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의 도서관 - 소설로 읽는 책의 역사
요슈타인 가아더.클라우스 하게루프 지음, 이용숙 옮김 / 현암사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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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책을 펼쳐 몇구절 읽었을때 '어, 이거 책 잘못 산거 아냐, 좀 유치하기도 하고... 사촌 동생에게나 줘버려야겠군.'하는 오판을 했다. 약속 장소로 가는 지하철에서 재생지로 만들어진 이 가벼운 책을 읽으면서, 나의 성급한 판단을 후회했다. 오히려 내 유년시절에는 누락되어버린 이러한 지적 탐구의 기회를 가진 닐스와 베르테가 부러울 따름이었다.

초등학생때의 예의 그 '독후감'이라는 단어는 참으로 높고, 어렵고, 딱딱하기만 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지도 않는 단어들을 쥐어짜서 그것들을 원고지라는 감옥속에 감금시키는 기분.. 강압과 의무, 억지라는 단어들과 동일시되는 '숙제'였다.
그렇지만 닐스와 베르테는 모험을 둘러싼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사전과 책을 보며 (나름대로) 철저히 사전조사를 하고,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엉뚱하리만치 기발하게 서로에게 전달한다. '편지책'이라는 형식을 통해 이들은 자연스런 '독후감(->소논문)쓰기'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닐스와 베르테가 찾아나선 '비비 보켄의 마법의 도서관'은 누구나의 마음 속에 하나씩 들어있다. 그렇지만 다른 이의 책을 읽지 않고, 나의 생각을 표현해내지 않으면 그 마법의 도서관은 영원히 주문이 풀리지 않은채 지도에도 나와있지 않은 터널 속에 파묻혀 있을 것이다.

이들이 '편지책' 속에 인용하는 대단히 함축적인 시들 중 하나를 인용해 볼까 한다.

- 두 다리로 땅을 딛고 서 있는 사람은 말없이 조용히 서 있다.

'이 한마디가 글쓰기와 독서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해 주고 있다'는 닐스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하며, 읽은 것을 마음 속으로만 간직하고 토해내어 자기 것으로 만들지 않는 사람은, 아름다운 산에 올라 '야호'도 하지 않고 밋밋하게 그냥 내려오는 사람과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리고 내 '마법의 도서관'에 쌓여 있는 책들을 빨리 흑마술에서 풀어주어야 겠다는 생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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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 전집 4 (양장) - 공포의 계곡 셜록 홈즈 시리즈 4
아서 코난 도일 지음, 백영미 옮김 / 황금가지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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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요약본으로 읽은 홈즈 시리즈에서는 느낄 수 없는 상당히 디테일한 부분까지 꼼꼼하게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완역본의 묘미일 것이다.

애거사 크리스티와 더불어 추리소설 입문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셜록 홈즈 시리즈. 아마 요즘 재밌게 보고 있는 외화시리즈 "CSI 과학수사대"의 제작자도 홈즈의 열성팬이 아니었을까.

과학 만능주의 시대를 살았던 홈즈의 정밀한 분석을 서술하는 인간적인 모습의 왓슨은 한치의 오차도 없는 과학, 분석만이 삶과 그 속의 사건들의 전부가 아님을 시사하는 아서 코넌 도일의 메세지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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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소설 읽는 노인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정창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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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눈길을 끄는 책들이 있습니다. 신문의 정치면 경제면은 안봐도 Book 코너는 꼭 보는데요, 요즘은 무엇이든 광고와 홍보로 승부를 거는지라 출판계도 다를바 없지요.

'빈수레가 요란하다'
책에 관해서는 이 옛말이 맞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한 것 같습니다. 요란뻑쩍찌근한 서평에 혹해 책을 읽었다가 실망하는 경우도 있고, 사람들 발길이 잘 닿지 않는 곳에 먼지 앉은 책을 집어 들었다가 나름대로의 안목에 우쭐하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서점에서, 도서관에서 읽을 책을 고르는 것은 마치 사람으로 따지면 인연을 만드는 것과도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라고나 할까. 열아홉에 읽은 <참을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과 스물여섯에 읽는 <참을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사뭇 그 존재의 무게가 다릅니다. 그 차이를 느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책과 나의 ’연緣(karma connection)’의 시작이겠지요.

