紫霞門 近處
- 金 冠 植 -
나는 아직도 청청이 어우러진 수풀이나 바라보며 병을 다스
리고 살 수 밖엔 없다.
혼란스런 꾀꼬리의 공교로운 울음 끝에 구술 목청을 메아리가
도로 받아 얼른 또 넘겨 가지틈을 휘돌아 구을러 흐르듯 살아
가면 앞길은 열리기로 마련이다.
사람이 사는 길은 물이 흘러 가는 길.
山마을 어느집 물항아리에 나는 물이 되어 고여 있다가 바람에
출렁거려 한줄기 가느다란 시냇물처럼 여기에 흘러 왔을
따름인 것이다.
여름 햇살이 열음처럼 여물어 쏟아지는 과일밭에서 구리쇠빛
팔다리로 일을 하다가 가을철로 다가들면 몸뚱아리에 살오른
실과들의 내음새를 풍기며 한번쯤 싱그러이 익을 수는 없는가 ?
해질 무렵의 서녘 하늘 언저리
愁心歌보다 서러운 노을이 떨어지고 밤이 내리면 헤아릴 수
없는 초록별이 솟아나 새초롬한 눈초리로 속삭거리며 어리석음
을 흔들어 일깨워 준다.
수줍은 달빛에 조촐히 물들어 자라나는 나무의 슬기로움을 그
곁에 깃들여 배우는것은 여간 크낙한 즐거움이 아니라, 스스로의
목숨을 곱게 불살라 밝음을 얘기하는 한낱 촛불이 조강한 첫날밤
열두폭 병풍 두른 골방속 시집 온 큰애기를 조용히 맞이하는
그러한 마음으로 죽음을 기다리며 구름 속에 파묻혀 기러기
한백년 살으리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