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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 결혼 시키기
앤 패디먼 지음, 정영목 옮김 / 지호 / 2001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이십여년을 함께 살았던 언니가 곧 출가외인이 됩니다.유학비자 문제로 며칠전 식도 올리기 전에 혼인신고를 했으니 엄밀히 따지면 벌써 조씨집안 사람은 아니지요. 어제 책꽂이가 있는 방엘 가봤더니 얼마전 도서배열을 바꿔놓은 책꽂이가 헝클어져 있고, 박스가 하나 놓여있더군요. 시집간다더니 자기가 산 책은 다 가져갈 모양입니다.
우리집은 속옷에는 이름 안써놔도 책에는 누가, 언제, 어디서 샀는지 다 적혀있거든요.아싸 잘됐다, 방이 너무 작아서 책꽂이를 더 놓을 순 없고 보기 싫은 책들 처분할 방법을 고민하고 있었는데.내가 보기 싫은 책들의 대부분은 언니가 산 책들이거든요.어허.. 근데 이거 문제가 생겼습니다.가끔 사이좋게도 1권은 언니가, 2권은 제가 산 책들이 있지 뭡니까. 거 뭐 정떨어지게 반 딱 갈라 가질 수도 없고, 지금 협상중인데 아무래도 상황이 저에게 유리할 것 같습니다.
작년까지만해도 별 문제없던 책들이 생이별을 해야할 판에 놓이고 보니 얼마전 동생이 빌려온 책이 한 권 생각나는군요. 라틴어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 원제 <EX Libris>가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으나..번역서 제목은 아주 그럴듯합니다. 서재 결혼시키기.
책을 좋아하는 두 사람이 결혼을 했습니다. 서로 다른 취향의 두 사람이 만나고보니 서로 소유하고 있는 책들의 종류도 다양하고, 책을 배열하는 방법에서도 물러서지 않으려 합니다.(저만해도 제가 좋아하는 책들은 더 좋은 책꽂이에, 언니가 산 책들은 구석탱이에 처박아 놓습니다.) 결국 둘은 합의를 하게되는데요. 그 과정이 아주 재밌습니다.
저처럼 책이 닳을까봐 급기야는 흰 장갑이라도 끼고 책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을 궁정풍 연애가, 제 동생처럼 책을 이리굴리고 저리굴리고 다 읽고나면 결국엔 한장 한장 뜯어 먹기까지 하는 사람을 육체파 연애가라고 한답니다. 궁정풍 연애가들은 사실 책을 읽는 것보다는 보는 걸 좋아합니다.가끔은 들고 있는 걸 좋아하기도 하구요. 맨손의 허전함을 매우거나, 지적으로 보이고 싶을 때 소품으로 사용하기도 하지요. 책을 가까이하고, 애착을 가지신 분이라면 많이 공감하실거예요.저는 내일도 언니와 협상을 할겁니다.서재랄것도 없는 세 개의 책꽂이를 이혼시킬 순 없지 않습니까?