읽고 싶다.
읽어야겠다.
욕망과 무의식적 강요 사이.

<연애소설 읽는 노인>은 그렇게 제 손에 들어왔습니다. 제목을 보았을 때 어떤 상상을 하셨는지요? 저는 보통 사람이기 때문에 아주 낭만적인 상상을 했더랬습니다. 젊은 시절에 뭔가 애틋한 사연을 가지고 있던 한 노인이 나이들어서까지 그 사랑을 잊지 못하고 따뜻한 벽난로 앞에서 보드라운 모포를 덮은채 흔들 의자에 앉아 연애소설을 읽는 장면.웬걸.. 이 소설의 배경은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아마존의 처녀림입니다. 이 소설의 자세한 얘기는 여러분을 위해 미공개로 남겨둘게요.

한가지만. 문명이 야만이라 부르는 거친 자연과 그 속에서 연애소설을 읽는 노인의 순수한 마음이 어떻게 하나의 이야기로 엮여져 나가는지. 환경운동가인 루이스 세풀베다의 메세지를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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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훌리아 아주머니와 결혼했다 1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황보석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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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앉은 동료가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를 도서관에서 빌려와서 나도 그 책을 한번 읽어보려고 인터넷에 주문을 했는데, 배송료 시스템이 바뀌는 바람에, 배송료를 물지 않기 위해 다른 책을 두권 더 주문했다.그래서 고른 책이 <나는 훌리아 아주머니와 결혼했다>라는 책이다. <베로니카...>는 브라질 작가, <나는...>은 페루작가의 소설이다.

주인공 마리토와 훌리아 아줌마의 이야기를 중심 축으로 중간 중간에 마리토가 일하는 라디오 방송국의 연속극 스토리가 삽입된다.처음에는 갑자기 색다른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나오고 결말도 제대로 맺어지지 않은 채 끝이나서 어떻게 된건가 궁금했는데, 책 접지 부분에 개요문을 보니 의문이 풀렸다. 

액자 소설의 변형이라고 해야하나.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1권의 후반부터 계속적으로 발자크에 버금갈 만한 페드로 카마초의 필력이, 아니 그의 기억력이 그 힘을 잃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한꺼번에 4개의 라디오 연속극 극본을 쓰고 있는데, 그래서 마치 발자크처럼 공장의 기계처럼 글을 토해낸다. 교정은 커녕 다시 읽어보는 일도 없이, 그리고 자신의 문체를 해칠까봐 다른 작가들의 글을 읽어보는 일도 없이 그는 쉬지 않고 기계를 돌린다.

하지만 청취자들의 항의가 올 정도로 연속극의 등장인물들이 서로 섞인다. 즉, X시 연속극의 등장 인물이 Y시 연속극에 등장하고, 또 Y시 연속극의 등장인물이 Z시 연속극에 등장하는 식으로 서로 섞여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능력이 소멸해가는게 아니라 페드로 카마초에 의해 창조된 인물들이 정말로 생명을 얻어 스스로 다른 시간대의 연속극에 등장하는 것이라고 그는 설명한다.

'내 머리는 물론 아이디어들로 화산처럼 들끓고 있어. ... 사기를 치는 건 내 기억이라고. 그러니까 내 말은, 그 이름들을 애기하는 거야. 나 이거 자네한테만 하는 얘긴데, 자네는 내 친구니까. 등장인물들을 뒤섞는 건 내가 아니라 그것들이 저절로 섞이는 거라구. '

역시 발자크는 모든 소설가들의 아버지이다. 도처에서 그의 기법을 모방(좋은 의미에서)하는 작가들이 보인다. 발자크 소설의 인물들은 하나의 작품 속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창조한 소설들 속에서 자유롭게 활동한다. 경계를 잊은채. 혹시 이것이 마리오 바르가스의 발자크적 인물기법에 대한 경쾌한 추리라면, 페드로 카마초가 실은 저절로 인물들이 섞여드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그것이 발자크의 작법에 대한 해답이 될 수 있을까.

