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든 당신
김하인 지음 / 느낌이있는책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아름드리 나무가 드리워진 뒷동산에서 반딪불이 반짝이는 여름밤에 동물원의 “널 사랑하겠어” 를 기타로 연주해 주던 그 사람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세월이 흘러 그 사람은 머리에 흰머리가 희끗희끗하고 주름진 얼굴로 바로 옆에 잠이 들었지만, 그때의 노래를 이제는 불러주지 않는다. 그래도 그때의 진심은 이후 사랑한다는 말보다도 더 진한 잔향으로 가슴에 남아 세월을 견디게 하는 추억이 되었다. 사랑의 열정도 낭만도 없지만, 세월과 함께 흘러온 시간 속에 사랑은 나의 전부를 걸어도 좋을 만한 뿌리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뿌리는 다른 두 개의 나무가 줄기로 뻗어져 나와 하나가 되는 연리지(連理枝)처럼, 사랑이란 그렇게 서로의 가슴에 사랑이라는 뿌리를 키우고 줄기로 만나게 되는 사람이 태어나 자라서 이루어야 할 숙명을 보여주는지도 모르겠다.

 

두 사람이 사람으로 하나가 되고 사는 동안 서로 헤어지지 않고 죽는 날까지 함께 보듬고 사는 것이고 보면 사람의 삶이 연리목과 참 많이도 닮았다 싶었습니다. p45

 

눈이 맑고 이쁜 귀엽고 앙증맞은 이목구비에 햇살이 스민 듯한 표정의 선영을 본 순간 첫눈에 홀딱 반한 석민,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던 석민은 대학졸업 후 직장을 다니다가 홀로 계신 엄마와 함께 살기 위해 진부에 내려와 집배원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삶은 예측하기 힘든 것이라고 했듯이 정규사원이 되자마자 엄마가 세상을 뜨셨다. 엄마는 떠나고 집배원만 남은 석민의 삶속에 선영을 보고 첫눈에 반하게 된 것이다. 집배원인 자신과 초등학교 선생님 선영에게 쉽게 다가갈 수 없었던 석민은 길고 긴 편지를 쓴다. 선영을 단 하루라도 만날 수 있다면 원이 없겠노라고 온 마음을 다해 쓴 편지를 받은 선영은 석민이 보여주는 진심어린 고백을 읽고 석민을 만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삶은 그렇게 녹록지 않듯이, 둘의 결혼은 부모님의 반대를 비롯하여 동생 희영의 반대를 극복해야 했다. 불행이 거기에서 끝났으면 좋으련만 어느 날 가출한 아이를 찾으러 한밤중에 나갔던 선영이 크게 다쳐 의식불명이 된다. 그리고 선영의 뱃속엔 아이가 있었다. 생명과 축복을 받아야할 아기 앞에서 석민은 죽음의 어두운 그림자를 느끼며 암울한 탄식만을 내뱉을 뿐이다.

 

눈물이 대롱대롱 달려있다가 결국엔 후두둑 떨어진다. 사랑과 기적을 노래하기에는 너무 힘든 세상이라고 누가 그랬던 것 같다. 희망을 노래하기에는 절망이 너무 깊다고 누가 그랬던 것 같다. 그러나 사랑과 기적을 만드는 사람들은 여전이 존재한다. 사랑에게서 나와서 , 사랑으로 살다가, 끝내 사랑의 품에 안기는 것이 인생이라고 차동엽 신부님이 말씀하셨듯이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는 시대를 견디게 해주는 것은 사랑밖에 없음을 다시 기억하게 한다. 문득 잠이 든 당신의 주름진 얼굴 사이로 잊혔던 사랑의 기억을 더듬어본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피라미드를 쌓고 공중정원을 만들고 피사의 사탑 같은 불가사의를 이루는 일보다 더 어려운 일이라고 한다. 그토록 무모하고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것이 사랑의 힘이라고 하듯이 사랑과 기적의 이야기 <잠이 든 당신> 같은 사랑을 꿈꾸어본다.

 

사랑하겠다면 당신이 내일 죽을 것처럼, 전 사랑하겠습니다.

당신의 사랑과 사랑하는 당신을 이 땅에서 하늘 끝까지 완전히 사랑해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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