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를 타라 - 상
후지타니 오사무 지음, 이은주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지금 우리들이 타고 가는 시간이라 하는 무정한 배

미움을 싣기에는 너무 좁아요. 그리움만 실어요

구름은 바람따라 떠나도 그 하늘 그냥 구르고

인생은 세월따라 떠나도 그마음 그대로 피네

 

패티 김의 노래 중 『인생은 작은 배』라는 노래다. 흔히들 인생을 배에 비유하곤 한다. 인생이라는 바다를 항해하는 것은 엄청난 끈기와 인내를 필요로 하며 표류하는 배가 되지 않기 위해 끝없는 사투를 벌여야 하는, 그래서 인생은 하나의 배로 보는지도 모르겠다. 인생의 배에는 한번 오르고 나면 내릴 수 없으며 연습할 수도 없고 몇 번씩 반복할 수도 없는 일회성의 시간속의 무정한 배.

시간이라는 무정한 배에 승선하고 나서야 돌아볼 수 있는‘나’의 모습은 이미 현재의 모습인 ‘나’가 아닌 과거형의 ‘나’이다. 지난날의 내 모습을 지금의 내 모습과 반추해 보고 나서야 과거를 돌이킬 수 없음을 깨닫고는 부끄러움에 견딜수 없게 될 때가, 그럴때가 있다....

『배를 타라』를 읽으면서 상념에 잠기는 이유가 그런 이유였다. 내가 아닌 시절,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만 같은 ‘나’의 모습을 특별히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아침, 점심, 저녁이 반복되는 일상속에서 웃기도 하고, 조용히 한숨짓는 어른의 삶을 살다가 문득 잃어버리려고 애쓰던 시절의 기억을 상기시키는 과거의 나로 회귀시키는 책이다. 지나치게 조숙하고 지적호기심에 니체와 소크라테스에 심취하여 주변에 시니컬한 반응을 보이는 주인공의 어린 시절속에 투영되는 ‘젊음의 혈기’로 자행되는 방황과 사랑은 어른이 되기 위한 자양분으로 후지타니 오사무의 자전적인 스토리를 담은 소설이다.

 

남들보다 조숙하고 성숙한, 그래서 오만한 사토루. 자신의 우수함을 의심해 본 적이 없던 사토루는 예술 음악 학교에 떨어지고 삼류학교에 들어가게 되면서 자신이 그다지 뛰어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삼류학교이지만 학교이사장인 할아버지의 후광덕인지는 모르나 나름 친구들과 적응도 잘하고 음악적인 교류를 나누기도 하며, 평온한 나날을 보내고 있던 중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가 꿈인 미나미에게 사랑에 빠진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 건너편 쪽을 마주볼 수 있는 장소에서 그녀가 내려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그녀가 내려오자마자 하행선 전철이 들어와, 나를 쳐다본 그녀를 금방 볼 수 없게 되었다. 순간, 내가 사랑에 빠진 것을 확실히 알았다. -p84

 

멘델스존의 피아노 트리오를 협주하면서 사랑하는 마음은 깊어가지만, 사토루가 착각하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여자를 현실이 아닌 ‘로맨틱한 사랑의 괴로움’으로만 느꼈다는 것이다. 한 번도 타인을 배려한 적이 없었던 사토루로서는 가장 최선으로 미나미를 사랑하였다. 첼로스트로서 단기로 독일 유학을 가게 되지만 가난해서 독일 단기유학에 제외되었던 미나미는 오히려 상심하게 되고, 사토루가 독일에서 돌아 왔을 때는 이미 모든 것이 변해있었다. (이후 내용은 2권에서 ^^)

 

 

꿈이 없는 인생을 배에 키가 없는 것과도 같다라는 말을 한다. 배를 항해하다 보면 궂은 날씨로 고생도 하고 암초에 부딪히기도 한다. 그리고 그 위기를 잘 이겨내고 나면 한동안은 순탄한 항해가 기다리고 있다. 주인공 사토루를 통해 서투른 사랑과 미완의 꿈으로 어설픈 모습을 살고 있는 사토루의 모습은 우리의 청춘의 모습과도 닮아있다. 인생이란 것이 끊임없는 연습도 가능하고 다시 고칠 수 있는 연습장 같으면 좋으련만, 배를 타고 나서야 내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인생이다. 그리고 그 마지막 인생의 성적표는 죽음이라는 종착역에서나 가능하다. 저자 오사무 역시 인생이라는 배에서 늘 트라우마로 자리잡고 있던 가슴 한 켠의 짐을 소설로 풀어놓음으로서 자신을 반추하는 모습이다. 그래서인지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저자의 삶에 고스란히 투영되어진 미완의 모습을 통해 우리의 어린 시절을 반추해보며 과거로 회귀되는 느낌을 받는다. 어쩌면 서툴러서 더 아름다울런지 모를 청춘들을 위한 소설이다.

 

 

사랑의 아픔이니 사랑의 슬픔이라는 말은 소설이나 영화는 물론이고 텔리비전의 멜로드라마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알아주지 않으면 남자들은 대부분 울거나 한숨을 쉬거나 일기를 쓰거나 벽을 치거나 빗속에서 절규하거나 했다. 소설은 그런 남자들을 아름답게 그리고, 영화는 그들을 슬픈 음악으로 포장한다. 하지만 실제로 자신이 그런 처지가 되면 아무리 좋게 보려고 해도 그 상황에서는 아름다움이란 눈곱만큼도 찾을 수 없다.-p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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