 좋게 보려고 해도 그 상황에서는 아름다움이란 눈곱만큼도 찾을 수 없다.-p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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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부학자 - <그레이 해부학>의 숨겨진 미스터리
빌 헤이스 지음, 박중서 옮김, 박경한 감수 / 사이언스북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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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부학자』제목만 보고 거부감이 들었었다. 해부와 의학서적이 주는 무거움이었다. 첫 서문에 저자의 의도를 알게 되고 저자의 약력을 보고 오히려 흥미롭게 읽은 책이다. 제목만봐서는 저자가 의학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을 거라 짐작하였는데 저자 빌 헤이스는 의학의 의자도 모르는 그저 작가일 뿐이었다. 전업 작가이자 샌프란시스코 대학교에서 글쓰기를 강의하고 있는 빌 헤이스는 어떻게 전혀 상관없는 『해부학자』를 쓰게 되었을까? 저술로는 『불면증과의 동침 : 어느 불면증 환자의 기억(Sleep Demons: An Imsomniac's Memoir)』(2001년), 피를 주제로 한 『5리터 : 피의 역사 혹은 피의 개인사(Five Quarts: A Personal and Natural History of Blood)』(2005년), 19세기의 해부학자이자 현대 해부학의 기초를 닦은 헨리 그레이의 평전이자 해부학의 역사를 추적한 과학 논픽션 『해부학자 : 진짜 그레이 아나토미 이야기((伊)The Anatomist: A True Story of Gray's Anatomy(伊))』(2007년)등이 있다.

저자 빌 헤이스는 어느 날 서점에서 『그레이 해부학(Gray’s Anatomy)』를 구입하고 헨리 그레이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플라톤의 <국가>와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이 한 권씩은 갖고 있어야 할" 책이며 , 집필 시 참고용으로, 인체 부위를 확인하기 위해 종종 들추어 보았던 책이었던 『그레이 해부학(Gray’s Anatomy)을 보다가 어느 날 머리를 스친, "도대체 이 책을 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라는 궁금증이 바로 <해부학자>의 출발점이 되었다.그러나 헨리 그레이는 그야말로 수수께끼의 해부학자로 그의 행적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 저자의 집필의도를 더욱 불태운 것으로 보인다. 『그레이 해부학(Gray’s Anatomy)』은 의학 학계와 교육계에서 탁월한 저서라는 호평을 받았고 중쇄를 출간 직후 바로 하고, 미국판이 이듬해인 1859년에 출간되는 등 판매에서도 호조를 보였다. 연구와 출판 모두에서 명성을 떨치며 자신의 경력을 탄탄하게 구축해 가던 이 젊은 해부학자는 천연두에 걸린 조카를 간병하 다 본인도 천연두에 걸려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고 만다. 의학자로서, 해부학자로서, 교육자로서, 저술가로서 정열적으로 활동하던 헨리 그레이였지만 그와 관련된 자료는 현재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다. 그의 존재는 몇장의 흐릿한 사진과, 그가 세인트 조지 병원 해부학 박물관 학예관 시절 만든 몇 개의 해부학 표본, 그리고 그의 사망 진단서와 묘비만이 남아 있다. 일기나 그가 동료들과 주고받은 서한은 물론이고 그가 죽기 직전까지 준비하고 있던 『그레이 해부학』 개정판의 원고와 『그레이 해부학』을 화려하게 장식했던 삽화들의 목판 원고마저도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다.

 

 

저자는 프롤로그편에『그레이 해부학』을 구입한 이유는 그림때문이라고 한다. 아름다운 삽화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고 말하는데 삽화가의 이름은 헨리 그레이만큼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아버지로부터 미술 재능을, 어머니로부터 화가 '반 다이크'의 이름을 물려받은 빅토리아 시대의 인물 헨리 밴다이크 카터(Henry Vandyke Carter) 는 헨리 그레이의 후배로서 세인트 조지 병원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의사 자격을 취득하였다. 의사 자격 취득을 위한 학업의 시기인 1852년부터 1856년까지 헨리 그레이와의 공동 작업을 병행하며 『그레이 해부학』의 삽화를 그리게 된다. 1845년 5월 22일에 시작되는 그야말로 카터의 깨알 같은 일기, 그리고 누이인 릴리와 주고받은 편지 등 '개인 문서'였다. 런던에 있는 웰컴 도서관이 카터의 기록을 보관하고 있음을 알게 된 저자 빌 헤이스는, 마이크로필름으로 된 자료를 전해 받는다. 카터가 깨알같이 써놓은 자기만의 암호로 적어 놓은 일기를 마이크로필름으로 한 장 한 장 읽어 가며, 『그레이 해부학』의 탄생 비화를 추적하는 동시에, 저자는 해부학 실습 과정을 청강해 실제로 인체 해부를 학습한다. 1년 가까이 해부학 실습을 하며 실제로 인체의 이곳저곳을 직접 해부하고 관찰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자 그는 헨리 그레이와 헨리 밴다이크 카터가 어떤 생각을 하며 책을 쓰고, 그림을 그렸는지를 무려 150년 전에 죽은 사람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해부학을 개괄하고 있다. 해부 절차며, 해부학적 구조는 물론이고, 해부학의 역사에 이르기까지 해부학의 전반을 다루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은 해부학이라는 학문에 쉬운 접근까지 용이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저자가 처음 집필목적으로 삼았던 헨리 그레이의 생애를 알 수는 없었다. 다만, 헨리 벤타이크 카터의 일기를 통하여 헨리의 이야기를 잠시 들을 수 있었으며, 이 책의 가치는 오히려 다른 곳에 있다. 처음 저자가 시체를 보고 거부감과 토할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다고 한다. 그러나 인체를 해부하면서 감정의 변화는 내가 이 책을 보고 느끼는 변화와 똑같았다. 해부학에 대한 첫 거부감에서 시작되어 나중에는 책의 매력에 빠져 읽은 것 같다. 시체를 처음 본 순간 혐오스러움에서 빠져있다가 인체를 해부하게 되면서 그 안에 있는 모든 장기들을 아름답게 바라보게 되는 변화처럼 말이다. 카터가 “나는 단순히 시체만이 아니라 죽음에도 매료되어 있다. ”라고 말하듯이 죽음으로 인해 우리의 삶이 더 아름다울 수 있다는 의미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누군가를 잃어 보고 나서야 비로소 죽음에 관해 배울 수 있는 것이다."