어제밤에 책을 다 읽었다. 조금 실망스러운 결말이다. 해피엔드에 너무 길들여져 있는 탓일까. 자신의 능력을 너무 일시적으로 소진해버린 한 천재 작가의 놀라운 능력과, 훌리아 아줌마와의 결혼을 위해 노력한 모든 사람들의 땀에 비해 결말이 너무나 허무하다. 그렇다고 이러한 식의 결말이 마구잡이식이라거나 구성이 불안정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이 소설의 중심축을 이루었던 우여곡절의 두 축이 너무도 쉽게 스러진 것에 대한 아쉬움이랄까. 어떻든 인생은 이렇게 흥망성쇄를 거듭하는 것이 그 법칙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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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인 삶 그르니에 선집 4
장 그르니에 지음, 김용기 옮김 / 민음사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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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인 삶- 고독]

어떻게 그리고 누구와 함께 자기 밖으로 나갈 것인가 모든 소통은 흔히 '인격'이라 부르는 것들을 전제한다. 그게 아니라면 거기에는 병렬이나 얽힘 혹은 상호 침투는 있을지언정 결코 주고받음은 없을 것이다. 이 주고받음은 결국 한 인격을 다른 인격 속으로 이동시켜서 그 인격은 자신이 아니라 타자 속에서 살게 된다. 사람들이 사랑이라 부르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자기 삶의 근간이 자기에게가 아니라 타자에게 있게 하는 이른바, 자기로부터의 탈출이다.

-오랜만에 지하철에서 책을 읽었는데, 참 좋은 구절을 발견했다. 건조해진 나의 마음에 떨어진 한방울의 달콤한 물. 그런데 정말 그럴까?

[일상적인 삶- 정오 L’Heure de Midi]

친구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피타고라스는, 220과 284가 그런 것처럼 또 하나의 자신이라고 대답했다. 사실 220의 약수들을 따져보면 이들의 총합이 284이며 284의 약수들의 총합은 220임을 알 수 있다. 완전수는 6이나 28처럼 자신들의 약수들의 총합과 같은 숫자이다.

-관심의 분야에 따라 이렇게 어떤 것에 대한 정의도 나름대로 달라지는구나. 친구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나는 주어도 아깝지 않고 받아도 부담스럽지 않은 사람이라고 대답하고 싶다. 이해타산의 이 무덤속에서 과연 내 것과 네 것을 따지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렇다면 아마 나에겐 친구가 없을 것 같다.

[일상적인 삶-비밀Le secret]

한갓 인간들 사이에서 비밀은 결코 지켜지지 못한다. 그것을 끝까지 지키려고 아무리 애써 봐야 결국 드러나게 마련이다.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애시당초 사람의 비밀이란 밝혀지기 위해 만들어지는 것 같다. 은근슬쩍 털어놓는 것이 오히려 마음을 위로해 주기도 한다. 그래서 제삼자가 부추기지 않아도 스스로 토로하는 것이다.

당신이 어떤 비밀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아름다운 일이지만 당신에게 비밀이 있다는 사실을 남이 알아주는 것은 더 소담스런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 그게 비밀인지조차 모르는 바에야 그 비밀의 내용이 잘 지켜진들 무슨 소용이겠는가. 그리고 자기에게 비밀이 하나 있다고 말하는 것은, 흔히 그러듯이 그 내용을 드러내기로 마음먹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 세상 모든 비밀은 다 공공연한 비밀인것 같다. 너무 비밀이 많은 사람도, 또 비밀이 한개도 없는 사람도 재미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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