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마을 오라니 철학하는 아이 1
클레어 A. 니볼라 글.그림, 민유리 옮김 / 이마주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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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마을 오라니] 당신의 오라니를 잊지 말아요!

 

산 위에는 늘 산들바람이 불었습니다. 산들바람은 이끼 낀 바위도 어루만져 주고, 비 온 뒤 불쑥 자라난 야생화와 버섯도 흔들어 부었습니다. 나는 그곳에서 마을을 내려다보았습니다. 멀리서 보니 마을이 참 작고, 단정하고 조용해 보였습니다. 나는 이 마을이 품고 있는 온갖 삶의 소리를 떠올렸습니다. 내가 배우고 느끼고 알아야 할 모든 것들이 그 안에 있었습니다. , 정말이지 나는 아버지의 마을 오라니를 사랑했습니다! - p.51

 

우리나라에서 출신지는 자신의 고향이 아닌 아버지의 고향을 기준으로 한다. 그 때문에 단 한 번도 살아보지 않은 지역이 출신지가 되는 경우가 허다한데, 문제는 이것이 지역차별과 지연의 근거가 되는 연좌제적 잣대로 사회에서 통용되어왔다는 것이다. 인간에게 자신의 뿌리를 찾고 인지하는 것은 무척 중요한 일인데, 누군가에겐 불편할 수 있다면 너무 서글프다우리나라 수도 서울은 3대 이상 토박이가 전체 인구 6%에 불과한 곳이다. 그만큼 출신이나 고향의식도 적고 특별한 지역색도 없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내가 지방 출신인 부모님보다 뿌리에 대한 갈망과 애착이 더욱 강한 편이다. 본적, 출생지, 성장지 모두 서울이지만 정말 완전한 서울사람일까란 의문, 나름 유창하게 사투리를 쓴다 생각해도 영락없이 아버지의 고향에서 낯선 이방인인 것,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은 경계인 같다는 생각이 쉽게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한 아이에게 오라니는 완전한 세상이었고, 삶의 한가운데 서 있게 하는 곳이었다.” 책 끝의 작가의 말에 나오는 구절이다. 클레어 A. 니볼라는 자신이 그림 그리고 글을 쓴 동화 <아버지의 마을 오라니>를 마치며 이 책을 사라져 가는 공동체 삶의 기록이라고 정의하였다. 이탈리아 이민 2세대인 클레어 A. 니볼라는 미국에서 나고 자란 뉴욕인이다. 뉴욕은 서울보다 더 크고 다양한 출신의 사람들이 모여 산다. 지중해의 작은 섬 산골 마을, 오라니엔 니볼라가 뉴욕에서 겪지 못했던 자연이 있었고, 공동체가 있었다. 모든 희로애락 마을 안에서 이루어졌고, 모든 음식이 어디에서 오는지 알고 먹을 수 있었다. 이따금 찾는 오라니에서 친척들과 보내다가 다시 뉴욕으로 오면, 더욱 많은 사람과 발전된 문명이 있지만 무언가가 결핍된 것 같았다. 작가는 궁금해졌다. “저 사람들에게도 자기만의 오라니가 있을까?”

 

동화책, 그림책에 관심이 많아 한권 두권 독파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라가치상 수상작들을 많이 찾아 읽게 된다. <아버지의 마을 오라니>를 짚은 것도 수상 타이틀에 눈이 가서였다. 알고 보니 <아버지의 마을 오라니>는 라가치상 수상작이 아니라 멘션작이었지만, 다른 여러 도서상들을 수상하였다.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레 나의 오라니는 무엇인지, 아버지 손잡고 아버지 고향에 가던 어린 시절을 생각하였다. 내가 사는 곳보다 더 큰 도시에서 나의 아버지의 고향보다 훨씬 외진 곳으로 가는 이야기다보니 작가의 경험이 더욱 극적이다. 6촌 이상 먼 친척이나 체험을 가면 모를까 시골과 연결고리가 전혀 없다는 것도 작가만큼 아버지 고향에 애틋함과 감명이 크지 않은 이유인 것 같다. 그래서 자신의 존재를 채우는 벅찬 무언가를 꼭 안고 살아갈 수 있는 작가가 한편으론 부러웠다. 물론 책을 읽으면서 작가와 함께 읽는 나도 온 마음이 따스함으로 가득 차는 경험을 했지만 그것이 상상이 아닌 작가처럼 실체적 경험이 될 수는 없기에.

 

조선일보 계열 조선에듀케이션의 어린이문학 임프린트 이마주에서 이번에 철학하는 아이라는 그림동화 시리즈를 기획하였다. 어린이들이 성장하면서 부딪히는 수많은 물음에 대한 답을 함께 찾는다는 것이 출판사에서 밝히는 시리즈 기획 의도이다. <아버지의 마을 오라니>는 이 철학하는 아이의 첫 번째 책으로 가족 공동체의 소중함을 주제를 붙여 출간되었다. 모든 사람들이 오라니 같은 고향을 가질 수는 없지만, 어느 마을에서나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지키는 도덕과 문화와 정서가 있다. 이웃사촌, 친척, 가족, 사랑, 협동 등을 아이들이 교과서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라면서 담뿍 느꼈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아버지의 마을 오라니>의 작가처럼 지금의 나를 있게 하고 떠올리면 행복한 무언가가 있었으면 한다. 우리의 오라니를 지키면서 우리의 아이들도 오라니를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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