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부학자 - <그레이 해부학>의 숨겨진 미스터리
빌 헤이스 지음, 박중서 옮김, 박경한 감수 / 사이언스북스 / 201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해부학자』제목만 보고 거부감이 들었었다. 해부와 의학서적이 주는 무거움이었다. 첫 서문에 저자의 의도를 알게 되고 저자의 약력을 보고 오히려 흥미롭게 읽은 책이다. 제목만봐서는 저자가 의학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을 거라 짐작하였는데 저자 빌 헤이스는 의학의 의자도 모르는 그저 작가일 뿐이었다. 전업 작가이자 샌프란시스코 대학교에서 글쓰기를 강의하고 있는 빌 헤이스는 어떻게 전혀 상관없는 『해부학자』를 쓰게 되었을까? 저술로는 『불면증과의 동침 : 어느 불면증 환자의 기억(Sleep Demons: An Imsomniac's Memoir)』(2001년), 피를 주제로 한 『5리터 : 피의 역사 혹은 피의 개인사(Five Quarts: A Personal and Natural History of Blood)』(2005년), 19세기의 해부학자이자 현대 해부학의 기초를 닦은 헨리 그레이의 평전이자 해부학의 역사를 추적한 과학 논픽션 『해부학자 : 진짜 그레이 아나토미 이야기((伊)The Anatomist: A True Story of Gray's Anatomy(伊))』(2007년)등이 있다.

저자 빌 헤이스는 어느 날 서점에서 『그레이 해부학(Gray’s Anatomy)』를 구입하고 헨리 그레이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플라톤의 <국가>와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이 한 권씩은 갖고 있어야 할" 책이며 , 집필 시 참고용으로, 인체 부위를 확인하기 위해 종종 들추어 보았던 책이었던 『그레이 해부학(Gray’s Anatomy)을 보다가 어느 날 머리를 스친, "도대체 이 책을 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라는 궁금증이 바로 <해부학자>의 출발점이 되었다.그러나 헨리 그레이는 그야말로 수수께끼의 해부학자로 그의 행적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 저자의 집필의도를 더욱 불태운 것으로 보인다. 『그레이 해부학(Gray’s Anatomy)』은 의학 학계와 교육계에서 탁월한 저서라는 호평을 받았고 중쇄를 출간 직후 바로 하고, 미국판이 이듬해인 1859년에 출간되는 등 판매에서도 호조를 보였다. 연구와 출판 모두에서 명성을 떨치며 자신의 경력을 탄탄하게 구축해 가던 이 젊은 해부학자는 천연두에 걸린 조카를 간병하 다 본인도 천연두에 걸려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고 만다. 의학자로서, 해부학자로서, 교육자로서, 저술가로서 정열적으로 활동하던 헨리 그레이였지만 그와 관련된 자료는 현재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다. 그의 존재는 몇장의 흐릿한 사진과, 그가 세인트 조지 병원 해부학 박물관 학예관 시절 만든 몇 개의 해부학 표본, 그리고 그의 사망 진단서와 묘비만이 남아 있다. 일기나 그가 동료들과 주고받은 서한은 물론이고 그가 죽기 직전까지 준비하고 있던 『그레이 해부학』 개정판의 원고와 『그레이 해부학』을 화려하게 장식했던 삽화들의 목판 원고마저도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다.

 

 

저자는 프롤로그편에『그레이 해부학』을 구입한 이유는 그림때문이라고 한다. 아름다운 삽화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고 말하는데 삽화가의 이름은 헨리 그레이만큼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아버지로부터 미술 재능을, 어머니로부터 화가 '반 다이크'의 이름을 물려받은 빅토리아 시대의 인물 헨리 밴다이크 카터(Henry Vandyke Carter) 는 헨리 그레이의 후배로서 세인트 조지 병원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의사 자격을 취득하였다. 의사 자격 취득을 위한 학업의 시기인 1852년부터 1856년까지 헨리 그레이와의 공동 작업을 병행하며 『그레이 해부학』의 삽화를 그리게 된다. 1845년 5월 22일에 시작되는 그야말로 카터의 깨알 같은 일기, 그리고 누이인 릴리와 주고받은 편지 등 '개인 문서'였다. 런던에 있는 웰컴 도서관이 카터의 기록을 보관하고 있음을 알게 된 저자 빌 헤이스는, 마이크로필름으로 된 자료를 전해 받는다. 카터가 깨알같이 써놓은 자기만의 암호로 적어 놓은 일기를 마이크로필름으로 한 장 한 장 읽어 가며, 『그레이 해부학』의 탄생 비화를 추적하는 동시에, 저자는 해부학 실습 과정을 청강해 실제로 인체 해부를 학습한다. 1년 가까이 해부학 실습을 하며 실제로 인체의 이곳저곳을 직접 해부하고 관찰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자 그는 헨리 그레이와 헨리 밴다이크 카터가 어떤 생각을 하며 책을 쓰고, 그림을 그렸는지를 무려 150년 전에 죽은 사람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해부학을 개괄하고 있다. 해부 절차며, 해부학적 구조는 물론이고, 해부학의 역사에 이르기까지 해부학의 전반을 다루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은 해부학이라는 학문에 쉬운 접근까지 용이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저자가 처음 집필목적으로 삼았던 헨리 그레이의 생애를 알 수는 없었다. 다만, 헨리 벤타이크 카터의 일기를 통하여 헨리의 이야기를 잠시 들을 수 있었으며, 이 책의 가치는 오히려 다른 곳에 있다. 처음 저자가 시체를 보고 거부감과 토할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다고 한다. 그러나 인체를 해부하면서 감정의 변화는 내가 이 책을 보고 느끼는 변화와 똑같았다. 해부학에 대한 첫 거부감에서 시작되어 나중에는 책의 매력에 빠져 읽은 것 같다. 시체를 처음 본 순간 혐오스러움에서 빠져있다가 인체를 해부하게 되면서 그 안에 있는 모든 장기들을 아름답게 바라보게 되는 변화처럼 말이다. 카터가 “나는 단순히 시체만이 아니라 죽음에도 매료되어 있다. ”라고 말하듯이 죽음으로 인해 우리의 삶이 더 아름다울 수 있다는 의미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누군가를 잃어 보고 나서야 비로소 죽음에 관해 배울 수 있는 것이다."

 

책의 마지막에 저자가 “우리는 육안 해부학을 통해 생명을, 인간의 생명을 배운다.” 로 끝맺듯이 죽음을 이해하는 것, 그것이 생명의 시작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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