 

책의 마지막에 저자가 “우리는 육안 해부학을 통해 생명을, 인간의 생명을 배운다.” 로 끝맺듯이 죽음을 이해하는 것, 그것이 생명의 시작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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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이 든 당신
김하인 지음 / 느낌이있는책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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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드리 나무가 드리워진 뒷동산에서 반딪불이 반짝이는 여름밤에 동물원의 “널 사랑하겠어” 를 기타로 연주해 주던 그 사람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세월이 흘러 그 사람은 머리에 흰머리가 희끗희끗하고 주름진 얼굴로 바로 옆에 잠이 들었지만, 그때의 노래를 이제는 불러주지 않는다. 그래도 그때의 진심은 이후 사랑한다는 말보다도 더 진한 잔향으로 가슴에 남아 세월을 견디게 하는 추억이 되었다. 사랑의 열정도 낭만도 없지만, 세월과 함께 흘러온 시간 속에 사랑은 나의 전부를 걸어도 좋을 만한 뿌리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뿌리는 다른 두 개의 나무가 줄기로 뻗어져 나와 하나가 되는 연리지(連理枝)처럼, 사랑이란 그렇게 서로의 가슴에 사랑이라는 뿌리를 키우고 줄기로 만나게 되는 사람이 태어나 자라서 이루어야 할 숙명을 보여주는지도 모르겠다.

 

두 사람이 사람으로 하나가 되고 사는 동안 서로 헤어지지 않고 죽는 날까지 함께 보듬고 사는 것이고 보면 사람의 삶이 연리목과 참 많이도 닮았다 싶었습니다. p45

 

눈이 맑고 이쁜 귀엽고 앙증맞은 이목구비에 햇살이 스민 듯한 표정의 선영을 본 순간 첫눈에 홀딱 반한 석민,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던 석민은 대학졸업 후 직장을 다니다가 홀로 계신 엄마와 함께 살기 위해 진부에 내려와 집배원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삶은 예측하기 힘든 것이라고 했듯이 정규사원이 되자마자 엄마가 세상을 뜨셨다. 엄마는 떠나고 집배원만 남은 석민의 삶속에 선영을 보고 첫눈에 반하게 된 것이다. 집배원인 자신과 초등학교 선생님 선영에게 쉽게 다가갈 수 없었던 석민은 길고 긴 편지를 쓴다. 선영을 단 하루라도 만날 수 있다면 원이 없겠노라고 온 마음을 다해 쓴 편지를 받은 선영은 석민이 보여주는 진심어린 고백을 읽고 석민을 만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삶은 그렇게 녹록지 않듯이, 둘의 결혼은 부모님의 반대를 비롯하여 동생 희영의 반대를 극복해야 했다. 불행이 거기에서 끝났으면 좋으련만 어느 날 가출한 아이를 찾으러 한밤중에 나갔던 선영이 크게 다쳐 의식불명이 된다. 그리고 선영의 뱃속엔 아이가 있었다. 생명과 축복을 받아야할 아기 앞에서 석민은 죽음의 어두운 그림자를 느끼며 암울한 탄식만을 내뱉을 뿐이다.

 

눈물이 대롱대롱 달려있다가 결국엔 후두둑 떨어진다. 사랑과 기적을 노래하기에는 너무 힘든 세상이라고 누가 그랬던 것 같다. 희망을 노래하기에는 절망이 너무 깊다고 누가 그랬던 것 같다. 그러나 사랑과 기적을 만드는 사람들은 여전이 존재한다. 사랑에게서 나와서 , 사랑으로 살다가, 끝내 사랑의 품에 안기는 것이 인생이라고 차동엽 신부님이 말씀하셨듯이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는 시대를 견디게 해주는 것은 사랑밖에 없음을 다시 기억하게 한다. 문득 잠이 든 당신의 주름진 얼굴 사이로 잊혔던 사랑의 기억을 더듬어본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피라미드를 쌓고 공중정원을 만들고 피사의 사탑 같은 불가사의를 이루는 일보다 더 어려운 일이라고 한다. 그토록 무모하고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것이 사랑의 힘이라고 하듯이 사랑과 기적의 이야기 <잠이 든 당신> 같은 사랑을 꿈꾸어본다.

 

사랑하겠다면 당신이 내일 죽을 것처럼, 전 사랑하겠습니다.

당신의 사랑과 사랑하는 당신을 이 땅에서 하늘 끝까지 완전히 사랑해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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